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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14화 (414/425)

414. 새로운 세계 (1)

최후의 전쟁이 끝난 후, 대륙은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해의 상당 부분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북부와 남부를 가로막던 수해의 벽은 대부분 사라졌다.

북부인과 남부인은 이제 서로의 땅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언제고 남부 대륙으로의 확장을 노리고 있던 북부 제국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부를 장악해야 한다.’

‘남부의 아인하르트 제국은 언데드 군단을 이용해 북부를 침략했었다.’

‘그 죗값을 치를 때가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남부로의 진출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샤다이 황제의 정신이 다소 온전치 못해졌다는 것이다.

검은 하늘이 온 대륙을 뒤덮었던 날, 황제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머지않아 눈을 뜬 황제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등,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황제는 점차 회복됐고, 여전히 과거의 여러 일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총명했던 이전의 모습으로 서서히 되돌아갔다.

두 번째 이유는 요툰을 포함한 여러 이계의 괴물들 때문이었다.

검은 하늘이 종적을 감추며, 중간계는 이계의 침입을 몰아냈다.

하지만 잔당들은 대륙 곳곳에 남아 있었다.

‘괴, 괴물이다!’

‘이계의 괴물이 나타났어!’

‘어서 기사단에 보고를……, 끄아아아악!’

클라우디우스 제국이 이계의 괴물들을 소탕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륙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을 뽐내던 그들이었지만, 지난 언데드 군단과 요툰과의 전쟁은 그들의 전력을 상당 부분 소실시켰다.

거기에 더해 ‘검은 하늘의 날’에 쏟아진 이계의 괴물들은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점은 제국엔 여전히 레드 드래곤 카르노피아와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마스터를 찾지 못했을 뿐, 블루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이 제법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클라우디우스 제국이 이계의 잔당 토벌에 힘을 기울이는 동안, 남부 대륙도 그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남부는 북부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4개 왕국과 아인하르트 제국이 벌였던 전쟁의 후유증이 극심했다는 것.

물론 클라우디우스 제국도 아인하르트의 언데드 군단과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오랜 역사의 힘으로 대륙의 그 어느 나라보다 결속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고, 게다가 그 전쟁을 계기로 북부 야만인들과 동맹을 맺었다.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북부의 통합을 이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에 반해 남부는 아인하르트 제국이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제국의 탄생이 샤를 아인하르트의 정복 전쟁으로 이뤄진 것이었기에, 클라우디우스 제국에 비하면 아직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 체계를 갖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인하르트 제국이 더 이상 대륙 통합의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경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자국 내의 괴물 토벌에 주력했다.

‘아인하르트 제국이 국경의 문을 닫았다.’

‘듣기로는 이계의 괴물들을 소탕하고 있다 하더군.’

샹크리스, 나바라, 수오미, 탈리의 4개 왕국은 제국의 야심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심했다.

물론 그것은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계의 잔당 토벌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그 정도로도 4개 왕국은 크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왕국군의 전력은 취약해졌다.’

‘4개 왕국이 따로 움직인다면, 오히려 괴물들에게 각개격파당할 우려가 있다.’

그 말대로 4개 왕국은 지난 전쟁에서 많은 병력을 잃었고, 그래서 부족한 군사력을 보완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 중심엔 나바라 왕국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계의 괴물들이 처음 중간계를 침략했던 날 수오미의 왕과 탈리의 왕이 죽었다.

그것도 대부분의 후계자를 포함해서 말이다.

샹크리스의 왕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는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토마이어 왕 만세!”

“위대한 전쟁 영웅! 오토마이어 나바라!”

수많은 백성들의 외침처럼, 오토마이어 나바라는 위대한 전쟁 영웅이었다.

또한 그의 곁엔 대륙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역사에 남을 실력자들이 늘비해 있었다.

최강의 귀살자, 카스피 앗 딘.

서리나무의 왕, 슈시아 세이나자르.

중앙 마탑의 주인, 라일 플라마.

그리고 황금바위산의 군주, 크누트 스톤핸드까지.

의아한 점은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신수 그리즐리, 그리고 전설 그 이상의 마법사인 바토리 에르제베트도 마찬가지였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해 오토마이어 왕을 포함한 지난 전쟁의 영웅들은 말을 아꼈다.

그에 따라 갖가지 소문이 4개 왕국에 돌았다.

지난 전쟁에서 이계의 침입을 몰아낸 아틸라가 결국 마력의 폭풍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둥.

남쪽의 검은늑대 부족으로 돌아가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는 둥.

아인하르트 제국으로 잠입해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둥.

간혹 아틸라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검은늑대의 아틸라를 봤어! 아인하르트 제국으로 넘어가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분명히 봤다니까?’

그렇게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샹크리스의 왕은 키릴과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을 나바라의 지원 부대로 보냈다.

