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50화 (350/425)

350. 격변의 제국 (3)

카르타고가 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플루토의 말은 일행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최근까지 카르타고가 언데드 군단의 중심에 서있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랄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혹은 카르타고라는 이름이 지닌 특유의 위압감 때문일지도.

“그린 드래곤 네트라비스와, 화이트 드래곤 프릴루이나가 대 언데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카르타고의 등장은 아벨을 제외한 다른 드래곤 마스터들마저 움직이게 만들었다.

“골드 드래곤 루미니우스는 황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는 카르타고의 환수가 된 지 오래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어쩌면 모든 속성의 드래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될지도 모르겠군요.”

플루토가 정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로군. 또 하나의 드라코니안인 드라코리치가 샤를 아인하르트를 따르고 있군요.”

그렇게 말하며 플루토가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뭘 꼬나봐 새끼야.”

“이거 실례했군요.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뭐야. 의외로 아는 게 많은 놈이었잖아!”

싱긋 웃는 플루토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이어 플루토의 머리가 강하게 회전하며 몸에서 분리됐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일행은 멍한 얼굴이 됐다.

“재수 없는 표정으로 실실 쪼개긴.”

벨라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플루토의 목을 자른 건 벨라였다.

아틸라가 벨라를 노려봤다.

“어이쿠. 또 그런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보는 거야? 왜. 오늘이야말로 지난번에 못다 한 뜨거운 밤을 보내 볼까? 내 방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아틸라. 하하하하하.”

“내 저년을 그냥……!”

발끈하는 바토리를 아틸라가 팔을 들어 막았다.

“벨라. 동료들 앞에서 예고 없이 검을 휘두르지 마라.”

“그런 내용은 네가 제시했던 조건에 없었는데?”

“지금 추가하도록 하지. 싫다면 당장 나와 검을 섞어야 할 거야.”

아틸라는 화가 난 상태였다.

벨라의 행동은 동료들에게 위협적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플루토에게 심안을 발현하려는 순간 벨라가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상황을 아틸라는 이전에도 몇 번 겪은 일이 있었다.

아틸라는 확신했다.

‘벨라는 심안을 감지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기엔 우연이 지나치게 반복됐다.

또한 얼마 전 벨라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시카리오의 추격을 홀로 감지하기도 했다.

빼어난 감각을 넘어선.

그야말로 ‘초감각(超感覺)’의 경지.

‘저것이 수차례 벽을 넘어선 귀살자의 모습인가.’

겉으로는 무심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아틸라는 벨라를 일행으로 맞이하며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벨라는 아틸라가 반응하기 전에 플루토의 목을 잘랐다.

물론 벨라의 검이 아틸라나 다른 동료들을 향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아무튼 아틸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벨라가 짝! 손바닥을 부딪쳤다.

“좋아 까짓것.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나 역시도 꼬마를 가르치는 재미에 제법 빠져 있으니까. 그러니 그렇게 노려보지 좀 말라고. 나 막 뚫어질 거 같아.”

벨라가 과장된 동작으로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어 그녀의 눈이 플루토의 잘린 머리를 내려봤다.

“그렇게 됐으니까 이제 그만 죽은척하고 일어나라고. 네가 죽여도 죽지 않는 관조자인 건 빤히 알고 있으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플루토가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거 상당히 무서운 분이었군요.”

“응. 그러니까 그만 쪼개라고.”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날 죽이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당신 또한 주의해야겠군요.”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널 죽이려 한다고?”

벨라가 흥미롭다는 듯 바토리를 돌아봤다.

“무슨 상황인데?”

바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벨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튼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있다간 저 무서운 두 여인의 손에 죽을 것 같군요.”

너스레를 떨며 일어서는 플루토를 아틸라가 막았다.

“할 말이 있습니까? 검은늑대의 아틸라.”

아틸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플루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틸라는 가만히 벨라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플루토에게 시선을 돌려, 요툰헤임과 언데드 군단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플루토는 성심성의껏 아틸라의 물음에 답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틸라는 플루토에게 심안을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틸라가 조금 전 물끄러미 벨라를 응시한 까닭은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렇게 심안을 통해 아틸라는 플루토가 말한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아틸라는 엘과 아자젤(벨리알)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캐내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플루토는 엘을 알지 못했다.

또한 이상하게도 아자젤에 관한 것은 심안을 통해 관측되지 않았다.

‘녀석이 무언가 수작을 부려 놓은 건가.’

아자젤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아자젤은 아틸라가 지니고 있는 힘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 놓았을 테지.

바토리가 피곤을 내색할 때까지 술자리는 계속됐다.

이후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고, 플루토는 다소 안도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아틸라는 언제나처럼 오토와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 전에 한 잔 더 어떻수. 아틸라 님.”

“좋지.”

바토리, 카스피, 슈시아, 펀치, 도롱뇽은 큰 방을 함께 썼다.

반면 벨라는 홀로 방을 사용했다.

벨라는 여전히 일행 사이에서 불청객과 같았고, 또한 일행을 공격한다는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대놓고 못 믿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지만 벨라는 불만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벨라가 모든 일행이 잠든 새벽, 조용히 여관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어딘가로 움직였다.

