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01화 (401/425)

401. 신들의 전쟁 (1)

아레스.

먼 옛날 주신 전쟁 때, 모든 신들의 선두에 서서 검을 휘두르던 전사신(戰士神).

그 엄청난 위용에 신과 악마들은 두려움과 경외의 감정을 담아 ‘군신(軍神) 아레스’라는 이명을 부여했다.

모든 신과 악마 중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

그가 중간계에 현현했다.

- 아레스. 네가 어떻게.

보티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아레스를 봤다.

마왕 아몬의 힘으로 중간계에 강한 겹침을 만들어 낸 마계와 달리, 신계는 아직 중간계와의 겹침이 강하지 않다.

즉, 아레스는 아직 이곳에 등장할 수 없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분명 아레스였다.

“오랜만의 중간계로군.”

아레스의 입술이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타락해 변모한 고위악마들과 달리, 아레스는 언뜻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틸라가 엘을 통해 봤던 모습과 동일한 것이었다.

“어이, 아들. 오랜만이네?”

도롱뇽을 발견한 아레스가 너스레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도롱뇽이 카앗! 비명을 지르며 날아와 아틸라 뒤에 숨었다.

점점 덩치가 작아진 도롱뇽이 펀치의 털을 꼬옥 붙잡았다.

도롱뇽은 아레스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도롱뇽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연히 아레스의 눈은 아틸라를 바라봤다.

“알테라.”

아레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보니 정말로 엘로힘을 닮았군. 그 지독한 성격까지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장의 한복판이었지만, 아레스는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아레스가 등장한 이후 아틸라의 주변 세계는 정지했다.

보티스는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아레스를 보고 있었고.

보티스가 끌고 온 악마 군단 역시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아틸라가 말했다.

“아레스.”

“으앗! 목소리까지 빼다 박았잖아! 아, 정말 재수 없네. 그 면상에 그 목소리. 크으으……, 할 수만 있다면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싶을 정도야. 아니, 그럴 순 없지. 만약 그렇게 한다면 포이베가 또……, 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아레스가 도리도리 고개를 털었다.

아레스는 그 고고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수다쟁이였다.

그제서야 아틸라는 엘에게서 들었던 아레스의 정신 나간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레스는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일삼던 신이었지. 포이베와 크게 싸운 녀석이 홧김에 요툰의 왕 이미르를 찾아가, 믿을 수 없는 혼종(混種)을 만들어 낸 거다.’

그리고 또한 깨달았다.

아레스의 악마명이 ‘부도덕의 아가레스’인 이유와.

도롱뇽 새끼가 누굴 닮아서 저렇게 말이 많았는지를.

“흠. 그건 그렇고 알테라. 너 몸 상태가 아주 가관인데?”

아레스는 아틸라의 몸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 사자 대가리의 망할 저주가 심장까지 파고들었잖아. 응? 뭐야. 이래선 어차피 머지않아 뒈지겠는데? 흐음……,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영문 모를 소리를 주절대던 아레스가 돌연 히죽 웃었다.

그 모습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기에 아틸라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아레스가 빨랐다.

금빛 신력을 머금은 그의 검이 아틸라의 목을 베었다.

부웅.

“아차차 이 머저리 같은 놈! 난 이공간에 들어와 있었지! 깜빡했다!”

아틸라의 목은 무사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아레스의 검격에 제대로 된 반응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몸의 반응이 늦다.

푸르손의 저주 때문이다.

“하하하하! 장난이었다 알테라! 설마 내가 널 진짜 죽이려고 했겠어? 그랬다간 엘로힘과 포이베한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 힘든 말이었다.

아틸라는 점점 짜증이 솟구치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은 보티스보다 아레스를 더욱 베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워워. 진정하라고 알테라. 장난이었다니까? 장난?”

아레스도 아틸라에게서 발산되는 살기를 감지했다.

“넌 지금 무리해선 안 돼. 사자 대가리 새끼의 저주를 몰아내기 전까진.”

“당신이 그걸 해 줄 수 있다는 건가?”

“아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아레스를 보며 아틸라는 다시 한번 울화가 치밀었다.

도롱뇽보다 더 패 죽이고 싶은 상대는 처음이다.

“워. 워워워. 그렇게 엘로힘 같은 얼굴과 표정으로 노려보지 말라니까? 나는 네 저주를 몰아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네 저주를 몰아낼 존재가 없다는 말은 아니니까.”

“뭐라고?”

“흐음.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아레스와 아틸라가 대화하는 동안 보티스는 조금씩 이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보티스는 생각했다.

일대일로 아레스와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보티스는 주신 전쟁 때 아레스와 겨룬 적이 있다.

다른 악마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보티스는 그날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자신을 포함해 일곱 명의 고위악마가 있다.

거기에 더해 추가로 고위악마가 등장할 것이라는 걸 보티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둘 정도의 고위악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아레스를 쓰러뜨리는 건 손쉬운 일이다.

아레스가 주신 전쟁에서 남다른 위용을 뽐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지닌 무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아레스의 곁을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던 포이베의 존재 때문이었으니까.

뛰어난 치유사에게 끝없이 치유받으며 돌진하는 전사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주신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신과 악마는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엔 포이베가 없다.

보티스는 허공의 기운을 감각했다.

아마도 이후 등장할 고위악마는 중간계가 아닌 이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레스의 힘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고, 마왕 아몬의 뜻이 그러할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보티스에겐 나쁜 일이 아니다.

