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82화 (382/425)

382. 혼돈의 전장 (2)

벨라의 머리 회전이 가속했다.

그녀의 숨은 기억이 왼팔을 잃은 순간을 감지해 냈다.

‘거북이처럼 숨어만 있을 건가! 카르타고!’

방어태세를 굳힌 채 자신의 공격을 버티던 카르타고.

그러던 중 수블라가 허점을 노려 기습을 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수블라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 순간 카르타고의 안광이 번득였다.

보이는 것과 달리 카르타고는 방어에만 몰두한 것이 아닌,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카르타고의 검이 휘둘러졌다.

아니, 그건 검이 아니었다.

채찍처럼 기다랗게 늘어난 녀석의 오른팔이었다.

마수(魔手).

그것 말고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부웅.

벨라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카르타고의 공격을 그림자처럼 몸을 늘여 피했다.

놈의 오른팔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벨리알에게서 얻은 힘인가.”

벨라는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주력인 왼팔을 잃었다.

귀기를 제대로 두르고 있었다면.

그리고 요르문간드의 저주가 없었다면 잃지 않았을 왼팔이다.

- 방심했군. 셰이카 라딤.

카르타고의 붉은 안광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는 사실 셰이카와 일대일의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수블라가 끼어들었고, 셰이카는 빈틈을 드러냈다.

카르타고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비겁하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기회가 감지되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일 정도로 셰이카는 강적이다.

그 결과로 셰이카는 왼팔을 잃었다.

- 귀기를 이용해 출혈을 막은 건가.

셰이카의 왼팔 절단면에선 피가 흐르지 않았다.

“쌍으로 기습이라니. 이거 누가 살수인지 모르겠는데?”

벨라가 키득대며 웃었다.

본래 그녀는 카르타고와 수블라를 동시에 상대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이 완전한 몸 상태를 유지했을 때의 이야기다.

게다가 벨라는 하늘 위의 카스피가 신경 쓰여 온전히 전투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카스피는 죽어선 안 된다.

절대로.

타앗.

벨라가 질주했다.

몸의 균형이 틀어진 상황은 귀기를 배분해 극복했다.

그러자 왼팔이 사라진 만큼 가벼워진 몸은 더욱 빨라졌다.

“이거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 하하하하하!”

벨라의 목표는 수블라였다.

일단은 수블라를 제거하고, 카르타고를 상대한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다.

“셰이카 라딤!”

섬광처럼 달려드는 셰이카를 보며 수블라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빠르다.

카르타고마저 순간적으로 셰이카를 놓쳤다.

왜 대륙의 모든 마법사들이 저자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수블라는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수블라는 웃었다.

셰이카를 잡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균열을 생성시켜 카르타고를 이곳으로 보냈고.

자신도 균열을 통해 같은 장소에 도달했다.

그것은 카르타고는 알지 못했던 일이다.

카르타고는 셰이카와 단독으로 승부를 벌일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하지만 수블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셰이카가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제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 세심한 둥지를 만들어 두었다.

파파파파파팟!

사방에서 떠오른 마기의 창날이 셰이카를 습격했다.

* * *

카스피는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두 드래곤을 보며 경악했다.

먼저 등장한 건 아에스투스였다.

아에스투스는 공중전을 장악해가던 제국의 용기사들을 브레스로 기습했고, 그 한 번의 공격에 공중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왜 저 드래곤들이 이곳에……!”

“고, 고개 숙이쇼 살쾡이 암살자!”

오토도 혼비백산하며 요롱이를 조종했다.

다행히도 아에스투스의 브레스는 요롱이를 직접적으로 강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네트라비스는 누가 봐도 요롱이를 겨냥하고 있었다.

“히익! 저놈이 우릴 똑바로 노려본다 요롱아!”

오토는 요롱이에게 더욱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생각지도 못한 다급한 상황이 오토가 지닌 용기사의 힘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그극……, 그극……!

요롱이의 몸체가 부피를 키웠다.

날개도 더욱 길어졌다.

펄럭! 성장한 날개를 휘두르며 요롱이가 가속했다.

키랴랴랴랴랴랴!

네트라비스의 브레스가 공중을 휩쓸었다.

간발의 차로 요롱이는 브레스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오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것을 맞았다면 자신과 카스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오토가 네트라비스를 노려봤다.

그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당황한 시선이 아에스투스를 돌아봤고, 이내 오토는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것을 느꼈다.

“사, 살쾡이 암살자.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가 여기 있다는 건…… 카, 카르타고와 수블라도 여기 왔다는 게 아니요.”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

“근데 저길 좀 보시오. 드래곤의 등 위에 카르타고와 수블라가 보이지 않소.”

두근, 카스피의 가슴이 뛰었다.

두 드래곤을 살폈다.

오토의 말대로,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는 등 위에 아무도 태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카스피는 반사적으로 발아래를 내려봤다.

그녀의 발달된 귀안이 목표를 찾았다.

‘카르타고!’

무시무시한 마기를 분출하는 카르타고.

카르타고를 타격하는 벨라가 보였다.

벨라는 왼손과 두 발에만 귀기를 드리우고 있었다.

‘귀기의 소모가 많았던 거야!’

칼날 같은 마기가 측면에서 벨라를 습격했다.

벨라는 바닥을 구르며 그것을 피했다.

그 순간 카스피는 보았다.

카르타고의 오른팔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벨라의 왼팔을 절단하는 것을.

카스피의 눈이 희번덕 뒤집어졌다.

카스피는 아래로 뛰어내리려 했다.

오토가 붙잡았다.

“뭐, 뭐 하는 거요! 여기서 뛰어내리면 아무리 살쾡이 암살자라도 죽을 거요!”

“이, 이거 놔! 벨라가! 벨라가……!”

