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83화 (383/425)

383. 혼돈의 전장 (3)

카르타고는 자신의 오른 어깨를 절단하는 카스피를 봤다.

심리적인 충격은 없다.

오른팔이 절단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카르타고는 이미 아틸라에게 오른팔을 잘린 적이 있다.

덕분에 ‘벨리알의 눈’이 지닌 마력을 더욱 분명하게 몸에 각인시킬 수 있었으니 손해 본 일은 아니었다.

카르타고는 절단돼 날아가는 자신의 오른팔을 봤다.

무덤덤한 기분이다.

저것은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껍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카르타고는 한편으로 놀랐다.

오른팔을 당했다는 것에서 오는 놀라움이 아닌, 자신에게 기척 없이 접근해 공격을 성공시킨 카스피가 놀라웠다.

카르타고는 카스피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 너는 불필요한 존재다. 지금 죽여 두는 편이 좋겠군.

그날 카르타고는 카스피를 죽이려 했었다.

카르타고는 카스피의 성장 가능성을 탐지했다.

귀살자 카스피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더불어 카르타고에겐 달갑지 않은 변수였다.

그러나 버서커 아틸라가 카스피의 죽음을 막았다.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의 힘을 개방했고, 카르타고의 흉부를 갈라 소멸시켰다.

그 일로 카르타고는 한동안 육신을 잃었다.

그리고 이것은 카르타고의 오른팔이 절단된 순간부터 카스피의 두 발이 지면을 디디기 전까지, 찰나간 스친 생각.

카르타고의 안광이 카스피를 내려 봤다.

예감은 맞았다.

귀살자 카스피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가 됐다.

셰이카 라딤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 귀살자 카스피.

카스피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녀의 붉은 눈이 유성 같은 잔상을 그렸다.

창날처럼 빛나는 귀수가 카르타고의 목을 노리며 쇄도했다.

카르타고의 어깨 절단면에서 거대한 팔이 튀어나왔다.

카앙!

귀수는 카르타고의 새로운 오른팔에 막혔다.

오래전 라일을 상대하면서도 드러낸 적이 있었던 마수(魔手).

카르타고가 왼팔을 뻗었다.

그러자 자력에 끌리는 쇳덩이처럼 그의 검이 왼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것이 카스피를 향해 휘둘러졌다.

카스피는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며 검격을 막았다.

그러나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면에 처박혔다.

“꼬마!”

벨라가 카스피를 안고 바닥을 굴렀다.

직전까지 카스피가 있던 자리에 카르타고의 마수가 꽂혔다.

카스피와 벨라는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벨라의 사라진 왼팔을 보며 카스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벨라가 웃었다.

“아 이거? 없으니 몸도 가벼워져서 나쁘지 않던걸?”

그럴 리 없다.

벨라는 왼손잡이.

자신의 주력이 사라졌다는 건 살수를 포함한 모든 전사에게 치명적인 결함이다.

카스피는 오른팔이 절단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끔찍했다.

극도의 상실감에 그대로 자포자기한 채 주저앉을 것 같다.

자신은 벨라처럼 강하지 않다.

육체도, 정신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생각 마, 꼬마.”

카스피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벨라가 말했다.

“넌 카르타고의 오른팔을 베었어.”

“……벨라.”

“넌 강해.”

벨라가 카스피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더 강해질 거야.”

그 말과 함께 벨라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카르타고가 접근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벨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은 왼팔을 잃었다.

물론 왼팔이 사라졌다 해도 자신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다.

버서커 카르타고는 위험한 존재다.

- 아쉽게 됐군 셰이카 라딤. 난 완전한 상태의 너와 겨루고 싶었다.

카르타고의 마수가 벨라의 귀수와 부닥쳤다.

벨라는 오른손으로 귀수를 뽑았다.

본래 귀수는 어느 손으로나 발현할 수 있는 무기다.

그녀에겐 왼손이 편했을 뿐이다.

“꼬마!”

벨라의 뜻을 직감한 카스피가 수블라에게 달렸다.

벨라가 눈동자를 굴려 카스피를 봤다.

지금의 카스피라면 충분히 수블라를 상대할 수 있다.

수블라의 둥지가 변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벨라는 직전보다 한결 평온한 상태였다.

카스피의 안전을 확인했다.

제아무리 둥지를 튼 마법사라 해도 카스피는 수블라에게 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카르타고를 쓰러뜨리면, 혹은 카스피가 수블라를 제거할 때까지 버티면 된다.

진짜 변수는 따로 있다.

머리 위의 두 드래곤.

카앙! 캉! 카아앙!

귀수와 마수가 어지러이 몸을 섞었다.

벨라에게 불리한 전투였다.

카르타고는 왼팔을 잃은 벨라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검이 몇 번인가 벨라의 몸을 긁었다.

벨라는 귀기를 이용해 상처를 막았지만 영원할 순 없었다.

절단된 왼팔의 출혈을 막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상당한 귀기를 소모하고 있다.

- 인정하지 셰이카 라딤. 넌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이다.

“호오. 그걸 이제 알았어?”

- 그래서 궁금하군. 왜 화신이 되지 않았는지. 네게 손을 내민 신과 악마는 많았을 터다.

“신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어. 대신 네 말대로 악마들은 과한 관심을 보이더군. 하지만 모두 거절했지.”

- 이유를 듣고 싶군.

“그깟 악마의 힘 따위에 의지하지 않아도.”

벨라의 입이 귀 끝까지 찢어졌다.

“난 누구든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파아앙!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카르타고가 뒤로 튕겨났다.

그의 복부에서 분수처럼 마기가 흩어졌다.

카르타고는 놀랐다.

