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46화 (346/425)

346. 지배하는 존재

벨라, 아니 셰이카가 길게 입가를 찢었다.

“너무 늦게 알아챈 것 아닌가? 바토리 에르제베트에 비해 말이야.”

셰이카의 말대로, 바토리는 셰이카를 알아봤었다.

바토리는 셰이카가 언데드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의심을 시작했다.

그래서 불바다를 뛰쳐나오는 셰이카를 향해 불의 창날을 날렸다.

그 마법을 셰이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 냈고, 그 순간 바토리는 상대가 셰이카라는 것을 알았다.

저마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탓에 깨닫지 못했지만, 바토리만은 분명하게 보았다.

불의 창을 튕겨 낸 것은 검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진 귀수였다.

바토리의 눈이 부릅떠졌다.

셰이카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가 결코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바토리는 셰이카를 쓰러뜨리려 했다.

그것을 카스피와 슈시아가 방해했다.

바토리는 왼팔의 마력을 개방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셰이카와의 거리도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바토리는 왼팔의 마력을 개방하는 대신 다시금 공격 마법을 발현하기로 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바토리는 셰이카에게 새로운 능력이 발현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셰이카의 그 능력이 바토리의 마법 발현을 막았다.

바토리는 크게 당황했다.

‘저 아이는 대체……!’

그제서야 슈시아와 카스피가 셰이카로 공격 대상을 바꿨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셰이카는 완전하게 준비되지 않은 슈시아, 펀치, 도롱뇽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바토리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마법 발현을 할 수 없는 바토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

결국 바토리도 정신을 잃고 지면에 쓰러졌다.

이후 셰이카는 카스피와 전투를 이어 갔다.

그리고 지금은 아틸라와 검을 맞대고 있다.

“다, 당신이 정말 하싸씬의 단주라고……?”

카스피가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지금껏 말로만 들었던 단주.

하싸씬의 일곱 마스터와, 단주 직속 살수부대인 ‘암부’ 외엔 그 누구도 모습을 본 적 없는 인물.

“그래 꼬마. 내가 바로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이다.”

셰이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잠시 멍하니 셰이카를 보던 카스피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거지……?”

하싸씬은 남부 대륙의 살수 집단이다.

따라서 셰이카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셰이카의 답은 간단했다.

“너희들도 가능했던 일을,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은가.”

셰이카의 말투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목소리도 보다 중성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카스피는 셰이카가 벨라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벨라라는 인물은, 셰이카의 손에 들린 여러 가면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증거로 셰이카는 아틸라를 처음 봤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글쎄. 갖고 있는 이름이 워낙 많아서.’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지?”

아틸라의 물음이었다.

주변 상황을 확인한 아틸라는 셰이카가 동료들을 해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상대는 셰이카였다.

카스피에게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옆구리를 쥐며 눈썹을 찌푸렸다.

이곳으로 오기 전 그는 기묘한 변종 리치 두 마리를 상대했다.

마음이 급했던 탓에 자세히 확인은 못 했지만, 흡사 시체 골렘처럼 마법사의 시체 여러 구를 조립해 만든 괴물이었다.

놈들은 강했다.

아틸라의 옆구리에 제법 깊은 상처를 남길 정도로.

물론 그 대가로 리치들은 전신이 토막 나 죽었다.

그러나 일반 시체 골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오토가 라이칸 용병단을 포함한 케렌시아의 병력과 함께 놈들을 막아 내고 있다.

“너희에게 접근한 이유라. 그건 간단하지.”

셰이카의 눈이 카스피를 돌아봤다.

“꼬마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카스피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꼬마는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지.”

경계를 풀지 않은 눈으로 아틸라가 물었다.

“동료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너희가 살아 있어야 꼬마가 더욱 성장할 테니까.”

“카스피의 성장이 네게 무언가 이득이 된다는 뜻인가?”

셰이카는 대답 없이 웃었다.

카스피는 그런 셰이카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봤다.

셰이카는 강했다.

귀수를 발현해 전력을 드러냈음에도, 카스피는 셰이카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꼬마.”

셰이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넌 조금 전 나와 대결하며 ‘벽’을 넘었다.”

“……벽?”

“귀살자에겐 숨겨진 힘이 있다. ‘벽’을 넘어서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아주 특별한. 그리고 그 힘은 너와 날 더욱 위대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위대한…… 존재?”

“넌 그날 사바흐 덕분에 생존했다.”

카스피의 눈이 흔들렸다.

셰이카는, 귀살의 일족이 멸망했던 날 사바흐가 했던 일을 알고 있었다.

“난 네게서 무언갈 느꼈다. 그래서 줄곧 널 지켜봤고, 결국 넌 파문 살수라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귀살의 힘을 각성했다.”

셰이카의 얼굴이 무언갈 돌아보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울러 그러는 동안 난 깨달았다. 귀살의 일족에겐 아직 숨겨진 힘이 있다는 것을.”

아틸라와 카스피는 몰랐지만, 셰이카는 데비쉬의 단주 살라딘을 죽이기 전에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귀살의 일족에겐, 아직 숨겨진 힘이 있다는 걸 발견했거든.’

“그렇기에 난 너를 살려 둔 것이다.”

“……스승님은 어떻게 됐지?”

