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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60화 (360/425)

360. 임페리움 (4)

카스피는 놀랐다.

암부는 평범한 자들이 아니다.

카스피조차 저 정도 숫자의 암부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루키우스는 그것을 해냈다.

심지어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누군가 대신 싸워준 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존재라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루키우스 선생님은 단순한 치유사가 아닌 건가? 키릴처럼 치유의 힘과 무력을 함께 지니고 있는 거야?’

카스피는 암부가 왜 이곳에 있는지 보다 그것이 더욱 의아했다.

벨라가 입을 열었다.

“역시 평범한 놈은 아니었군.”

“왜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거지?”

“무언갈 찾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것이 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

카스피는 벨라를 돌아봤다.

벨라가 찾고 있는 것이란 당연히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이다.

그런데 루키우스가 그들과 관련이 있다고?

“그래서 이자들을 보내 날 감시하도록 한 건가.”

“염탐이라고 해 두지.”

“난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군.”

벨라는 쓰러진 암부를 봤다.

그들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은 어디에 있지?”

“무기를 만들고 있다. 언제나처럼.”

“요툰을 상대하기 위함인가.”

“그도 그렇지만, 더 큰 목적은 남부의 언데드 군단이지.”

루키우스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목뼈를 풀었다.

“아쉽게 됐군. 내 충고를 따랐다면 요툰의 저주를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을 텐데.”

카스피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벨라를 완치시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루, 루키우스 선생님…….”

“그만둬. 꼬마.”

벨라가 팔을 뻗어 카스피를 막았다.

루키우스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 안에서 가공할 기감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카스피는 알았다.

“너희들이 날 찾아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벨라의 눈썹이 꿈틀댔다.

“뭐라고?”

“그래서 황성을 벗어나 이곳에 머물렀던 거다. 물론 널 치유할 생각은 없었다. 네가 완치되면 예정된 미래가 바뀔 수 있으니까.”

예정된 미래.

루키우스는 오르피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넌 이 세계의 인과율을 비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다. 신들은 네가 이 세계에서 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널 치유했던 건 단지 나의 사소한 변덕이었을 뿐.”

루키우스는 흘끗 카스피를 봤다.

그러고는 벨라에게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아쉽지만 변덕은 끝났다.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

벨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폭풍처럼 루키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파캉!

벨라의 귀수와 루키우스의 검이 맞부딪쳤다.

카스피는 루키우스가 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 검은 유령처럼 허공에서 나타났다.

상황은 카스피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스피의 목적은 벨라의 완치다.

하지만 그 목적은 이루기 힘든 것으로 변했고, 그래서 카스피는 벨라를 돕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 꼬마!”

벨라가 카스피의 전투 참여를 막았다.

벨라는 단 한 번 검을 부딪친 것으로 상대가 괴물 같은 강자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카스피가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카스피가 루키우스의 등 뒤를 파고들었다.

이 와중에도 카스피는 가급적 루키우스를 부상 없이 제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벨라를 치유해야 해. 오늘 한 번만 더 치유하면 되는데……!’

그 안일한 마음은 카스피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었고, 벨라에겐 오히려 방해가 됐다.

벨라는 복부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요툰의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전력을 다한 전투의 영향으로, 벨라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과연 대단하군.”

루키우스가 감탄했다.

벨라의 무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녀에게 요툰의 저주가 없었다면, 벌써 자신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루키우스에겐 여유가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역시 이 상태로는 힘들겠군.”

루키우스의 몸이 밝게 빛났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벨라와 카스피를 밀어냈다.

우우우웅…….

벽이 밀리며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천장도 더욱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이, 이게 무슨……!’

카스피는 부릅뜬 눈으로 그 광경을 봤다.

어느새 실내는 조금 전보다 수십 배는 넓은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루키우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태양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눈부신 빛이 형상을 일궜다.

카스피에겐 익숙한 형태였다.

“이건…… 말도 안 돼…….”

금빛의 촘촘한 비늘이 찬란하게 빛났다.

길게 뻗친 두 날개가 위압적으로 펼쳐졌다.

황금을 박아 넣은 것 같은 두 눈동자가 두 사람을 내려 봤다.

바늘처럼 가늘게 좁혀진, 파충류의 동공.

벨라의 입이 길게 찢겼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재미가 있지.”

벨라의 몸이 거친 귀기로 타올랐다.

왼손의 귀수도 더욱 길게 뻗쳤다.

벨라는 골드 드래곤을 마주하면서도 전의를 잃지 않았다.

그랬다.

루키우스의 정체는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였다.

“뭐, 뭐야……. 드래곤이 어떻게 인간의 형상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카스피가 말했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드래곤은 처음이었다.

벨라가 전투 자세를 잡았다.

신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라는 드래곤.

그중에서도 골드 드래곤은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평가받는다.

벨라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도 드래곤을 상대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벨라는 가능성을 봤다.

루미니우스의 위압감은 상당했지만, 얼마 전 상대했던 요르문간드보다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벨라는 웃었다.

