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대무신왕
“저, 저게 뭐지……?”
“드래곤과 일대일로 싸우는 전사라고?”
사냥조의 전사들은 드래곤을 처음 보았다.
그들이 알기로 드래곤은 제국의 마스터들만이 부릴 수 있는 최강의 용족이다.
북부의 전사들은 제국에 네 마리의 드래곤과 네 명의 마스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골드 드래곤.
그린 드래곤.
화이트 드래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드래곤은 그린 드래곤이었다.
“그, 그렇다면 설마……!”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건가!”
그동안 제국의 용기사들은 북부를 전면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특히 드래곤 마스터들은 한 번도 북부를 습격한 적이 없다.
그것에 대해서 북부인들은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다.
‘왜 제국은 용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거지?’
‘용기사를 활용한다면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인데.’
북부인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이 제국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병과 보병만 따져도 그렇지만.
용기사, 그중에서도 드래곤 마스터는 일반적인 용기사와 비교할 수 없는 전투력을 지녔다.
그런데 그간 제국은 용기사를 이용해 북부를 장악하려 하지 않았다.
적대적 용족을 사냥하거나, 요툰헤임으로부터 등장한 요툰들을 제거하는 데 활용했을 뿐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제국은 북부를 전력으로 타격하지 않는 것인가.’
북부의 어느 누구도 제국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틸라와 바토리는 알았다.
샤다이 황제의 몸 안에 봉인된 엘의 의지.
엘은 북부의 존립을 원하고 있다.
“드래곤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설마 그린 드래곤의 마스터가 죽었다고?”
“그럼 저 드래곤은 마스터를 잃고 폭주한 상태라는 건가!”
북부 전사들은 제국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와 그의 마스터인 에단 트라쿠스가 죽었다는 것도.
카르노피아와 아벨이 제국의 새로운 레드 드래곤과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도.
그린 드래곤 네트라비스가 죽어 언데드가 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현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앞의 전투를 바라봤다.
“도, 도와야 하는 것 아냐?”
몇 명의 전사가 그리 말했지만 나서는 이는 없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검은늑대의 아틸라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 와중에도 이크살은 어떻게든 아틸라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픽시에게 목을 얻어맞고서는 마음을 바꿨다.
“왜, 왜 자꾸 목을 때리는 건가 픽시!”
“그래야 말을 들어 처먹으니까!”
픽시는 눈치가 빠른 전사다.
그녀는 바토리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바토리가 드래곤을 상대하며, 일부러 마법을 거두어들였다는 것도 간파했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토리는 아틸라가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거다.
‘하지만 정말일까? 아무리 아틸라가 대무신왕의 환생이라 해도, 정말로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픽시의 마음속엔 약간의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일말의 불안을 픽시는 시원하게 떨쳐 냈다.
픽시는 아틸라가 랜드웜을 쓰러뜨리는 걸 봤다.
또한 바토리가 저 무시무시한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 내는 것을 봤다.
아틸라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가 위험에 처한다 해도, 바토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픽시가 크게 외쳤다.
“모두 물러서! 처음부터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우두머리 용족을 단독으로 쓰러뜨리려 했었다! 상대가 드래곤으로 바뀌었지만 상관없어! 아틸라는 드래곤을 쓰러뜨릴 거다! 그래서 북부에 평화를 가져온 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악한 언데드 군단을 물리칠 거다!”
이크살도 덩달아 소리쳤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위대하신 동방의 군주 대무신왕의 환생이다! 환생자께서는 위기에 빠진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앞에 재래(再來)하셨다! 모두들 똑똑히 지켜봐라! 환생자께서 이 땅에 내리실 첫 번째 기적을!”
픽시와 이크살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간 검은늑대 부족은 다른 부족에게 보이지 않는 멸시를 당해왔다.
가장 큰 이유라면 요툰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후대에 편입된 부족이라는 것이었고.
최근 추가된 이유는, 그 사실과 맞물려 ‘요툰의 힘’을 발현할 수 없는 유일한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검은늑대 부족엔 요툰의 전사가 없다고?’
‘역시 그들은 테라루스의 정통 후예가 아니야!’
물론 검은늑대 부족이 지닌 주술의 힘은 대단하긴 했다.
그러나 많든 적든 주술사는 어느 부족에나 있다.
또한 어느 부족에나 요툰의 힘을 각성한 전사는 존재했다.
오직 검은늑대 부족만 제외하고 말이다.
픽시와 이크살은 그동안의 설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검은늑대의 아틸라’와 ‘대무신왕의 환생’을 외쳐 댔다.
그 보이지 않는 불길이 사냥조 전사들에게 번졌다.
“이, 이봐. 정말 대단하잖아…….”
“저 드래곤과 단독으로 싸우는데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어……!”
“검은늑대 부족의 대무신왕 전설은 정녕 사실이었단 말인가!”
전사들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난생처음 드래곤을 마주하고.
또 비록 부족은 다를지언정 북부 전사가 드래곤과 정면 승부를 벌이는 모습은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에 기름을 붓기 충분했다.
일개 인간의 힘으로 저 무시무시한 드래곤과 경합을 벌이는 자를 경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콰드득! 콰드드득!
