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63화 (363/425)

363. 밝혀지는 비밀 (3)

“뭐라고?”

아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토리와 도롱뇽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엘은, 자신이 혼돈(주신)의 분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또한 아틸라는 직감했다.

‘혼돈은 분신을 분할하며, 자신의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어느 푸른 행성을 떠올렸다. 그곳에 살고 있던 강하고 아름답던 생명체를 떠올렸다.’

엘의 말속에 등장한 푸른 행성.

그곳에 살던 강하고 아름답던 생명체.

그것은 분명 지구와, 인간일 것이라고.

“네 짐작이 맞다. 도현아.”

“당신은 내 심중을 읽을 수 있는 건가.”

엘은 답하지 않았지만 아틸라는 확신했다.

아틸라는 이미 엘에게 몇 차례 심안을 시전했고, 실패했다.

게다가 그 이유도 아틸라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대상자의 권능이 시전자의 권능보다 강력합니다. ]

[ 심안은 시전자와 동류의, 그러면서 월등한 힘을 지닌 대상에겐 발현할 수 없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엘은 자신과 동류의 힘을 지녔다.

그것도 더욱 강력한.

분명 자신의 권능, 심안은 엘에게서 전해 받았을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지.’

아틸라는 지구에서 아자젤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아아.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당신의 머릿속은 실시간으로 읽어 내고 있으니까.’

그때의 아자젤도 심안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역시 엘에게서 전해 받았을 터.

아틸라는 언젠가 아자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건 그렇고 김도현 씨. 마침내 광폭의 권능을 습득했더군요.’

‘하지만 그것이 과연 걸맞은 표현일까요? 정말로 당신은 새로운 권능을 ‘습득’한 걸까요?’

그때도 의심했지만, 이제 확신했다.

자신이 지닌 각종 권능과 스킬은 경험치를 얻으며 습득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다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틸라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카르타고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자신은 광폭의 권능을 발현했고, 검기를 시전했다.

그때 아틸라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상태창이 없었다.

게다가 스킬을 시전한다는 느낌이 아닌, 저절로 몸에서 발현한 느낌이었다.

흡사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넌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엘의 목소리가 아틸라의 생각을 깨웠다.

그의 말대로 아틸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틸라는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혼돈은 자신의 분신인 엘에게 인간의 형태를 부여했다.

이후 혼돈이 창조한 여러 신들의 외형이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당신을 제외한 다른 신들은 혼돈의 분신이 아닌 건가. 오직 당신만이, 혼돈에게서 분할된 존재인가.”

아틸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대는 이쪽의 생각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쪽은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없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만이 혼돈의 분신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곧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엘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혼돈의 예상대로 주신 전쟁은 울타리 안을 극심한 불안정 상태로 변모시켰다. 그때의 난 내가 지닌 특별한 힘을 이용해 모습을 바꾼 뒤였지. 그렇게 주신 전쟁의 원흉인 ‘대악마 아몬’이 탄생했다. 내게 힘을 전해 받은 아자젤은 훗날 ‘고위악마 벨리알’이라 불리는 존재가 됐다.”

아틸라의 눈앞에 신들의 전쟁이 펼쳐졌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한 광경.

아몬과 벨리알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신들과 주신의 진영을 공격했다.

“주신의 진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은 아레스였다. 군신(軍神) 아레스라는 이명이 태어난 계기였지. 게다가 아레스에겐 빛의 신 포이베가 늘 함께했다. 포이베의 치유를 받으며 쉼 없이 검을 휘두르는 아레스의 모습은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아틸라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아레스의 신력을 지닌 샤를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포이베의 신력을 지닌 키릴과 샤를이 서로에게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낀 이유 또한 그것이니까.

“하지만 도현아.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아레스와 포이베도 주신 전쟁의 배후였다.”

“……뭐라고?”

“아레스와 포이베는 사도였다. 아자젤과 오르피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나의 예정대로 전쟁을 호각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러는 동안 혼돈의 울타리는 더욱 극심한 불안정 상태로 변해갔다.”

엘의 이야기가 시각화했다.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혼돈의 울타리가 붉게 점멸했다.

“그때쯤 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세계가 완전함을 획득하려면 ‘균형(均衡)’의 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붉게 점멸하던 울타리에서 변화가 일었다.

점멸 속도가 늦춰졌다.

색도 점차 초록으로 바뀌었다.

“나의 생각은 맞았다.”

완연한 초록으로 변한 울타리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신으로만 가득한 울타리는 불완전함의 공간이었다. ‘신’과 ‘악마’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자 불완전함은 더욱 극대화됐다. 이후 불완전함은 완전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영원하지 않았다. 혼돈이 말했던 것처럼 ‘한시적’이었지.”

아무리 세상이 균형을 찾아가도, 그것을 깨뜨리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혼돈, 그 자체였다.

“아울러 주신 전쟁은 뜻하지 않은 이변을 초래했다. 그것은 주신 전쟁을 계획한 혼돈도, 그의 의지를 따른 나 역시도 예지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예지(豫知).

