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09화 (409/425)

409. 최후의 전쟁 (6)

샤를은 놀라움을 느꼈다.

아무리 뛰어난 검이라 해도 무생물에 불과한 날붙이가 스스로 하늘을 날며 타깃을 공격하다니.

샤를은 저것이 이기어검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인 ‘심어검(心馭劍)’이라는 것을 알았다.

샤를의 입가가 길게 찢겼다.

재미있다.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쇄도하는 드라칼리온을 튕겨 내며 크게 외쳤다.

“아틸라!”

부드득, 아틸라가 양손으로 드라칼리온의 손잡이를 잡았다.

드라칼리온의 검신이 더욱 길어졌다.

아틸라는 폭풍 같은 맹공을 펼치며 샤를을 압박했다.

허공 위의 무휼이 아틸라를 도왔다.

샤를은 듀란달 한 자루로 그 모든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검술은 심어검에 접어들며 더욱 강력해졌다.

샤를의 눈이 변화하는 미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샤를은 이 승부가 자신에게 불리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던 왼손을 펼쳤다.

한 번도 시전한 적 없는 기술이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맞았다.

츠츠츠츳……!

그의 왼손에 보이지 않는 검이 생성됐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검이다.

시전자인 샤를조차 어렴풋이 형상만을 감각할 뿐.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검의 위력은 강했다.

완전체가 된 듀란달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아니, 오히려 더욱 강했다.

퍼엉!

보이지 않는 검에 가격 당한 아틸라가 뒤로 튕겨났다.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한 상태에서도 크게 놀란 듯 그의 안구가 꿈틀댔다.

샤를은 아틸라와의 전투 중 ‘무형검(無形劍)’의 경지를 터득했다.

그렇게 아틸라에게 유리한 듯 보였던 전투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갔다.

샤를은 달렸다.

그를 향해 아틸라가 마주 달려왔다.

더욱 강력해진 두 전사의 힘이 격돌했다.

그에 따라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이 발산돼 하늘로 집결했다.

그것이 더욱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 중간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 * *

도롱뇽은 설원에 새겨진 코르키코스의 흔적을 봤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흔적을 눈에 담은 도롱뇽이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어 눈물을 털었다.

그러고는 바토리와 펀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펀치와 함께 도롱뇽의 등에 올라타며 바토리가 말했다.

“흐응. 나도 고맙단다 도롱뇽아.”

도롱뇽의 얼굴 비늘이 새빨갛게 변했다.

바토리에게 전했던 감사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고맙다. 바토리 할망구.’

“시, 시끄러! 고맙긴 뭐가 고맙다는 거냐! 다 늙어빠진 할망구 주제에!”

“내가 할망구면 넌 할아방구이니라.”

“카아앗!”

도롱뇽이 날아올랐다.

드라코리치는 소멸했다.

남은 건 아틸라를 상대하는 샤를뿐이다.

“우리가 가면 금사자 미물 새끼도 이제 끝이다.”

그사이 하늘의 이상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 있었다.

“하늘이 저렇게 찢어질 수도 있는 거였냐. 바토리 할망구.”

“그럴 리가 있겠느냐. 저것 또한 대격변의 영향일 터.”

도롱뇽은 아틸라와 샤를을 향해 날았다.

두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틸라의 붉은 기운과 샤를의 푸른 기운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또 그곳에서 발하는 가공할 마력의 폭풍이 하늘로 집결하고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야만 미물은 이제 정말로 괴물이 되어 버렸군. 원래는 내가 힘을 되찾자마자 콱! 하고 잡아먹으려 했었는데, 카앗!”

바토리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한번 시도해 보려무나.”

“누구 비늘 벗겨지는 꼴 보고 싶어 그러냐! 하여간 못돼처먹은 할망구 같으니라구.”

끼아옹!

아틸라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롱뇽이 아무리 날개를 움직여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냐 바토리 할망구!”

“난들 알 수 있겠느냐.”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바토리는 당황했다.

어서 아틸라를 돕고 싶은데, 이대로라면 아틸라에게 도달할 수 없다.

그때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익! 저거 바토리 아가씨 아니요!”

“엇! 정말이다! 바토리이! 도롱뇨오오옹!”

바토리와 도롱뇽이 아래를 내려 봤다.

조금 전까지 사방을 채웠던 칼날 산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루미니우스의 등에 올라탄 오토와 카스피, 그리고 슈시아를 비롯한 연합군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불길한 존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뭐, 뭐야! 쟤들 언제 이리 들어온 거냐!”

도롱뇽은 낯선 존재들보다 오토와 카스피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더욱 놀란 듯했다.

“아무래도 샤를의 세계와 중간계가 겹치기 시작한 것 같구나.”

여전히 저 멀리엔 아틸라와 샤를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칼날 산맥이다.

대격변으로 인해 중간계와 다른 세계가 겹치듯, 아틸라와 샤를의 격돌로 인해 샤를의 세계가 중간계와 겹치고 있는 것이다.

“케헷헷헷헤! 차라리 잘 됐다! 이참에 종복 미물과 살쾡이 미물도 데리고 금사자 미물 새끼를 처단하러 가자!”

조금 전까지 아틸라와 샤를에게 도달할 수 없어 골머리를 앓던 것도 잊은 채 도롱뇽이 떠들었다.

바토리는 굳이 대답할 필요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지상의 현 상황은 위험했다.

“일단은 철혈귀검과 카스피를 도와야 할 것 같구나.”