아틸라는 공중에 매달린 채로 계속해서 드래곤을 타격했다.
그의 다른 손엔 드라칼리온이 쥐여 있었다.
드라칼리온은 도롱뇽의 어금니로 만들어진 특별한 검.
드래곤을 상대하기에 최적화된 무기다.
키에에에에에!
드래곤은 아틸라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아틸라도 지지 않았다.
아틸라는 무휼과 드라칼리온을 번갈아 휘두르며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러면서 나머지 날개 한쪽을 파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위기감을 느낀 드래곤이 마구 몸을 회전했다.
‘빌어먹을. 어지럽게.’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구역질도 났다.
아무리 혼돈의 힘을 지녔다 해도 아틸라의 육체는 인간.
애초부터 그런 형태로 태어난 엘과는 다른 입장이다.
‘그래. 나는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기에 어지럼증을 느끼고,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아틸라의 입가가 위를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즐거움을 느꼈다.
인간이라는 실감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큰 소리로 웃었다.
“뭐, 뭐야! 웃고 있잖아!”
“저런 괴물과 싸우면서 웃는다고?”
사냥조 전사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런 상황에서 즐겁다는 듯 웃는 아틸라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틸라는 양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몸의 탄력을 이용해 드래곤의 척추 위로 올라갔다.
누군가 아틸라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저것 좀 봐!”
푸슈슛……! 푸슈슈슈슈슛……!
아틸라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 엄청난 출혈에 전사들이 경악했다.
“드, 드래곤에게 당한 건가!”
“하지만 어느 틈에!”
드래곤에게 타격 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틸라는 최초에 드래곤의 날개에 타격당한 이후, 한 번도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바토리를 제외한 누구도 출혈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바토리가 입가를 올리며 속삭였다.
“버서커 아틸라.”
콰드드득!
광폭의 힘을 발현한 아틸라가 드래곤의 날갯죽지에 드라칼리온을 꽂았다.
지금의 아틸라는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북부 전사와 비슷한 행색을 갖춰 위화감을 줄이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아틸라는 플레이트 아머의 손상 없이 광폭의 힘을 발현할 수 있었다.
“아우우우우우우!”
아틸라가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나머지 날개가 몸에서 분리됐다.
“자, 잘랐어!”
“해냈어!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해냈다고!”
“요효효효효효효!”
전사들도 아틸라를 따라 포효했다.
각 부족마다 포효엔 차이가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처럼 울려 퍼졌다.
픽시와 이크살도 늑대처럼 포효했다.
“아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
두 전사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그들은 아틸라와 동류의 포효를 가졌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아틸라는 우리의 동족이야!’
‘검은늑대 부족은 위대하신 대무신왕 무휼의 후손이다!’
쿠우웅! 양 날개를 모두 잃은 드래곤이 지면에 처박혔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고, 그 안에서 드래곤이 사납게 몸을 일으켰다.
놈의 앞발이 아틸라를 습격했다.
아틸라는 두 자루 검을 교차해 그것을 막았다.
묵직한 소음과 함께 아틸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몇 번인가 바닥을 구른 아틸라가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핏물로 가득한 얼굴.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난 안구.
맹수처럼 일그러뜨린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전사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아틸라는 커다랬다.
그럴 리 없었지만, 아틸라는 드래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은 덩치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한 마리의 거대한 늑대를 보는 듯한 기분.
“저, 저게 무슨……!”
“검은늑대의 아틸라. 저자는 대체……!”
“대, 대무신왕이다! 저자는 정말로 동방 최초의 군주 대무신왕의 환생이었어!”
그동안 검은늑대 부족은 대무신왕의 전설을 다른 부족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북부인의 시초인 테라루스 일족은 동방에서 왔다.
검은늑대 부족은 모든 북부인이 하나의 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부족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무신왕의 전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들이 검은늑대 부족에게 복속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전사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너 나 할 것 없이 대무신왕와 검은늑대의 아틸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무신왕의 환생! 검은늑대의 아틸라!”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북부를 구하기 위해 재래했다! 대무신왕의 전설은 사실이었어!”
“요효효효효효효!”
공기가 변했다.
이크살과 픽시는 변화하는 바람을 느꼈다.
지금 느끼는 기분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숨이 벅차오르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볍다.
온몸에서 활력이 넘쳐흐른다.
시야가 점점 붉어졌다.
아틸라가 드래곤에게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건 질주가 아니었다.
아틸라는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드래곤과 거리를 좁혔다.
콰드득.
무휼이 드래곤의 몸에 박혔다.
아틸라는 무휼을 당기며 드래곤의 목 위로 올라탔다.
두 자루 검이 더욱 길어졌다.
그는 마치 가위처럼 드라칼리온과 무휼을 쥐고 드래곤의 목을 겨냥했다.
아틸라의 양팔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아우우우우우우!”
포효하는 아틸라와, 절단돼 떨어지는 드래곤의 머리를 보는 전사들의 안구엔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 있었다.
붉게 변한 시야 속에서 그들은 깨달았다.
동방의 군주 대무신왕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