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89화 (389/425)

389. 혼돈의 전장 (9)

흑철검은 작은 검이 아니다.

일반적인 전사의 기준이라면 양손으로 운용해야 하는 검.

성력을 개방한 무휼 또한 흑철검과 비슷한 길이를 갖췄다.

누가 본다면 지금의 아틸라는 두 손에 각기 다른 양손대검을 쥐고 싸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넓혀 카르타고를 함께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카르타고의 마검은 흑철검과 무휼, 두 검의 길이를 합한 것보다도 길었다.

그리고 두꺼웠다.

상대를 벤다기보다는 때려 부수기 위한 용도인 것처럼.

그 대검이.

아틸라를 노리며 쏘아졌다.

파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친다.

쉬이 틈을 찾을 수 없다.

아틸라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카르타고를 봤다.

자신은 카르타고의 공격권 안에 있지만,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사거리 바깥에 있다.

아틸라는 돌진으로 거리를 좁혔다.

카카캉!

세 자루 검이 잔인하게 서로를 물어뜯는다.

성력, 마기, 오러라 불리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그 힘들이 날카로운 폭발을 일으켰다.

안으로 파고들었음에도 카르타고의 검술은 느슨해지지 않았다.

카르타고는 검 손잡이의 바로 윗부분을 사용해 아틸라의 공세를 막았다.

그러고는 기회를 틈타 재차 거리를 벌렸다.

- 놀랍군.

아틸라에게 한 말이 아니다.

카르타고는 자기 자신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자신은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다.

그는 버서커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몸과 정신을 극도의 흥분 상태로 몰아붙여 한계 이상의 힘을 폭발시키는 기술.

당연히 그것엔 후유증이 따르지만, 데스나이트로 부활한 이후엔 후유증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언데드가 되며 인간과는 다른 신체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버서커의 힘이 지닌 또 다른 부작용은 이성이 억눌린 채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도 데스나이트가 된 이후로는 상당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성적인 모습만을 보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버서커의 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카앙! 촤르륵……, 카캉!

카르타고는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음에도 완전한 이성을 갖춘 자신을 발견했다.

버서커의 힘으로 강화된 신체에 칼날처럼 냉정한 정신이 깃들었다.

카르타고는 이것이야말로 버서커의 ‘완성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었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모순되게도 카르타고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실감을 했다.

아틸라가 했던 말과, 아틸라와의 결투가 그렇게 만들었다.

- 역시 넌 나의 진정한 대적자로군.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의 발이 지면을 짓눌렀다.

그의 몸이 화려한 검무를 추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기가 휘몰아쳤다.

마치 칠흑의 꽃잎이 흩날리는 듯했다.

더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완벽한 검세.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검술이 자신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르타고는 완성형의 검사다.

하지만.

완성형의 버서커는 아니다.

“넌 착각하고 있다. 카르타고.”

아틸라의 몸에서 변화가 일었다.

전신갑주가 진동하며 틈새가 벌어졌다.

그의 근육이 단단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투트틋, 파캉……!

갑주의 일부가 팽창을 버티지 못한 채 튕겨났다.

하워드 스틸숄더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리하고, 또 개조한 물건이었지만 아틸라의 신체 변화를 완전히 감당하진 못했다.

아틸라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났다.

검은자위가 사라진 안구에 우툴두툴 혈관이 돋았다.

- 이제서야 내보일 생각인가.

카르타고가 투구 속에서 웃었다.

그는 아직 완전한 무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틸라가 힘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아틸라는 버서커의 권능을 드러냈다.

아틸라의 뒤틀린 갑주 사이로 핏물이 솟았다.

악다문 잇새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르르르르르……!

카르타고의 몸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그의 갑주에 달라붙었던 마기가 조여지는 끈처럼 갑옷을 파고들었다.

손상된 갑옷의 틈새로 마기가 치솟았다.

흑빛의 마기가 아닌, 짙은 핏빛의 마기.

그 모습은 눈앞의 아틸라를 닮아 있었다.

카아앙!

카르타고의 마검이 아틸라를 습격했다.

아틸라는 흑철검과 무휼을 교차해 그것을 막았다.

흑철검이 마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지금까지 카르타고가 내보인 모습 중 가장 강력한 일검.

아틸라는 흑철검을 버렸다.

무휼을 들고 카르타고의 공세를 막았다.

그러면서 이곳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또 다른 무기를 찾았다.

기척은 금세 발견됐다.

아틸라는 그곳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오른손이 진동했다.

멀지 않은 지면에 꽂힌 무기도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파아아앙!

아틸라의 오른손에 익숙한 검 손잡이가 쥐여졌다.

드라칼리온.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아틸라의 부름에 답하듯 날아와 손아귀에 감겼다.

아틸라는 이런 식으로 검을 회수한 적이 없다.

다만 지금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었다.

아틸라의 깊은 혼돈이 드라칼리온을 변화시켰다.

드라칼리온의 검신이 더욱 길어졌다.

카르타고의 마검만큼은 아니지만, 무휼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을 불렸다.

그것이 날아드는 마검을 물어뜯었다.

콰득! 치르릇……! 까드드득! 콰쾅!

카르타고는 당황했다.

아틸라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직전까지 카르타고는 승리를 장담했었다.

지금이라면 악마왕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졌다.

카르타고는 눈앞의 사내에게서 악마왕과 동류의 벽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동류이되 동류가 아니었다.

두 사내의 힘은 다르다.

완전함의 결정체처럼 보이는 악마왕과 달리, 아틸라의 검술은 불완전했다.

