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70화 (370/425)

370. 각자의 시련 (3)

오토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나바라 왕국의 왕이다.

무릇 왕이라면 국가의 영토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자신은 왕의 임무를 저버린 채 아틸라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대격변으로부터 세계를 구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핑계다.

그는 그저 아틸라와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아틸라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꿈꾸던 완벽한 전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토록 강한 전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오토는 아틸라의 전투를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꼈다.

물론 카르타고나 샤를 아인하르트는 아틸라 이상의 무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틸라를 향한 오토의 경외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아틸라 님처럼 되고 싶다.’

오토의 단 한 가지 바람이었다.

아론, 로버트, 던컨과 함께 왕국에서 도망친 뒤, 강한 기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생존이라는 본능에 밀려 점점 옅어졌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남은 건 볼품없는 도적단의 두목질이나 하고 있는,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자신이었다.

그러던 중 오토는 아틸라를 만났다.

아틸라의 동료가 되고, 카스피를 만나고, 바토리를 만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위험하지만 즐거웠다.

그러면서 오토는 점점 더 정체성을 잃어갔다.

자신은 나바라 왕국의 왕인가.

아니면 아틸라의 동료 중 하나일 뿐인가.

‘아니. 넌 몰랐다. 네 존재는 조금도 내 머릿속에 없었지.’

얼마 전 아틸라가 오토에게 했던 말이다.

아틸라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왔다.

그는 이 세계에 오기 전부터, 이 세계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틸라는 바토리를 알고 있었다.

카스피를 알고 있었다.

슈시아와 도롱뇽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틸라는 샤를, 피핀, 제롬, 키릴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 안에 오토는 없었다.

그날 오토는 상실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따라다니던 아틸라였지만, 아틸라에게 자신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사실 오토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아틸라가 바토리와 카스피 못지않게 자신을 진정한 동료로 생각한다는 것도.

다만 오토는 불안했다.

대격변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샤를이 대악마의 현신이 되고, 드라코리치가 그의 환수로 거듭나며 대격변은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틸라는 엘을 만났다.

이유는 몰랐지만, 오토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아틸라 님은 사도 엘을 만났다. 그리고 난 엘의 환술에 빠져 있지.’

다른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토는 분명하게 그것을 느꼈다.

오토는 아틸라와의 여정이 막바지에 치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샤를의 언데드 군단을 향한 전쟁.

물론 그 전쟁을 승리로 마친다 해도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애초부터 대격변은 여러 세계가 중간계에 겹침을 일으키며 나타나는 대재앙이니까.

그러나 오토는 일단 샤를과의 전쟁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 전쟁을 끝으로, 이 세계가 구원될 것이라 믿었다.

만약 그 전쟁이 대격변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점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별 수 있나.

또다시 아틸라 님과 함께 놈들을 몰아내야지.

오토는 모든 전쟁이 끝난 이후의 상황을 가정했다.

세계가 평화를 맞이하고.

아틸라와 바토리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난 뒤의, 그런 상황을.

‘그때 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때이른 고민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동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토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쟁 이후의 세계를 가정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홀로 밤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토는 생각의 우주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목적은 아틸라의 목적과 같았다.

그렇다면 아틸라가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래서 더 이상 그를 따라다닐 명분이 사라지고 나면.

그때의 자신은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이제 와서?’

자신이 없었다.

오토는 아틸라 곁의 바토리를 떠올렸다.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아마도 아틸라와 바토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많은 위기를 극복했을 것이다.

둘은 다른 동료들과는 다른 사이였다.

오토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틸라에게 바토리가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렇다면 난 나의 길을 당당히 걸을 수 있을까.

오토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가면을 바꿔 썼다.

줏대 없이 남을 따르며 헤실대던 오토는 사라지고, 왕의 기백을 지닌 오토마이어 나바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토마이어는 지나간 생각을 반추했다.

‘오토’가 가졌던 생각을 ‘오토마이어’로서 되짚어 보았다.

그러던 중 오토마이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급한 외침.

목소리의 주인공을 직감한 그의 입꼬리가 위를 향했다.

* * *

아틸라는 엘과 싸우는 와중에도 동료들의 세계를 인지했다.

엘의 환술 세계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 연결된 세계의 시작점이자 종착지가 바토리의 세계라는 것을 아틸라는 알았다.

엘은 유도하고 있다.

아틸라가 자신의 힘을 깨닫고.

그렇게 각성한 힘을 바탕으로, 각자의 세계로 흩어진 동료들을 바토리의 세계로 보낸 뒤.

이윽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시련을 극복한 바토리가 더욱 강력한 관조자로 거듭나도록 만들기 위해.

물론 다른 동료들도 저마다의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메인이벤트는 바토리다.

