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참전 (1)
알폰소 카스티야는 언데드 군단의 선봉장 중 하나였다.
그는 수년 전, 샹크리스 왕국에서 벌어진 토너먼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아틸라와 오토의 팀에 대패한 그는 더욱 검술 훈련에 매진했고, 그의 빼어난 자질과 맞물려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던 중 카르타고가 카스티야 왕국을 침공했다.
알폰소는 카르타고에게 목이 잘렸다.
- 죽을 것인가.
- 아니면 영원히 싸울 것인가.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생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게도 인간이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그때의 난 어떤 존재였지.
파캉!
알폰소가 휘두른 검이 적장의 목을 베었다.
목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알폰소는 자신의 목이 카르타고에게 잘렸던 것을 안다.
분명 그랬었는데.
어느 틈엔가 목은 다시 몸뚱이에 붙어 있었다.
“제3보병대 돌겨어어억!”
“우와아아아아!”
제국의 군대가 전진해왔다.
북부 제국의 병력은 상당했다.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병력이 보충되는 건 언데드 군단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알폰소의 검이 기사 셋의 머리를 한꺼번에 베었다.
언젠가부터 기사들의 복장이 바뀌었다.
제국의 다른 군주령, 혹은 제국령의 기사들일 것이다.
“다, 단장이 당했어!”
“아직 부단장께서 살아 계신다! 부단장을 중심으로 진을 펼쳐라!”
언데드 군단은 아인하르트 제국의 선봉이다.
그런 언데드 군단의 창끝은 데스나이트고, 그들이 만난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첫 번째 상대는 에레트리아 군주령이었다.
에레트리아 군주령은 끈질기게 버텼지만 잠시였다.
알폰소를 비롯한 데스나이트들은 결국 에레트리아 군주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키랴랴랴랴랴랴!
하늘에서 거친 포효가 울렸다.
다가오는 기사의 목을 날리며 알폰소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제국의 드래곤이 언데드들을 향해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
얼음 속성의 화이트 드래곤은 골드 드래곤이나 레드 드래곤보다는 덜 까다로운 존재다.
그러나 군마를 타고 이동하는 데스나이트들에겐 드래곤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
공중전을 벌이는 상대에겐 공중전을 펼칠 수 있는 아군이 달려들어야 한다.
키랴랴랴랴랴랴!
불길한 거품으로 가득 찬 녹빛 브레스가 화이트 드래곤에게 뿜어졌다.
화이트 드래곤은 재빠르게 날개를 움직여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제국의 다른 용기사들은 브레스의 먹이가 됐다.
“사, 살려 줘!”
“끄아아아아아……!”
온갖 종류의 비명이 퍼지며 용족과 용기사들이 추락했다.
알폰소는 제국의 용기사들을 격추시킨 아군의 드래곤을 봤다.
그린 드래곤 네트라비스.
한때는 그런 이름으로 불렸지만, 얼마 전 카르타고와 수블라의 합동 공격에 당해 언데드로 부활한 개체다.
놈의 마스터는 언데드로 되살릴 여지조차 없이 몸이 녹아내렸다.
알폰소는 수블라가 고의로 그런 일을 벌였으리라 짐작했다.
그 이유는 수블라가 몸소 보여 주고 있다.
언데드로 부활한 네트라비스의 마스터가 바로 수블라 템페스타, 그 자신이었으니까.
키랴랴랴랴랴랴!
프릴루이나와 네트라비스가 공중에서 맞붙었다.
제국의 나머지 용기사들은 언데드 용기사들과 승부를 벌였다.
“화이트 드래곤과 드래곤 마스터를 보호하라!”
“목숨을 걸어라! 프릴루이나는 절대로 빼앗겨선 안 된다!”
원래 언데드 군단에겐 두 마리의 드래곤이 있었다.
악마왕 샤를의 드라코리치와, 카르타고의 아에스투스.
그랬던 것에 네트라비스가 추가돼 세 마리로 보유수가 늘었다.
반면 클라우디우스 제국은 네트라비스를 빼앗기는 바람에 네 마리에서 세 마리로 보유수가 줄었다.
그렇게 양 진영이 보유한 드래곤의 수는 동일하게 맞춰졌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드래곤은 드라코리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데드 진영이 공중전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제국엔 언데드 드래곤과 상극의 존재인 골드 드래곤이 있었으니까.
또한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물리쳐라! 언데드 놈들을 모조리 쓰러뜨려라!”
“하늘은 마스터와 용기사에게 맡겨라! 우리는 지상을 탈환한다!”
“우오오오오오!”
알폰소는 무심한 눈으로 제국의 군대를 봤다.
제국 기사들은 남부 왕국의 기사보다 강했다.
그러나 알폰소의 상대는 아니었다.
알폰소는 언데드 군단의 많은 데스나이트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였고, 지금껏 그가 쓰러뜨리지 못한 제국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알폰소는 검을 휘둘렀다.
베고, 베고, 또 베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이었다면 지금 무엇을 감각하고 있을까.
알폰소는 갈증을 느꼈다.
다른 대부분의 데스나이트와 달리 그는 자아를 지닌 존재였다.
그런 면에선 카르타고나 수블라를 닮았다.
생과 사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알폰소는 특이점을 발견했다.
펄럭.
암피테르 한 마리가 낮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 위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뛰어내렸다.
알폰소의 안광이 흔들렸다.
그는 박동할리 없는 심장이 뜨겁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알폰소는 세 개의 그림자 중에서 하나의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것을 향해 유령마를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베었다.
