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사냥조 (2)
북부 전사를 태운 수십 마리 군마들이 북으로 움직였다.
“아틸라 님. 아틸라 님의 곁은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어휴 이크살. 지키긴 뭘 지켜. 아틸라는 네 도움 따윈 조금도 필요하지 않을걸.”
“픽시. 아무리 대무신왕의 환생이시라 해도 아틸라 님은 인간이다. 인간은 용족보다 강할 수 없지. 게다가 우리가 사냥하려는 개체는 우두머리가 아닌가.”
“넌 대체 눈깔을 왜 달고 다니냐. 그 랜드웜인가 하는 무시무시한 용족도 아틸라가 단칼에 썰어 버린 거 못 봤어?”
“물론 봤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할 우두머리 용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크살과 픽시는 쉴 새도 없이 주절거렸다.
검은늑대 부족에서 사냥조에 포함된 건 아틸라만이 아니었다.
이크살과 픽시도 북부인 중에선 상당한 정예였고, 사냥조에 선발됐다.
“꼭 철혈귀검과 카스피를 보는 것 같지 않느냐.”
바토리가 킥킥 웃으며 아틸라에게 귀엣말을 했다.
아틸라도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아틸라. 신수 그리즐리는 어떻게 그렇게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거야?”
픽시가 히죽 웃으며 물어왔다.
저렇게 스스럼없이 구는 모습도 카스피를 닮았다.
“글쎄.”
“쳇. 비밀인 거야?”
투덜대는 픽시를 보며 아틸라는 문득 카스피가 보고 싶어졌다.
카스피는 벨라를 제외한다면 이 세계 최강의 살수다.
그럼에도 카스피에겐 아틸라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틸라는 자신이 카스피를 마치 딸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도 엘에게서 전해진 기억 때문인가.’
아틸라와 엘은 혼돈에서 태어난 존재.
최근에서야 알게 됐지만, 둘은 일정 부분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다.
엘은 가상 지구에서 아틸라를 키우며 부정(父情)이란 감정을 깨달았다.
그것이 아틸라에게도 일부 전해졌다.
그리고 아틸라는 부정을 쏟을 대상을 자기도 모르게 카스피로 결정한 듯했다.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아틸라는 이런 감정이 싫지 않았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를, 혼돈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다.
아틸라는 자신이 혼돈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깨달은 것들이 있었다.
카르타고와의 첫 대결에서 아틸라는 광폭의 권능을 각성했다.
그 과정에 떠올랐던 메시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심상치 않는 것이었다.
[ 시스템 경고 ]
[ 과거의 전설적인 영웅과 원작자의 두 세계가 충돌을 일으킵니다. ]
[ 발생한 충돌이 고위 환술과 뒤섞여 혼돈의 세계선을 구성합니다. ]
혼돈의 세계선.
아마도 저 세계선이 구성된 이유는 자신의 몸 안에 내재된 혼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또한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토리는 이전부터 아틸라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아틸라의 정신은 불안정하다.’
‘마치 혼돈을 마주하는 것처럼.’
오르피나도 비슷한 말을 했다.
- 광폭의 힘은 알테라, 그대의 뿌리 그 자체입니다. 그대는 혼돈에서 태어났고, 그렇기에 광폭의 권능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하고 있지요.
아틸라는 엘을 만나며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날 아틸라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자신은 동료들과 다른 존재.
오토와 카스피는 물론이고, 바토리, 도롱뇽, 펀치를 포함한 동료들은 모두 신의 피조물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틸라만이 홀로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나마 아틸라가 형제라 인지했던 샤를마저도, 엄밀히 말해 진짜 형제는 아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틸라가 느끼는 여러 인간적인 감정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인간이라 여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착각이 아틸라는 좋았다.
나는 인간이야.
나는 동료들과 다르지 않아.
바토리와 다르지 않아.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더냐.”
바토리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지구의 고양이가 떠오르는 표정.
아틸라는 씩 웃었다.
“모든 전쟁이 마무리되면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바토리가 고양이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것참 흥미로운 생각이로구나. 그래, 무엇을 할 예정이더냐.”
“아직은 잘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틸라는 정해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토리와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바토리 또한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바토리가 엘을 만나고, 관조자로 돌아가기 위한 시련을 앞뒀을 때.
‘걱정 마, 바토리.’
엘은 바토리의 귀에 무언갈 속삭였었다.
그 속삭임에 바토리는 관조자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굳혔고, 이렇듯 관조자가 됐다.
바토리에겐 원하는 것이 있다.
엘의 말대로라면 그 바람은 이뤄질 것이다.
바토리는 손에 넣은 바람 속을 아틸라와 함께하고 싶었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대화는 삼가도록. 놈들의 둥지가 가깝다.”
사냥조의 조장을 맡은 전사가 나직이 말했다.
아틸라는 그가 요툰의 힘을 지닌 전사라는 것을 알아봤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사냥조의 많은 전사들이 요툰의 힘을 지니고 있다.
‘검은늑대의 전사들은 지니지 못한 힘.’
검은늑대 부족은 요툰 전쟁 이후 서방으로 넘어왔다.
그들은 요툰의 왕 이미르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검은늑대 부족은 다른 부족들에 비해 더욱 뛰어난 주술의 힘을 갖고 있었다.
이크살은 오늘도 몇 개의 토템을 들고 왔다.
