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88화 (388/425)

388. 혼돈의 전장 (8)

-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도 아틸라의 이름을 불렀다.

진동하는 그의 투구가 차랑한 소음을 냈다.

아틸라는 카르타고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펀치.’

펀치에게 의지를 전했다.

아틸라의 마음을 읽은 펀치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 오토마이어 나바라와 귀살자 카스피는 재밌는 상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욕구를 해소시키지 못했지.

“그래서 날 기다렸다는 건가.”

- 넌 여전히 나의 가장 강력한 대적자다.

카르타고의 마수가 쇄도했다.

그건 이미 팔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처럼 보였다.

아틸라는 무휼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러자 마수가 무휼의 날을 움켜쥐었다.

거대한 검은 손아귀가 중장비처럼 무겁게 조여졌다.

콰드드드드드……!

카르타고는 무휼을 부숴버리려 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흑철검 대신 흑철방패를 들고 카르타고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카르타고의 붉은 안광이 거칠게 타올랐다.

아틸라의 무휼도 더욱 강한 성력을 뿜었다.

치치칫……! 카르타고의 마수에서 검은 연기가 흩어졌다.

무휼의 성력이 마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카르타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댔다.

카르타고가 강해졌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욱 강했다.

“샤를에게서 힘을 부여받은 건가.”

- 악마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언데드 군단도 강해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틸라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샤를의 충직한 개가 된 심정은 어떤가. 카르타고.”

- 난 샤를 아인하르트의 미래를 봤다. 악마왕 샤를은 중간계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것을 넘어 중간계에 겹친 다른 세계마저도 장악할 것이다.

“그것이 네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카르타고는 순수한 전사다.

그는 샤를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지만, 그건 단순히 샤를의 힘에 굴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늘 샤를보다 강했다.

게다가 샤를이 대악마의 현신이 될 수 있었던 것엔 카르타고의 도움이 주효했다.

- 대격변은 중간계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또한 그것은 중간계에 엄청난 재앙을 야기할 것이다. 북부 대륙에 용계와 요툰헤임이 겹친 것처럼 남부 대륙도 많은 것이 변했다. 네가 알던 중간계는 사라지고 있다.

“샤를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 건가.”

- 악마왕조차도 대격변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는 대격변으로 겹쳐질 수많은 세계와 전쟁을 치를 것이고,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변모되어 살아남은 중간계의 새로운 질서가 될 것이다.

아니다.

카르타고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카르타고는 아자젤을 통해 샤를이 겪을 미래의 ‘일부’를 봤다.

‘아자젤은 나를 통해 알게 된 미래의 일부를 카르타고에게 보여 주었다.’

엘이 했던 말이다.

카르타고가 본 미래는 샤를이 대악마의 현신이 되는 모습까지다.

이후의 일에 대해 카르타고는 알지 못한다.

“넌 보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카르타고.”

카르타고의 마수가 꿈틀거렸다.

더욱 강해진 무휼의 성력이 마수를 튕겨 냈다.

그렇게 생겨난 작은 틈에 흑철방패가 꽂혔다.

카르타고의 몸이 크게 진동하며 뒤로 밀렸다.

흑철방패에 오러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넌 샤를에게 세뇌된 건가. 아니면 스스로 자신을 세뇌시킨 것인가.”

카르타고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지금 과거의 그 어떤 모습보다도 강했다.

마수가 더욱 굵어지고, 길어졌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재차 갈리며 십여 줄기의 촉수로 변했다.

휘리리릭.

그것들이 아틸라를 사방에서 공격했다.

아틸라는 무휼과 흑철방패를 이용해 방어했다.

카르타고의 공격은 무거웠다.

촉수와 검이, 촉수와 방패가 부닥칠 때마다 온몸이 진동했다.

뼈와 뼈 사이의 관절부가 오래된 기계 부속품처럼 삐걱댔다.

“이제 인간이었을 때의 모습은 완전히 버린 건가. 카르타고.”

- 인간의 형태는 껍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괴물이 된 지금의 모습에 만족한다는 건가? 넌 인간이었던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꼈을 터다.”

아틸라는 카르타고가 인간이었던 시절을 일부 알고 있다.

지금의 카르타고는 그때와 다르다.

아니, 처음 아틸라와 대적했을 때와도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넌 벨리알에게 속았다. 벨리알은 네게 선택적인 미래만을 보여 줬다.”

카르타고의 붉은 안광이 불꽃처럼 흔들렸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촉수의 다발을 더욱 강하게 휘둘러 아틸라를 강타했을 뿐이다.

대포알처럼 강력한 그 힘에 아틸라가 십여 미터 뒤로 밀려났다.

- 불필요한 말이 많아졌군.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의 오른팔이 크게 맥동했다.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촉수가 처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되돌아갔다.

이어 덩치를 줄인 마수가 평범한 오른팔로 변했다.

카르타고는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검신에 맺힌 마기가 확장하며 엄청난 크기의 대검으로 변했다.

타오르는 마검(魔劍).

마치 마수가 검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꾼 듯했다.

그렇게 완전한 인간의 형체를 한 카르타고가 공격 자세를 잡았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검 끝은 비스듬히 지면을 향한 모양.

사방으로 방출하던 마기가 갑옷에 달라붙었다.

그의 검붉은 갑옷이 검은 마기와 섞여 얼룩덜룩한 무늬를 그렸다.

눈으로 보이는 기감은 줄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런 카르타고의 모습에서 어떤 압도적인 전사의 위용을 느꼈다.

