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북부의 전사들
오토는 다급히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아틸라 님은 대체 언제 오는 거요! 이, 이러다 나 정말로 죽을 것 같소!”
“영주 나리 또 엄살떤다. 내가 보기엔 잘만 싸우던걸.”
“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는지 못 봤단 말이오! 나 진짜 이번엔 죽을 것 같소! 어제 꿈자리도 영 뒤숭숭했는데……!”
“호오. 그럼 정말 죽을 때가 된 모양인데?”
키득대며 끼어드는 벨라를 오토가 사나운 눈으로 노려봤다.
“응? 째려보면 어쩔 건데.”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오토가 즉각 꼬리를 내렸다.
그는 요즘 곁에 없는 아틸라보다 벨라가 더 두려웠다.
‘아틸라 님! 바토리 아가씨! 빨리 좀 돌아오시오! 이러다 언데드한테가 아니라 저 살수한테 암살당할 것 같소!’
오토는 지난밤 꿈을 떠올렸다.
꿈속에서 벨라는 카스피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흔들리는 눈으로 벨라를 바라보던 카스피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요상한 꿈같으니라고.’
오토는 벨라를 동료라 생각하고 있다.
벨라는 일행에 합류한 이후 한 번도 동료들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을 보호했다.
특히 카스피에게는 기이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벨라가 살쾡이 암살자를 찌르다니. 그럴 리 없지.’
그럼에도 오토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아틸라와 바토리의 귀환을 고대했다.
“근데 영주 나리 말대로 우리만으론 쉽지 않은 싸움이긴 해. 슈시아마저 남부로 떠나 버렸으니.”
슈시아는 리베르와 함께 남부로 떠났다.
황제의 증표를 갖고 있는 둘은 어렵지 않게 대국경의 관문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일행은 오토, 카스피, 벨라가 전부였다.
이들은 제국의 제1군단에 속해 있었다.
“근데 영주 나리. 왜 1군단엔 드래곤이 없는 거야?”
제국이 직접 운용하는 군대는 4개 군단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 군단은 드래곤을 한 마리씩 보유하고 있었다.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는 2군단에.
레드 드래곤 ‘카르노피아’는 3군단에.
지금은 적에게 빼앗긴 그린 드래곤 ‘네트라비스’는 4군단에 소속돼 있었다.
그런데 1군단엔 드래곤이 없었다.
“골드 드래곤이 1군단 소속이라 들었수.”
오토는 일행의 대표로서 군단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제국의 군대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다른 동료들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왕의 후계자 중 하나로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란 것도 도움이 됐다.
“루미니우스가? 근데 왜 루미니우스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카스피는 조금 눈을 찌푸렸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
아니 빛의 손 ‘루키우스 레메디’가 떠올랐다.
루키우스는 벨라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 주지 않았다.
물론 벨라가 루키우스의 뜻을 거스르고 암부를 운용했기 때문이지만.
‘벨라는 정말 괜찮은 걸까.’
카스피가 상처에 대해 물을 때마다 벨라는 웃기만 했다.
“골드 드래곤은 지금껏 황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들었수. 이유는 군단의 높으신 양반들도 모르는 눈치고.”
“아니 대체 왜 그런 고급 병력을 활용하지 않는 거냐고. 골드 드래곤은 언데드를 상대하기 최적화된 드래곤이라며.”
카스피가 투덜대며 말했지만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짜증은 그만둬 꼬마. 출전의 시간이야.”
잠시 후 일행은 1군단의 거대 병력에 속해 전장 위를 날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오토를 포함한 암피테르 용기사들의 임무는 언데드 용기사들을 쓰러뜨리는 것.
원래 오토는 데스나이트들을 처리하라는 아틸라의 임무를 수행했었다.
그러던 중 바토리와 연락을 나눈 리베르에게서 1군단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다.
“가라! 1군단의 용기사들이여!”
“우오오오오오!”
수십 마리의 암피테르가 하늘을 날았다.
다른 암피테르에 비해 커다란 몸체를 지닌 요롱이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용기사들은 등에 활과 화살통을 차고 있었다.
암피테르는 브레스를 쏘지 못한다.
마법사나 궁수가 없다면 원거리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잘 좀 부탁드리겠수. 헤헤.”
오토의 말에 카스피와 벨라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두 여인의 몸에 귀기가 차올랐다.
카스피의 오른손에, 벨라의 왼손에 귀수와는 다른 날붙이 형상의 귀기가 집약됐다.
“가자고. 꼬마.”
카스피는 점점 가까워지는 언데드 용기사를 노려봤다.
일정 거리로 좁혀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오른팔을 휘둘렀다.
붉은 귀기의 날붙이가 탄환처럼 쏘아졌다.
카카캉!
날카로운 귀기의 조각이 언데드 용족의 몸을 갈랐다.
요르문간드를 상대하며 벨라가 보였던 기술.
그동안 카스피는 벨라에게 귀기의 활용법을 배웠다.
그래서 벨라와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키에에에에!
놈의 한쪽 날개가 너덜너덜해졌다.
이어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벨라도 언데드 용족 하나를 추락시켰다.
놀랍게도 벨라에게 당한 녀석은 양 날개를 모두 잃었다.
‘역시 벨라는 강해.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어.’
카스피는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벨라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벨라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카스피의 오른손에 더욱 강한 귀기가 집중됐다.
그것이 날아오는 언데드 용족에게 뿌려졌다.
* * *
이번 전장에 드래곤은 없었다.
처음에 2군단에서 전투를 시작한 오토 일행이 아틸라의 지시를 전달받아 1군단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드래곤과의 전투엔 드래곤이 있어야 한다.
