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00화 (400/425)

400. 대격변 (10)

거대한 조류의 앞발.

그것은 깃털로 가득한 긴 팔을 지나 소년의 어깨와 이어졌고, 놀랍게도 그는 아자젤이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김도현 씨.”

아자젤이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살레오스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분명 엄청난 폭발이 일었지만 아틸라와 펀치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아틸라는 상황을 직감했다.

지금 살레오스의 세계는 중간계와 겹쳐 있지 않다.

놈의 머리가 지면이 아닌, 아틸라가 봤을 땐 허공 어딘가에 부닥치며 타격을 입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네가 한 건가. 아자젤.”

“제가 한 건 맞지만,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죠.”

아자젤의 눈이 펀치를 바라봤다.

펀치도 고개를 들어 아자젤을 봤다.

둘 사이에서 묘한 교감이 흘렀다.

신수 그리즐리는 본래 아자젤의 환수였다.

“고위악마 정도 되는 존재들을 ‘이공간(異空間)’으로 옮기는 마법진은 그리 쉽게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마법진이 연합군을 따라 움직이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었고요.”

“마법진이 우릴 따라왔다고?”

“당신 역시 알고 있었을 텐데요.”

그렇게 말하며 아틸라는 깨달았다.

도롱뇽이 발견했던 마법진.

‘아래다! 아래를 봐! 야만 미물!’

그건 고위악마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고위악마가 등장하기 전, 펀치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킁킁댔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건 펀치가 마법진 속에서 아자젤의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 벨리알.

살레오스의 목소리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의 괴완이 아자젤을 습격했다.

아자젤은 조류의 앞발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아자젤에게서 벗어난 살레오스가 몸을 일으켰다.

아틸라의 눈에 아자젤과 살레오스는 보이지 않는 지면을 밟고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 방해할 셈인가. 벨리알.

“그러려고 왔지 않겠어? 살레오스.”

- 대악마 아몬이 현현했다. 그런데 넌 왜 그에게 반기를 들려는 것인가.

벨리알이 아몬의 측근인 건 악마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살레오스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벨리알은, 아니 아자젤은 여전히 아몬을 따른다.

“굳이 네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자젤의 눈빛에 살기가 담겼다.

그와 동시에 아자젤과 살레오스 사이에서 무형의 폭발이 일었고, 두 고위악마는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샥스가 살레오스를 돕기 위해 날아왔다.

아틸라는 살레오스뿐만 아니라 샥스도 ‘이공간’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았다.

도롱뇽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갑자기 내 공격이 하나도 안 맞는다! 카아아앗!” 하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으니까.

물론 상태를 보아하니 도롱뇽이 두 배는 더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틸라!”

키릴이 달려왔다.

그녀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살레오스와 샥스를 동시에 상대하는 아자젤을 보며 아틸라는 도롱뇽을 불렀다.

그러고는 펀치, 키릴과 함께 도롱뇽의 등에 올라탔다.

그런 아틸라를 악마 군단이 공격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도롱뇽이 하늘 위로 솟았다.

그러면서 도롱뇽은 가장 가까이 달려오던 악마의 면상을 시원하게 앞발로 후려쳤다.

“어라? 저 새끼한텐 통하잖아! 케헷헷헷헷헤!”

그것으로 아틸라는 살레오스와 샥스를 제외한 악마 군단은 여전히 중간계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았다.

“아틸라.”

“확인할 것이 있다.”

아틸라는 도롱뇽을 타고 전장의 하늘을 날았다.

생각대로였다.

나머지 다섯 고위악마와, 그들이 불러낸 악마 군단은 지금도 연합군과 전투하고 있었다.

‘이공간으로 옮겨진 건 살레오스와 샥스뿐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다.

쓰러뜨려야 할 고위악마는 일곱에서 다섯으로 줄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키릴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도 아자젤이 염려되는 것이리라.

키릴은 아자젤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가 연합군을 돕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괜찮을 거다.”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자젤은 엘의 측근이고, 엘에게서 ‘심안’을 포함한 많은 힘을 이어받았다.

살레오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아자젤의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자젤이 샥스도 함께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아틸라는 머리에서 털어냈다.

지금은 아자젤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동료들을 도와야 한다.

“근데 야만 미물. 마법진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도롱뇽도 아자젤이 마법진의 힘을 이용해 살레오스와 샥스를 이공간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마법진은 여전히 유지 중이었고, 점점 더 커졌다.

거기에 더해 도롱뇽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마법진이 하나가 아니야. 두 개다.”

아틸라도 그것을 확인했다.

원래 있던 마법진 안쪽으로 새로운 마법진이 구성되고 있었다.

저 마법진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틸라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라일, 슈시아, 크누트는 고위악마를 상대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특히 라일의 위세가 대단했다.

라일은 제 몸 안에 담긴 메피스토의 힘을 활용해 고위악마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고위악마의 수복력도 그에 뒤지지 않았고, 그래서 라일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마력을 난사 중이었다.

이어 아틸라는 오토를 찾았다.

오토는 루미니우스의 등에 올라탄 채로 다른 고위악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고위악마와 전투하는 바토리와 카스피가 보였다.

과연 최강의 마법사와 살수의 조합답게, 둘은 가장 안정적으로 고위악마와 대적 중이었다.

아틸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더 전력을 분산하는 것보다는 도롱뇽, 키릴과 함께 고위악마들을 각개격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위악마를 향해 이동했다.

추악공(醜惡公) 보티스.

슈시아가 상대 중인 고위악마였다.

