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64화 (364/425)

364. 밝혀지는 비밀 (4)

아틸라는 놀랐다.

바토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사자인 도롱뇽만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엘을 바라봤다.

아틸라가 반문했다.

“군신 아레스가 두 드라코니안의 친부(親父)라고? 하지만 아까 당신은.”

아틸라는 엘이 도롱뇽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너 또한 오랜만이로군. 아가레스와 이미르의 핏줄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넌 사도들이 두 개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아레스의 또 다른 이름은 아가레스. ‘군신 아레스’와 ‘부도덕의 아가레스’는 동일한 존재다.”

“그렇다면 빛의 신 포이베는.”

“태만의 아스타로트.”

부도덕의 아가레스.

태만의 아스타로트.

둘 모두 아틸라가 알고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 둘이 각각 아레스와 포이베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아틸라는 다섯 사도의 모든 이름을 알게 되었다.

대악마 아몬(엘).

고위악마 벨리알(아자젤).

고위악마 닉스(오르피나).

대악마 아가레스(아레스).

고위악마 아스타로트(포이베).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도롱뇽이 꽥 비명을 질렀다.

“뭐, 뭐? 내 아버지가 전쟁의 신 아레스라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냐!”

“내 말은 사실이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우, 웃기지 마!”

도롱뇽은 믿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샤를 아인하르트는 아레스의 화신이다.

즉, 군신 아레스는 샤를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녀석이 줄곧 날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제서야 도롱뇽은 깨달았다.

수년 전, 아틸라가 노르드 왕국에서 카자르라는 이름의 용병으로 활동하며 샤를의 군대와 맞붙었을 때.

샤를이 아틸라를 속이고 바토리를 타격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바토리의 곁에 있던 도롱뇽은 투명화를 이용해 상황을 반전시켜보려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샤를에게 발각됐다.

‘여, 역시 그랬던 거야! 빌어먹을 아레스가 내 위치를 알려 준 거다!’

이 상황에서도 도롱뇽은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버지라는 게 자식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카아아앗!”

도롱뇽이 두 앞발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나 아틸라에게 정신 교육을 당하고는 기절해 쓰러졌다.

엘이 웃으며 말했다.

“그 능력은 아주 잘 활용하는 모양이구나.”

“덕분에.”

바토리는 아까부터 엘과 아틸라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엘은 아틸라의 아버지다.

실제로 아틸라는 엘을 처음 보았을 때 아버지라 불렀었다.

그러나 지금의 두 사람은 마치 오늘 처음 만난 관계처럼 불편해 보였다.

아니, 엘은 아틸라를 아들로 바라보고 있지만 아틸라가 그것을 거부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아틸라는 영문도 모른 채 지구에서 이 세계로 끌려와 많은 위험을 겪었다.

그 일의 원흉이 엘이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엘을 지구에서의 아버지처럼 대할 수 없는 것이다.

바토리도 엘이 왜 아틸라를 이 세계로 불러들인 것인지 궁금했다.

의문에 답하듯 엘이 말을 이었다.

“두 드라콘의 탄생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또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전조였다. 머지않아 혼돈도 두 드라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혼돈은 드라콘을 복제해, 요툰을 몰아낼 우수한 전쟁 병기를 만들려 했다.”

아틸라가 말을 끊었다.

“잠깐. 조금 전 중간계의 임무는 당신을 포함한 다섯 사도가 맡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그러나 그즈음 날 향한 혼돈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지.”

“내가 먼저 혼돈의 계획에 의문을 느꼈기 때문이지. 언젠가부터 난 혼돈의 의지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혼돈은 내 마음속 변화를 알아챘다.”

엘은 혼돈의 분신이었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다른 사고를 지닌 독립된 존재였다.

“난 드라콘을 복제해 요툰을 몰아낸다는 혼돈의 계획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드라콘이 수호하던 신계의 ‘성스러운 샘물’에 틈새를 만들었다.”

이후의 일은 아틸라도 도롱뇽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마기에 매료됐다.

그들은 틈새의 마기를 흡수하고 융합해, 중간계로 통하는 균열을 만들었다.

그렇게 두 드라콘은 신계를 탈출해 중간계로 진입했다.

그 과정를 거치며 그들은 단순한 뱀의 외형에서 네 다리와 날개를 지닌 드래곤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두 드라콘을 중간계로 빼돌린 나는 대악마 아몬의 모습으로 둘을 찾아갔다.”

엘에게는 예지의 힘이 있다.

드라콘이 탄생하며 미래는 바뀌었다.

엘은 두 드라콘의 힘을 하나로 합쳐야 혼돈의 계획을 방해할 열쇠 중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엘의 생각대로 되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포식하고, 하나가 됐다.

“역시 그 일은 당신이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나.”

아틸라는 기절한 도롱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녀석이 깨어 있었다면, 지금의 대목에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오랜 시간 제정신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요툰 전쟁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학살을 일삼고 다녔지.”

요툰 전쟁은 고대인에게 크게 불리했다.

당시 고대인들은 다섯 사도의 도움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요툰을 쓰러뜨리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혼돈에겐 중간계에 직접적 개입을 할 수 없는 신과 악마를 대신할, 막강한 존재가 필요했다.

