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56화 (356/425)

356. 요르문간드 (3)

“어이 꼬마. 위험하잖아.”

벨라가 카스피를 보며 히죽 웃었다.

카스피는 그녀의 얼굴을 올려보며 다시금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왜, 왜 이쪽으로 온 거야! 바토리를 지켜야 한다고!”

“저 노망든 노인네라면 어떻게든 버틸 거야. 오히려 위험한 건 네 쪽이라고 꼬마.”

그렇게 말하며 벨라는 주위를 훑어봤다.

지면은 까마득하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위험하다.

게다가 카스피도 함께 있었다.

카스피는 무너진 건물에 사슬낫을 던져 묶어 충격을 완화하려 했을 테지만, 괴물의 혀에 감기며 방향은 틀어졌다.

이제 두 사람이 추락하는 방향에서 이용 가능한 지형지물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범람한 호숫물뿐.

더구나 호숫물은 기껏해야 허벅지 높이였기에 극적인 충격 흡수도 기대할 수 없었다.

“사슬낫을 넘겨. 꼬마.”

벨라가 카스피의 사슬낫을 움켜쥐었다.

카스피가 당황해 외쳤다.

“뭐, 뭘 하려는 거야! 사슬낫을 사용할 줄 알기는 하는 거야?”

“네 스승에게 사슬낫을 가르친 게 누구라고 생각해?”

벨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도박을 하려면 지금이다.

촤르르륵!

벨라가 사슬낫을 던졌다.

놀랍게도 사슬낫은 요르문간드를 향해 날아갔다.

“뭐 하는 거야! 사슬낫이 저기까지 닿을 것 같아?”

“조용히 지켜보기나 해.”

키킹! 키키키킹……!

사슬낫의 사슬들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벨라가 귀기의 파편을 던져 사슬 곳곳을 잘라 냈기 때문이다.

카스피가 혼비백산하며 외쳤다.

“바, 바보야! 저걸 왜 잘라!”

요르문간드가 사슬낫을 발견했다.

그것을 향해 물을 뿜었다.

벨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벨라의 왼팔에서 귀기가 흘렀다.

귀기는 순식간에 사슬을 타고 흘러 사슬낫 전체를 붉게 만들었다.

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끊어졌던 사슬들이 귀기의 힘으로 묶여, 더욱 기다란 사슬의 형상을 이뤘다.

카스피는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저런……!’

벨라는 사슬낫으로 방출한 귀기를 경화시켜 끊어진 사슬들을 연결했다.

따지고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귀수 또한 귀기를 날카롭게 경화시킨 무기였으니까.

그러나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깬 귀기의 사용법과, 저렇게까지 세밀하게 귀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카스피는 소름이 돋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화르르륵!

벨라가 발현한 귀기는 이전까지와 달랐다.

그건 마치 화속성 마법과 비슷했다.

‘뭐야 대체……! 마, 마법사라도 되는 거야……?’

파아앙!

새빨갛게 달궈진 사슬낫이 요르문간드의 물폭풍을 관통했다.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일었다.

물폭풍을 파훼한 사슬낫이 요르문간드의 송곳니에 감겼다.

“꽉 잡아! 꼬마!”

벨라가 사슬낫을 당겼다.

그녀가 귀기를 조절하자 마치 늘어났던 고무줄이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처럼 사슬의 간격이 좁혀졌다.

카스피는 그 모든 광경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봤다.

두 여인의 몸이 요르문간드를 향해 발사됐다.

“잘 봤어? 꼬마.”

그렇게 말한 벨라가 카스피를 허공에 떨어뜨렸다.

벨라는 보았다.

저만치 시야의 사각지대에서부터 날아오는 또 하나의 암피테르를.

그 위엔 충혈된 눈을 부릅뜬 오토가 타고 있었다.

“사, 살쾡이 암살자!”

오토가 아슬아슬하게 카스피의 몸을 받았다.

본의 아니게 오토의 손이 카스피의 엉덩이를 더듬게 되었지만, 카스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벨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끼아옹! 오토의 옆에 있던 펀치가 반가운 울음소리를 냈다.

“벨라!”

벨라의 웃는 눈이 카스피를 봤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요르문간드를 향해 날았다.

저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괴물을 향해 단독으로 돌격하는 벨라.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카스피는 가슴이 터질 듯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강해……! 벨라는 정말로……!’

벨라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이제 요르문간드는 확연하게 벨라를 노리고 있었다.

덕분에 바토리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자, 이제 저걸 어떻게 막는다.”

벨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제아무리 벨라가 괴물 같은 실력자라 해도 요르문간드를 제압하는 건 무리다.

벨라도 그것을 알았다.

다만 벨라는 아틸라가 요르문간드의 몸 안에서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콰드드드드득!

회전하는 벨라의 몸이 폭풍처럼 귀수를 뻗었다.

어느새 벨라는 한껏 벌린 요르문간드의 입안으로 진입했고, 귀수의 움직임에 따라 요르문간드의 뭉텅뭉텅 잘린 송곳니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카스피가 외쳤다.

“이, 이잇……! 언제까지 엉덩이 더듬고 있을 거야 변태 영주 나리! 빨리 날아! 벨라를 향해 날으라고!”

“미, 미쳤소! 지금 나더러 죽으러 가라는 거요!”

“닥치고 빨리 날기나 하라고!”

오토는 어쩔 수 없이 벨라를 향해 요롱이를 움직였다.

안전한 곳으로 도주하는 칼릭스와는 정반대의 움직임이었다.

“아 엉덩이 좀 그만 만지라니까!”

“히, 히익! 나도 모르게 그만……!”

