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73화 (373/425)

373. 환생자 (3)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픽시가 이크살에게 눈짓했다.

이크살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저들이 위험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흑기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검은늑대의 이크살.

검은늑대의 픽시.

검은늑대 부족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즉 저 흑기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들과 같은 검은늑대 부족의 전사라는 것이다.

‘정말 뭐지? 오래전에 부족을 떠난 전사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픽시가 입을 열었다.

“저기…… 검은늑대의 아틸라.”

아틸라가 픽시를 돌아봤다.

픽시는 아틸라의 면모를 훑어봤다.

동족을 떠오르게 하는 검고 긴 머리.

그러나 북부인 답지 않게 깔끔히 정돈된 수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견고한 갑주.

검과 방패.

그리고.

‘저 검이 뭔가 신기하단 말이지.’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검을 세 자루나 갖고 있었다.

그중 픽시의 눈을 사로잡은 건 손도끼처럼 넓적한 검신을 지닌 단검이었다.

아니 단검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마치 대검의 검신을 억지로 짧게 만든 듯한 모양의 검.

그 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이크살 또한 마찬가지였다.

픽시와 이크살은 그 검에서 묘한 기운을 감각했다.

그것을 지닌 아틸라와, 그를 따르는 자그만 새끼곰한테서도.

“뭘 그리 남의 남자를 훑어보는 것이냐.”

“나, 남의 남자……?”

“척 보면 모르겠느냐. 나와 아틸라는 미래를 언약한 사이거늘.”

“아…….”

“아…….”

픽시와 이크살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놀란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픽시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이크살의 목을 후려쳤다.

이크살이 켁켁대며 제 목을 감쌌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아틸라는 둘의 관계가 오토와 카스피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픽시는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오래전 부족을 떠난 전사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정엔 문제가 있었다.

아틸라는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언뜻 봐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다.

그렇다면 자신과 이크살이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게다가 둘은 아틸라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건가?’

픽시가 다시 물었다.

“……넌 몇 살이지?”

“그건 왜 묻는 것이더냐.”

바토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답했다.

아틸라가 손을 들어 바토리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넌 내가 몇 살로 보이지?”

생각지 못한 되물음에 픽시는 당황했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 이렇듯 되묻는 문화는 낯설었다.

픽시는 고민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왜 자신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되물은 것인가.

‘내 눈썰미를 확인하고 싶다는 건가.’

딱 봐도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파악하려 하고 있다.

여기선 대답이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검은늑대의 전사들은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그들에게 미숙한 전사라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그런 의도로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선 솔직하게 답하는 편이 낫겠지.’

픽시는 다시 한번 아틸라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틸라는 지금까지와 달리 조금은 초조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바토리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픽시를 노려봤다.

대답을 주저하던 픽시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스무 살.”

그 말에 아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동그래진 것을 넘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위를 향했다.

아틸라는 기뻤다.

처음으로.

지구에서의 삶과 이 세계에서의 모든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아틸라가 반색하며 바토리를 돌아봤다.

그의 표정을 읽은 바토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장난기가 발동한 눈으로 픽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난 몇 살로 보이느냐.”

픽시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아틸라가 원하는 대답을 한 것 같아 내심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질문이 다시 들어온 것이다.

픽시는 바토리의 얼굴을 세심히 살펴봤다.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무슨 놈의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가히 눈이 부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여자였다.

북부인과 제국인의 미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북부인은 여성도 한 사람의 전사의 역할을 할 때부터 비로소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다.

눈앞의 여자는 전사의 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북부인과 제국인을 넘어선 미의 결정체.

머릿속에서 대답을 고르던 픽시가 이윽고 입술을 열었다.

“열일곱?”

“열여섯.”

먼저 말한 건 픽시였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말한 건 이크살이었다.

덕분에 이크살은 픽시에게 다시 한번 목을 얻어맞았다.

바토리는 만족한 얼굴로 웃었고, 그런 바토리를 보며 아틸라는 할망구가 드디어 노망이 들었다며 중얼댔다.

그 뒤로 얼마간 더 말을 달려 일행은 검은늑대 부족의 땅에 도착했다.

춥고 척박한 대지 가운데 세워진 부락.

그곳엔 생각보다 많은 전사들이 있었다.

사냥조로 일곱 명만이 움직인 이유는 용족의 부락 습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크살!”

“픽시!”

“이크살이 돌아왔다! 사냥조가 돌아왔다고!”

두 전사를 발견한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어나왔다.

그러다 죽은 전사들의 시체를 보곤 조용해졌다.

이크살을 선두로 일행은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도보로 이동했다.

타고 있던 말은 아이들이 이끌고 사라졌다.

“잠시 기다리게. 족장님을 만나고 오지.”

부락의 중앙쯤에 도달하자 이크살이 커다란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픽시는 자리에 남았다.