아틸라는 엘이 뛰어난 예지 능력을 지녔을 거라 가정한 일이 있었다.

또한 아틸라는 오르피나에게 어떻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느냐 물은 적이 있다.

그에 대한 오르피나의 대답은.

- 그대 역시 예지의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틸라가 지닌 예지의 힘이란, 패영전 소설을 말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아틸라에게 그 힘을 전한 존재라면.

“주신 전쟁의 파장은 울타리에 균열을 만들었다. 너도 알다시피 균열은 이곳, 중간계로 이어지는 통로였지. 그렇게 나와 혼돈은 중간계를 찾았다. 그것은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다.”

혼돈과 엘이 바라본 중간계는 극도로 안정화된 세계였다.

혼돈은 기뻐했다.

완전함의 표본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간계의 완전함은 균열을 통해 등장한 우리 때문에 깨졌다. 균열은 신(악마)과 천사의 시체를 무차별로 빨아들였고, 그들의 시체는 중간계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시체들의 숨결은 신세계의 대기와 구름이 되었다.

뼈와 살은 산과 대지가 되었다.

눈물과 피는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

“그렇게 중간계는 불완전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과 천사의 시체 속에서 훗날 고대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태어났다.”

혼돈은 고대인이 놀라운 잠재력을 지녔다는 걸 알아봤다.

또한 고대인이 신과 악마 이상으로 ‘안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혼돈은 세 번째 계획을 세웠다.

고대인을 주축으로, 중간계를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시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번 계획은 혼돈에게 매우 중요했다.”

애초부터 혼돈이 여러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자신이 끝없이 팽창한다는 것과.

그렇게 팽창한 자신이 분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분열할수록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돈은 완전해지고 싶었다.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는 분열을 막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마리를 찾았다. 그의 두 번째 계획인 주신 전쟁의 여파로 발견한 신세계를 통해.”

중간계는 혼돈으로서도 처음 보는 세계였다.

즉, 다른 차원의 세상이었다.

“혼돈은 깨달았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인 ‘중간계’와, 이쪽 세계인 ‘울타리’를 합치면 불완전함을 영구적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으리라고.”

“그 두 세계가 합쳐지는 것이 어떻게 불완전함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거지?”

엘이 하는 말을 아틸라는 쉬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 난 세계를 완전하게 만들려면 균형의 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혼돈 역시 깨달았던 거다.”

혼돈은 생각했다.

이 세계가 완전하려면 대치되는 세계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처럼.

“혼돈은 중간계에서 완전함을 봤다. 그것은 다시 말해 ‘조화(造化)’였다. 중간계는 조화로운 세계였다. 혼돈의 울타리가 그곳을 침범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혼돈은 중간계를 ‘조화의 세계’로 되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중간계는 이미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혼돈은 고대인을 중심으로 중간계를 재설정하고자 했다.

“중간계가 새로운 조화의 세계, 즉 ‘완전함의 세계’로 탈바꿈되는 동안 혼돈은 자신의 세계를 완벽한 ‘불완전함의 세계’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처럼, 창조와 파괴처럼, 빛과 어둠처럼 대치되는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친다면, 혼돈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영구적 완전함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중간계를 ‘완전함의 세계’로 만드는 임무는 엘이 맡았다.

그렇게 본래 하나였던 둘은 각기 다른 두 세계를 책임지기로 했고, 종래엔 하나로 합치자는 약속을 했다.

“혼돈은 그 계획의 시작으로, 신들에 대한 구속을 강화했다.”

그러나 악마에 대한 구속은 쉽지 않았다.

애당초 주신 전쟁의 목적은 신과 악마를 구분하기 위함이었고, 표면적으로나마 혼돈의 영향에서 벗어난 악마들은 주신의 구속을 거부했다.

“하지만 혼돈의 입장에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구속에서 벗어난 악마의 힘이 점점 강해지며 신과 악마의 힘에 불균형이 초래됐으니까. 그것이야말로 혼돈의 울타리가 새로운 불완전함의 세계로 진입하는 시작점이었고, 또한 주신 전쟁의 종착지로 예견했던 결과였다.”

엘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네 명의 사도를 대동했다.

아자젤, 오르피나, 아레스, 포이베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많은 신과 악마들이 중간계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신은 신계에 갇힌 탓에, 악마는 혼돈(주신)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에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모든 신과 악마는 우리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중간계를 조화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다섯 사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간계의 이전 주인이었던 요툰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닌, 고대인이 주축이 돼야 했다.

그러려면 고대인들은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사도들은 한동안 고대인의 틈에 섞여 살아가기로 했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고대인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그들의 힘 또한 증폭시키기로 한 것이다.”

다섯 사도의 도움으로 고대 문명은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다시금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레스는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일삼던 신이었지. 포이베와 크게 싸운 녀석이 홧김에 요툰의 왕 이미르를 찾아가, 믿을 수 없는 혼종(混種)을 만들어 낸 거다.”

그 혼종의 이름은 드라칸(드라콘).

훗날 드라칸 코르키코스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라 불리는 두 무법자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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