바토리는 저들이 이계의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행히도 이계의 존재는 많지 않았다.

중간계로 침입한 개체는 극히 일부인 듯했다.

연합군은 놈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니, 싸운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강력한 적 앞에 연합군과 제국군이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등을 맞대며 괴물들과 싸웠다.

“주, 죽어랏! 죽어!”

“크허억……!”

“끄아아아아!”

겹쳐진 세계는 이곳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신과 악마의 이공간이 머리 위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신과 악마들도 이계의 존재와 싸우고 있었다.

중간계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가자! 바토리 할망구!”

도롱뇽이 하강했다.

그러고는 이계의 괴물들을 마구 앞발로 강타했다.

바토리도 마멸의 칼날로 도왔다.

괴물들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도롱뇽과 바토리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들을 알아본 연합군이 환호성을 울렸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왔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도 있어!”

“우오오오오!”

전황은 서서히 반전됐다.

오토와 루미니우스도 더욱 힘을 내 괴물들을 물리쳤다.

카스피와 슈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펀치는 다시 광폭화를 사용하지 못했기에 도롱뇽의 등 위에서 코를 발름대기만 했다.

- 도롱뇽아.

- 내 친구 도롱뇽아.

- 아틸라의 기운이 안 느껴져.

이계의 괴물을 짓밟으며 도롱뇽이 외쳤다.

“저기서 금사자 미물이랑 아직 치고받고 있구만 뭔 헛소리냐! 카앗!”

- 그건 나도 알아.

- 하지만 기운이 안 느껴져.

- 아틸라의 세계와 우리 세계가 또 분리된 것 같아.

도롱뇽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펀치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펀치의 몸에서 광폭화가 사라질 리 없으니까.

펀치는 생각했다.

드라코리치가 자신의 광폭화를 사라지게 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두 세계가 분리됐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코리치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 도롱뇽아.

- 혹시 샤를이 날 도와준 걸까?

“미친 곰탱이 새끼!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도롱뇽은 일축했지만 펀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펀치의 추리는 맞았다.

샤를은 드라코리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 덕에 광폭화를 잃은 펀치는 체구가 작아져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펀치를 포함한 이곳의 일행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놈들을 짓밟아 버려 크누트!”

“뭐야! 보에몽 녀석이 먼저 달려가잖아! 누음앗핫핫핫하!”

“가자! 황금바위의 드워프들아!”

“호우호우!”

드워프들이 도끼를 휘두르고, 라일과 제롬이 이끄는 마법사단이 마법을 난사했다.

피핀의 금사자 기사단도 용맹하게 싸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지상에 난입한 이계의 존재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공간을 침입한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과 악마들은 다시금 마력을 발현해 하늘의 찢김을 막고 있었다.

“엄청난 마력이로구나.”

아틸라와 샤를이 만들어 내는 마력의 폭풍을 보며 바토리가 말했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균열.

그것이 중간계와, 사도들이 만든 이공간과, 대격변의 영향으로 침입한 이계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토리는 저것이야말로 엘이 아틸라에게 이야기했던 것과 일치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넌 너의 세계를 더욱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너의 ‘불완전한 세계’를 샤를의 ‘완전한 세계’와 충돌시켜, 그 충격에서 발생한 방대한 에너지로 이 세계를 뒤집어야 한다. 초대받지 않은 다른 세계의 겹침을 몰아내고, 중간계를 완전함의 세계로 재구축해야 한다.’

또한 바토리는 직감했다.

오랜 세월 황성에만 머물러 있던 엘이 힘을 드러낼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도롱뇽도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이, 바토리 할망구.”

도롱뇽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바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의 완전한 세계와 아틸라의 불완전한 세계는 점점 더 거센 마력의 폭풍을 일으켰다.

둘 사이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행성과 행성이 부닥치는 것 같았다.

지면이 부서질 것처럼 진동하고 공기가 타올랐다.

신과 악마의 노력에도 하늘의 찢김은 가속됐지만, 아틸라와 샤를이 발생시킨 균열이 그것들을 억제하고 있다.

그 놀라우면서도 위태로운 광경을 보며, 바토리는 엘과 아틸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난 혼돈이 어떤 방식으로 울타리와 중간계를 합치려는 것인지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막을 것이다.’

‘당신이 혼돈을 막을 수 있다고?’

‘혼돈은 강하다. 아무리 나라도 혼돈과 정면 승부를 벌여 승리할 수는 없지. 하지만 나는 혼돈을 쓰러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내 목적은 ‘완전함의 세계’로 변모된 중간계를 혼돈의 손길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엘은 이렇게도 말했다.

‘혼돈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 미래에 대해 혼돈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혼돈이 원하는 미래를 손에 넣을 거라고? 그 말은 곧 중간계가 혼돈의 세계와 합쳐진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혼돈은 원하는 것을 얻을 테지만, 그것이 중간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다는 거지?’

그 질문에 엘은 이렇게 답했다.

* * *

“도현아. 아버지는 황제의 몸 안에서 그저 놀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란다.”

그렇게 시작된 엘이 이야기는 이랬다.

“난 황제의 몸속에 머물며 어떤 준비를 했다. 비좁은 황성에 갇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자, 이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준비를.”

“그게 뭐지?”

“네가 살아가던 세계, 지구. 난 그와 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엘의 의도를 알아챘다.

“당신은 가상의 중간계를 만들고 있다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