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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57화 (357/425)

357. 임페리움 (1)

벨라가 쿨럭! 피 섞인 기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비운의 미녀 용병 처음 봐? 이렇게 몸도 가눌 수 없게 된 날 냉큼 덮치기라도 하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었지만 벨라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요르문간드가 죽기 직전에 뱉은 물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아틸라라도 그런 공격을 정면에서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뭐, 그렇다고 저 괴물 같은 여자가 이대로 뒈질 리는 없겠지만.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덮칠 생각이 안 드는군. 달라진 네 모습을 보니 말이야.”

벨라의 표정이 변했다.

벨라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더니 맥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런 벨라를 아틸라는 물끄러미 내려봤다.

주름진 얼굴.

누가 보더라도 노인의 모습이었다.

“넌 누구지?”

아틸라가 물었다.

그가 벨라, 아니 셰이카의 진짜 얼굴을 보고 놀란 건 그녀가 노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셰이카가 노인이라는 것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아틸라가 놀란 진짜 이유는, 셰이카의 얼굴이 누군가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셰이카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날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겠군. 아틸라.”

“난 널 죽이지 않아.”

아틸라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말했다.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아틸라는 셰이카에게 심안을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래. 그렇군. 결국 그 빌어먹을 독심술에 걸려 버린 건가. 하하하하……!”

셰이카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몸을 가누기 어려운지 푸욱 고개를 숙였다.

요롱이를 타고 오토와 카스피가 날아왔다.

카스피의 손엔 기절한 채로 작아진 도롱뇽의 덜미가 쥐여 있었다.

바토리와 슈시아를 태운 칼릭스의 암피테르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벨라!”

카스피가 셰이카에게 달려와 어깨를 잡았다.

셰이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진짜 얼굴은 사라지고, 벨라로 변장한 얼굴이 천연덕스럽게 입가를 올렸다.

“……흔들지 마 꼬마. 아프니까.”

카스피의 두 눈은 그렁그렁하게 젖어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던 카스피는 결국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벌떡 일어나 오토의 목을 후려치며 외쳤다.

“여자 엉덩이나 더듬는 변태 영주 나리!”

* * *

요르문간드가 쓰러지고, 마라쿠스 대호수 주변 도시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축복의 마라쿠스라 불리던 제국령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던 대호수의 위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호수 안에 요르문간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즉, 그와 같은 괴물은 언제고 다시 제국령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마라쿠스의 주민들은 처음으로 위기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도시의 완전한 복구는 적어도 일 년은 걸리겠지.”

“도시가 복구되면 뭐 하나. 축복의 마라쿠스는 이제 끝났어. 최고의 휴양지였던 대호수는 이제 재앙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고.”

여관 식당에서 주민들이 중얼거렸다.

아틸라 일행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호수 주변은 시끄러웠다.

지금 일행이 있는 식당은 대호수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칼릭스가 말했다.

“정말 바로 떠나실 생각이오? 몸이 회복될 때까지 머무르셔도 상관없소.”

칼릭스는 아틸라 일행을 이곳 여관으로 안내한 장본인이었다.

아틸라 일행은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렸다.

물론 제국 법에 따르자면 칼릭스는 주민증도, 통행증도 없는 아틸라 일행의 신변을 구속해야 한다.

그러나 칼릭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게 플루토의 금속패를 내게 맡기면 좋지 않았더냐. 왜 고집부리고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것이냐.”

바토리가 벨라를 타박했다.

벨라는 플루토의 금속패를 잃어버렸다.

아마도 요르문간드의 물폭풍을 맞고 날아가던 중 떨어뜨린 듯했다.

“알았으니 똑같은 소리 좀 그만하라고 바토리. 나라고 그게 없어질 줄 짐작이나 했겠어?”

“그러니 내가 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넘겼어야 했다는 말이니라.”

“내 덕분에 목숨줄 붙잡은 주제에 말은 잘 하는군.”

바토리와 벨라가 투닥투닥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끼어들자 바토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벨라가 쯔쯔, 혀를 찼다.

벨라는 완전히 몸이 치유되진 않았지만 움직이는 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칼릭스가 조심스레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소?”

“그건 왜 묻는 것이더냐.”

바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칼릭스는 주저주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혹 우릴 따라오고 싶은 것이더냐.”

그 말에 일행의 눈이 동시에 칼릭스를 봤다.

갑작스레 모아진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던 칼릭스가 무언갈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소.”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것이 내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오.”

바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머지 일행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칼릭스를 봤다.

“공주께서는 급한 용무가 있으신 것 같소. 그러니 부상자도 돌보지 못한 채 그리 바삐 떠나시려는 거겠지.”

공주라는 말에 바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칼릭스가 오토를 바라봤다.

“오토 경께서는 암피테르의 용기사가 아니시오.”

“그, 그렇긴 하오만…….”

