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02화 (402/425)

402. 신들의 전쟁 (2)

자신을 보는 오르피나의 눈빛에서 아틸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틸라는 언젠가 길잡이 숲에서 오르피나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의 오르피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온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었다.

또한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예(禮)를 갖췄었다.

당시의 아틸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오르피나가 엘의 연인이라는 것과, 그래서 엘의 분신인 자신을 통해 엘을 느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은 이제 오르피나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틸라에겐 엘의 일부가 있다.

그 일부가 오르피나를 보며 반응했다.

거기에 더해 아틸라는 오르피나에게서 어머니의 기운을 느꼈다.

‘네 어머니는 오르피나를 모태로 창조된 인물이다. 그래야만 내가 남편으로서의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엘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오르피나의 눈빛은 어머니를 닮았다.

그 눈이 다시금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 그대는 나를 통해 스스로의 기억과, 엘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군요.

오르피나의 목소리는 따스했다.

용솟음치는 활력과, 주변을 둘러싼 빛의 숨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들리는지도 몰랐다.

- 그러나 알테라. 그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고위악마들과 악마 군단 모두가 이공간으로 진입했다.

일일이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아틸라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합군을 향한 악마들의 위협은 사라졌다.

- 주, 죽을 뻔했잖아 포이베!

포이베의 치유를 받으며 아레스가 외쳤다.

포이베는 어울리지 않게 심통이 난 얼굴로 아레스의 등을 후려쳤다.

- 또 엄살은.

이공간이 하늘 위로 솟았다.

신과 악마의 모습이 물속의 풍경처럼 이지러지고, 굴절됐다.

지상에 남은 건 말끔하게 회복한 연합군과 시체뿐이었다.

아틸라의 눈이 하늘을 올려봤다.

어느새 네 사도는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마치 정사각형을 그리듯 서로를 마주 본 그들이 두 팔을 뻗었다.

네 쌍의 손이 얽히며 네모진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틈새가 열렸다.

촤르륵! 촤르르르륵!

틈새 안에서 튀어나온 건 하얀 갑주를 입은 천사들이었다.

천사 군단이 악마 군단을 향해 달렸다.

악마 군단이 괴성을 지르며 마주 달렸다.

그렇게 하늘 위의 이공간에서 신과 악마의 전쟁이 시작됐다.

- 알테라.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르피나인것 같기도 했고, 혹은 네 사도가 동시에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만든 틈새에서 마지막 천사가 튀어나왔고, 이후 틈새가 작아지며 밀도를 높였다.

아틸라는 마치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 그대의 예정된 운명을 향해.

집약된 틈새의 위아래로 광선이 방출했다.

그것이 대칭형의 곡선을 이루며 지면 가까이 쏘아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쏘아지는 광선이 수백, 아니 수천 가닥의 빛의 실로 변하는가 싶더니, 보이지 않는 허공의 벽을 두드렸다.

그 반동으로 허공이 거칠게 물결쳤다.

이어 직경 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저, 저것은……!”

“저게 뭐야!”

연합군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이번 전쟁을 치르며 그들은 이미 수없이 놀라운 일을 겪었다.

그럼에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병사들을 다시금 놀라게 만들었다.

저 멀리 금사자 깃발을 휘날리며 우뚝 솟은 성이 보였다.

아인하르트 제국의 황도.

그 안에서 아인하르트의 정예 병력들이 파도처럼 튀어나왔다.

“우리는 아인하르트 제국의 창날이다!”

“우오오오오오!”

선두를 달려오는 건 금사자 기사단.

그 옆으로 전투 코끼리 부대가 보였고, 반대편엔 아인하르트 제국의 새로운 무기인 금색창기병대가 있었다.

그들의 뒤로 궁병대와, 제롬의 마법사 부대가 말을 달려왔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키랴랴랴랴랴랴!

언데드 드라칸을 위시한 언데드 군단.

놀랍게도 언데드들은 네 사도가 만든 통로가 아닌, 그들만의 새로운 통로를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적이었지만 연합군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드높았다.

그들은 직전까지 아홉 고위악마와 아홉 군단병을 상대하던 이들이다.

이제 와 아인하르트의 정예군과 언데드 군단을 마주 한들 두려울 이유는 없었다.

“전군! 돌겨어어억!”

전투 함성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오토였다.

연합군의 가장 앞에서, 눈부신 금빛 드래곤을 타고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어느 위대한 옛 전쟁의 영웅을 보는 것 같았다.

“오토마이어 왕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나바라의 영웅! 오토마이어 나바라!”

“연합군의 영웅!”

“우와아아아!”

루미니우스의 네 발이 바닥을 짚었다.

루미니우스는 여전히 날개를 활짝 편 채로, 그러나 비행이 아닌 네 발로 지면을 밟으며 달렸다.

신기한 점은 그 뒤를 따르는 군마들이 루미니우스의 속도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가 네 사도가 발현한 마법진의 힘이라는 걸 연합군 병사들은 알지 못했다.

“대, 대장이 드디어 미쳤다!”

“시부럴 갑자기 왜 저렇게 멋있어졌지!”

“난들 아냐! 어서 달리기나 하라고 이것들아!”

아론, 로버트, 던컨이 킬킬대며 말을 달렸다.

그들은 선두를 달리는 오토의 등을 보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왕자와 함께했던 20여 년의 삶.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몇 번이고 왕자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룻밤의 짧은 생각으로 그쳤고, 내일의 해가 뜨면 세 기사는 목숨을 다해 왕자를 지켰다.

왕자는 점점 성장했다.

