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최후의 전쟁 (3)
샤를은 자신이 아틸라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 이유가 아틸라가 지닌 육체의 한계성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틸라의 혼돈은 강하지만, 그것을 담은 그릇이 강하지 않다.
인간의 육체는 나약하다.
요정과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샤를의 육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기에 더해 아몬은 평범한 악마가 아니다.
아몬은 보통의 신과 악마와는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
샤를은 황성의 어둠 속에 머무르는 동안 아몬의 기억을 엿봤다.
그렇게 부분적인 기억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아몬이 혼돈의 분신이며, 그런 아몬의 분신이 바로 아틸라라는 것이었다.
‘아틸라는 아몬의 분신.’
그러나 완전한 분신은 아니다.
‘아틸라는 태아의 상태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아몬에겐 분신이라기보다는 아들에 가까운 존재. 나와 마찬가지로.’
샤를은 여전히 아틸라를 형제라 생각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여겼다.
샤를은 아틸라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중간계를 완전한 세계로 만들겠다는 목적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샤를은 아틸라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또 위안을 받았다.
샤를은 그 감정을 이용했다.
그는 자신이 아틸라에게 느끼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보며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을 파고들었다.
아틸라의 가변적 미래는 샤를에게도 혼란스러운 변수다.
아틸라의 혼돈은 그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샤를은 아틸라의 혼돈을 통제해야 했고, 그 방법이 바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분노한 건가 아틸라. 그래. 그것이 너의 내면에 담긴 진정한 혼돈이겠지.”
샤를은 아틸라를 자극했다.
그는 아틸라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자신조차도 아틸라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걸 알았다.
샤를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아틸라가 진정한 혼돈의 힘을 드러낸다면, 자신은 아틸라를 죽일 각오로 상대해야 한다.
샤를은 아틸라를 곁에 두고 싶은 것이지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마침내 중간계를 전쟁이 없는 세상으로 만든 뒤 그 공허의 끝에서, 샤를은 아틸라와 함께하고 싶었다.
카앙! 카아앙!
아틸라가 내뻗는 두 검을 샤를이 막았다.
듀란달을 통해 전해진 충격이 어깨를 넘어 전신을 울렸다.
아틸라는 엘을 만난 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드래곤을 넘어, 고위악마까지도 쓰러뜨린 아틸라다.
그런 존재의 검이 가벼울 리 없다.
그러나 아틸라의 검은 샤를의 몸에 적중되지 않았다.
샤를은 방어하고, 회피하며 아틸라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샤를의 몸엔 지금껏 자그만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미 전신이 상처투성이로 변한 아틸라와는 대조적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샤를은 아틸라보다 강하다.
“인간의 육체로 날 이길 순 없다.”
그 말과 함께 샤를의 검이 춤을 추었고, 아틸라의 양 어깨에서 핏물이 솟았다.
“실력을 드러내라. 아틸라.”
샤를은 아틸라가 서둘러 광폭의 힘을 발현하도록 유도했다.
아틸라가 기다리고 있는 타이밍.
그것을 어그러뜨려야 한다.
“머지않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죽는다. 반대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포식한 드라코리치는 더욱 강해지겠지.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혼자 힘으로 드라코리치를 막을 수 없다. 펀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광폭의 힘을 발현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때를 기다렸다.
동료들을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샤를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
도롱뇽이 죽을 거란 전제가 변치 않는다면 말이다.
“어이 샤를.”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도롱뇽은 죽지 않을 거다.”
* * *
도롱뇽은 코르키코스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몰랐다.
또한 코르키코스의 몸이 왜 저렇게 누더기처럼 변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코르키코스가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르키코스!’
지금 도롱뇽의 머릿속은 먼 과거로 돌아가 있다.
아틸라도, 바토리도, 펀치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도롱뇽에겐 오직 코르키코스뿐이다.
‘왜 그렇게 다친 거야 코르키코스.’
코르키코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희미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시끄러워, 도롱뇽은 생각했다.
누군가 자꾸 자신을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롱뇽이라고?’
그 누군가는, 자신을 도롱뇽이라 부르고 있었다.
도롱뇽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난 도롱뇽이 아니야.
난 성스러운 샘물 이스메니오스를 지키는 자,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야.
그러면서 도롱뇽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은 도롱뇽이 아닌데, 도롱뇽이라는 이름에 저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다.
‘모르겠어.’
도롱뇽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겐 코르키코스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다시금 코르키코스를 보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뼈가 드러난 코르키코스의 모습이 낯익었다.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전에도 저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도롱뇽은 혼란스러웠다.
‘이상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것이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도롱뇽의 마음은 조금 차분해졌다.
맞아.
이건 꿈일 거야.
코르키코스가 저런 모습으로 날 공격할 리 없으니까.
부웅.
날아드는 코르키코스의 공격을 피했다.
몸이 가벼워지며 감각이 되살아났다.
도롱뇽은 자신을 부르는 정체 모를 목소리와 코르키코스의 낯설면서도 낯익은 모습과는 별개로, 자신의 몸이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내 몸에, 낯선 기운이 들어와 있어.’
느껴지는 기운은 셋이다.
하나는 코르키코스의 냄새가 섞인 사악한 마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일부를 매개체로 삼아 침투한 인간의 마력.