“어쭙잖게 인간 흉내나 내고 말이야. 처음엔 제법 미남자라 생각했더니 속은 음흉한 도마뱀 새끼였군.”

* * *

밤은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 켜진 횃불이 밤거리를 환하게 물들였다.

상인들이 호객을 하고, 사람들은 신나는 얼굴로 물건들을 둘러봤다.

아틸라, 바토리, 오토, 슈시아도 야시장에 있었다.

“아틸라 님. 살쾡이 암살자가 너무 늦는 거 아니요?”

“곧 오겠지.”

“그렇기야 하겠다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소.”

오토는 아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등줄기에 괜히 소름이 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 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아틸라.”

슈시아가 오토에게 동조했다.

아틸라는 찝찝함을 느꼈다.

사실 그 역시도 조금 전부터 묘한 불안감을 감지했던 것이다.

“도롱뇽을 꺼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일행 중 마력의 기척을 가장 잘 감지하는 건 도롱뇽이다.

황도에 도착한 이후, 도롱뇽은 줄곧 펀치의 인벤토리 안에 있었다.

도롱뇽이 황도에 도착한 것을 루미니우스가 알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토리는 도롱뇽을 꺼내보자고 말하고 있었다.

도롱뇽을 노출시킴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바토리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는 뜻이다.

아틸라는 펀치의 입안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케헥! 꼭 좋은 꿈을 꾸고 있을 때 꺼내더라!”

언제나와 비슷한 말을 내뱉으며 나온 도롱뇽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흠칫 얼굴을 굳혔다.

“루미니우스!”

잠시 후 일행은 도롱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틸라는 바토리를 안은 채로 달렸다.

“더 빨리 달려 야만 미물! 살쾡이 미물의 기운도 함께 느껴지으아아아아……!”

[ 해방(解放) ]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아틸라는 해방을 발현했다.

일행이 도롱뇽의 등에 올라탔다.

“빨리 날아라. 도롱뇽 새끼.”

도롱뇽은 몸을 낮춰 비행했다.

주위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 모습은 비행하는 것이 아닌, 지면을 딛고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머지않아 일행의 눈에 건물 한 채가 보였다.

“평범한 집은 아니로구나.”

바토리는 건물 주위에서 강한 마력을 느꼈다.

그러고는 직감했다.

저 건물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혹시 모르니 보호막을 발현하겠다.”

바토리가 일행의 몸에 보호막을 둘렀다.

도롱뇽이 건물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 * *

카스피는 미칠 것 같았다.

벨라가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와 싸우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뭐야! 대체 이게 뭐냐고오오!”

카스피와 벨라 사이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벽이 펼쳐져 있었다.

카스피는 그 벽을 부수려 노력했다.

하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수를 발현해 공격해도 마찬가지였다.

카스피에겐 절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벨라에게 그것은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벨라는 카스피가 전투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카스피는 강하다.

그러나 루미니우스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괜한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곤란하다.

콰아앙!

루미니우스의 앞발 공격을 벨라가 피했다.

드래곤은 몸놀림이 그리 빠른 존재가 아니다.

벨라 정도의 민첩성을 지닌 이라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다.

게다가 벨라에겐 ‘귀안’의 존재도 있었다.

콰드드드드!

휘둘러진 루미니우스의 날개가 나무들을 부쉈다.

벨라는 묘한 공간에서 전투하고 있었다.

실내와 실외의 숲이 혼잡하게 뒤섞인 공간.

그뿐만이 아니었다.

벨라는 또 다른 공간이 이곳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얄팍한 환술이라도 부리는 건가! 루미니우스!”

질풍처럼 달려든 벨라가 루미니우스의 앞다리를 베었다.

치명상은 아니다.

그러나 루미니우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렇게 강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과거의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강력했던 이유는 그녀가 관조자였기 때문이다.

아틸라와 샤를 아인하르트 또한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셰이카 라딤은 달랐다.

셰이카는 고대의 핏줄을 이은 자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었다.

수많은 대악마와 고위악마의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순수한 인간.

그런데 어떻게.

보잘것 없는 인간이 저렇게까지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 넌 대단하다. 너처럼 강력한 인간은 과거를 넘어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카르타고보다도 내가 한 수 위라는 건가.”

벨라가 히죽 웃었다.

그녀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그 순간 루미니우스의 눈이 번득였고, 빛이 공간을 잠식했다.

“……!”

벨라의 눈이 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 직전까지 루미니우스가 눈앞에 있었건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실상 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루미니우스는 두 눈에서 엄청난 빛을 발산해 벨라의 시력을 일시적으로 빼앗았다.

루미니우스가 앞발을 뻗었다.

벨라는 기척만으로 그 공격을 피했지만, 망가진 건 시력만이 아니었다.

상대를 감지하는 모든 감각이 흐릿해졌다.

그래서 이어지는 루미니우스의 공격을 벨라는 피할 수 없었다.

카스피가 소리쳤다.

“벨라!”

그 순간 일그러진 공간을 부수며 시커먼 것이 나타났다.

그것이 앞발을 뻗어 루미니우스의 얼굴을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루미니우스가 눈동자를 굴리며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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