그런 바토리와 아틸라, 펀치, 도롱뇽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것은 엘이 황제의 알현실에 그 넷만을 초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틸라는 먼저 오토를 바토리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바토리에겐 무엇보다 전사가 필요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엘과 싸우며 오토의 세계를 들여다본 아틸라는 놀랐다.

오토가 보이지 않았다.

오토의 세계는 이미 소실돼 있었다.

‘오토마이어 나바라는 스스로의 의지로 시련을 극복했다.’

엘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이었군. 그는.’

엘의 목소리엔 감탄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아틸라는 오토의 기척을 탐색했고, 오래지 않아 찾아냈다.

그는 카스피의 세계에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시련을 극복한 것을 넘어, 카스피의 세계로 넘어가기까지 한 것이다.

아틸라는 카스피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귀살의 일족이 멸망당하는 순간을 지켜봤고, 그 안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일로 카스피의 정신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흔들리는 그녀의 정신을 오토가 다독였다.

놀랍게도 카스피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카스피의 시련이 마무리됐고, 아틸라는 오토와 카스피 모두를 바토리의 세계로 이전시켰다.

‘철혈귀검아! 카스피!’

바토리의 반가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아틸라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광폭의 권능은 불완전에서 비롯된 힘.

엘이 말했던, 더욱 강해질 것이지만 더욱 불완전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 상태로 아틸라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슈시아와 벨라다.

그 순간 엘의 공격이 더욱 강해졌다.

‘넌 동료들을 우선시하고 있구나.’

아틸라는 엘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엘의 검격은 방어를 뚫고 들어와 아틸라의 흉부에 깊은 자상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바토리를.’

엘의 공격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허나 네가 힘을 각성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지킬 수 없다. 넌 바토리를 포함한 누구도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아틸라의 몸에서 거센 핏줄기가 솟았다.

그럴수록 아틸라의 정신은 더욱 깊은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아틸라의 입꼬리가 꿈틀대며 위를 향했다.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극도의 쾌감으로 바뀌었다.

아틸라는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손놀림이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다.

아틸라는 엘과의 전투에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당장 엘에게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엘은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카르타고와 샤를 이상의 ‘격(隔)’이 느껴졌다.

캉! 카앙! 카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아틸라는 심장에서 이물감을 느꼈다.

무언가의 껍질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련을 통해 깨부숴야 할 최종 목표라는 것을 아틸라는 알았다.

‘그렇게 하는 거다. 도현아.’

아틸라는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눈앞의 엘이 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자신 같았다.

거울 속의 나는 길게 풀어진 머리를 흩날리며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난 눈을 뜨고 있었다.

상처로 가득한 상체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아틸라는 자신이 엘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잊지 말거라. 너는 나의 알테라다. 우리는 같지만 다른 존재다.’

거울 속의 내가 말했다.

무한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틸라의 심장을 둘러싼 껍질이 완전히 깨졌다.

아틸라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엘이 했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너의 알테라.

같지만 다른 존재.

‘그래. 그거다 도현아.’

거울 속의 내가 흐릿하게 변했다.

이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틸라는 자신의 시련을 끝냈다.

그는 의지를 발휘해 슈시아의 세계로 넘어갔다.

슈시아의 세계는 아틸라의 등장과 함께 무너졌다.

‘벨라의 세계는 아자젤에게 맡기려무나.’

아틸라는 엘의 말대로 했다.

자신을 보고 놀라는 슈시아를 한 팔에 끼고, 아틸라는 바토리의 세계로 넘어갔다.

전쟁은 한창이었고, 아군에게 불리했다.

그러나 아틸라와 슈시아가 등장하며 전황은 바뀌었다.

둘의 합류로 바토리의 세계 속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야만전사야!”

“이제 오냐 야만 미물!”

“아틸라 님!”

“아틸라아아! 너, 넌 왜 이제야 오는 건데 엘프!”

아틸라는 사도들을 향해 돌진했다.

시스템의 힘 같은 건 이제 필요 없었다.

게다가 아틸라는 바토리의 세계로 건너오며 모든 체력을 회복했고, 부서진 갑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신을 지배하던 광폭의 힘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까마귀 기사단! 기세를 잡았다! 진겨어어억!”

“우오오오오오!”

검은 갑주의 기사단이 환성을 울렸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 뒤를 받쳤다.

그 모든 이들의 선두이자 중심엔 아틸라와 바토리가 있었다.

펀치의 우렁찬 포효가 공기를 흔들었다.

오토가 검과 방패를 부딪치는 소리, 카스피가 귀수를 뽑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 위엔 암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긴 날개를 펼치며 날아다녔다.

그들은 세 명의 사도와 천사들을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일행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단 한 명 만을 남기고.

긴 머리에 심연처럼 깊은 눈을 지닌 사내가 일행의 뒤에 홀로 서있었다.

그의 눈이 바토리를 찾았고,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바토리도 그를 향해 걸었다.

흔들리는 입술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이구나. 나의 친구 리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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