그는 아틸라의 무력을 곁에서 최대한 보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필요 없는데.’
아틸라는 이크살이 지닌 주술의 힘을 간파했다.
재미있게도 그건 아틸라가 지녔던 스킬, 외침과 대단히 유사했다.
실제로 이크살이 코모도를 상대하기 위해 바닥에 꽂았던 토템은 ‘전사의 토템’이라 불렸고, 효과는 자신과 동료들의 근력과 체력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즉, 그 힘은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을 10퍼센트 상승’시키는 전사의 외침과 동류였다.
‘하지만 효과는 떨어지지.’
아틸라는 굳이 그런 이야기를 이크살에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우두머리에 대해 생각했다.
전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용족은 아무래도 드레이크인 듯했다.
‘드레이크는 드래곤에 가장 근접한 용족.’
다시 말해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용족 중 최강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아틸라는 샤를의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에서 스켈레톤 드레이크를 상대했었고, 상당히 고된 싸움을 했다.
물론 지금의 아틸라는 그때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로 발현할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뭐, 붙어보면 알겠지.’
“기척이 느껴지는구나.”
바토리가 속삭였다.
아틸라도 기척을 느꼈다.
펀치도 털을 곤두세우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 * *
사냥조장 코리는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붉은바위 부족의 노련한 전사였다.
그의 시선이 아틸라와 바토리를 지나 동료 전사들을 향했다.
‘불청객들을 제외한다면, 이번 사냥조는 마흔일곱 명인가.’
우두머리를 쓰러뜨리기엔 충분치 않은 인원.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기도 했다.
백전노장의 전사가 아니라면 우두머리를 상대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파멸의 불꽃.’
사냥조의 전사들이 우두머리를 칭하는 이름이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놈은 무시무시한 불꽃을 뿜어대는 괴물이다.
코리는 우두머리를 제거하기 위한 사냥조에 여섯 번째 참여했다.
첫 번째 사냥조엔 무려 20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다.
그러나 우두머리의 불꽃 한 방에 절반이 넘는 전사가 타죽었다.
‘끄아아아아……!’
‘이, 이게 무슨……!’
이렇게까지 강력한 불을 뿜는 용족은 처음이었기에, 살아남은 사냥조는 간신이 목숨만을 부지한 채 후퇴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요툰의 힘을 지닌 전사들이 분전해 봤지만 놈의 불꽃을 이길 수는 없었다.
‘비욘과 시거드가 있었다면.’
코리는 탄식했다.
비욘과 시거드는 부족 최고의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따라 부족을 떠났고, 제국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러던 중 아틸라의 손에 죽고 말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지난 다섯 번째 출정에서, 사냥조는 두 마리의 우두머리 중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잃은 전사의 수는 엄청났다.
하지만 북부의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열두 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한 사람의 전사 몫을 할 수 있다.
‘반드시 놈을 쓰러뜨린다.’
코리는 다짐했다.
그는 이번 사냥 결과에 따라 언데드 군단과의 참전 여부가 결정되는 것을 안다.
‘언데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존재.’
코리는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을 기대했다.
각 부족의 족장들 또한 내심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코리는 알았다.
언데드는 자연의 힘을 숭배하는 북부인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존재.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악이다.
하지만 일단은 눈앞의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놈이다. 코리.”
동료 전사의 말에 코리는 상념을 걷어냈다.
저만치 거대한 바위 너머로 놈의 붉은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우두머리 사냥에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1진이 놈의 발을 묶는다. 2진은 화살로 시야를 빼앗아라. 나를 포함한 3진과 4진이 숨통을 끊는다.”
코리가 포함된 3진의 전사들은 전원 요툰의 힘을 지닌 정예 중의 정예다.
4진의 전사들은 요툰의 힘은 없었지만, 무지막지한 완력을 바탕으로 육중한 무기를 휘두르는 자들이었다.
“알았다. 코리.”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은 다르지만, 오랜 사냥조의 경험으로 형제가 된 자들이다.
코리가 이어 말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각 부족의 정예들이다. 하나 남은 우두머리는 오늘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우린 북부를 되찾을 것이고, 어린 전사들에게 생명으로 가득한 대지를 물려줄 것이다.”
아틸라가 보기에 북부는 생명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틸라의 관점과 북부인의 관점은 다르다.
북부인들은 태양, 구름, 바람, 그리고 발 아래의 흙, 자갈, 드문드문 솟은 바위들 모두가 생명으로 가득 차있다고 여겼다.
코리를 선두로 전사들이 달렸다.
“요후후후후후!”
“아르르르르르르!”
전사들이 포효했다.
아틸라도 그들 틈에 섞였다.
바토리와 펀치는 후방에 남겨 두었다.
촤르륵. 촤륵.
전사들의 한쪽 편엔 긴 쇠사슬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드레이크의 발을 묶는 1진의 전사들이다.
드레이크가 바위 바깥으로 나왔다.
전사들을 향해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좌우로 산개!”
코리의 손짓에 맞춰 전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브레스가 뿜어졌다.
화르르르르르르!
대여섯 명의 전사가 브레스의 먹잇감이 되었다.
브레스의 넓이는 상당했고, 또 드레이크가 고개를 흔들며 방출 범위를 더욱 넓혔기 때문이다.
“더 넓게 산개해라! 불꽃의 먹이가 되지 마라! 이번만 버티면 놈은 한동안 불꽃을 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