상대의 어떤 공격에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카르타고는 알았다.

셰이카 라딤은 질풍처럼 몸을 회전하며 발을 뻗었다.

발끝엔 귀수를 닮은 귀기의 날붙이가 붙어 있었다.

양팔로 귀수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발끝으로도 발현한 것이다.

공격은 깊었다.

파드드드듯……!

카르타고는 마기의 방출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 있었던 건가.

카르타고는 상대에게서 강한 위협과 동시에 감탄을 느꼈다.

반대로 벨라는 초조함을 느꼈다.

벨라가 지금껏 왼손으로 귀수를 사용했던 것엔 편하다는 것 이외의 이유가 있었다.

귀기의 사용은 숙련될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오른손으로 귀수를 뽑아내는 것보다, 왼손을 사용했을 때 더욱 적은 귀기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즉, 발끝으로 발현했을 땐 효율이 떨어진다는 뜻.

벨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 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로군.

카르타고가 땅을 박찼다.

그의 마수에서 더욱 강한 마기가 솟구쳤다.

벨라도 카르타고를 향해 질주했다.

그 무렵 카스피는 수블라의 둥지를 통과했다.

다가오는 카스피를 보며 수블라는 다시금 놀라움을 느꼈다.

셰이카만큼의 폭발적인 위압감은 없다.

하지만 눈앞의 살수는 분명 셰이카와 동류의 존재였다.

그래서 수블라는 저 젊은 살수를 셰이카와 함께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한 방책은 처음부터 준비돼 있었다.

수블라는 웃었다.

“네트라비스.”

키랴랴랴랴랴랴!

부름을 받은 네트라비스가 수블라와 카스피 사이로 난입했다.

* * *

수 분 전.

오토는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를 유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잘 버텼다.

“……미안하다 요롱아.”

요롱이의 덩치는 더 커졌다.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암피테르라 보일 정도도 아니었다.

그런 요롱이의 몸에서 후드득 후드득 핏물이 떨어졌다.

애초부터 암피테르의 몸으로 드래곤을, 그것도 두 마리의 드래곤을 상대하려 한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대로 상대하려 한 것이 아닌, 그저 도망 다니는 것에 불과했지만.

“많이 무서웠지.”

요롱이는 제대로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네트라비스의 발톱에 맞아 얼굴의 절반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에스투스에게 붙잡혔던 날개는 구겨진 종이처럼 처참했고, 다리 하나도 뽑혀 어디론가 사라졌다.

길게 찢긴 복부에선 내장이 삐져나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요롱이는 열심히 싸웠다.

제 주인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고 필사적으로 날개를 움직였다.

그것의 대가는 목전으로 다가온 죽음이었다.

오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탓이 아니야. 내가 무능했기 때문이지.”

언젠가부터 오토는 자신의 능력이 성장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노력했다.

요롱이와의 동조율을 더욱 끌어올리고, 더욱 강한 용기사로 거듭나기 위해.

하지만 부족했다.

더 노력했어야 했다.

요롱이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요롱이의 날갯짓이 멈췄다.

요롱이가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부옇게 흐려진 시야 속에서 오토는 보았다.

네트라비스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놈의 이동 방향의 끝엔 수블라에게 질주하는 카스피가 있었다.

오토는 질끈 눈을 감아 눈물을 털어 냈다.

이어 붉게 충혈된 안구가 모습을 드러냈고, 오토는 추락하는 요롱이의 등 위에서 꼿꼿이 몸을 세웠다.

“아틸라 님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오토는 아틸라의 도약 기술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카스피는 수블라와 네트라비스의 협공에 당하고 말 것이다.

오토가 콰앙! 강철검과 강철방패를 부딪쳤다.

요롱이의 목을 지르밟았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생기의 부재.

부웅.

오토가 몸을 날렸다.

그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지난 40여 년 삶의 모든 것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건 어떻게든 카스피를 살리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더 이상 아틸라를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그리고 지금 카스피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아틸라가 아닌 자신이다.

그 순간 그의 몸에 흐르는 왕의 피와 용인의 피가 만났다.

그것이 무언가의 작용을 일으켰고, 손에 들린 강철검을 빛냈다.

오토의 검엔 루미니우스의 축복이 담겨 있다.

루미니우스는 일행의 무기에 빛의 축복을 담았다.

그러나 또한 루미니우스는 오토의 강철검에 다른 일행과는 구별되는 힘을 담았다.

그것이 제 주인도 모르는 사이 발동했다.

* * *

아틸라는 도롱뇽을 타고 남하하고 있었다.

도롱뇽은 죽기 살기로 날개를 움직였고, 바토리도 마법으로 그것을 도왔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것이 순간 이동이 될 수는 없다.

아틸라는 초조함을 느꼈다.

바토리의 말에 따르면 오토 일행은 일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순간 아틸라는 후방에서 날아드는 섬광 같은 기운을 느꼈다.

아니, 말 그대로 섬광이었다.

황금빛을 발하는 거대한 섬광이 아틸라의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빛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르다.

그래서 아틸라 일행이 상황을 채 파악하지도 못한 사이 그것은 이미 목표지에 도달해 있었다.

카스피는 놀랐다.

갑작스레 수블라의 앞에 끼어든 네트라비스를 보고 놀란 것도 있지만.

더욱 놀란 건 핏발 선 눈을 뜬 오토가 하늘에서 추락해 네트라비스에게 검을 내리치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저……, 저게 무슨……!”

그런 오토의 등 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골드 드래곤의 존재였다.

“씨부럴 드래곤 이 개새끼야아아아!”

콰드드득!

오토의 강철검이 네트라비스의 이마를 파고듬과 동시에 빛의 브레스가 네트라비스를 강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