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86화 (386/425)

386. 혼돈의 전장 (6)

카스피는 꿈을 꾸고 있었다.

갑작스레 밀려든 졸음은 그녀를 깊은 몽환의 세계로 인도했다.

카스피는 중얼거렸다.

벨라는.

내 몸을 빼앗으려 하고 있어.

‘아니야 꼬마.’

벨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네 몸을 빼앗지 않아.’

그럼 왜 그런 거야?

왜 내게 검을 꽂은 거야?

‘내가 지닌 힘을 네게 전하기 위해.’

힘을 전한다고?

‘난 사타나일을 통해 너의 몸 안으로 들어왔어. 그건 네 몸을 가로채기 위함이 아니야. 난 네게 힘을 전달할 거야.’

힘을.

전달한다.

‘아까도 말했듯 넌 더욱 강해질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왜 벨라는 내게 그렇게 하려는 거야?

‘넌 아이샤의 딸이니까. 내 하나뿐인 혈육이니까.’

딸.

그리고 혈육.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거야. 혈육이란 그런 거야.’

하지만 벨라.

‘넌 깊은 잠을 자게 될 거야. 그러는 동안 난 네 심장에 나의 힘을 각인시킬 거야. 그리고 네가 잠에서 깨어나면, 난 사타나일에 내 영혼을 정착시킬 거야.’

영혼을.

정착……?

‘그 시간은 길 테지만 한편으론 길지 않을 거야. 꿈속에서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차이가 있으니까.’

어떻게 검에 영혼을 정착한다는 거야?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사타나일이 지닌 힘이야. 난 황성에서 아자젤을 만나 계약을 했어.’

계약?

‘내 힘을 네게 전하는 대가로 난 사타나일에 갇히게 될 거야. 그렇게 사타나일은 본연의 힘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갇힌다고?

벨라가?

그런 건 싫어.

‘네가 사타나일을 간직한다면 난 너의 곁에 머물 수 있을 거야. 아울러 사타나일은 새로운 힘을 손에 넣게 될 거야.’

새로운 힘?

‘난 사타나일이 지닌 흡혈의 권능을 소멸시킬 거야. 사타나일은 애초부터 나의 힘을 흉내 내어 만들어졌어. 그래서 살라딘의 흡혈이 내게 통하지 않았던 거야.’

흉내?

흡혈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벨라.

‘넌 알지 못하는 이야기야. 아무튼 사타나일은 흡혈의 힘을 잃게 될 거야. 대신 요르문간드의 저주를 얻게 될 거야.’

요르문간드의 저주.

벨라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던 불길한 힘.

‘넌 앞으로 사타나일을 통해 요르문간드의 저주를 발현할 수 있을 거야.’

그런 건 상관없어.

난 벨라와 함께하고 싶어.

지금처럼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불가능해. 사타나일에 내 영혼이 정착되면 우린 지금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그럼 이대로 함께 있으면 안 돼?

내 몸 안에서 함께 지내면 안 돼?

‘그건 위험한 일이야 꼬마.’

왜?

‘육(肉)을 잃은 혼(魂)은 불안정해. 본능적으로 혼을 담을 육을 찾게 되지. 난 너의 몸에 오래 있으면 안 돼. 내 혼은 네 육을 탐하게 될 거야.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야.’

벨라가 내게 그럴 리 없어.

‘난 지금도 네 육을 탐하려는 본능과 싸우고 있어. 본능이 점점 비대해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야. 난 최대한 빨리 네 몸을 떠나야 해. 사타나일에 봉인되어야만 해.’

그런 건 싫어.

‘흡혈의 권능을 소멸시키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야. 난 위험한 존재야. 내겐 날 가둘 수 있는 견고한 감옥이 필요해. 그게 바로 사타나일이야.’

싫어.

그러면 벨라는 영원히 그 안에서 외롭게 지내야 하잖아.

‘내겐 네가 있어. 난 사타나일 속에서 너를 느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난 인간이야.

앞으로 수십 년밖에 살 수 없어.

영원히 벨라와 함께 있어 줄 수 없어.

‘상관없어.’

어째서?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카스피는 완전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벨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카스피는 몸을 일으켰다.

가슴에 박힌 사타나일을 뽑았다.

이 안에.

벨라가 있어.

“…….”

벨라의 시체가 보인다.

시신이었음에도 여전히 벨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왜 벨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본래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일까.

카스피의 얼굴이 저절로 꿈틀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벨라의 얼굴로 바뀌었다.

역용술.

벨라가 전한 힘 중의 하나.

카스피의 얼굴이 원래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허를 느꼈다.

오토를 돌아봤다.

참혹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오토를 보며, 카스피는 왜 벨라가 죽기 전 그런 말을 했었는지 깨달았다.

‘난 네 몸을 취한 뒤, 가장 먼저 네 동료들을 죽일 것이다. 그 시작은 저기 있는 오토마이어가 되겠지.’

카스피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 * *

오토의 심장은 크게 뛰고 있었다.

조금 전 카스피가.

아니 카스피의 외형을 지닌 이가 강철검을 회피한 순간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야. 영주 나리.’

오토는 흠칫 놀라 카스피의 얼굴을 봤다.

빠른 움직임 탓에 흐릿했지만, 오토는 확신했다.

그건 자신이 잘 알고 있던 카스피의 모습이었다.

‘살쾡이 암살자라고?’

퍼엉! 카스피가 소멸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던 수블라와 네트라비스를 토막 난 고깃덩이로 만들었다.

오토는 혼란에 빠졌다.

카스피인가 벨라인가.

목소리와 얼굴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벨라는 역용술의 대가.