현재 언데드 군단에서 운용하는 드래곤은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
드라코리치의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아에스투스와 네트라비스에 대항해 제국은 프릴루이나와 카르노피아를 내세웠다.
‘저자가 언데드 군단의 총지휘관 카르타고인가.’
아벨은 카르타고의 무력에 크게 놀랐다.
아틸라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그러나 아벨 또한 제국에서 드래곤과의 동조율이 가장 우수한 인재였다.
마스터 간의 대결에선 밀렸지만, 드래곤 대 드래곤의 전투에선 카르노피아가 우위에 있다.
‘가자. 카르노피아.’
그렇게 제국의 두 드래곤이 언데드 군단의 두 드래곤을 상대하고 있을 무렵 1군단도 전쟁이 한창이었다.
공중전은 1군단이 우세했다.
카스피와 벨라를 태운 요롱이는 종횡무진 공중을 누볐다.
그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언데드 용족들이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역시 대단하오! 으하하하하!”
오토가 신이 나 소리쳤다.
그러나 승기를 잡은 공중에 비해 지상은 정반대의 형국을 띠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들이 몰려온다!”
“시, 시체 골렘도 있어!”
드래곤이 있는 전장에서 지상 병력은 효율이 좋지 않다.
브레스 한 방에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병력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래곤이 없는 1군단을 상대로, 언데드 군단은 특히나 막강한 지상 병력을 동원했다.
“저, 저런 걸 어떻게 쓰러뜨리라고……!”
“닥치고 창을 뻗어! 우리는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기병대다!”
“우오오오오!”
제국의 기병대는 강하다.
그들 개개인은 데스나이트와 시체 골렘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애초부터 기병대는 개인의 힘으로 기동하는 부대가 아니다.
열두 명으로 구성된 각 기병대는 마치 한 몸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선두의 3인이 동시에 내뻗는 거대한 창은 그들의 핵심 무기였다.
“뻗어!”
콰드드득! 그들의 창이 시체 골렘의 복부를 뚫었다.
시체 골렘이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눈먼 공격에 맞은 기병이 낙마했다.
다른 시체 골렘이 낙마한 기병을 손에 쥐고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그 잔혹한 광경은 제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저게 무슨……!”
“우우우욱……!”
공중에서 승기를 잡은 암피테르 용기사들이 하나둘 지상을 지원했다.
그중엔 오토 일행도 있었다.
“히익! 저거 지난번의 그 시체 골렘 아니요!”
“좀 더 가까이 대 영주 나리! 내가 ‘귀기 표창’으로 날려 버리겠어!”
“호오? 뭐야 꼬마. 이름까지 붙인 거야?”
벨라가 깔깔대며 웃자 카스피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내, 내 맘이야!”
“좋아 오토마이어! 놈들 근처에 바짝 붙여! 나도 ‘귀기 표창’으로 날려 버릴 테니! 하하하하하!”
벨라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카스피와 벨라가 공중에서 귀기 표창을 뿌렸다.
그것에 당한 시체 골렘들이 하나둘 팔다리를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들은 달랐다.
그들은 대검, 혹은 방패를 이용해 귀기 표창을 막아 냈다.
“이거 안 되겠는데.”
벨라가 히죽 웃었다.
“내가 내려가서 놈들을 상대하지. 오토마이어, 넌 꼬마와 함께 공중을 맡아. 언데드 용족들이 충원되고 있다고.”
카스피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벨라가 뛰어내렸다.
벨라의 말대로 하늘 위엔 언데드 용족들이 추가로 등장하고 있었다.
“벨라는 괜찮을 거요. 난 저 여자가 어디 가서 칼 맞아죽는 일은 상상도 못 하겠수.”
카스피는 불안한 눈으로 아래를 바라봤지만 잠시였다.
그녀는 벨라를 믿었다.
“좋아. 가자고 영주 나리.”
요롱이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 * *
4군단은 현재 북남으로 길게 드리운 전선에서 가장 북쪽 전장을 사수하고 있었다.
군단의 수호자 네트라비스를 적에게 빼앗긴 이후, 4군단의 사기는 크게 저하됐다.
4군단의 남쪽으로는 카르노피아의 3군단이, 그 아래로는 프릴루이나의 2군단이, 그리고 최남단에는 현재 오토 일행이 분전하고 있는 1군단이 있다.
“막아라! 어떻게든 전선을 사수해야 한다!”
“우와아아아아!”
저하된 사기 속에서도 4군단은 분전했다.
다행인 점은 이곳에 언데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드래곤 대 드래곤의 혈투는 2군단과 3군단에서만 이뤄졌다.
그렇다고 4군단에서 공중전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1군단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암피테르 용기사와 언데드 용족 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고, 공중도 밀리고 있어!”
“신경을 분산하지 마라!”
“해야 할 일만을 떠올려라! 우리는 지상을 수호하는 병력이다!”
지상전 역시 1군단의 양상과 비슷했다.
데스나이트와 시체 골렘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1군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엔 오토 일행이 없다는 것.
그 차이는 컸다.
4군단은 공중전과 지상전 모두 승기를 잃었다.
“방패벽을 세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을 막아야 한다!”
“기병대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빌어먹을 막아! 온몸으로 막으라고!”
제국군의 분전에도 전장은 패색이 짙었다.
방패벽이 무너졌다.
시체 골렘과 데스나이트들이 지상군을 몰아쳤다.
암피테르 용기사들도 그 광경을 봤다.
그러나 도울 수 없었다.
공중전은 대패했다.
살아남은 용기사는 이제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용기사 한 명이 무언갈 발견했다.
‘저건……?’
전장의 후방에서 말을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제국군과는 다른 이질적인 복식.
헝클어진 검은 머리.
피로 덮인 수많은 얼굴 속에서 광기의 눈동자가 번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