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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62화 (362/425)

362. 밝혀지는 비밀 (2)

휘잉.

하늘 위로 비행하는 무언가가 아틸라의 눈에 띄었다.

검은 새였다.

아틸라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저 새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아틸라는 루미니우스의 몸에 무휼을 꽂았다.

지독한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어서 빨리 성력을 모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루미니우스의 목을 완전히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키랴랴랴랴랴랴!

루미니우스가 고개를 흔들며 브레스를 쐈다.

브레스가 지나는 자리마다 풍경이 지워졌다.

퍼걱! 루미니우스의 날개가 아틸라의 등을 가격했다.

아틸라는 거대한 바위에라도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휼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이었다.

푸드드득.

낙하한 검은 새가 아틸라 앞에 안착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재로 변해 흩어졌다.

흩날리는 잿개비가 사람의 형상을 일궜다.

점점 선명해졌다.

이윽고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갖춘 그것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김도현 씨.”

아자젤, 혹은 벨리알.

그가 아틸라 앞에 나타났다.

아틸라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무휼을 그었다.

그러나 아자젤의 몸에서 발현한 마기가 검은 촉수의 형태를 갖추며 그것을 막았다.

“……네놈.”

“플루토가 죽은 건 알고 있어요. 생각지 못한 변수였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아자젤. 아니 벨리알이라 불러야 하나?”

“편하신 대로 부르시길. 그러나 ‘그분’께서는 날 아자젤이란 이름으로 부르길 즐기셨죠.”

“그분이란 역시 엘을 말하는 건가.”

“당신은 이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겠죠. 얼마 전엔 다섯 사도 중 하나인 오르피나까지 만났을 테니 말이에요.”

아틸라의 몸이 지면에 내려섰다.

아틸라의 공격을 막은 채로, 아자젤도 지면을 밟았다.

어느새 아자젤의 뒤엔 루미니우스가 긴 날개를 펴고 앉아 있었다.

파괴된 두 안구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자젤. 네가 루미니우스의 용기사인 건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루미니우스는 다른 드래곤과 달리 ‘우리’의 의지를 일부 이어받은 존재니까요.”

“우리라면, 다섯 사도를 말하는 건가.”

아자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도는 누구지? 너희들의 목적은 뭐냐. 왜 날 지구에서 이곳으로 끌고 온 거지?”

“한꺼번에 많은 질문이네요 김도현 씨. 물론 궁금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겠죠.”

“묻는 말에 대답해라.”

아자젤이 미소를 머금었다.

“답하지 않아도 당신은 곧 알게 될 거예요. 이 세계를 둘러싼 모든 비밀을.”

아자젤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풍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망가진 픽셀처럼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쿠쿠쿠쿠쿠쿵……!

불안감을 느낀 아틸라는 아자젤을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기의 촉수가 그의 팔과 다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아틸라!”

동료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들은 여전히 아틸라와 단절된 벽 안에 있었다.

지면이 진동했다.

바닥이 갈라졌다.

갈라짐은 순식간에 잎맥처럼 퍼져나갔고, 아틸라를 포함한 일행의 몸을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끝없는 어둠 속을 추락하며 아틸라는 멀어지는 아자젤을 노려봤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지구에서 아자젤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이어 눈부신 빛이 온 시야를 잠식했다.

* * *

빛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건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였다.

아틸라는 그곳 정중앙에 서있었다.

그는 이곳이 왕의 알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틸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료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넓은 알현실 안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틸라는 옥좌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에게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미동조차 없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그자를 발견하는 것이 늦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틸라가 이곳이 왕의 알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유가 바로 옥좌의 존재였으니까.

즉,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고도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다.

아틸라가 사내를 노려봤다.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자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틸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틸라는 그에게 걸어갔다.

스무 걸음 정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넌 누구지.”

사내가 답했다.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예상한 대로였다.

사내의 이름은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북부 제국의 황제였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지? 나의 동료들은 어디에 있나.”

사내는 대답 대신 머리 위를 가리켰다.

아틸라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봤다.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보였다.

샹들리에 너머엔 다른 샹들리에가 있었고, 그 너머엔 또 다른 샹들리에가 있었고, 그렇게 샹들리에는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멀어졌다.

아주 멀리 있는 불빛은 마치 별처럼 보였다.

아니, 그건 정말로 별이었다.

까마득한 밤하늘 사이에서 빛나는 각양각색의 별.

어느새 샹들리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틸라는 고개를 내렸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스륵.

바토리가 샤다이 황제의 앞에 떠있었다.

그녀는 잠든 얼굴이었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옆으로 안아든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풍성하고 긴 흑발이 늘어져 흔들거렸다.

그녀의 두 팔은 무언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펀치와 도롱뇽이었다.

아틸라는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샤다이 황제가 손을 들어 막았다.

별것 아닌 동작이었지만 아틸라는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스르륵.

바토리가 아틸라를 향해 두둥실 날아왔다.

