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08화 (408/425)

408. 최후의 전쟁 (5)

분노한 펀치의 앞발이 드라코리치를 마구 타격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펀치는 그동안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드라코리치의 등 위로 뛰어 넘어갔다.

“퍼, 펀치야!”

“히익! 저 미친 곰탱이 새끼!”

그 모습을 본 바토리와 도롱뇽이 기겁했다.

둘은 펀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닥쳤다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펀치의 공격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드라코리치가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당연한 일이다.

펀치의 광폭화는 아틸라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의 아틸라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버서커인 것처럼, 펀치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환수가 되어 있었다.

“뭐, 뭐야 미친 곰탱이 새끼! 무지막지하게 강해졌다!”

“이젠 너보다도 강한 것 같구나 도롱뇽아. 흐응, 그러고 보니 넌 펀치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 않았더냐.”

“카앗! 그건 아니지! 내가 봐준 거라고!”

펀치의 앞발이 드라코리치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우지끈, 드라코리치의 두개골이 함몰됐다.

드라코리치가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펀치는 발톱을 꺼내 드라코리치의 피부에 박았고, 덕분에 허공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드라코리치의 근육과 살갗이 재생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히익! 곰탱이 새끼 떨어지겠다!”

“말 돌리는 것이더냐 도롱뇽아.”

“마, 말을 돌리긴 무슨! 곰탱이가 다칠까 봐 그러는 거다!”

그러나 도롱뇽의 염려가 무색하게 펀치는 드라코리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척추 쪽으로 안착했다.

요령이 생긴 펀치가 뒷발의 발톱을 드라코리치의 근육에 박았다.

그러고는 두 앞발로 마구 척추뼈를 후려쳤다.

퍼엉! 퍼엉! 콰지지직……!

드라코리치의 살갗이 흩어지고,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서졌다.

펀치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롱뇽을 놀리기 위해 농담조로 말했던 바토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펀치가 도롱뇽보다 강해 보였다.

도롱뇽도 비슷한 감상을 느낀 모양이었다.

“카앗! 저 곰탱이 새끼가 제 주인을 닮아 미쳤나 보다!”

그렇게 외친 도롱뇽이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용혈의 반지를 통해 바토리의 의지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벌어진 도롱뇽의 입이 드라코리치의 가슴을 겨눴다.

도롱뇽은 바토리와 힘을 합쳐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해 드라코리치의 핵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기이하게도 지금의 도롱뇽은 느낄 수 있었다.

드라코리치의 핵이 어디 숨어 있는지를.

그 순간 도롱뇽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대로 브레스를 발현하면.

그렇게 핵을 파괴하면 드라코리치는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

코르키코스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난 성스러운 숲 코르키코스를 지키는 자, 드라칸 코르키코스야.’

도롱뇽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코르키코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넌 나의 하나뿐인 형제야. 난 오랫동안 이곳에서 널 기다려 왔어.’

코르키코스의 환각에서 벗어나며, 도롱뇽은 마음의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도롱뇽의 내면에 도사리던 죄책감이 고개를 들며 일어섰다.

녀석이 매도하듯 말했다.

‘코르키코스가 드라코리치가 된 건 너 때문이야.’

‘코르키코스는 널 구하기 위해 칼날 산맥의 괴수와 싸웠어.’

‘그리고 죽어 언데드가 되어 버렸어.’

그런 코르키코스에게, 도롱뇽은 영원한 죽음을 선사하려 하고 있다.

안 돼.

도롱뇽은 주저했다.

“도롱뇽아!”

바토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토리는 이미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했고, 마력도 주입했다.

그럼에도 브레스가 발현되지 않는다는 건, 도롱뇽이 억지로 그녀의 의지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도롱뇽아.’

바토리는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심중을 읽었다.

아틸라의 심안처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토리가 알 수 있는 건 두루뭉술한 심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바토리는 도롱뇽이 죄책감을 포함한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토리는 도롱뇽에게 측은함을 느꼈다.

한때는 사르데니야 왕국을 멸망시킨 원수 중의 원수였지만, 그것이 도롱뇽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바토리는 알았다.

도롱뇽은 이용당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의지에 의해.

도롱뇽만이 아니다.

중간계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 아니 신계와 마계의 악마들조차 이용당했다.

그 비운의 연쇄를 끊기 위해 아틸라는 싸우고 있다.

바토리는 그런 아틸라를 돕고 있다.

도롱뇽, 펀치와 함께.

바토리가 도롱뇽의 목을 쓰다듬었다.

진심을 다해 속삭였다.

‘이만 네 형제를 놓아주거라. 도롱뇽아.’

그렇게 말하며 바토리는 가슴 깊은 곳 어딘가가 후련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도롱뇽이 오랜 세월 코르키코스의 존재를 마음에 품고 살아왔듯.

바토리 또한 사르데니야의 모든 존재를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제국의 황성에서 엘을 만났던 날.

한자리에 모인 오르피나의 네 성물을 보며, 관조자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심란해하던 바토리에게 엘은 이런 귀엣말을 했었다.

‘네 소원은 이루어질 거야. 바토리.’

그 말을 듣고 바토리는 관조자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바토리는 생각했었다.

자신의 소원은 무엇일까.

사르데니야 왕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몸으로 아틸라와 함께하고 싶은 것일까.

그때의 바토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렇게 바토리는 그녀가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사르데니야의 수많은 영혼들을 놓아주었다.

그 마음이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에게 닿았다.

‘고맙다. 바토리 할망구.’