그렇게 드래곤이 만들어졌다.

혼돈은 드라콘의 유사 생명체인 드래곤을 창조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대인을 돕도록 했다.

“결국 고대인과 드래곤은 요툰을 중간계에서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엄밀히 말하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요툰 중에서도 특별히 강력했던 흐레스벨그, 펜리르,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린 덕이 컸지만.”

아틸라의 눈이 다시금 도롱뇽을 바라봤다.

요르문간드를 혼쭐을 내줬다는 도롱뇽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궁금한 게 있다. 혼돈이 당신을 믿지 않게 됐다면, 어째서 당신 대신 중간계를 좌지우지하지 않은 거지? 혼돈에겐 당신의 훼방을 무시하고 두 드라콘을 확보해 복제할 능력이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혼돈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또한 불완전한 존재지. 그래서 완전함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주하는 것이다. 게다가 혼돈은 자신의 본래 임무인, 혼돈의 울타리를 완벽한 불완전함의 세계로 만드는 일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중간계에 직접적인 개입을 한다는 것엔 큰 무리가 따르지. 자칫 잘못하면 본연의 임무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까.”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혼돈은 아틸라의 사고 바깥에 있는 존재.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변수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들었다. 요툰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이번엔 두 가지였지.”

“두 가지?”

“하나는 칼날 산맥의 의지가 드라칸 코르키코스의 유골을 드라코리치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돈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육체와 정신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엘은 혼돈의 분신.

다시 말해 혼돈과 가장 유사한 존재다.

“분열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됐다. 그 이유엔 드래곤을 탄생시키며 중간계에 간섭한 혼돈의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한 나는 당분간 활동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혼돈의 입김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먼 동방의 나라로.”

아틸라의 눈빛이 변했다.

“동방이라고?”

“그래. 난 아자젤과 동방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지.”

언제 생겼는지 모를 짙은 숲이 동방을 향하는 길목에 펼쳐져 있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의 엘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열이 시작된 정신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동방에서의 삶은 즐거웠다. 동방은 이전까지 내가 머물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그곳의 고대인은 서방의 고대인과 달랐다. 아마도 언제 드리웠는지 모를 짙은 숲이 양 진영을 분리했기 때문이겠지. 그들은 주로 유목 생활을 했고, 그 덕에 신기에 가까운 승마술을 지니고 있었다.”

아틸라는 자신의 스킬 중 하나인 ‘유목민의 승마술’을 떠올렸다.

“동방에 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지력이 발동했다. 새로운 미래가 보였지. 그리고 그 미래 속에서 나와 아자젤이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엘과 아자젤은 동방에서 완전한 인간이 되어 보기로 했다.

두 사도는 신의 이름도 악마의 이름도 아닌, 인간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방 민족과 완전히 동화되어 살던 나와 아자젤은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엘과 아자젤은 어느새 완벽한 동방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검술, 궁술, 승마술 등, 누구도 엘과 아자젤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두 사도는 동방의 위대한 장수(將帥)가 됐다.

무신(武神) 무휼.

신궁(神弓) 여진.

동방인이 된 엘과 아자젤의 이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이명인 무신과 신궁엔 ‘신(神)’이라는 글자가 포함돼 있었다.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무휼…… 이라고……?”

그랬다.

엘의 동방에서의 이름은 무휼.

그렇다는 것은 즉.

“그래. 내가 바로 최초로 동방을 통일한 군주, 대무신왕 무휼(無恤)이다.”

아틸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구의 김도현이었던 시절, 수습이 어려워 흐지부지된 설정이었던 동방 민족과 대무신왕.

이제는 그저 검의 이름이 되어 버린 무휼.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반쪽짜리 전설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무휼을 지키던 신수 그리즐리는.

“신수 그리즐리는 원래 아자젤의 환수였다.”

“뭐라고?”

“동방에서 아자젤은 ‘여진(如津)’이란 이름으로 내 곁에 있었다. 귀신 같은 활 솜씨 때문에 신궁이란 이명으로 불렸던 아자젤은, 당연하게도 내가 동방을 통일하는 것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존재였지. 그런 아자젤이 어느 날 적진의 굴속에서 새끼곰을 만났다. 새끼곰은 아자젤을 따랐다. 아자젤은 그런 새끼곰을 돌보며 조금씩 신의 권능을 부여했지. 그것이 그리즐리가 신의 짐승, 즉 ‘신수(神獸)’라는 칭호를 얻게 된 이유다.”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제서야 아틸라는 펀치가 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펀치의 선조는 아자젤의 환수였다.

당연히 녀석은 아자젤뿐만 아니라 엘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동방의 군주가 된 나는 아자젤과 함께 서방과 동방을 오갔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 그러는 동안 일부 동방인이 서방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서방과 동방을 오가는 엘의 행보는 점차 난관에 봉착했다.

서방과 동방 사이에 발생한 숲에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드리웠던 것이다.

엘은 예견했다.

저 숲을 방치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온 대륙을 숲의 어둠으로 뒤덮을 것이라는걸.

“그래서 난 사도들과 함께 수해(樹海)의 확장을 막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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