그는 머지않아 샹크리스 왕국이 나바라의 속국이 될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느꼈다.

빛의 신 포이베가 사라진 지금,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은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의 마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는 오토마이어 나바라의 환수다.

“검을 들어라! 이계의 괴물들을 소탕하라!”

“진겨어억! 오토마이어 왕을 따르라!”

“우와아아아아!”

나바라를 중심으로 뭉친 4개 왕국 연합군은 이계의 잔당 토벌에 힘썼다.

그러나 북부의 클라우디우스 제국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이계의 괴물들은 강하고, 신출귀몰했으며, 번식력도 뛰어났다.

토벌대의 피로는 점차 누적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신성한 의무를 저버릴 생각은 없었다.

“아인하르트 제국은 괴물 토벌을 마친 건가?”

“글쎄. 여전히 국경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 보면 아직일지도.”

아인하르트 제국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확인된 것은 없었다.

확실한 사실은 아인하르트 제국이 더 이상 4개 왕국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4개 왕국 또한 굳이 아인하르트와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북부와 남부는 이계의 괴물들과 싸웠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 * *

샹크리스 왕의 예견은 맞았다.

나바라 왕국은 샹크리스를 흡수했다.

수오미 왕국과 탈리 왕국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바라는 아인하르트 제국에서 해방된 속국들마저 차례로 흡수했다.

‘그 강대하던 아인하르트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국의 황제였던 샤를 아인하르트는 자국에 도사리던 이계의 위협을 제거한 후, 모든 속국을 해방시켰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여파로 남부 대륙은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방된 속국들 사이에서 점차 전쟁의 기운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몇몇 속국이 나바라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나바라는 조금씩, 그렇지만 확실하게 몸집을 불렸다.

아인하르트 제국이 사라진 이상 나바라의 군사력을 감당할 왕국은 남부에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오토마이어 황제 폐하 만세!”

“남부 대륙의 위대한 수호자! 오토마이어 나바라!”

“와아아아아!”

나바라 왕국은 제국으로 그 이름을 바꿨다.

오토마이어는 남부 대륙의 절반 이상의 왕국을 흡수하며, 황제가 됐다.

반면 남부의 패왕 자리를 군림하던 샤를 아인하르트는 속국들을 해방시킨 후 유령처럼 종적을 감췄다.

피핀과 제롬을 포함한 소수의 측근들도 함께였다.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아쉬워했다.

샤를은 크리엘도라 대륙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계의 괴물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그를 숭배하는 이는 여전히 많았다.

그것은 샤를이 최후의 전쟁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제국을 다스렸다는 것과, 또 이계의 잔당을 최소한의 피해로 섬멸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 * *

구 발루아 왕국의 남쪽, 작은 도시.

한때는 인간을 위협하는 수해의 어둠으로 무성했지만, 지금은 남해(南海)를 드러내게 된 그곳엔 대륙 최초의 항구가 있었다.

항구의 건설은 아인하르트 제국의 오랜 비밀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제국.

그러나 스스로의 손으로 제국의 역사를 끊을 때까지, 황제는 항구의 건설과 배를 만드는 일에 남몰래 몰두해 왔다.

배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남부 대륙이 운용했던 배는 강물을 타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새로이 만들어질 배는 강이 아닌,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대륙의 인간은 바다를 모른다.

많은 실패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황제는 시행착오를 크게 줄였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한 사내가,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의 제작법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두 명의 노움 연금술사를 함께 데려왔다.

그렇게 두 연금술사와, 대마법사 제롬을 포함한 황제의 고급 인력은 머지않아 놀라운 성능의 배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출항식은 없었다.

새하얀 돛을 펴며 배가 항구를 떠난 건 제국에서 속국들이 해방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배는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선장의 금빛 머리칼이 그림처럼 나풀거렸다.

선장은 바다의 빛깔과 같은 푸른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바쁘게 움직이는 선원들.

한때는 아인하르트 제국의 금사자 기사단원이었던, 그리고 그 이전엔 발루아 왕국의 어느 용병단원이었던 그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자는 피핀이었고, 태양과 나침반을 보며 배의 방향을 가늠하는 건 제롬이었다.

그들에게서 이전의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샤를 또한 마찬가지다.

“야 파울루! 너 또 내 플라스크 썼냐!”

“히끅! 무, 무슨 소리야 알키미야! 아, 아니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저 빌어먹을 땅딸보 새끼가 진짜!”

오늘도 티격태격하며 무언가의 연구에 한창인 두 연금술사를 보며, 샤를은 그들을 데려왔던 자신의 하나뿐인 형제를 떠올렸다.

“나의 여정은 지금부터다.”

수평선을 내다보는 그의 입술이 소년의 미소를 그렸다.

“넌 어쩔 생각이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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