스스슷. 스스스스슷.

벨라의 움직임은 기묘했다.

인간이 아닌, 흡사 시커먼 그림자 같은 형체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했다.

아무도 벨라를 감지하지 못했다.

하늘도, 땅도,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마저도 속이는 것처럼 벨라는 타깃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벨라는 숲에 다다라 있었다.

어둑한 숲의 바닥을 스치는 소음.

그러나 벨라의 발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의 소음과 완벽하게 겹쳐졌고, 그래서 그녀의 타깃은 벨라가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플루토의 목이 잘렸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플루토는 당황했다.

이내 플루토는 부활했지만, 그야말로 잠시였다.

벨라의 손에 재차 목이 달아났다.

플루토는 주의를 집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자신을 습격하고 있다.

그러나 플루토는 자신이 있었다.

플루토는 빼어난 관조자다.

바토리를 제외한다면, 아틸라가 지금껏 만난 관조자 중 가장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을 정도로.

부활에 성공한 플루토는 몸에 강력한 방어 마법을 둘렀다.

아니, 두르려 했다.

그전에 다시 한번 목이 절단되지 않았다면.

‘이건……!’

그제서야 플루토는 공포를 느꼈다.

벌써 세 차례나 목숨을 잃었다.

남은 목숨은 넷.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였다.

다시금 부활을 마친 플루토는 상대의 왼손에 들린 독특한 날붙이를 봤다.

그것은 귀수라 불리는, 귀살의 일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제서야 플루토는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고, 그와 동시에 가슴팍이 잘렸다.

푸하악!

반으로 쪼개진 심장에서 핏물이 솟았다.

플루토는 정신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부활을 마치고, 상대를 확인하고, 죽임 당했다.

그것이 한차례 더 벌어졌다.

이제 남은 목숨은 둘.

두 번만 더 목숨을 잃으면, 플루토는 구슬로 변하고 만다.

더는 안 된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플루토에겐 방법이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곳에 둥지를 틀어 둔 것은 정말이지 묘수였다.

그렇게 다섯 번째 부활을 마친 플루토는 즉각적으로 마법을 발현했다.

촤르륵. 촤륵. 촤르르륵.

숲의 허공에서, 지면에서, 나무 위에서, 용수철을 닮은 쇠붙이가 튀어나왔다.

쇠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건 모두 마력의 결정체였다.

또한 쇠 이상의 경도와 날카로움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플루토의 계책은 통했다.

이번만은 상대도 쉽사리 플루토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상대가 용수철의 늪에 묶여 있는 동안 플루토는 틈새를 열 시간을 벌었다.

틈새로 진입에 성공한다면 상황은 종료된다.

상대가 아무리 무시무시한 강자라 해도 인간.

인간은 결코 틈새에 진입할 수 없다.

우웅.

이윽고 틈새가 열렸다.

플루토는 여유를 되찾은 눈으로 습격자를 봤다.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

녀석이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플루토는 알고 있었다.

모든 관조자들이 두려워하는 존재.

필멸의 육체를 지닌 인간이면서도, 불사의 존재인 관조자를 가장 많이 죽여 없앤 자.

최강의 관조자라 불리던 바토리 에르제베트마저 셰이카를 마주하는 것만은 피했다.

플루토는 입가를 찢어 웃었다.

어찌 됐든 자신은 저 무시무시한 귀살자, 셰이카 라딤의 습격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관조자가 될 테니까.

그때였다.

퍼엉.

셰이카가 용수철의 늪에서 사라졌다.

이어 플루토의 등을 뚫고 귀수가 튀어나왔다.

창날처럼 기다란 귀수 안엔 팔딱팔딱 박동하는 플루토의 심장이 쥐여 있었다.

“하도 열심이길래 도망칠 기회를 줬는데, 뭐 하는 거지?”

중성적인 목소리.

이어 섬뜩한 소음과 함께 플루토의 심장이 갈가리 찢겼다.

“그래도 제법 발악은 했는데 말이야. 아쉽게 됐군.”

플루토의 머리칼을 쥐어들며 셰이카가 웃었다.

셰이카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플루토도 웃었다.

“너야말로 아쉽게 됐군 셰이카. 끝내 날 소멸시키진 못하게 됐으니 말이야.”

플루토에겐 아직 한 번의 부활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틈새도 열렸다.

다시 말해 플루토는 셰이카의 방해를 받기 전에 틈새로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셰이카가 고개를 숙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뭐야. 아직 한 번의 부활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라고?”

플루토는 흠칫했다.

그리고 계산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번이었다.

자신이 셰이카에게 죽임당한 횟수는.

셰이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직전과 달라진 그녀의 얼굴이 달빛 아래 선명히 드러났고, 플루토의 낯빛은 새파랗게 변했다.

“넌…… 아까의……!”

“그래. 넌 이미 여관에서 내게 한차례 목숨을 잃었었다고. 그렇게 일곱 번이 끝났네?”

플루토는 사색이 된 얼굴로 제 가슴을 내려 봤다.

시커멓게 구멍이 뚫린 그곳에선 주룩주룩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흡사 인간처럼.

깔깔대는 벨라의 웃음소리와 함께 플루토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됐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카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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