샤다이 황제의 손짓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틸라는 다가온 바토리를 안아들었다.

그녀의 품에서 잠든 펀치와 도롱뇽은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동료들은 어디에 있나.”

아틸라의 물음과 함께 바토리의 속눈썹이 미동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틸……라.”

바토리가 아틸라를 끌어안았다.

아틸라가 바토리를 걱정했듯, 바토리도 아틸라를 걱정했다.

그러던 중 아틸라를 다시 만났다.

졸지에 아틸라와 바토리 사이에 낀 펀치와 도롱뇽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틸라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바토리가 자신을 안았기 때문도, 펀치와 도롱뇽이 깨어나 발버둥을 치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틸라는 옥좌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고 놀랐다.

그가 이 세계에 진입한 이후, 이렇게 놀랐던 적은 없었다.

옥좌에 앉은 자는 샤다이 황제가 아니었다.

아니, 복장은 그대로였지만 가면을 벗은 것처럼 얼굴이 바뀌었다.

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도현아.”

아틸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바토리가 고개 돌려 옥좌를 봤다.

그러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아틸라의 품에서 내려온 바토리가 바닥을 딛고 섰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엘……?”

“오랜만이구나. 바토리.”

“정말…… 엘이야?”

바토리의 어투는 평소와 달랐다.

그녀의 목소리는 먼 옛날 엘과 이야기하던 어린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샤다이 황제, 아니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다시 아틸라를 바라봤다.

“도현아.”

“……아버지.”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

아틸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엘은 아틸라의 심중을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다.

엘의 눈이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은 깨알 같은 비늘을 바짝 세우며 경계의 눈을 떴다.

도롱뇽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자는 역시 먼 옛날 자신과 코르키코스 앞에 나타났던 대악마, 아몬이다.

“너 또한 오랜만이로군. 아가레스와 이미르의 핏줄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뭐, 뭐? 아가레스와 이미르?”

도롱뇽의 말을 무시하며 엘이 펀치를 봤다.

펀치는 고개를 기울이며 엘을 마주 봤다.

도롱뇽과 달리 펀치는 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우호적인 것처럼 보였다.

아틸라가 말했다.

“왜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지 않니.”

다정한 목소리로 엘이 말했다.

아틸라가, 아니 김도현이 어릴 적 들었던 그 목소리.

아틸라가 부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설명해.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라고.”

“그래. 그러기 위해 널 이곳으로 불렀으니까.”

엘이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틸라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아틸라의 열 걸음 정도 앞에 멈춰 선 엘이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드넓은 우주에 있었다.

평범한 우주는 아니었다.

우주 가운데 소용돌이가 보였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회전하는 어둠의 힘.

“혼돈(混沌)이다.”

“……혼돈?”

“혼돈은 무질서한 공간, 시간, 육신, 그 밖의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아주 오래전, 혼돈은 자신이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팽창한 자신이 분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 또한 분열할수록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도.”

엘의 이야기에 따라 혼돈은 팽창하고, 분열하고, 다시 팽창을 반복했다.

아틸라는 멍하니 혼돈의 변화를 바라봤다.

바토리, 도롱뇽, 펀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혼돈은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저절로 분열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분열시킨 뒤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칠 생각을 말이야.”

혼돈은 어느새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 첫 단계로, 혼돈은 자신과 유사한 힘을 지닌 분신(分身)을 분할했다.”

혼돈이 크고 작은 두 개의 조각으로 나뉘었다.

“혼돈은 분신을 분할하며, 자신의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어느 푸른 행성을 떠올렸다. 그곳에 살고 있던 강하고 아름답던 생명체를 떠올렸다.”

그중 작은 조각이 거칠게 회전하며 형태를 일궜다.

인간의 형상이었다.

“혼돈은 자신의 분신 ‘엘로힘’과 닮은 여러 생명을 추가로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지. 신들의 임무는 혼돈이 분열하며 파생된 파편들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그 파편에서 비롯된 힘이 오늘날 너희가 ‘신력’이라 부르는 힘이다.”

이후 혼돈은 분열된 세계를 하나의 울타리 안에 끌어 담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며 울타리 안 역시 불완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혼돈은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즈음 신들은 혼돈을 ‘주신’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자신을 창조한 존재였으니 그들에겐 당연한 반응이었지.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며, 신들 중엔 과거를 잊고 혼돈에게 반기를 들려는 자들도 존재했다. 혼돈은 그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혼돈은 엘로힘에게 명령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들려는 신들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라고.

그렇게 되면 울타리 안은 극심한 불완전함으로 가득 찰 것이며, 이윽고 전쟁이 끝나는 날 한시적인 완전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엘로힘은 혼돈의 분신이었지만 애초부터 분열된 작은 조각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그래서 엘로힘은 혼돈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계획 실행을 위해 엘로힘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르는 신을 만났다.

그 신은 엘로힘의 계획에 동조했다.

“그렇게 나는 아자젤과 함께 ‘주신 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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