* * *

슈시아는 상대의 재빠른 움직임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슈시아도 아틸라에게 고위악마들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 내용으로 유추한 상대의 정체는 추악공 보티스.

약탈후 샥스와 마찬가지로 살수형 악마였다.

샥스와 달리 보티스에겐 날개가 없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보티스의 민첩성은 대단했다.

슈시아는 최초의 일곱 화살을 보티스에게 명중시켰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고, 그 뒤로 슈시아의 마력 화살은 보티스의 몸을 거의 타격하지 못했다.

- 메피스토펠레스가 노렸던 발키리의 힘인가.

보티스가 입을 찢어 웃었다.

추악공(醜惡公)이란 이름답게 끔찍한 표정의 웃음.

보티스의 입은 얼굴을 넘어 뒤통수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슈시아는 그 괴기스러운 모습에 아랑곳 않고 마력 화살을 쐈다.

보티스가 긴 손톱을 휘둘러 그것을 튕겨 냈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손으로 슈시아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그것을 신호로 보티스의 악마 군단이 슈시아에게 일제히 돌격했다.

쿵쿵쿵쿵쿵쿵.

슈시아의 입술 끝이 일그러졌다.

발키리들은 이미 상당한 마력을 소진했다.

그것에 반해 악마 군단은 한결같은 위세를 뿜어내고 있다.

악마는 언데드보다 강한 수복력을 지녔다.

그 막강한 힘이 전장의 판도를 일거에 뒤집었다.

슈시아는 보티스를 타격하던 것을 멈추고 악마 군단을 향해 마력 화살을 난사했다.

그로 인해 보티스가 자유의 몸이 됐다.

지금까지 보티스는 소나기처럼 퍼붓는 슈시아의 마력 화살 때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보티스가 양팔을 벌리며 포효했다.

그 틈을 노려 슈시아가 보티스에게 마력 화살을 쐈다.

보티스는 히죽 입을 찢은 채, 오히려 가슴을 폈다.

펏퍼퍼펑!

슈시아의 마력 화살이 보티스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나 보티스는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슈시아는 지금까지의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보티스를 제압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놈에겐 그저 대학살을 앞둔 잠시의 여흥이었을 뿐이다.

- 끝을 낼 시간이군. 엘프.

보티스가 짐승처럼 네 발로 슈시아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에 슈시아는 아찔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 이곳엔 카스피도, 리베르도 없다.

하보림을 쓰러뜨렸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슈시아는 비로소 인정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다.

그럼에도 슈시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발키리들을 독려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그때였다.

키랴랴랴랴랴랴!

악마 군단의 머리 위로 브레스가 쏟아졌다.

그것이 슈시아에게 달려들던 악마들을, 그 사이를 뛰어오던 보티스를 일거에 덮쳤다.

슈시아의 눈이 브레스를 내뿜는 도롱뇽과, 그 위의 아틸라를 봤다.

그 순간 브레스를 뚫으며 보티스가 튀어나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혀를 휘두르는 그의 눈은 슈시아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 죽을 시간이다. 엘프.

그런 보티스의 앞을 아틸라가 막았다.

콰아아앙!

드라칼리온과 무휼이 보티스의 손톱과 부닥쳤다.

광기에 찬 보티스의 눈이 아틸라를 봤다.

- 버서커 아틸라.

아틸라를 밀쳐낸 보티스가 지면을 밟았다.

아틸라도 지면에 발을 디뎠고, 곧장 보티스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크윽……!”

아틸라의 몸이 경직됐다.

그는 심장에서 또다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키릴과 슈시아가 아틸라의 이변을 알아챘다.

키릴이 도롱뇽의 등에서 뛰어내렸고, 슈시아도 아틸라를 보호하듯 보티스에게 달렸다.

그러면서 슈시아는 직관의 눈으로 아틸라를 봤다.

고위악마의 저주가 아틸라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슈시아와 카스피도 하보림과 싸운 적이 있지만, 둘은 고위악마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하보림에게 치명상을 입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틸라는 달랐다.

아틸라는 세 고위악마와 싸우며 깊은 부상을 입었다.

그것의 후유증이 급속도로 아틸라를 잠식했다.

- 그렇군. 푸르손의 저주에 걸린 건가.

보티스가 킬킬대며 손톱을 휘둘렀다.

그것을 방패로 막은 키릴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슈시아가 마력 화살을 쐈다.

보티스의 몸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저것은……!’

슈시아의 눈에 비친 그 장면은 마치 카스피의 소멸 같았다.

사라진 보티스가 슈시아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것을 본 아틸라가 필사적으로 돌진을 발현해 드라칼리온을 뻗었다.

휘잉.

아틸라의 눈이 부릅 힘이 들어갔다.

드라칼리온이 보티스의 등을 통과했다.

아틸라는 이와 같은 감각을 조금 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보티스의 손톱도 슈시아의 몸을 저항 없이 통과했다.

보티스는 자신이 이공간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보티스는 오래전 느껴 본 적이 있는 강대한 힘을 포착했다.

- ……!

보티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보티스는 재차 은신술을 펼쳤다.

하지만 늦었다.

어느새 보티스의 앞엔 검을 든 사내가 서 있었고, 그에게서 뿜어지는 강대한 기운이 보티스의 은신을 파훼했다.

“오랜만이군 추악공.”

사내가 검을 들자 금빛의 검기가 뇌전처럼 뻗쳤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는 사내의 정체를 깨달았다.

전쟁의 신(神), 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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