요롱이는 이미 칼릭스에게 들킨 상황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군마를 타고 이동하려 하고 있지. 급한 용무를 지닌 일행답지 않게 말이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오토 경의 암피테르에 여섯 명의 일행이 모두 탑승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오?”

칼릭스는 정곡을 찔렀다.

물론 일행이 암피테르로 이동하지 않는 것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아틸라가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칼릭스가 말했다.

“그대들의 발이 되고 싶소. 나의 암피테르와 오토 경의 암피테르가 함께 한다면, 당신들은 원하는 곳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오.”

솔깃한 제안이었다.

요르문간드까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아틸라는 황도로 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하고 싶었다.

‘대격변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여유 부릴 시간은 없어.’

그러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오토의 암피테르가 제국의 다른 용기사에게 발각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칼릭스는 그런 상황을 대강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용기사의 증표가 필요한 것이라면 걱정할 것 없소.”

칼릭스는 품 안에서 무언갈 꺼냈다.

용기사의 증표였다.

“마라쿠스의 암피테르 용기사는 나 혼자가 아니오. 동료의 것을 몰래 가져왔지. 워낙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친구니 당분간은 그도 크게 의문을 갖지 않을 거요.”

칼릭스는 제법 본격적이었다.

결국 아틸라는 칼릭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심안으로 칼릭스를 관찰한 결과, 그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틸라는 칼릭스가 바토리를 공주라 부르는 이유를 알았다.

그날 밤, 두 마리의 암피테르가 마라쿠스의 영공을 날았다.

* * *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황도 ‘임페리움’은 제국의 모든 기술과 문명이 집약된 도시다.

대규모로 포장된 도로.

눈이 돌아갈 것처럼 높게 솟은 건물.

도시 곳곳에 자리한 풍요로운 자연 경관.

고도로 정제된 수도 시설까지.

제국 안의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그곳에 아틸라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릭스는 잘 돌아갔을까? 혹시 동료 용기사의 증표를 훔친 게 발각돼 옥살이라도 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카스피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스피는 칼릭스와 동갑내기였고, 그래서 이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을 내내 불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보던 오토가 입을 열었다.

“잘 돌아갔을 거요. 애초부터 칼릭스는 요르문간드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요양 중인 걸로 되어 있지 않수.”

“그래도 복귀하는 도중 누군가에게 발각됐을 수도 있잖아.”

일행은 황도까지 오는 동안 두 차례 제국의 용기사를 만났다.

물론 칼릭스가 준비한 용기사의 증표와, 황도로의 긴급 서신을 전달하고 있다는 거짓 임무 덕에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그 정도 위험은 각오하고 따라온 것 같더군.”

슈시아의 말대로, 칼릭스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틸라뿐이었다.

칼릭스는 바토리를 안전하게 황도 근처까지 보필하겠다는 자신만의 임무를 완수했고, 홀가분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번 일은 칼릭스의 머릿속에 평생 뜻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무튼 그 아이 덕분에 상당히 시간을 단축했구나. 이렇게 좋은 선물도 받았고 말이다.”

칼릭스는 일행에게 망토를 하나씩 선물했다.

제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의 망토로, 일행이 자연스레 황도의 인간들과 섞일 수 있도록 도와줄 물건이었다.

과연 망토 덕분인지 일행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물론 황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관문의 엄중한 경비를 통과해야 했지만, 바토리의 잡기술로 해결했다.

“그리운 내음이로구나.”

바토리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아틸라는 알았다.

이곳은 오래전 사르데니야 왕국이 있던 장소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동쪽이겠지. 사르데니야는 동쪽 수해와 가까웠으니까.’

아틸라가 벨라에게 물었다.

“그래서,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일전에 건네준 지도를 보면 알잖아. 황성 근처의 지하에 있다.”

“황성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꼭 그렇진 않아. 바깥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더군.”

그렇게 말하며 벨라는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요르문간드에게 당했던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았다.

방어를 무시한 채 공격에만 집중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요르문간드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벨라.’

그런 벨라를 카스피가 바라봤다.

카스피는 벨라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책임을 느꼈다.

자신이 벨라에게 무리해서 접근하지 않았다면 벨라는 한눈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벨라는 요르문간드의 공격에 직격당했고, 때맞춰 등장한 아틸라가 아니었다면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그래서 카스피는 칼릭스에게 물어 황도에 유명한 치유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 두었다.

‘분명 황실 소속의 치유사라 했었지. ‘빛의 손’이라 불리는.’

“일단 며칠은 상황을 보는 것이 좋겠군. 어찌 됐든 이곳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니까.”

아틸라의 말에 벨라가 긍정했다.

“그러자고. 지난번에 내가 다녀가는 바람에 경계가 더 삼엄해졌을 거야.”

아틸라도 벨라의 상처가 낫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을 대비해 일행 모두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황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지금의 일행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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