도롱뇽이 발하는 마음의 소리.

도롱뇽의 심중에서 주저가 사라졌다.

그의 눈이 위태로운 공격을 이어 가는 펀치를 봤다.

인정해야 한다.

코르키코스는 죽었다.

또한 코르키코스라면 언데드가 된 자신의 삶과, 목숨보다 아꼈던 이스메니오스를 공격하는 작금의 현실에 누구보다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활짝 벌어진 도롱뇽의 아가리가 다시금 드라코리치를 겨냥했다.

목구멍에 억눌려 있던 브레스가 탄환처럼 쏘아졌다.

퍼어엉!

그 순간 도롱뇽은 드라코리치의 등에서 떨어지는 펀치를 봤다.

공교롭게도 펀치가 추락하는 곳은 드라코리치의 핵이 숨겨진 곳.

“펀치야!”

바토리가 왼팔의 마력을 개방해 펀치의 움직임을 제어하려 했다.

도롱뇽도 날개를 펴며 다급히 비행하려 했다.

그러나 닿을 리 없었다.

도롱뇽의 브레스는 섬전처럼 빠르다.

반응 후 대비해 봐야 늦다.

그 와중에도 도롱뇽은 추락하는 펀치와, 그런 펀치의 두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봤다.

펀치는 말하고 있었다.

- 괜찮아.

- 괜찮아 내 친구 도롱뇽아.

도롱뇽의 눈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덥석! 드라코리치의 아가리가 펀치를 물었다.

그와 동시에 초 레어 송곳 브레스가 드라코리치의 얼굴을 뚫고, 가슴을 관통했다.

카아아앙!

드라코리치의 안광이 흔들렸다.

놈의 거구가 칼날 산맥의 설원으로 추락했다.

쿠쿠쿠쿠쿵…….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도롱뇽이 하강했다.

드라코리치는 설원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도롱뇽과 바토리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펀치의 안위였다.

놀랍게도 펀치는 무사했다.

펀치는 드라코리치의 입안에서 작아져 있었고, 그 덕에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맞지 않았다.

“이게 무슨……!”

바토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드라코리치는 죽음의 순간에 펀치를 입에 물었다.

그것이 펀치를 구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죽음의 길동무로 삼으려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바토리는 드라코리치를 상대하는 내내 핵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도롱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롱뇽이 핵을 찾았다.

마치 드라코리치가 핵이 숨겨진 곳을 알려 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도롱뇽은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해 드라코리치의 핵을 파괴했다.

바토리는 떠오르는 의문들을 해소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롱뇽은 아니었다.

도롱뇽은 펀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드라코리치가 날 구해 줬어.

- 드라코리치가 이상한 힘을 발현해 날 작게 만들었어.

- 그리고.

펀치의 눈이 주저하듯 도롱뇽을 봤다.

- 도롱뇽에게 미안하다고 했어.

도롱뇽은 드라코리치, 아니 코르키코스에게 다가갔다.

코르키코스의 얼굴과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서슬 퍼렇던 안광은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의 옛 음성이 환청처럼 머리를 스쳤다.

‘……날 포식하면 넌 악마의 힘을 손에 넣게 될 거야. 너 역시 식욕의 본능에 휘둘리게 될 거란 이야기지……. 하지만 결국 넌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거야. 넌 나와 다르게 악마의 도움 없이 브레스를 각성했어. 그 의지가 언젠가…… 악마의 잔혹한 대가로부터 널 자유롭게 만들어 줄 거야…….’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의 목에 머리를 문질렀다.

코르키코스의 몸이 잿개비로 화해 흩어졌다.

잠시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 *

샤를은 드라코리치의 영원한 죽음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드라코리치가 전해온 마지막 목소리는 더욱 그랬다.

드라코리치는 변심했다.

그럼에도 샤를은 다시금 자신의 세계와 드라코리치의 세계를 분리해, 드라코리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던 건가.’

별다른 감상은 없다.

다만 조금 흥미로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 흥미도 눈앞의 상황에 미칠 정도는 아니다.

샤를은 아틸라와 전투하는 이 순간이 좋았다.

고오오오오오.

하늘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과 아틸라의 충돌이 생성한 균열이다.

공간이 뒤틀린다.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전에 수해의 일부를 날려 버렸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그긋……, 그그그그긋……!

그 위로 낯선 기운이 덮이고 있다.

갈가리 찢긴 검은 하늘.

그곳에서 내리치는 벼락.

샤를은 이계의 존재들이 중간계를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시작된 모양이군. 아틸라.”

아틸라는 대답이 없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혔고, 완전한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아틸라는 나름의 의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기존의 아틸라와 다른 존재처럼 사유할 뿐이다.

그것은 불완전함이고, 혼돈이다.

샤를의 ‘완전한 질서’와 상반되는.

그로 인해 중간계를 지킬 수 있는 방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아틸라만의 힘이다.

“넌 정말로 흥미로운 존재다. 아틸라.”

샤를에겐 이전 같은 여유가 없다.

그는 조금만 방심해도 아틸라의 검에 목이 달아날 것을 알고 있다.

듀란달을 들어 아틸라의 변칙적인 공격을 막아 낸다.

빈틈을 노려 무휼을 공격한다.

이번 공격은 통했다.

아틸라의 손에서 튕겨난 무휼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구우웅.

휘돌며 날아가던 무휼이 공중에 멈췄다.

그것이 다시 아틸라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무휼이 스스로의 의지를 지닌 것처럼 공중을 날며 샤를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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