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96화 (396/425)

396. 대격변 (6)

푸르손은 나베리우스와 스토라스의 절단된 머리를 봤다.

스토라스의 머리는 하나지만 나베리우스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기에, 머리통은 모두 네 개였다.

몸통을 잃은 머리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네 개의 머리가 푸르손을 봤고,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 한심하군.

고위악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

몸통에서 머리가 떨어졌다 해도 상당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심지어 완전히 숨이 끊기지 않았다면 절단면을 이어붙인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녀석들의 머리가 이곳까지 끌려온 것엔 그 이유도 포함됐을 것이다.

콰직! 푸르손의 거대한 발이 머리통을 밟아 으깼다.

그와 동시에 그는 하늘을 향해 발톱을 뻗었고, 쇄도해 내려오는 드라칼리온의 검기를 막았다.

콰아아앙!

폭발하는 검기와 마기 사이로 푸르손은 상처 입은 인간을 봤다.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난 안구.

푸르손이 한쪽 입가를 올렸다.

- 그래. 네가 버서커 아틸라인가.

파드드드드드……!

거대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목뼈부터 추락한 도롱뇽이 지면을 긁는 소리였다.

도롱뇽은 제대로 착지하지 못했다.

두 고위악마와 싸우며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그 상태로 이곳까지 최대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도롱뇽이 나 죽는다며 꽤액!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진짜로 비명을 질러야 할 건 도롱뇽에게 깔린 수많은 악마들이었다.

도롱뇽은 악마 군단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푸르손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버서커 아틸라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게 흥미가 있다.

현재 마왕군(魔王軍)과 대적하고 있는 4개 왕국 연합군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뽐내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푸르손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상대하는 데 적합한 악마가 아니다.

그는 다른 고위악마보다 강한 힘을 지녔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버서커 아틸라를 상대하는 고위악마로 나베리우스와 스토라스가 선정됐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고, 버서커 아틸라는 이곳에 있다.

- 오너라. 버서커 아틸라.

푸르손의 발톱이 아틸라를 공격했다.

아틸라는 무휼과 드라칼리온을 휘둘러 그것을 막았다.

도롱뇽의 등에서 뛰어내린 펀치가 악마들을 때려 부수며 달려왔다.

그러나 아틸라의 의지를 전해 받고는 곧장 바토리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펀치야!”

펀치는 바토리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아틸라는 바토리가 여섯 번 죽음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분노했다.

크르르르르르……!

버서커의 광기가 푸르손을 습격했다.

푸르손은 어렵지 않게 방어했다.

무력 면으로만 보자면 대악마 못지않은 힘을 지닌 푸르손이다.

게다가 그는 다른 악마보다 월등한 마법 저항력과 회복력을 지녔다.

전사형임에도 마법사에게 더욱 강력한 악마.

바토리가 푸르손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이유다.

- 너는 마치 ‘그’와 같군.

푸르손은 아틸라에게서 마왕 아몬과 동류의 힘을 느꼈다.

완전한 동류는 아니다.

마치 거울을 통해 보는 세상처럼, 아틸라와 마왕의 힘은 같으면서 완벽하게 다르다.

아틸라도 푸르손을 상대하며 기시감을 느꼈다.

단정왕(端正王) 푸르손.

그에게선 카르타고의 냄새가 난다.

물론 둘에게서 어떤 접점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틸라는 푸르손에게서 카르타고의 모습을 봤다.

둘 모두 완성형의 전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어어어어!

펀치는 바토리를 지키며 악마들을 타격했다.

광폭의 영향을 받은 펀치는 강했다.

게다가 도롱뇽과 달리 펀치는 나베리우스와 스토라스에게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곰탱이 새끼야! 할망구만 지키지 말고 나도 지켜야지!”

도롱뇽이 외쳤지만 펀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도롱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도롱뇽이 상처 입었어도, 저런 조무래기 악마들이 도롱뇽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 우리는 악마 군단을 상대한다! 진겨어어억!”

“우오오오오오!”

키릴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빠르게 깨달았다.

그녀는 성기사단을 이끌고 악마 군단과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인원은 전방의 언데드 군단을 막아서게 했다.

“……고맙구나 펀치야.”

바토리는 펀치의 보호를 받으며 마력을 회복했다.

푸르손에게 여섯 번 죽임당하며 그녀의 마력은 거의 바닥났다.

바토리의 떨리는 눈이 아틸라를 봤다.

누가 봐도 아틸라는 위험한 상태였다.

그는 나베리우스와 스토라스와 싸웠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버서커의 광기가 아니었다면 혼절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다.

하지만 바토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선 마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틸라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다.

- 귀찮은 일은 미리 싹을 잘라 두는 편이 좋겠지.

푸르손은 바토리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아틸라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싶었다.

푸르손의 오른손이 붉은 기운을 머금었다.

- 물러나 있거라.

퍼어어엉!

아틸라는 자신이 무엇에 얻어맞았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깨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통증은 잠시였고, 이번엔 고순도의 쾌감이 전신으로 번졌다.

쿠당! 탕! 탕! 타탕!

엄청난 소음을 내며 지면을 구른 아틸라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의 눈이 강하게 흔들렸다.

푸르손의 일격을 맞고 날아가는 펀치가 보였다.

그 너머엔 당황한 얼굴로 펀치를 부르짖는 바토리가 있었다.

푸르손의 일격이 바토리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을 투척하려 했다.

그러면서 직감했다.

구할 수 없다.

카아아앙!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바토리의 몸이 뒤로 튕겨났다.

