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76화 (376/425)

376. 사냥조 (1)

사바흐가 셰이카의 딸을 죽인 건 아니다.

그저 사바흐는 전쟁 중에 아기를 발견했고, 자신의 여동생과 닮은 모습에 놀라 아기를 숨겼다.

셰이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함구했다.

아이샤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

사바흐는 그 아이를 라시드에게 맡겼다.

셰이카는 아이를 남몰래 지켜봤다.

아이는 성장할수록 아이샤의 모습을 닮아갔다.

“그래서 벨라는 줄곧 날 지켜 줬던 거야?”

카스피는 어렴풋이 알았다.

자신이 하싸씬의 파문 살수가 된 후 많은 자객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그중 정말로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다.

물론 맨 처음으로 등장했던 ‘곡도의 압바스’는 카스피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그때 카스피는 이미 아틸라를 만난 상태였고, 아틸라는 카스피 대신 압바스를 죽였다.

‘미친놈아 왜 도망을 안 치냐고!’

이후 툴루즈 백작령에서 크라켄과의 전투를 마친 카스피는 일행과 헤어졌다.

오토가 함께였다.

머지않아 카스피는 귀살의 힘을 각성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자객들을 차례로 처리했다.

당시의 카스피로서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왜지?’

하싸씬의 단주에겐 ‘단주의 눈’이 있다.

그것을 통해 단주는 카스피의 실력을 세심히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스피를 습격하는 자객들의 무력은, 카스피와 오토가 힘을 합치면 가까스로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카스피의 성장을 돕는 듯했다.

단주가 정말로 카스피를 죽여 없앨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주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 카스피를 보호하고 있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벨라가 입을 열었다.

“귀살의 일족에겐 숨겨진 힘이 있어.”

숨겨진 힘.

이전에도 벨라가 했던 말이다.

“데비쉬의 단주 살라딘 쿠르드를 알고 있지? 꼬마.”

카스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의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을 마친 뒤, 카스피는 동료들의 곁을 떠나려 한 적이 있다.

그날 카스피는 원념의 괴물로 변한 살라딘을 만났었다.

- 너……. 귀살자 카스피…….

“살라딘은 꼬마, 네게서 귀살의 힘을 빼앗으려 했어. 하지만 내가 막았지.”

“나도 알고 있어.”

“살라딘에겐 사타나일이라는 검이 있었어.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의 권능이 담긴. 그동안 살라딘은 사타나일을 통해 여러 인간의 몸을 전생해 왔지.”

카스피 역시 아틸라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살라딘은 자신의 영혼을 상대의 육체로 이전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녔던 모든 능력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그릇이 된 자의 능력마저 흡수할 수 있지. 그렇게 그는 평범한 인간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넌 내가 귀살의 힘을 독특하게 운용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카스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벨라는 귀기를 특별하게 운용했다.

요르문간드와의 전투에서 벨라는 놀라운 귀기 사용법을 보였었다.

“넌 잘 모르겠지만 일족 내에서도 나처럼 귀기를 다루는 이는 없었어. 그것이야말로 일족의 지도층들이 날 더욱 견제했던 이유였지.”

잠시 말을 멈춘 벨라가 이어 말했다.

“일족을 떠난 난 귀기 운용법을 더욱 가다듬었어. 그러던 중 살라딘 쿠르드를 만나 겨루게 됐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지.”

“놀라운 사실?”

“살라딘의 검, 사타나일의 구동 원리가 귀기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걸.”

벨라는 깨달았다.

벨리알의 권능이 내재된 검, 사타나일.

그것에서 귀기와 유사한 힘이 느껴진다는 것을.

“물론 같은 힘은 아니었어. 하지만 비슷했지. 그때부터 난 어떤 가정을 하게 됐어. 벨리알이 살라딘에게 부여한 권능, 흡혈은 사실 귀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힘은 아닐까.”

확신은 없다.

하지만 벨라는 자신의 가정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라딘이 원념의 괴물로 변했던 날, 벨라는 자신의 가정을 증명했다.

‘그래. 그 검을 내 심장에 꽂고 싶다는 거로군.’

‘그렇게 해 보아라.’

벨라는 사타나일을 제 가슴에 꽂았다.

그렇게 살라딘으로 하여금 ‘흡혈’을 발현하도록 강제했다.

‘크하하하하! 어리석은 자 같으니!’

살라딘은 흡혈을 시전했다.

죽음을 앞두고 있던 자신의 영혼이 상대의 육체로 전생할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이게…… 무슨……!’

흡혈이 발현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심장을 관통 당한 상대가 한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이제야 깨달았느냐. 너와 나의 격의 차이를.’

벨라는 흡혈의 권능이 발현된 사타나일을 살라딘의 심장에 꽂았다.

그렇게 살라딘은 원념의 괴물이 됐다.

이후 벨라는 벨리알의 소재를 찾았다.

그녀에겐 목적이 있었다.

사타나일이 지닌 힘을 귀기에 적용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벨라는 벨리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벨리알을 만났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의 용기사로 등장한 아자젤.

그 직후 벨라는 엘의 환술 세계 속에서 다시 한번 아자젤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을 달성했다.