오토는 요롱이와 함께 빠르게 낙하했다.

그도 벨라의 왼팔이 잘린 것을 확인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벨라가 수블라에게 질주했다.

어찌나 빠른지 카르타고도 벨라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벨라의 오른손에 검이 쥐여졌고, 귀기가 깃들었다.

수블라 주변의 땅이 일렁이며 마법진을 드러냈다.

시커먼 마기의 창날들이 벨라를 습격했다.

“이잇……!”

카스피는 오토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내렸다.

“살쾡이 암살자!”

오토가 이를 바득 깨물었다.

그는 카스피를 따라 내려가는 대신 공중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한 팔을 잃었지만 벨라는 벨라다.

게다가 카스피가 합류했으니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하늘 위의 두 드래곤이 지상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가자! 요롱아!”

오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그는 어떻게든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릴 생각이었다.

그 간절한 의지가 요롱이에게 전해졌다.

그그극……, 그그그그극……!

요롱이의 덩치가 더욱 커졌다.

요롱이의 능력이 아니다.

처음부터 오토가 지닌 용기사의 힘은 성장형이었다.

성장한 오토의 힘이 요롱이를 자극해 변이시킨 것이다.

“씨부럴 이 못생긴 도마뱀 새끼들아아아아!”

두 드래곤을 향해 오토와 요롱이가 날았다.

* * *

벨라는 수블라가 이곳에 둥지를 틀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벨라는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조자를 사냥한 살수.

이 정도의 기습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파카카카캉!

벨라는 선풍처럼 몸을 움직이며 마기의 칼날을 튕겨 냈다.

전부는 아니다.

이전의 그녀라면 어렵지 않게 모든 칼날을 막았을 테지만, 지금의 벨라는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등 뒤를 노리는 카르타고의 존재와 카스피에 대한 걱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괴롭혔다.

파앙! 팡! 카드득!

세 개의 마기 칼날이 벨라의 몸을 타격했다.

벨라의 입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그 탓에 기동력이 저하됐고, 카르타고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 넌 여기서 죽는다. 셰이카 라딤.

벨라의 입이 길게 찢겼다.

벨라는 믿어지지 않는 몸놀림을 펼치며 이동 방향을 바꿨다.

그녀의 몸이 카르타고의 일격을 회피했다.

그와 동시에 수블라가 쏘아 낸 마기가 벨라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크흐윽……!”

벨라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더욱 많은 핏물이 그녀의 입에서 쏟아졌다.

카르타고의 검이 작두처럼 내리쳐졌다.

벨라의 얼굴이 어둠으로 덮였다.

벨라는 그 공격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였다.

촤르르르륵!

하늘에서 내려온 사슬낫이 카르타고의 팔을 휘감았다.

사슬낫의 사슬들은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그러나 사슬 끝까지 이어진 귀기가 그것들을 단단하게 이어 붙였다.

얼마 전 벨라가 요르문간드에게 사용했던 기술.

사슬낫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파아아앙!

벼락처럼 추락한 카스피의 귀수가 카르타고의 어깨를 절단했다.

* * *

아틸라와 북부 전사들은 4군단의 지상군을 몰아쳤다.

아틸라가 4군단의 전선으로 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이 가장 가까운 전선이자, 드래곤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오토 일행도 1군단으로 보냈다.

아틸라는 자신이 없는 사이 일행이 드래곤과 마주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를 상대로 버티는 일은 같은 드래곤인 카르노피아와 프릴루이나가 해야 한다.

리베르의 말에 따르면 언데드 군단의 두 드래곤은 2군단과 3군단에서 분투하고 있다.

아틸라 또한 전선에 가까워지며, 바토리를 통해 그것을 확인했다.

‘수정구로 보니 리베르의 말대로다. 네트라비스는 2군단 쪽에, 아에스투스는 3군단 쪽에 있구나.’

아틸라는 4군단을 도와 적군을 밀어낸 뒤, 도롱뇽을 타고 남하해 수블라와 카르타고를 차례로 상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뒤 1군단의 오토 일행과 합류해 언데드 군단을 완전히 몰아내고 남부로 진격한다.

목표지는 아인하르트 제국의 수도.

그곳에서, 혹은 그곳으로 가는 길목의 어딘가에서 샤를을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야르르르르!”

“요후후후후후후!”

북부 전사들의 포효가 전장 곳곳을 울렸다.

그들의 눈동자엔 붉은 혈관이 돋아 있었다.

북부의 땅에서 그린 드래곤을 쓰러뜨리며 깨달은 사실.

아틸라는 자신이 지닌 ‘광폭의 힘’을 북부인에게 일부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엘이 북부인과 함께 참전하라 말했던 건가.’

콰앙! 콰아앙!

낙뢰가 떨어졌다.

뼈와 살이 찢기는 소음이 사방을 울렸다.

제국군도 북부 연합군과 힘을 합쳐 언데드들을 도륙했다.

4군단은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물론 가장 큰 전력은 아틸라와 도롱뇽이었다.

아틸라는 홀로 지휘관급 언데드들을 몰살시켰다.

도롱뇽 또한 공중전을 벌이던 언데드 용족들을 남김없이 포식했다.

우어어어어!

그에 질세라 펀치도 거대화한 몸을 날뛰며 언데드들을 타격했다.

신수 그리즐리의 힘을 완전히 각성한 펀치는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여기저기서 승리를 자축하는 외침이 들렸다.

4군단이 전선에 참여한 이후 이렇게나 완벽한 승리는 처음이었다.

펄럭.

아틸라의 옆으로 도롱뇽이 내려앉았다.

“서두르자꾸나.”

도롱뇽의 등 위엔 핏기가 사라진 얼굴의 바토리가 있었다.

“카스피와 철혈귀검이 위험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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