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요르문간드 (2)
[ 돌진(突進) ]
아틸라는 요르문간드를 향해 돌진했다.
아틸라의 키보다 커다란 송곳니들이 벽처럼 밀려들어왔다.
아틸라는 송곳니의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송곳니의 뒤편을 지르밟으며 몸을 수평으로 눕혔다.
휘리릭!
무언갈 감지한 요르문간드가 아틸라에게 혀를 감았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 도약(跳躍) ]
파아앙!
아틸라의 발이 요르문간드의 송곳니를 밀어냈다.
그 엄청난 힘에 놈의 혀가 갈가리 찢겼고, 송곳니 하나가 부러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반대로 아틸라의 몸은 요르문간드의 목 안쪽으로 탄환처럼 발사됐다.
‘됐다.’
아틸라는 무서운 속도로 요르문간드의 몸 안을 날았다.
녀석의 목 안쪽은 굽이굽이 휘어 있었지만 체액으로 가득했고, 그래서 아틸라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어둠 속을 질주했다.
요르문간드가 몸을 꿀렁거렸다.
이어 엄청난 물의 압력이 아틸라를 짓눌렀다.
파드드드드드!
그러나 아틸라의 도약은 압력을 이겨 냈다.
생각대로다.
스킬의 힘은 요르문간드가 내뱉는 수압보다 강했다.
게다가 아틸라에겐 이런 상황에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 있었다.
[ 물정령의 반지 ]
물정령의 반지는 수속성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20퍼센트 상승시킨다.
여기에 도롱뇽의 저항 오러와 방어 태세의 저항력이 합쳐져, 아틸라는 무려 50퍼센트가 넘는 저항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물정령의 반지가 지닌 더욱 중요한 힘은 따로 있었다.
[ 사용 시, 일정 시간 착용자가 받는 수(水)저항이 크게 감소합니다. ]
수저항은 물 속성 저항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물이 지닌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효과.
이전에도 아틸라는 수저항을 이용해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를 제압했었다.
콰콰콰콰콰콰콰!
가공할 물의 폭풍이 아틸라를 강타했다.
물정령의 반지와 도약 스킬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숨을 쉬지 못해 죽을 상황.
그러나 아틸라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 무호흡 ]
바라키엘 신전의 나가라자 탁샤카를 쓰러뜨리고 받았던 보상.
[ 호흡을 하지 않고 최대 15분 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다. ]
[ 무호흡의 지속 시간은 시전자의 활동량, 심박수, 정신력 등의 조건에 따라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
아틸라에겐 물정령의 반지와 도약 스킬 외에도 ‘무호흡’이 있었다.
‘몸뚱이가 정말 무지막지할 정도로 길군.’
도약 스킬로 한참을 이동했지만 핵은 보이지 않았다.
아틸라는 도약 스킬의 이동 거리가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흑철검으로 내벽을 찍어 누르며 몸을 회전했다.
순식간에 머리와 발의 위치가 바뀌었고, 아틸라는 저 멀리 보이는 암흑을 향해 타점을 특정했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아틸라의 몸이 더욱 깊은 어둠으로 낙하했다.
그의 안력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지만, 이렇게 빛 한 점 들지 않는 암흑 속에선 별 의미가 없었다.
아틸라는 어디까지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낙하를 계속했다.
* * *
바토리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틸라가 요르문간드의 입안으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
바토리는 직감했다.
‘아틸라는 요르문간드의 핵을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바토리는 안심할 수 없었다.
요르문간드는 지금까지 일행이 만난 그 어떤 괴물보다 강하다.
게다가 저 압도적인 크기.
아무리 아틸라라 해도 그리 쉽게 핵을 찾아내진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요르문간드는 조금 전부터 엄청난 물을 뿜어 대고 있었다.
그 여파로 건물을 포함한 각종 시설들이, 주민들이, 피라냐들이 사정없이 튀로 튕겨 났다.
“여, 영주 나리가 없어졌어!”
오토 역시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토리의 신경은 오직 아틸라에게만 집중돼 있었고, 놀랍게도 아틸라는 저 엄청난 물살에도 밀려나오지 않았다.
바토리는 알고 있었다.
‘아틸라에겐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나이아드를 공격하던 아틸라는 수저항도 크게 무시했었다.
이번에도 확실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토리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요르문간드의 몸통 한 지점에서 폭발이 일었다.
너덜너덜해진 몸에서 진득한 액체가 터져 나왔다.
바토리는 저것이 도약 스킬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안색이 환해졌다.
아틸라는 무사하다.
부웅.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요르문간드의 머리가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우연적인 일이었지만 상황은 다급했다.
저 거대한 머리에 부닥치면 암피테르를 포함해, 일행 모두는 박살이 날 것이다.
“공주우우우!”
칼릭스가 요르문간드와 바토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어 요르문간드를 향해 검을 뻗었다.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칼릭스의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칼릭스는 엄습하는 공포를 억누르며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내, 내가 공주를 지킬 거야……! 난 오늘을 위해 지금껏 살아왔던 거다……!’
바토리는 조금 놀라움을 느꼈다.
요르문간드는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기사대장의 행동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용기만큼은 참으로 가상하구나.’
바토리의 입꼬리가 피식 위를 향했다.
요르문간드를 향해 팔을 뻗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벨름 클라우데바 페트라므.”
허공에 펼쳐진 무형의 장막이 요르문간드와 부닥쳤다.
* * *
아틸라는 자신이 얼마큼 안으로 들어왔는지 몰랐다.