역시 카르타고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극한으로 단련된 전사다.

- 오너라. 버서커 아틸라.

그렇게 말해놓고 카르타고는 자신이 먼저 달려왔다.

아틸라도 달렸다.

그는 카르타고에게 오러를 두른 흑철방패를 던졌다.

콰아앙!

카르타고가 휘두른 마검이 흑철방패를 지면에 꽂았다.

아틸라는 더욱 가벼워진 몸으로 흑철검을 쥐었다.

하나의 마검을 쥔 카르타고.

양손에 각각 무휼과 흑철검을 쥔 아틸라.

두 전사가 힘차게 몸을 섞었다.

* * *

펀치는 지면에 널브러진 오토와 카스피를 봤다.

둘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멀지 않은 곳에 벨라가 쓰러져 있었다.

펀치는 벨라에게 달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생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펀치는 다시 오토와 카스피에게 돌아왔다.

아틸라의 의지를 받아 일단 달려오기는 했는데,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펀치에겐 치유 능력이 없다.

그러던 중 펀치는 저만치에서 몸을 일으키는 덩치를 봤다.

깜짝 놀란 펀치가 펄쩍 몸을 뛰었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

워낙 쥐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기에 펀치마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펀치는 도롱뇽을 타고 이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금빛의 섬광이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봤다.

또한 그것이 루미니우스라는 것과, 오토를 돕기 위해 날아갔다는 것 또한 도롱뇽을 통해 들었다.

펀치는 확신했다.

루미니우스는 오토와 카스피를 치유할 수 있다.

펀치는 카스피를 물어 등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오토의 팔을 물고 루미니우스에게 질질 끌고 갔다.

루미니우스도 비척대는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 신수 그리즐리.

루미니우스는 주위에 자욱했던 마기가 점차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 이유가 멀지 않은 곳에서 카르타고와 싸우고 있는 아틸라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루미니우스의 몸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렀다.

조금씩이지만, 루미니우스는 회복하고 있었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이 오토와 카스피를 살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 * *

바토리는 원래부터 관조자 중 최강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었다.

실제로 바토리는 과거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지하마계로 추락시킬 때도 다른 관조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엘에게 속박 당해 약화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특별한 드래곤이기에, 다른 드래곤과 직접적인 비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바토리가 드래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다.

바토리에겐 왼팔의 마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녀가 마음을 먹는다면 드래곤과 공멸(共滅)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 바토리가 이전보다 강력한 관조자로 되돌아왔다.

즉, 지금의 바토리는 드래곤 한 마리와 대등하게 힘을 겨룰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처럼 강력한 개체라 해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 바토리와 맞닥뜨린 드래곤은 다섯 마리였다.

“바토리 할망구! 너 무슨 숨겨 둔 힘 같은 거 없냐!”

“있을 리가 있겠느냐. 너야말로 큰소리치던 것과 달리 별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무, 무슨! 그건 다 여기까지 쉬지 않고 날아오느라 날개가 저려서……!”

“최강의 드라코니안이란 이명이 울겠구나. 고작 날갯짓 좀 했다는 이유로 이렇듯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나, 나약하다니! 넌 내 등 위에서 편하게 앉아 있기만 했잖아!”

“용혈의 반지를 통해 나의 마력을 전달해 네 이동 속도를 높여 준 건 기억조차 못 하는 것이냐.”

“그래봐야 죽어라 날개를 휘두른 건 나라고!”

“아무튼 다시 한번 죽어라 날개를 휘둘러야 할 것 같구나 도롱뇽아.”

“뭣이?”

키랴랴랴랴랴!

스켈레톤 드래곤들이 브레스를 뿜었다.

도롱뇽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그것을 피했다.

“저, 저 빌어먹을 놈들! 내 전투 습관 같은 걸 잘 알고 있다! 코르키코스 녀석이 일러준 게 틀림없어!”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슬슬 실력을 보여 주자꾸나.”

바토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도롱뇽의 얼굴도 전의로 불타올랐다.

“하찮은 미물 새끼들. 일대일로 붙으면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

둘은 지금껏 상대를 피하고만 있었던 게 아니다.

스켈레톤 드래곤들이 도롱뇽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바토리와 도롱뇽도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됐다.

키랴랴랴랴랴랴!

도롱뇽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초 레어 송곳 브레스가 아닌 산개(散開)형 브레스.

엄청난 범위의 브레스를 피하기 위해 언데드 드래곤들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바토리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허공 곳곳에 손바닥 크기의 자그만 균열이 생성됐다.

그것들은 모두 브레스를 피해 움직이는 언데드 드래곤들의 지척에서 발생했다.

바토리의 입술이 길게 찢어졌다.

“사냥의 시간이로구나.”

카카카캉!

균열에서 튀어나온 마멸의 칼날이 드래곤들을 습격했다.

* * *

마검이 춤을 추었다.

신들린 듯 마검을 휘두르는 카르타고는 마치 검과 한 몸인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검신합일(劍身合一).

카르타고는 자신의 힘이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감각했다.

그는 데스나이트로 부활한 이후, 검술에 대한 열의를 잊었다.

그래서 인간이었던 시절을 반추했다.

그러자 그때보다 더욱 강력해진 육체는 그의 검술을 완성형으로 진화시켰다.

그랬다.

카르타고는 진화했다.

그는 완전한 검사(劍士)다.

그런 완전한 검사를 상대하는 또 다른 검사가 있었다.

불완전함을 내재한 혼돈의 전사.

아틸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