아틸라는 펀치의 인벤토리에서 고기를 꺼내 바닥에 쌓았다.

그 모습을 본 픽시가 힉! 비명을 질렀다.

아틸라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부족의 전사들과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틸라도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이곳이 검은늑대 부족인가.’

아틸라는 조금 놀라운 기분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선 문주크와 일레크가 있던 검은늑대 부족과 같은 기운이 풍겼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구 발루아 왕국 남서쪽의 야만 숲.

그곳 깊은 곳에 자리한 검은늑대 부족의 부락은 이곳에서 갈라져 나온 전사들의 정착으로 시작된 곳이니까.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군.’

아틸라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지구에서의 기억이 있어도.

그리고 엘을 통해 알게 된 수많은 다른 기억이 있어도.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였다.

실제로 그는 문주크와 일레크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했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누이였던 일레크의 목을 벴다.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뭘 하고 계실까.’

문주크는 아틸라의 또 다른 아버지였다.

지구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잃었던 아틸라는 문주크에게서 깊은 부정을 느꼈었다.

이제는 관조자로 돌아간 바토리에게 묻는다면 문주크의 상황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아틸라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문주크의 검은늑대 부족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전쟁이 엘의 예정대로 마무리된다 해도.’

아틸라는 전쟁 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계획하고 있었다.

아틸라의 시선이 부족원들을 떠나 바토리를 바라봤다.

아틸라를 마주한 바토리의 눈동자가 묘하게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따라오시오.”

어느새 돌아온 이크살이 아틸라와 바토리를 데리고 족장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은 부연 연기로 가득했다.

원인은 구석자리에 앉은 노파가 뻐끔뻐끔 피워대는 담배였다.

바토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마법을 발동해 연기를 몰아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여긴 검은늑대 부족의 땅.

이곳만의 법도를 무시할 생각은 없다.

“먼저 부족의 전사들을 구해주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소.”

족장의 목소리엔 위엄이 있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라 하셨소.”

아틸라는 물끄러미 족장을 마주 봤다.

이크살이 20년 정도 나이를 더 먹으면 딱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하는 얼굴의 사내.

이크살은 족장의 아들이었다.

“그렇소.”

아틸라의 대답에 족장이 다시 물었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이오? 내가 알기로 우리 부족엔 아틸라라는 이름을 가진 전사가 없소.”

“아마 그럴 거요. 난 남쪽에서 왔으니까.”

“제국인이란 이야기요?”

“난 제국인이 아니오. 그보다 더 남쪽에서 왔지.”

족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크살과 픽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국보다 더 남쪽이라니.

그곳엔 수해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수해 너머에 또 다른 인간 세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난 남부 대륙의 구 발루아 왕국 남서쪽에 위치한 검은늑대 부족에서 왔소. 당신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

아틸라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구석자리의 노파가 킬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아틸라는 그 노파가 보기와 달리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주술사겠지.’

테라루스 일족엔 주술사가 있다고 했다.

아틸라는 저 노파를 본 순간 그녀가 주술의 힘을 지녔으며, 또한 문주크와 종종 이야기하던 점쟁이 노파와 매우 비슷한 기운을 풍긴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점쟁이 노파는 갓 태어난 아틸라를 보며 예언의 말을 남겼었다.

- 이 아이는 장차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될걸세.

- 환생한 영웅은 가슴 위로 위대한 징표를 드러내리라.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점쟁이 노파의 말대로 아틸라는 가슴에 위대한 징표를 갖게 되었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다.

아마도 테라루스 일족과 검은늑대 부족에 존재하던 주술사가 남부로 이동해 오랜 세월이 지나며 점쟁이라는 존재로 바뀌었을 테지.

“전사님께서는 분명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계실 테지. 그렇지 않소이까.”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노파가 말했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천막 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와 노파의 깊게 주름진 얼굴과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틸라는 길게 말할 것 없이 무휼을 꺼내들었다.

그는 확신했다.

저 노파는 성검 무휼을 알아볼 것이다.

츠츠츳. 츠츳.

무휼의 검신에서 광채가 일렁였다.

이어 무휼의 검신이 늘어나며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노파의 표정이 변했다.

족장과 이크살, 픽시의 표정도 완전히 바뀌었다.

“……대무신왕의 성검, 무휼.”

역시 노파는 무휼을 알아봤다.

그러나 노파에겐 확인할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아틸라도 그것을 알았다.

펀치가 아틸라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천막에서 가장 너른 공간을 향해 방방대며 달려갔다.

아틸라는 펀치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그러자 펀치의 몸이 신수 그리즐리의 형태로 바뀌었다.

“히익!”

“히이이익!”

이크살과 픽시는 이미 한 번 본 모습이었는데도 엉덩방아를 찧었다.

둘과 달리 족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동자만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희뿌연 연기 속에서 노파의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천막을 가득 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