츠츠츠츳……!

보티스의 예상대로였다.

두 명의 고위악마가 이공간의 허공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라면 됐다.

보티스의 기다란 입이 더욱 길게 찢겼다.

두 고위악마가 아레스를 습격했다.

“응? 뭐야.”

아레스는 조금 의외라는 듯 뒤돌아 고위악마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 틈을 노려 보티스가 아레스의 뒤를 잡았다.

섬광 같은 일격이 아레스의 등을 꿰뚫었다.

“으아아아! 아프잖아 시발!”

아레스가 버럭 성을 냈다.

그런 아레스를 세 고위악마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보티스가 정신을 차리자 그의 악마병들도 활기를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추가로 등장한 두 고위악마도 자신의 군단병을 소환했다.

“어, 어이 알테라! 나 좀 도와줘! 아 맞다! 넌 이공간에 없지!”

다급한 와중에도 아레스는 입을 털었다.

어차피 도와줄 수도 없었지만, 도와줄 수 있다 해도 아틸라는 아레스를 돕고 싶지 않았다.

도롱뇽이 떨리는 눈으로 아레스를 봤다.

순식간에 성체가 된 도롱뇽이 아레스를 공격하는 세 고위악마에게 날아가 앞발을 휘둘렀다.

“카앗! 안 맞는다! 안 맞는다고!”

“야 이 멍청한 아들 새끼야! 넌 대체 누굴 닮았냐!”

아레스는 잘 싸웠지만 고위악마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어려웠다.

“저리 좀 꺼져 멍청한 아들 새끼야! 너 때문에 이놈들 공격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나, 난 도와주려는 건데!”

아레스의 몸에 상처가 중첩됐다.

물론 고위악마들도 아레스의 공격에 무사할 순 없었다.

아레스가 투덜대며 외쳤다.

“아 씨바! 이 여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왔어요.”

“응?”

어느새 아레스 뒤엔 눈부신 빛을 내는 아름다운 여자가 서있었다.

키릴이 경악했다.

“이럴 수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키릴은 상대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키릴이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빛의 신이시여.”

빛의 신 포이베.

혹은 태만의 아스타로트.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 빌어먹을 태만한 여자 같으니라고! 아무튼 잘 왔어 포이베! 어서 날 치유해 줘!”

“싫은데요.”

“응?”

포이베는 아레스의 곁을 지나 아틸라에게 다가왔다.

“알테라.”

포이베의 눈이 아틸라 옆의 키릴을 돌아봤다.

부드럽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인 포이베가 다시 아틸라를 봤다.

“포이베에에에!”

아레스의 외침을 무시하며 포이베가 아틸라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포이베는 이공간이 아닌, 아틸라와 같은 세계에 있었다.

포이베의 손에서 더욱 강한 빛이 피어나 아틸라의 몸 안으로 스몄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군요.”

포이베가 미소했다.

키릴과 루미니우스를 뛰어넘는 강대한 치유력.

그것이 아틸라의 전신을 가득 채우고, 순환했다.

아틸라의 눈, 코, 귀, 입에서 고위악마의 저주가 검은 마기의 형태가 되어 새어 나왔다.

더 이상 마기가 분출되지 않을 때까지 포이베의 치유는 계속됐다.

마침내 포이베가 아틸라의 가슴에서 손을 떼었을 때, 아틸라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활력을 체감했다.

포이베는 같은 방식으로 펀치의 저주도 몰아냈다.

펀치가 끼아옹! 포효하며 아틸라의 어깨에 올랐고, 포이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두 팔을 머리 위로 펼쳤다.

고오오오오오.

그렇게 연합군을 둘러싼 두 번째 마법진이 가동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시커먼 마기를 내뿜는 존재가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존재는 거대한 검은 악어를 타고 있었다.

리바이어던(Leviathan).

리바이어던을 환수로 부리는 악마는 하나뿐이다.

고위악마 닉스.

아니.

파멸의 신 오르피나.

퍼어어어엉!

포이베를 중심으로 거대한 백색 폭발이 일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마법진 전체를 빛의 공간으로 물들였고, 오르피나의 몸을 잠식하던 마기를 한순간에 몰아냈다.

오르피나는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아자젤, 아레스, 포이베, 오르피나.

그렇게 엘을 제외한 모든 사도가 한자리에 모였다.

포이베의 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법진이 강하게 진동하며 치유의 숨결을 발생시켰고, 그 힘이 연합군과 악마들의 몸을 휘감았다.

“이, 이게 무슨……!”

연합군 병사들의 몸이 치유됐다.

사망한 자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부상을 입은 자들은 완벽하게 치유됐다.

바닥을 드러냈던 마력도 회복됐다.

그와 대조적으로 포이베의 치유력은 악마 군단에겐 치명적이었다.

키에에에에에……!

악마병들이 쓰러졌다.

모든 악마병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녀석들이 포이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 없어졌다.

포이베의 시선과 오르피나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두 신은 서로의 힘을 발산해 두 개의 마법진을 하나로 합쳤다.

아자젤과 아레스도 신의 힘을 발현해 그것을 도왔다.

그그그그그그……!

아틸라는 이곳의 모든 악마들이 이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틸라는 문득 오르피나의 시선을 느끼고 옆을 돌아봤다.

오르피나도 아틸라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은 생생하게 아틸라의 머리에 스며들었다.

- 남은 악마는 사도들이 상대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운명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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