확실한 건 도약 스킬의 효과가 끝났다는 것과, 아직 핵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물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틸라는 물정령의 반지가 있기에 밀려드는 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핵을 찾기 위해선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아틸라는 품 안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 케헥! 왜, 왜 날 데리고 온 거야! 아까부터 숨을 쉴 수가 없다! 숨 막힌다! 숨 막히다고오오!
‘닥치고 헤엄칠 준비나 해라. 몇 분 숨 안 쉰다고 안 죽는 거 다 아니까.’
도롱뇽의 몸이 부풀었다.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해방 스킬을 발현했다.
성체가 된 도롱뇽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요르문간드의 몸속 공간은 넓었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발가락에 물정령의 반지를 끼웠다.
- 또, 또냐! 지난번에도 이걸 끼우고 헤엄치게 시키더니 날 짓밟고 도망쳤었잖아!
‘이번엔 안 그럴 테니까 헤엄치기나 해.’
- 너 약속했다! 분명히 약속했다!
‘알았다고 새끼야.’
도롱뇽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부턴 내벽을 발톱으로 찍으며 전진했고, 그래서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건 그렇고 이 빌어먹을 뱀새끼가 또 나타날 줄이야!
도롱뇽은 요르문간드를 기억했다.
도롱뇽의 지난 기억은 누락된 부분이 많았지만 요르문간드를 포함한 몇몇 요툰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요르문간드와 싸운 적이 있는 거냐.’
- 당연하지! 내가 아주 혼구녕을 내줬었다고! 내가 완전한 힘만 되찼았어도 이런 덩치만 큰 뱀새끼는 그냥 시커먼 통구이로 만드는 건데!
도롱뇽의 말이 진실인지 허풍인지 아틸라는 몰랐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핵을 찾아라. 그걸 파괴해야 우리가 여기서 나갈 수 있으니까.’
요르문간드의 핵은 점멸하듯 이동하지 못한다.
아틸라가 이미 지나친 곳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계속 안으로 이동한다면 핵을 만나는 건 필연적이다.
물론 요르문간드 정도 되는 요툰의 핵을 쉽게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틸라에겐 성체가 된 도롱뇽이 있고, 그에 따라 힘을 발현한 드라칼리온이 있으며,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검기가 있었다.
‘지금의 검기라면 핵을 부술 수 있을 거다.’
이전에 요툰의 숲에서 찾았던 핵을 파괴한 건 도롱뇽의 초 레어 송곳 브레스와, 바토리가 발현한 마멸의 칼날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적은 한 마리의 요툰이 아닌, 여러 요툰의 힘이 응집된 집합체였다.
요르문간드의 핵은 그보다 단단하지 않을 것이다.
‘뭐, 힘이 부족하다면 도롱뇽의 브레스로 메꾸면 되겠지.’
- 냄새가 난다 야만 미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근데 빌어먹을 물이 자꾸 콧속으로 들어와서 냄새를 잘 못 맡겠다! 켁켁!
도롱뇽이 핵의 위치를 감지했다.
물속이라서 조금 걱정했지만 아틸라의 기우였다.
‘찾았으면 더 빨리 움직여라. 정신 교육 당하고 싶지 않으면.’
- 가, 간다! 지금 가잖아! 미, 미친놈처럼 달리고 있다고!
역시 도롱뇽은 정신 교육을 가장 두려워했다.
머지않아 아틸라는 투명한 막 같은 것을 돌파하는 감각을 느꼈다.
이어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레 등장한 핵에선 은은한 빛이 흐르고 있었기에 아틸라도, 도롱뇽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지난번 요툰의 숲에서 봤던 핵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군.’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체 같은 풍경.
그러나 조금 달랐다.
빛이 희박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풍경이나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을 쥐고 검기를 발현했다.
그것이 핵을 향해 휘둘러졌다.
* * *
칼릭스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바토리의 손이 괴물에게 뻗쳤고, 쇄도하던 괴물의 머리가 날카로운 소음을 발하며 멈춰 섰다.
칼릭스는 저것이 마법의 힘이라는 걸 알았다.
‘고, 공주는 마법사였던 건가!’
칼릭스는 암피테르에게 의지를 전해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
그러자 요르문간드가 쫓아왔다.
녀석의 첫 공격은 우연이었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일행을 노리고 있었다.
“귀찮은 일이 벌어졌구나.”
지금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건 바토리뿐이다.
바토리는 지속적으로 방어 마법을 발현해 요르문간드를 막았다.
칼릭스도 열심히 암피테르를 조종하며 바토리를 도왔다.
그러나 5명이나 태운 암피테르의 민첩성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바토리의 한계는 빠르게 찾아왔다.
쿨럭, 그녀의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바토리!”
카스피는 이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암피테르의 움직임이 느려. 내 체중만큼이라도 줄여야 해. 지금 상황에선 나보다 슈시아와 벨라가 바토리의 보호에 도움이 될 거야.’
카스피는 저 아래 보이는 부서진 건물을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사슬낫을 이용한다면 낙하의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바토리를 부탁해. 슈시아. 벨라.”
카스피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 순간 요르문간드의 혀가 카스피를 습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왜 갑자기!’
카스피는 귀수를 뽑아 그것을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요르문간드의 너덜너덜한 혀가 카스피의 몸을 휘어감았다.
엄청난 압력이 카스피의 몸을 짓눌렀다.
카스피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때였다.
팡! 파앙! 콰드드득!
카스피를 포박했던 요르문간드의 혀가 갈가리 찢겼다.
카스피는 자신의 몸을 옆구리에 끼며 허공을 나는 날렵한 인영을 봤다.
벨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