카스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셰이카는 사바흐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바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셰이카가 미소했다.

“사바흐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죽지 않았다. 녀석 정도의 인재는 나로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카스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바흐에 대한 걱정이 물러나자 새로운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바토리에겐 무슨 수작을 벌인 거지?”

“호오. 알아본 건가, 꼬마.”

카스피는 바토리가 혼절하기 전, 마법을 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야말로 셰이카가 바토리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카스피는, 정면으로 뻗친 셰이카의 왼팔에서 기묘한 기운이 작용했다는 것을 흐릿하게나마 감각했었다.

그 결과로 셰이카는 바토리의 마법 발현을 막았고, 바토리를 쓰러뜨렸다.

카스피의 눈이 셰이카를 똑바로 노려봤다.

“말해. 넌 어떻게 그런 마술을 부릴 수 있는 것인지.”

셰이카는 대답 없이 물끄러미 카스피를 봤다.

그러고는 아틸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에 앞서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군.”

셰이카의 몸에서 귀기가 사그라졌다.

왼손에 발현됐던 귀수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더 이상 싸울 필요는 없다. 난 너희를 죽일 생각이 없고, 너희 또한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잠시 셰이카를 노려보던 아틸라가 검과 방패를 갈무리했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히죽 입가를 올린 셰이카가 품 안에서 무언갈 꺼냈다.

돌돌 말린 종이.

셰이카가 엄지로 그것을 튕겨 아틸라에게 넘겼다.

“이게 뭐지?”

“네가 제국을 찾은 이유.”

아틸라의 손이 종이를 펼쳤다.

그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하워드 스틸숄더와 강철바위 드워프들이 감금된 장소다. 뭐, 감금이라기엔 꽤나 좋은 대우를 받으며 망치질에 열중인 것 같지만.”

“넌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지?”

“난 하싸씬의 단주니까.”

간단명료한 답변이었다.

“그들을 만난 건가. 셰이카.”

“물론. 이 검집도 하워드 스틸숄더의 것을 몰래 훔쳐 온 것이지.”

“랄프에게서 받은 게 아니었군.”

“랄프 아이언액스를 만난 건 사실이다. 난 딱히 너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실제로 이 검은 녀석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다.”

셰이카가 보란 듯이 검집 안의 검날을 살짝 뽑았다.

즉 셰이카는 하워드에게서는 검집을, 랄프에게서는 검을 얻었다는 말이었다.

“제국엔 어떤 경로로 도달한 거지?”

“언데드들을 따라왔다. 그 과정에서 랄프 아이언액스를 만났지.”

아틸라는 이해했다.

셰이카는 수해에 발생된 새로운 길을 타고 올라왔다.

본래 하싸씬은 구 발루아 왕국에 근거지를 둔 살수 집단.

그곳은 이제 아인하르트 제국이 되었다.

셰이카로서는 그 길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거군.”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셰이카는 수해의 새로운 길을 통해 북으로 이동했고, 우연히 랄프를 포함한 강철바위 드워프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강철바위 드워프는 넷만 남고 모두 죽었다.

언데드와 몬스터들의 손에.

“그 과정에 네가 강철바위 드워프들에게 나름의 도움을 줬고, 보상으로 검을 선물받았다 이건가.’

아틸라의 말에 셰이카가 긍정의 미소를 지었다.

“제국에 도착한 난 드워프들과 헤어졌다. 랄프 아이언액스의 말을 통해 아틸라, 네가 하워드 스틸숄더를 찾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셰이카는 하워드를 찾기로 했다.

언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셰이카는 본래 귀살의 일족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고대어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셰이카는 제국의 어둠을 주름 잡는 조직, 시카리오 암살단을 급습했다.

셰이카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암부’와 함께였다.

그렇게 셰이카와 암부는 시카리오 암살단을 통해 하워드가 감금된 대략적인 장소를 알아냈다.

‘그래. 역시 황도였다 이거로군.’

셰이카와 암부는 황도를 탐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워드의 소재를 찾아냈고, 잠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셰이카는 할 수 있다면 하워드를 몰래 빼올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카스피는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카스피의 보호자인 아틸라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돕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러나 난 하워드를 빼내 올 수 없었다.”

“하워드는 강철바위의 왕이다. 결코 혼자서는 움직이지 않으려 했을 테지. 너 또한 그 많은 드워프를 데리고 이동할 수는 없었을 테고.”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지.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

“드워프들을 감시하는 존재가 있었다.”

“황궁 기사단 말인가.”

“표면적인 감시자는 그들이 맞다. 하지만 난 그보다 깊은 곳에서 날 응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네가 운용하는 ‘단주의 눈’ 같은 것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튼 난 그것에서 위험을 감지했고, 그래서 하워드를 데리고 나온다는 생각을 버렸다.”

아틸라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 네가 감지했다는 그 기운은 ‘벨리알’의 것이 아니었나.”

벨리알은 제국에 있다.

그리고 셰이카는 벨리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셰이카가 죽인 데비쉬의 단주, 살라딘은 다름 아닌 벨리알의 화신이었으니까.

셰이카의 답은 부정이었다.

“벨리알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운은 벨리알을.”

이어진 셰이카의 말에 아틸라는 두근, 심장이 뛰었다.

“지배하는 존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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