언젠가부턴 세 기사를 뛰어넘는 실력자가 됐다.

이후로도 왕자는, 아니 왕은 한계를 부수며 강해졌다.

그리고 이젠 골드 드래곤의 마스터가 되어, 대륙을 수호하는 대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씨, 씨부럴 왜 갑자기 눈물이 나냐……!”

“미친 새끼. 갑자기 처울고 지랄이야! 이 중요한 전쟁을 앞두…… 크흑……!”

“뭐, 뭐야! 아론 저 새끼도 울고 있잖아!”

“그럼 지금 안 울게 생겼냐! 그 겁쟁이 왕자님께서 저렇게 강인해지셨는데! 크허어어엉……!”

“시, 시발 울지 마! 나도 울 것 같다고!”

“너도 이미 울고 있다 던컨 새끼야!”

그렇게 세 기사는 울면서, 또 웃으면서 말을 달렸다.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이런 전투 고양감은 처음이다.

무언갈 결심한 듯 아론이 목청껏 소리쳤다.

“로잘린 누님은 내 거다아아아아!”

그 목소리가 신호라도 된 것처럼 발키리의 마력 화살이 쏘아졌다.

그것에 대항하듯 제국의 궁병대도 화살을 쐈다.

“전군! 방패벽!”

오토의 외침에 연합군이 방패를 들며 간격을 좁혔다.

투카카카카캉!

물결치듯 움직이는 방패의 벽이 적군의 화살을 막았다.

이번엔 제국군의 차례였다.

제롬을 필두로 한 마법사 부대가 연합군에게 마력탄을 쏘았다.

그에 대항하는 건 역시 라일과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퍼퍼펑! 펏퍼퍼퍼펑!

서로 다른 마력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화려한 불꽃을 터뜨렸다.

그 불꽃 너머로 보이는 건 신들의 전쟁이었다.

지상에선 연합군과 제국군이.

하늘 위의 이공간에선 신과 악마들이 전쟁을 벌였다.

“금색창기병대! 돌겨어억!”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 돌겨어어억!”

마주 보고 달려오던 군마들이 부닥쳤다.

화살과 마법에 이어 날선 창검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병력의 수는 제국군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연합군 병사들은 모두 스스로의 의지로 참전한 정예 중의 정예였고, 사도들 덕분에 한계 이상의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철혈귀검은 이제 그야말로 영웅이로구나.”

바토리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아틸라, 펀치와 함께 도롱뇽의 등에 올라 타있었다.

오토를 내려 보며 아틸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니 결코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이 꿈이고, 어느 날 눈을 뜨니 자신이 지구의 김도현으로 돌아가 있다면.

정말로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틸라는 오토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

그게 그렇지 않은가.

오토의 굴곡진 삶과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누가 보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적합했으니까.

도롱뇽이 슬쩍 고도를 높였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도롱뇽은 아레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히익! 비, 빌어먹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공간이 있는 곳까지 고도를 높인 도롱뇽이 기겁하며 외쳤다.

도롱뇽의 몸을 유령처럼 통과하는 천사와 악마들.

이공간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도롱뇽이었다.

“내려가라.”

아틸라가 말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연합군이 대적할 수 없는 언데드 드라칸을 신속하게 제거한 후, 황성으로 진입하는 것.

네 사도가 굳이 만들어 낸 통로다.

저곳엔 분명 샤를이 있을 것이다.

“빠르게 처리한다. 바토리.”

“그리하자꾸나.”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드라칸은 모두 네 마리.

그중 첫 번째 타깃을 향해 도롱뇽이 비행 속도를 높였다.

* * *

마왕은 황성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지만, 그의 푸른 눈은 이 세계의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13인의 고위악마를 소환했다.

그들을 소환한 이유는 자신의 군단을 더욱 막강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을 따르지 않는 마계의 몇몇 악마와 신계의 신들, 그리고 요툰헤임을 비롯한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 겨룰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마왕은 단순히 고위악마라는 전력만 가지고 군단을 강화시키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고위악마들은 미끼이자, 제물에 불과하다.

마왕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위악마의 등장에 대한 반발력으로 더욱 강력하게 변모할 아틸라의 존재였다.

마왕은 아틸라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틸라를 원하고 있다.

중간계를 장악하고, 마계와 신계를 넘어 대격변이 불러올 다중 세계의 적들을 물리치려면 역시 아틸라가 필요했다.

아틸라는 자신과 같은 존재다.

또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존재다.

마왕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는 먼 옛날 혼돈의 머릿속을 채웠던 고뇌를 반복하고 있었다.

중간계가 안전해지려면.

그렇게 이 세계가 완전해지려면 아틸라가 자신과 함께해야 한다.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

그리고 빛과 어둠의 공존처럼.

마왕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됐다.

그는 벼락처럼 등장한 사도 아자젤이 살레오스와 샥스를 압도하는 모습을.

뒤이어 강림한 아레스가 보티스를 비롯한 두 고위악마와 전투하는 모습을.

포이베와 오르피나가 완전해진 이공간으로 모든 악마들을 끌고 가는 광경을 동시에 파악했다.

예지(豫知).

마왕의 심안은 예지의 힘을 지녔다.

아틸라의 심안과는 다른, 그렇지만 대악마 아몬의 심안과는 유사한 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던 마왕의 시야가 아틸라에게로 수렴했다.

포이베의 등장으로 푸르손의 저주를 극복한 아틸라.

그럼으로써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그렇게 마왕의 곁에 설 자격을 획득하고 있는 아틸라.

“재미있군. 아틸라.”

마왕은 그리될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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