“그렇게 난 귀기의 비밀을 풀어냈어.”

벨라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아까도 말했듯 귀살의 일족에겐 아주 특별한 힘이 숨겨져 있지. 난 제국의 황성에서 아자젤을 만나 그 힘을 완전히 깨우쳤어.”

카스피는 벨라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직감적으로 말의 의미는 알았지만 거부 반응이 일었다.

벨라가 멀게 느껴졌다.

자신을 보는 벨라의 붉은 눈이 섬뜩했다.

* * *

바토리는 여전히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그런 바토리를 도롱뇽이 놀리다 괜히 봉변을 당했다.

“꾸에에엑……! 바토리 할망구 너 진짜!”

사실 도롱뇽은 이제 바토리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도롱뇽은 엘의 환술 세계를 거치며 본연의 힘을 완전히 되찾았다.

도롱뇽은 아틸라의 의지를 받아 성체로 변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성체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 이렇게 자그만 모습을 한 이유는 그저 그렇게 있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북부인의 땅에서 드래곤이란 존재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크게 한몫을 했다.

“……빌어먹을 할망구. 내가 봐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금 뭐라 하였느냐 도롱뇽아.”

“아, 아무것도 아냐! 야만 미물한테 이르지 마!”

아무리 도롱뇽이 힘을 되찾았어도 아틸라의 정신 교육은 유효하다.

투닥대는 도롱뇽과 바토리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아틸라는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펀치가 기분 좋은 숨소리를 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틸라는 도롱뇽을 붙잡아 펀치의 입안에 넣었다.

잠시 후 검은늑대의 족장, ‘카프간’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건가.”

아틸라가 중얼거렸다.

굳이 카프간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대변하고 있었다.

“……과반수의 족장이 참전을 거부했네.”

“이유는?”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북부의 용족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

“그럼 두 번째는.”

“검은늑대를 제외한 다른 부족들은 대무신왕의 전설을 믿지 않기 때문이겠지.”

카프간은 심히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틸라가 대무신왕의 환생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는 아틸라를 주군처럼 모시려 했다.

그런데 아틸라가 그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카프간은 이번 회의에서 부족 간 통합을 이룬 뒤 언데드와의 전쟁에 참여하려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것이다.

‘엘은 반드시 북부인을 참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지.’

“족장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겠소?”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해 보시오.”

“사나운 용족들이 다수 북부에 자리 잡은 건 사실이오. 제국령과 달리 이곳엔 드래곤 마스터가 없으니 놈들을 처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 그동안 비교적 약한 용족은 부족 선에서 처리해 왔소.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우두머리 개체는 부족들이 연합해 사냥조를 꾸려도 쓰러뜨리기 어렵지.”

“그래서, 그 우두머리를 쓰러뜨리면 부족 간 통합이 가능할 거라는 이야기요?”

“이론적으론 그렇소.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지. 아무리 아틸라, 당신이 대무신왕의 환생이라 해도.”

카프간은 이크살과 픽시를 통해 아틸라의 무력을 들었다.

아틸라는 분명 대단한 전사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부에 남은 우두머리 용족은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아틸라가 참여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아틸라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단 말이로군. 좋소. 내가 놈을 쓰러뜨리지.”

“대, 대무신……! 아, 아니 아틸라. 우두머리는 엄청난 괴물이오! 그동안 각 부족의 정예 전사들이 놈과의 전투에서 얼마나 희생되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관객은 많을수록 좋겠지. 최대한 빨리 날을 잡아 주시오. 나도 더 이상 이곳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얼마 전 리베르는 바토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리베르의 말에 따르면 현재 남부 대륙도 전쟁이 한창이었다.

키릴이 분전하고는 있지만, 이 상태라면 남부의 4개 왕국은 제국에 흡수된다.

리베르는 오토와 슈시아를 남부로 내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나바라 왕국과 발키리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서는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아틸라는 리베르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아틸라는 오토를 제외하고, 슈시아와 리베르를 남부로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오토는 아직 동료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오토만큼 든든한 메인탱커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오토도 아틸라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카르타고나 샤를이 직접 나선다면, 혹은 그사이 카르타고에 준하는 실력자가 나타났다면 오토로는 막을 수 없다.

‘벨라가 있긴 하지만.’

벨라는 살수다.

오토보다 압도적 강자라고는 해도, 그녀에게 전사의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

게다가 벨라는 카르타고나 샤를을 상대로는 상성이 좋지 않다.

결론은, 아틸라는 어서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전선으로 가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펀치라도 보낼 걸 그랬나.’

그러나 펀치는 아틸라의 곁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환수다.

도롱뇽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 샤를에게 포획되기라도 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아틸라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 *

족장 회의로 아직 족장들이 모여 있었기에, 카프간은 아틸라의 의지를 그들에게 빠르게 전할 수 있었다.

몇몇 족장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몇몇은 기가 찬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으며, 또 몇몇은 진중한 얼굴로 고민했다.

그러나 우두머리 용족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만은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오랜 회의 끝에 족장들은 각 부족의 정예들로 다시 한번 사냥조를 편성하기로 했다.

아틸라도 사냥조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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