게다가 카스피와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카스피를 흉내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토는 조금 전 보았던 얼굴이 카스피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었다.

오토는 카스피를 잘 안다.

수년 전부터 틈만 나면 그녀를 바라봐 왔으니까.

그래서 오토는 믿기로 했다.

루미니우스의 등에 올라타고, 카르타고를 향해 날았다.

- 재미있군. 셰이카 라딤.

아에스투스가 오토의 앞을 막았다.

카르타고는 아에스투스에서 뛰어내려 카스피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토는 루미니우스에게 의지를 전달해 아에스투스를 타격했다.

그러나 아에스투스는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던 중 이변이 일어났다.

- 드라코리치.

하늘에서 브레스가 쏟아졌다.

루미니우스의 날개가 오토의 몸을 가렸다.

파드드드드드드!

카스피도 그 광경을 봤다.

도우러 갈 수는 없다.

저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카르타고를 공격하는 것에 집중한다.

다행히 아에스투스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 넌 셰이카 라딤이 아니로군.

카스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르타고는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봤다.

오른손으로 바뀐 귀수의 위치를 확인했을 것이다.

- 오너라. 귀살자 카스피.

카스피는 처음 카르타고가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낸 날, 그와 싸운 적이 있다.

아틸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카르타고는 너무도 강했다.

카스피는 카르타고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번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카스피는 벨라의 힘을 느꼈다.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카스피는 벨라의 의지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감각했다.

‘가자. 벨라.’

품 안의 사타나일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뻗은 귀수가 카르타고의 검과 부닥쳤다.

이어 육중한 마수가 빈틈을 노리며 쇄도했다.

카스피는 그림자처럼 몸을 늘여 그것을 피했다.

이것 역시 벨라에게서 전해 받은 기술이다.

- 그렇군. 넌 셰이카 라딤이기도 한 것인가.

검 한 번 섞은 것으로 카르타고는 카스피의 정체를 간파했다.

셰이카 라딤은 카스피의 몸으로 전생했다.

다만 육체의 주도권을 카스피가 쥐고 있다.

즉 눈앞의 상대는 카스피의 몸을 취한 셰이카가 아니라, 셰이카의 힘을 흡수한 카스피다.

카르타고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어찌 됐든 셰이카 라딤의 힘과 정면으로 겨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카앙! 카아앙! 카아아앙!

날붙이 부딪는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카스피는 아직 벨라의 힘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벨라는 날 단련시켰던 거야. 최대한 빨리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또한 카스피는 귀기가 부족했다.

카스피에게 힘을 전할 당시 벨라는 모든 귀기를 소진한 뒤였다.

남은 귀기는 카스피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것.

그러나 카스피는 그동안 귀기를 소모했다.

벨라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양도 아니었다.

‘그건 카르타고도 마찬가지야.’

카스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과 달랐다.

카르타고에겐 여전히 상당한 마기가 남아 있었다.

애초부터 지닌 양이 다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하늘 위에 생성된 균열 때문이었다.

그그그그그그……!

드라코리치가 두 앞발로 균열을 벌렸다.

그곳에서 시커먼 마기가 화산재처럼 뿜어지며 내려앉았다.

그것이 쓰러진 언데드들을 일으켰다.

영원한 죽음을 맞이한 언데드는 그러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은 자신의 몸을 수복했다.

그 힘은 카르타고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카르타고는 자신의 마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크르르르르…….

네트라비스도 비척대며 몸을 일으켰다.

네트라비스는 깨어나지 못하는 수블라를 잠시 내려보다가, 밟아 으깨 버렸다.

그렇게 상황은 급작스럽게 변했다.

수많은 언데드가 되살아났고, 네트라비스와 아에스투스가 회복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벌어진 균열의 틈새로 드라코리치를 닮은 드래곤들이 기어 나왔다.

카르타고는 그것들의 정체를 알았다.

악마왕 샤를은 그동안 균열과 복제의 힘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가 눈앞의 저것이었다.

- 언데드 드라칸.

키에에에에에에!

세 마리의 언데드 드라칸이 포효했다.

놈들의 덩치는 드라코리치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드래곤보다는 컸다.

카스피는 당황했다.

카르타고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언데드 군단의 전력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놈들은 1군단의 병력을 해일처럼 몰아쳤다.

다행인 점은 드라코리치의 모습이 균열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드라코리치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균열도 사라졌다.

그러나 언데드 드라칸들은 남았다.

그렇게 이곳엔 총 다섯 마리의 언데드 드래곤이 남게 되었다.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한 카스피의 옆구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더욱 거대해진 카르타고의 마수였다.

카스피는 반사적으로 귀수를 뻗어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크흑……! 크허억……!”

카스피의 몸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부들대는 날개를 움직이며 루미니우스가 카스피에게로 날아왔다.

드라코리치의 브레스와 균열에서 쏟아진 마기로 엉망이 된 모습.

“살쾡이 암살자!”

오토가 뛰어내리자마자 루미니우스의 몸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카스피를 보호하듯 오토가 강철검을 들었다.

그러면서 오토는 직감했다.

온 전장에 마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카르타고는 직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 함께 죽고 싶다는 것인가. 오토마이어 나바라.

카르타고는 그렇게 해 주기로 했다.

흥이 깨졌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귀살자 카스피와 오토마이어, 둘 모두를 한꺼번에 쓰러뜨릴 수 있다.

카르타고는 달렸다.

그의 뒤로 부활한 언데드들과 다섯 마리 드래곤이 그리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카르타고의 검기가 더욱 팽창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날붙이가 그것을 강타했다.

카아아앙!

카르타고는 자신의 검기를 부수며 지면에 틀어박힌 날붙이를 봤다.

드라칼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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