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58화 (358/425)

358. 임페리움 (2)

플루토의 말에 따르면, 황도 임페리움엔 골드 드래곤이 있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빛 속성 마력을 지닌 드래곤이다.

어둠 속성의 도롱뇽과는 상극인 관계.

당연히 도롱뇽의 입장에서는 다른 컬러의 드래곤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자젤이 황도에 있다.’

뿐만 아니라 벨라의 말에 따르자면, 엘 역시도 황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자젤은 이 세계로 진입한 아틸라를 적대적으로 대한 적이 없다.

세베스티아와의 전투로 죽어 가던 아틸라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아자젤이, 그리고 엘이 우호적 대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엘과 아자젤에 더해 골드 드래곤까지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황도엔 제국 최강의 무력집단인 황궁 기사단과 황실 마법사들이 있다.

수준 높은 용기사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황도의 영공을 날아다니는 용족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제국 안의 제국, 황도.

샤다이 황제는 황도에 주둔 중인 병력만으로도 제국 전체 병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머물 곳을 찾아보자꾸나. 아니, 그전에 황도 구경을 느긋이 하고 싶구나.”

바토리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정취를 만끽하듯, 바토리는 아기새처럼 조잘대며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면서 바토리는 은근슬쩍 아틸라에게 팔짱을 꼈다.

아틸라의 몸이 흠칫 굳어졌다.

그러나 바토리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해 질 녘까지 거리를 둘러보던 일행은 적당한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 * *

이튿날부터 일행은 황도를 탐색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모든 일행이 참여했지만, 그중에서도 이런 은밀한 일의 적임자는 역시 카스피와 벨라였다.

두 여인은 골목을 달리고 있었다.

“뭐야 꼬마. 오늘은 왜 함께 움직이자는 거지?”

“그럴 일이 있어.”

“그럴 일이 뭔데.”

“아,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잠자코 따라와.”

“싫은데?”

“왜!”

“나도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조금 이따 가면 되잖아.”

“그럴 수 없으니까 그렇지.”

“후……. 알았어 그럼. 네 볼일 먼저 보고 움직이자.”

벨라가 물끄러미 카스피를 봤다.

“뭐야. 따라오려고?”

“안 돼?”

벨라는 잠시 무언갈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

그러고는 히죽 미소 지었다.

“뭐, 안 될 거야 없지.”

벨라의 발이 빨라졌다.

은밀함도 더욱 짙어졌다.

벨라의 뒤를 쫓으며 카스피는 생각했다.

‘벨라는 아직 완치되지 않았어.’

또한 카스피는 감각했다.

자신의 실력이 이전보다 향상됐다는 것을.

‘벨라 덕분이야.’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리며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스피의 생각대로, 벨라에게 훈련받은 덕이 더욱 컸다.

카스피는 벨라에게 호감을 느꼈다.

요르문간드와의 전투 이후 그 감정은 더욱 커졌다.

카스피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른 일행들도 벨라를 동료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틸라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했다.

아틸라는 더 이상 벨라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물론 바토리만은 여전히 벨라와 투닥거리기 일쑤였지만.

‘하지만 벨라는 일족의 원수야. 부모의 원수야.’

그럼에도 카스피는 딱히 복수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대로 기억조차 못 하는 일에 어떻게 복수심이 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뚫어져라 보지 마. 미안하지만 난 여자한텐 관심이 없으니까.”

“뭐, 뭐래! 나도 여자 안 좋아하거든!”

“그럼 다행이고.”

벨라가 뒤를 돌아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상하게도 카스피는 저 웃음이 좋았다.

“꼬마.”

“왜.”

“넌 오토마이어에게 마음이 있는 거지?”

“뭐, 뭐뭐, 뭐? 아, 아니거든!”

“오토마이어는 가면을 쓰고 있어. 그는 눈에 보이는 모습처럼 바보 같은 사내가 아니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왕의 기개를 감추고 있지.”

“무슨 소리야. 영주 나리는 바보가 맞아.”

“그건 네가 바보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카스피는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벨라의 모습이 사라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카스피는 지붕 위를 달리는 벨라를 발견했다.

“가, 같이 가!”

카스피가 훌쩍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잠시 후 벨라는 다시 지붕 아래로 사라졌고, 카스피는 죽어라 벨라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골목이었다.

황도에 이런 음침한 곳이 있으리라고 카스피는 예상치 못했다.

‘뭐지. 여긴.’

카스피는 저만치 멈춰 선 벨라의 뒷모습을 봤다.

그녀는 직전까지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내려앉아 벨라의 앞에 부복했다.

카스피는 그들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암부!’

오직 단주의 명령만을 받아 움직이는 단주 직속의 살수부대.

카스피는 암부에 대한 것을 사바흐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싸씬의 암부는 ‘일곱 마스터’만큼 강한 실력자로 구성된 집단은 아니다.

물론 일곱 마스터의 실력에도 큰 격차가 있고, 암부의 몇몇 인물은 마스터와 동격,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암부는 빼어난 전투 능력보다는 잠입, 첩보와 같은 은밀한 활동에 특화된 집단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들은 기척을 숨기는 데 상당한 고수들이었다.

카스피조차 그들이 근처에 나타날 때까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 ……, …….’

‘……, …….’

‘……, …… ……, …….’

벨라와 암부가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스피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른 세상의 언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암부는 유령처럼 모습을 감췄다.

벨라가 카스피를 향해 뒤를 돌았다.

“지루하지 않았어? 꼬마.”