그것 또한 알폰소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히익! 데, 데스나이트!”
* * *
아틸라의 명령을 받은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제국과 언데드 군단의 전선에 투입됐다.
황제(엘)에게 하사받은 특별한 증표가 있었기에 일행을 가로막을 것은 없었다.
그렇게 방금 요롱이의 등에서 뛰어내린 인원은 오토, 카스피, 슈시아.
슈시아는 벌써부터 마력 화살을 쏘며 언데드들을 공격하고 있다.
카스피는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보며 지상의 언데드들을 베고 있었다.
오토의 임무는 언데드 군단의 ‘지상 최강 병력’인 데스나이트를 쓰러뜨리는 것.
내색은 안 했지만 오토는 두려웠다.
그가 떠올리는 데스나이트의 이미지란 다름 아닌 버서커 카르타고였으니까.
‘아, 아틸라 님도 쓰러뜨리지 못한 버서커 카르타고를 내가 어떻게……!’
물론 버서커 카르타고는 일반적인 데스나이트와 비할 수 없는 강자다.
오토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카르타고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깊숙이 각인된 탓에 몸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틸라 님은 왜 나한테 데스나이트를……! 바, 발키리 아가씨도 있고! 쉽게 뒈지지도 않는 관조자 리베르고 있고! 저 무지막지한 살수 벨라도 있는데!’
리베르와 벨라는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베르는 예정된 임무를 수행 중이고, 벨라는 제멋대로 위험한 짓을 벌이고 있다.
오토는 언데드들을 베었다.
과연 하워드 스틸숄더의 손을 거친 무구는 대단했다.
게다가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의 축복을 받은 강철검에선 은은한 금빛이 흘렀고, 그것은 언데드를 상대로 무시무시한 효과를 보였다.
오토는 데스나이트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신이 나서 언데드 사냥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그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포착했다.
살기를 향해 눈을 돌렸다.
“히익! 데, 데스나이트!”
한눈에 봐도 무지막지하게 강해 보이는 데스나이트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심지어 앞을 가로막는 제국 기사들을 짚더미처럼 쓰러뜨리며.
‘나, 난 이제 죽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데스나이트가 검을 뻗었다.
오토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다.
카앙!
날카로운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데스나이트의 유령마가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데스나이트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엥?’
오토도 당황했다.
데스나이트의 공격은 강했다.
그러나 못 막을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뭐, 뭐야. 생각보다 약하잖아!’
오토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데스나이트가 약한 게 아니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감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즉.
‘내가 강하다는 건가!’
오토의 입이 길게 찢겼다.
평소 아틸라의 웃음을 보며 남몰래 연습해 둔 것이었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오토가 검과 방패를 콰앙! 부닥쳤다.
데스나이트가 달려들었다.
오토도 기다리지 않고 놈에게 마주 달렸다.
콰앙! 쾅! 콰아앙!
오토와 데스나이트의 결투는 대단했다.
순식간에 공간이 열리며 둘만의 자리가 생겼다.
데스나이트가 투구를 벗었다.
그 안엔 텅 빈 공간 대신 푸르죽죽한 얼굴이 달려 있었다.
“히익! 시, 시체다!”
오토가 놀라 외쳤지만, 사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를 포함한 모든 언데드는 시체를 일으켜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러나 오토는 잠시 후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체의 얼굴이 익숙했다.
“너, 너, 너! 샹크리스의 토너먼트에서 깝치다 낙마했던 그 약골 왕자!”
알폰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대로 오토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쓰러뜨린 적이 있는 상대다.
오토의 몸이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그 감각이 오토의 본 실력을 일거에 끌어냈다.
콰앙!
알폰소의 검이 강철방패에 막혔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오토가 강철검을 휘둘렀고, 알폰소의 왼팔이 잘렸다.
알폰소는 팔의 절단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위험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토가 신들린 것처럼 팔을 움직였다.
그 공격을 알폰소는 제대로 막아 낼 수 없었다.
머지않아 알폰소는 자신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었을 무렵 느낄 수 있었던 감정.
피식 미소하는 알폰소의 목이 몸에서 분리됐다.
* * *
카르타고는 절벽 위에 서서 황량한 전장을 내려다봤다.
전투는 일시적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전선은 남쪽으로 밀렸다.
갑작스레 등장한 새로운 적들 때문이었다.
- 오토마이어 나바라. 귀살자 카스피. 그리고 서리나무의 왕이라.
버서커 아틸라, 바토리 에르제베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에 의문을 느끼며 카르타고는 생각에 잠겼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전투를 통해 화이트 드래곤을 갈취했어야 했다.
그 임무를 맡은 것이 수블라였고, 거의 성공할 뻔했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했다.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방해꾼 때문이었다.
- 셰이카 라딤.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이 등장했다.
셰이카는 오토마이어의 암피테르를 통해 수블라의 드래곤, 네트라비스에 기습적으로 올랐다.
그것은 수블라가 프릴루이나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한 시점이었다.
수블라는 셰이카에게 맥도 추지 못하고 당했다.
균열을 통해 도망치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수블라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 마법사 잡는 것은 살수.
수블라에겐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다.
게다가 셰이카는 평범한 살수가 아니다.
- 그런 살수를 잡아내는 것은.
카르타고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 전사.
* * *
아틸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검은늑대 부족의 족장은 다른 부족들과의 족장 회의를 소집했다.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회의가 잘 진행될 것 같더냐.”
“알 수 없지. 하지만 테라루스 일족은 자연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자연의 굴레를 벗어난 언데드와는 상극인 존재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