마지막 하나는.
‘……!’
그것을 떠올린 순간 도롱뇽은 머리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도롱뇽은 직감했다.
낯익다.
이 통증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투특. 투트트특……!
도롱뇽의 내면을 가로막던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문이 열렸다.
도롱뇽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머릿속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았다.
조금 전 몸에서 느꼈던 낯선 기운들.
그중 코르키코스의 냄새가 섞인 사악한 마기의 정체는 포식이다.
또한 자신의 일부인 용혈의 반지를 매개 삼아 침투한 것은 바토리 할망구의 마력.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 빌어처먹을 야만 미무우우울!”
아틸라가 시전한 정신 교육이었다.
펄럭!
도롱뇽이 날개를 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코르키코스에게 포식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지를 발현했다.
그러자 망가졌던 몸이 수복을 시작했다.
“저, 정신이 든 것이더냐 도롱뇽아!”
끼아옹!
바토리와 펀치의 목소리.
도롱뇽은 킬킬대며 웃었다.
그러면서 용혈의 반지를 매개 삼아, 역으로 바토리에게 자신의 의지를 주입했다.
“이것은……!”
바토리의 눈이 뜨였다.
드라코리치의 모습이 변했다.
뼈 위로 근육과 피부가 보인다.
안으로는 반쯤 만들어진 내장이 흐물대고 있다.
지금까지 바토리는 환각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도롱뇽이 부쉈다.
“고마운 줄 알아라. 바토리 할망구.”
도롱뇽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바토리의 입술도 길게 찢겼다.
“그럼 시작해 보자꾸나, 도롱뇽아.”
* * *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그것이 먹히지 않자 정신 교육을 시전했다.
정신 교육만으로 도롱뇽이 이성을 되찾았다 볼 수는 없다.
도롱뇽 스스로의 의지와, 바토리와 펀치의 조력과, 아틸라의 정신 교육이 함께 만든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도롱뇽과 바토리는 환각에서 깨어났다.
아틸라는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틸라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졌다.
그것이 점차 색을 바꿨고, 종래엔 붉은빛으로 변했다.
“후우우우…….”
붉은 입김이 흩어지며 아틸라의 몸을 감쌌다.
샤를은 그것에서 미지의 불안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미지(未知)가 아니다.
샤를은 저 입김의 정체를 알고 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샤를이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아틸라의 몸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투틋……! 투트트틋……!
아틸라의 근육이 부풀었다.
그건 인간의 육체가 지닐 수 있는, 아니 인간을 초월한 어느 괴수의 근육 같았다.
근육의 성장을 방해할 전신갑주가 없었기에 아틸라의 몸은 저항 없이 팽창을 지속했다.
의식을 벗어나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며, 아틸라는 감각했다.
지금껏 이 정도로 근육이 팽창했던 적은 없었다.
몸이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전신에 힘이 넘치고 감각이 송곳처럼 곤두선다.
푸슛! 퓨슈슈슈슛……!
몸의 상처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이제는 평범한 피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흉터투성이가 된 그의 몸이다.
검은자위가 사라진 안구에 우툴두툴 혈관이 돋았다.
아틸라는 시야가 붉게 물드는 것을 봤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카아앙!
쇄도하는 샤를의 검을 튕겨 내며 아틸라가 포효했다.
샤를은 아틸라의 존재감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힘을 숨기고 있던 건 아틸라만이 아니다.
샤를 또한 진정한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겠군. 아틸라.”
샤를의 동공이 사나운 파충류처럼 좁혀졌다.
그의 푸른 눈이 서슬 퍼런 냉기를 뿜었다.
대악마 아몬의 마기가 샤를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어 폭발하듯 분출했다.
콰콰콰콰콰콰……!
그 안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몬의 검은 마기 속에서 요정의 마력이 꿈틀댔다.
샤를의 푸른 눈엔 요정의 마력이 담겨 있다.
그것이 그의 몸 주변에 은은한 오러를 발했다.
샤를이 아몬의 힘을 각성했던 날, 아레스의 신력은 사라졌다.
샤를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겐 필요 없는 힘이다.
샤를은 황성의 어둠 속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힘을 갈고닦으며, 한계를 깨뜨렸다.
그는 악마의 힘과 요정의 힘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고오오오오.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낸 샤를은 미래를 봤다.
가변적 미래가 불가변적인 것으로 변했다.
아틸라는 죽는다.
‘나의 손에.’
원치 않던 결말이다.
그러나 결정된 미래가 그의 눈에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그것은 아틸라와의 공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를은 미래를 인정했다.
그러자 내면에서 투쟁심이 불타올랐다.
샤를은 아틸라를 쓰러뜨릴 날을 고대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그 존재를 제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순간 변화가 일었다.
투트틋, 투트트트트틋……!
아틸라의 붉은 입김이 그의 몸을 감싸는 오러의 형태로 변했다.
마치 요정의 푸른 마력이 샤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샤를의 머릿속에서 미래가 부서지고, 재조합됐다.
불가변적이었던 미래는 다시 가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샤를의 몸을 짓누르던 우울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더는 네 미래가 보이지 않는군. 아틸라.”
마왕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