오토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순식간에 가까워진 요르문간드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히이이익! 오늘이 내 제삿날이로구나!”

벨라는 요르문간드의 입안에서 미친 듯이 귀수를 휘두르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입을 다물려 하는 것 같았지만 벨라의 저돌적인 공세가 그것을 방해했다.

벨라는 방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모든 귀기를 귀수에만 집중했다.

갈가리 찢긴 살점과 핏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 중앙에서 살기 가득한 얼굴로 귀수를 휘두르는 벨라의 모습은 야차와도 같았다.

그러던 중 벨라의 눈이 요롱이를 발견했다.

어울리지 않게 놀란 눈을 뜨며 벨라가 외쳤다.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

퍼어어엉!

그 순간 요르문간드가 내뿜은 물폭풍이 벨라를 강타했다.

벨라는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의 몸이 종이처럼 접히며 허공을 날았다.

“벨라아아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스피는 저 멀리 날아가는 벨라를 봤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오토는 놀란 얼굴로 요롱이를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날아간다 해도 벨라를 구하는 건 무리였다.

그때 커다랗고 시커먼 것이 요롱이를 추월했다.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를 그것은 성체가 된 도롱뇽과 그 위에 올라탄 아틸라였다.

* * *

수 분 전.

아틸라는 요르문간드의 핵을 향해 검기를 방출했다.

그러나 핵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초 레어 송곳 브레스로 자신을 도우라 명령했다.

하지만 도롱뇽은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하지 못했다.

사실 그 브레스는 바토리가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마력에 개입해야만 방출 가능한 것이었다.

‘뭐야 무능룡 새끼. 바토리 없으면 못하는 거냐?’

- 아, 아니야! 할 수 있어! 다, 다만 지금 계속 헤엄쳐 오는 바람에 조금 피곤해서…… 꾸에에에엑!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정신 교육을 시전했다.

서둘러야 한다.

무호흡 스킬은 영원하지 않은 데다가, 최대한 빨리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려야 동료들도 지킬 수 있다.

임무 완료를 위해 주어진 30분의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남은 시간 3:28 ]

사지를 떨며 괴로워하던 도롱뇽이 정신을 집중했다.

‘비, 빌어먹을! 어떻게든 나의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해야 하는데!’

도롱뇽은 바토리가 개입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사실 도롱뇽이 전성기의 몸 상태가 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롱뇽은 완전체가 아니었고, 그래서 과거 바토리와 함께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분명 이런 느낌이었는데. 맞아. 이거야!’

도롱뇽은 자신만만하게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 꾸에에에엑……!

이후 도롱뇽은 몇 차례 더 정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몇 번의 추가 시도 끝에 도롱뇽은 바토리 없이 초 레어 송곳 브레스를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에 맞춰 아틸라도 검기를 발현했다.

그렇게 요르문간드의 핵이 파괴됐다.

- 서, 성공이다!

핵이 파괴됐지만 요르문간드는 그 즉시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요르문간드는 마지막 힘을 짜내 몸 안의 모든 물을 방출했다.

쿠르르르…… 콰콰콰콰콰콰!

아틸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어차피 요르문간드의 몸 안에서 탈출해야 한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발가락에서 물정령의 반지를 벗긴 뒤 도롱뇽의 등에 올라탔다.

수저항이 사라진 도롱뇽의 몸이 물살에 밀렸다.

점점 빨라졌다.

- 으아아아아악!

도롱뇽이 비명을 질렀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비늘을 움켜쥐며 스릴을 즐겼다.

엄청나게 빠른 놀이 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오래지 않아 아틸라와 도롱뇽이 요르문간드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요르문간드의 숨이 끊겼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아틸라는 레벨업 메시지가 연이어 떠오르는 것을 봤다.

아틸라 자신을 포함해 모든 동료들이 레벨업을 했다.

‘아니군. 벨라는 파티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벨라는 아틸라의 파티원이 아니었다.

벨라에게서 파티 요청이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벨라에겐 경험치 분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틸라는 저만치 날아가는 벨라를 봤다.

벨라의 몸은 제법 강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벨라를 요롱이가 쫓고 있었다.

아틸라는 빠르게 상황을 짐작했다.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요르문간드의 몸에서 튀어나온 관성이 더해져, 도롱뇽은 순식간에 요롱이를 추월했다.

“아, 아틸라!”

“아틸라 님!”

카스피와 오토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끼아옹! 펀치의 울음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도롱뇽의 비행은 빨랐다.

하지만 벨라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위험할지도.’

아틸라는 아주 짧은 순간 고민했지만, 마음을 정했다.

어찌 됐든 지금의 벨라는 동료다.

아틸라는 두 발로 도롱뇽의 척추를 밟았다.

그러고는 의지를 발현해 도롱뇽의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언갈 직감한 도롱뇽이 파르르 덜미를 떨었다.

- 야만 미물 너 설마 또……!

“새끼. 눈치 하난 빠르네.”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 도약(跳躍) ]

퍼어어엉!

도롱뇽의 척추를 지르밟으며 아틸라의 몸이 전방으로 날았다.

그 반동으로 도롱뇽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 꾸에에에엑!

도롱뇽의 몸이 지면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틸라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적절한 위치를 찾은 그가 타점을 특정했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아틸라의 몸이 벼락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추락하는 그의 동선에는 벨라가 있었다.

아틸라는 벨라의 몸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그의 두 발이 지면을 밟았다.

콰아아앙!

가공할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졌다.

그 여파로 범람했던 호숫물도 자취를 감췄다.

바닥에 벨라를 내려놓은 아틸라는 달라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지금의 모습이 벨라의 원래 얼굴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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