또한 광폭의 힘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자신과 달리, 아틸라의 광폭은 무의식의 경지였다.

- 그런데 어떻게. 너는.

카르타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검술은 완성형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버서커의 힘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런데도 검술의 극의에 오르지 못한 아틸라에게, 한없이 불완전해 보이는 아틸라에게 밀리고 있었다.

아니, 잡아먹히고 있다.

퍼어엉!

드라칼리온의 날이 카르타고의 갑옷을 부쉈다.

카르타고의 옆구리에서 마기가 흩어졌다.

카르타고는 마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쇄도하는 드라칼리온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마검을 물어뜯었다.

카카카캉!

카르타고의 마검이 부서졌다.

수많은 첨예한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카르타고는 잘린 마검의 파편을 통해 자신을 봤다.

어떤 파편은 검붉은 투구를 쓴 자신을 비췄고, 어떤 파편은 붉은 머리의 호방한 사내의 얼굴을 비췄다.

카르타고의 안광이 부릅떠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카르타고는 수많은 크고 작은 파편 속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경험했다.

반추의 시간은 길면서도 짧았다.

그의 어깨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졌다.

- 너는……!

카르타고는 바닥에 흩어진 마검의 파편을 봤다.

마찬가지로 널브러진 자신의 양팔을 봤다.

몸에서 분리된 두 팔은 날을 잃은 검 손잡이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넌 나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카르타고.”

- 그림……자…….

“그것이 너의 한계였고, 또한 네가 지닌 버서커의 한계였다.”

카르타고는 자신이 완성형의 버서커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애초부터 광폭은 혼돈의 힘, 그 자체.

완성될수록 더욱 불완전해지는 능력이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완성된 검술을 바탕으로 버서커의 무의식을 통제했다.

그가 ‘진짜’가 아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가짜다.

아틸라의 그림자다.

츠컹.

카르타고의 투구가 한발 늦게 세로로 쪼개졌다.

잘린 투구 반쪽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 ……그렇군. 버서커 아틸라.

아틸라는 절반만 드러난 카르타고의 얼굴을 봤다.

혈관이 돋아났던 아틸라의 안구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에서 분출되는 핏물도 잦아들었다.

- 너와 샤를 아인하르트는 동류이면서 동류가 아닌 존재.

하나는 찬란한 빛.

다른 하나는 빛을 거부하는 어둠.

그것이 뒤섞인 공간은 혼돈.

질서와 무질서.

의식과 무의식.

완전함과 불완전함.

- 난 빛에도 어둠에도 속하지 못한, 그저 혼돈을 흉내 내고 싶었던 그림자였단 말인가.

반쪽만 남은 카르타고의 투구가 흔들렸다.

진동을 이기지 못한 투구가 어깨 아래로 떨어졌고, 때맞춰 그어진 드라칼리온이 그의 목을 베었다.

* * *

카르타고의 영원한 죽음은 언데드 군단의 사기를 단숨에 앗아갔다.

언데드들의 변화를 1군단의 병력은 빠르게 알아챘다.

그 즉시 반격에 들어갔다.

“달려라!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기병대! 진겨어어억!”

“우와아아아!”

그와 비슷한 시점에 바토리와 도롱뇽은 세 마리의 스켈레톤 드래곤을 쓰러뜨렸다.

남은 드래곤은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뿐.

“힘들어 죽을 것 같구나 도롱뇽아.”

“내가 더 죽을 것 같다! 냄새나는 할망구 궁둥이가 내 등을 문질대는 걸 언제까지 참으라는 거냐!”

“아틸라에게 그대로 일러주겠다.”

“하지 마!”

바토리와 도롱뇽은 녹초가 됐다.

그런 그들에게 반가운 지원군이 찾아왔다.

레드 드래곤 카르노피아와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

도롱뇽의 뒤를 쫓아 날아오던 두 드래곤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키랴랴랴랴랴랴!

두 드래곤의 브레스가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를 습격했다.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도 그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는 주인을 잃었다.

그에 반해 카르노피아와 프릴루이나에겐 마스터가 있다.

키에에에에!

길지 않은 전투 끝에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가 지면에 추락했다.

카르노피아와 프릴루이나는 1군단과 합류해 남은 언데드를 몰아쳤다.

자욱했던 마기는 어느새 사라졌다.

바토리와 도롱뇽은 아틸라를 찾아 날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루미니우스의 존재가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도롱뇽이 지면에 착지했고, 바토리가 뛰어내렸다.

아틸라는 루미니우스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들 사이에 누운 오토와 카스피가 보였다.

자그매진 펀치가 바토리를 보곤 혀를 헥헥댔다.

“야만전사야.”

“두 사람은 무사하다. 루미니우스가 늦지 않게 치유한 것 같군.”

바토리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자그만 몸으로 변한 도롱뇽이 조르르 달려와 펀치의 털 속에 파묻혔다.

아틸라는 고개 돌려 벨라의 시체를 봤다.

그는 벨라의 머릿속을 심안으로 읽은 적이 있다.

또한 그는 지금의 벨라가 목적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았다.

“만족한 얼굴이군. 벨라.”

아틸라는 벨라의 시체를 수습했다.

그러는 동안 바토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카르타고의 갑주와, 부서진 검의 파편을 봤다.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존재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서야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더냐.”

아틸라와 바토리는 동시에 남쪽 하늘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의 검은 머리칼을 흔들었다.

하늘은 먹빛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북부의 일은 해결됐다.

이젠 남부로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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