“무슨 대화를 한 거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

“암부어(暗部語)를 사용했으니까.”

“왜 나한테까지 비밀로 한 거야?”

그 물음에 벨라는 가만히 카스피를 봤다.

벨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잊었어? 넌 하싸씬의 파문 살수야.”

“나도 알아. 하지만 넌 하싸씬의 단주가 아닌 비운의 미녀 용병 벨라잖아. 그리고 내…… 동료잖아.”

카스피는 동료라는 말을 꺼내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벨라의 눈이 조금 동그래졌다.

그녀의 입가가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느새 벨라는 카스피의 목을 장난치듯 휘어 감고 있었다.

“하하하! 네 말이 맞아 꼬마! 역시 난 엄청난 미녀 용병이지!”

“그, 그런 말이 아니잖아!”

카스피의 목을 풀어 주며 벨라가 말했다.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이 장소를 바꿨어. 뭐, 그들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었겠지만.”

“정말? 장소가 바뀌었다고?”

“그래서 암부를 소집한 거야. 며칠 내로 암부가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겠지.”

“넌 제국에 암부와 함께 왔던 거야?”

“암부는 내 추가적인 명령이 없는 한, 언제나 내 뒤를 밟는 자들이야.”

카스피가 놀라 말했다.

“뭐, 뭐야. 그럼 그동안 계속 우리 뒤를 밟고 있었다고?”

“늘 그랬던 건 아니야. 아무리 암부라도 우리 일행에게서 완전히 기척을 감추긴 어려우니까. 특히 꼬마, 너에게는 말이야.”

‘우리 일행’이라는 벨라의 말에 카스피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올라갔다.

벨라가 피식 웃었다.

“넌 나의 기척마저도 감지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으니까. 누가 뭐래도 넌 이제 초특급 살수야. 하싸씬의 그 어떤 마스터도 너보다 강하지 않아. 천재라 불리던 네 스승, 사바흐조차 말이야.”

카스피가 웃은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스승을 능가했다는 말은 그녀를 기쁘게 했다.

사바흐는 카스피가 목표로 삼았던 인물이다.

“벨라.”

“응?”

카스피는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하기로 했다.

“날 죽이지 않는 이유가 뭐야?”

벨라의 표정이 변했다.

“벨라는 귀살의 일족을 멸망시켰잖아. 나도 귀살의 일족이야. 조금 전 네가 말한 대로 하싸씬의 파문 살수이기도 하고.”

카스피는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동부 전선에서 벨라가 슈시아, 펀치, 도롱뇽, 바토리를 차례로 쓰러뜨렸던 날.

일행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 아틸라에게 벨라는 이렇게 답했었다.

‘꼬마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카스피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꼬마는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지.’

‘동료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너희가 살아 있어야 꼬마가 더욱 성장할 테니까.’

‘카스피의 성장이 네게 무언가 이득이 된다는 뜻인가?’

“지난번에 벨라가 말했었잖아. 귀살자에겐 숨겨진 힘이 있고, 그 힘이 벨라와 날 더욱 위대한 존재로 만들 거라고. 그래서 날 살려 둔 거라고. 내가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게 벨라에게 득이 되는 거야? 그런 이유로 날 살려둔 거야?”

잠시의 침묵 후 카스피가 말을 이었다.

“……그럼 목적을 이루고 나면, 벨라는 날 죽일 거야?”

벨라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러고는 주저하듯 입을 열었다.

“해답은 아틸라가 알고 있을 거야.”

* * *

카스피와 벨라는 어둑한 골목을 벗어났다.

카스피는 눈동자를 굴려 벨라의 옆얼굴을 봤다.

벨라는 아틸라가 해답을 알고 있을 거라 말했다.

하지만 카스피는 아틸라를 통해서가 아닌, 벨라에게 직접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몇 차례 더 같은 물음을 던졌지만, 벨라는 답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고. 그래서 꼬마,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벨라가 웃었다.

“너도 말 안 했으니까 나도 안 알려 줄 거야.”

“뭐야. 토라진 거야? 그렇게나 성숙한 아가씨의 외형을 하고서, 속은 정말 꼬맹이인 거야?”

“꼬맹이라 하지 마.”

“알았어 꼬마.”

“꼬마라고도 하지 마.”

“그건 싫은데?”

카스피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벨라를 째려봤다.

벨라는 그저 히죽 웃을 뿐이었다.

카스피는 익숙하게 발을 움직였다.

동료들이 황도의 분위기와 강철바위 드워프의 소재를 탐색하는 동안, 카스피는 홀로 다른 것을 찾았었다.

‘동료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벨라도 동료니까.’

카스피는 칼릭스에게서 들은 황실 소속의 치유사, 일명 ‘빛의 손’이라 불리는 인물의 거주지를 알아냈다.

지금 벨라와 가는 곳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황도 안 작은 숲속의 어느 건물 앞에 서있었다.

“뭐야 여긴.”

“황실 소속 치유사가 사는 곳이야.”

“치유사?”

“너, 요르문간드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잖아.”

부끄러운 듯 카스피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모습을 벨라에게 보이는 것이 싫어 카스피는 서둘러 출입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지만 강한 기개가 느껴지는 음성.

카스피는 그가 ‘빛의 손’이라는 걸 확신했다.

“느,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치유를 받고 싶어서 왔어요. 그, 급한 환자에요.”

빛의 손은 황실 소속의 치유사지만 일반인의 치유도 겸한다고 들었다.

그가 이 집에 머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카스피는 지난밤 이곳에서 인기척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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