그것과 동시에 푸르손의 어깨에 붉은 창날이 박혔다.

- 네놈은.

푸르손은 자신을 공격한 인간 마법사를 봤다.

먼 곳에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제롬 아그리피나.

마왕 아몬의 측근 중 하나.

- 방해할 생각인가.

제롬의 두 손은 서로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투 핸드’라는 이명답게 그는 양손에서 서로 다른 마법을 동시에 발현했다.

하나의 마법은 바토리를 밀쳤고, 다른 하나는 푸르손의 어깨를 타격해 공격 궤도를 바꿨다.

그 덕에 바토리는 목숨을 건졌다.

푸르손은 제롬에게 강한 살의를 느꼈다.

그러나 그는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죽이는 것을 당장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위험한 존재.

죽일 수 있을 때 죽여 두는 편이 좋다.

제롬도 더는 푸르손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단순했다.

아틸라가 푸르손을 막아설 때까지의 시간을 버는 것.

콰드득!

투창처럼 날아든 드라칼리온이 푸르손의 등에 박혔다.

이어 아틸라의 신형이 푸르손에게 도달했고, 드라칼리온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 광경을 보며 제롬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행동을 샤를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제롬은 바토리에게 빚이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죽음을 방관할 수 없었다.

제롬은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빚은 갚았다.

콰앙! 쾅! 콰아앙!

검과 발톱이 얽히며 천둥 같은 소음을 냈다.

푸르손은 아틸라가 직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날아드는 검기를 피하며 발톱을 휘둘렀다.

아틸라의 갑옷이 부서지며 핏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틸라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다.

푸르손은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다.

- 그렇군. 너는.

버서커는 상처 입을수록 강해진다.

자신의 육체를 한계까지 불태워 상대의 목숨을 취한다.

그것이 버서커가 싸우는 방식.

빠드드드듯……!

아틸라의 안구에서 빡빡한 소음이 일었다.

침잠된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그는 강한 의지를 머금었다.

무의식 속의 의지.

언뜻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틸라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행하고 있었다.

부서진 어깨가 덜렁거린다.

근육과 살갗을 비집고 나온 뼈가 피를 마시며 흩어진다.

그럼에도 푸르손은 강했다.

그는 약간의 위기감 속에서도 아틸라의 공격을 방어하고, 회피한 뒤 송곳 같은 반격을 꾀했다.

갑주가 깨지고, 살갗과 근육이 파이고, 그 안의 뼈가 부서졌다.

아틸라의 몸에서 더욱 많은 피가 흩어졌다.

그럴수록 아틸라는 한층 더 강해졌다.

하지만 체력 또한 급속도로 소진됐다.

아틸라는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다.

인간의 육체는 결코 악마의 육체보다 강할 수 없다.

퍼거거걱!

푸르손의 발톱이 아틸라의 복부에 꽂혔다.

아틸라의 갑주는 이미 모조리 부서졌다.

드러난 맨살은 푸르손의 억센 발톱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폭포수처럼 피가 쏟아졌다.

아틸라의 손에서 드라칼리온이 떨어졌다.

어깨가 산산이 부서졌음에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검.

그것이 힘없이 지면에 부딪쳤다.

팽창했던 근육도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졌다.

- 여기까지인가. 버서커 아틸라.

푸르손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그러나 목소리와 달리 그는 아틸라의 무력에 감탄했고, 또 만족했다.

인간의 육체로 이 정도까지 버텼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적적인 일이다.

푸르손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살기를 감각했다.

고개를 돌렸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등에 오른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보였다.

푸르손은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를 알아봤다.

- 용혈의 반지.

바토리와 도롱뇽의 몸에서 희미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둘 모두 제대로 된 마법을 발현하기엔 마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반지의 힘을 통해 둘의 마력을 합한다면, 한 번의 강력한 마법 정도는 발현할 수 있다.

- 어리석군.

푸르손도 그들의 생각을 읽었다.

바토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푸르손에게 발각된 이상 기습은 불가능하다.

또한 바토리는 자신과 아틸라를 번갈아 보는 푸르손의 얼굴을 보며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예감했다.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푸르손이 아틸라를 방패처럼 들어 올렸다.

무슨 공격을 하든 아틸라의 몸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바토리는 아틸라를 믿었다.

‘가자꾸나 도롱뇽아.’

도롱뇽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초 레어 송곳 브레스가 쏘아졌다.

퍼어어엉!

이번의 브레스는 이전보다 더욱 가늘고, 날카로웠다.

푸르손은 다소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 그래. 네 동료에게 최후를 맞는 것도 좋겠지.

그 순간 푸르손의 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위화감이 느껴진다.

왜 저들은 버서커 아틸라가 다칠 것을 알면서도 공격을 감행한 것인가.

푸르손의 눈이 쇄도하는 브레스를 봤다.

방향이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푸르손은 감각을 확장했다.

위협의 존재 또한 감지되지 않는다.

자신이 과민했던 것인가.

그 생각을 떠올린 것과 동시에 푸르손은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의 시야가 빙글 회전했다.

이 미지의 감각이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푸르손은 자신의 가슴이 무언가의 힘에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았다.

자신과 아틸라의 위치가 바뀌었다.

- ……!

그것엔 어떤 전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은 벌어졌고, 그 인과로 아틸라가 맞았어야 했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브레스는 푸르손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이어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였던 아틸라가 지면을 짓밟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콰드드득!

휘둘러진 무휼이 푸르손의 목을 절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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