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45화 (345/425)

345. 케렌시아의 용병 (8)

벨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오토라는 전사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하긴, 네 일행 중 그자가 가장 약골처럼 보이더군.”

“영주 나리는 강해. 하지만 널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야.”

“호오. 그건 내게 하는 칭찬인가?”

“넌 강해. 나는 널 보며 제국이 넓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

카스피가 재차 귀수를 휘둘렀다.

벨라는 검집으로 막는 대신 회피를 택했다.

부웅.

카스피의 공격은 벨라에게 닿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카스피가 쉴 새 없이 귀수를 뻗었다.

벨라는 능숙하게 회피를 이어 갔다.

그러나 영원할 수는 없었다.

모든 힘을 드러낸 카스피는 아틸라마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강자.

벨라는 다시 검집으로 카스피의 귀수를 막아야 했다.

벨라의 얼굴엔 직전까지의 여유가 다소 사라져 있었다.

“과연. 이게 너의 본 실력이란 말이지. 그날 여관에서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군.”

“그땐 아틸라가 있었으니까. 아틸라는 내게 힘을 드러내는 것을 주의하라고 했어.”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걸?”

“난 강아지가 아니야. 아틸라를 신뢰할 뿐이지.”

벨라가 미소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묻고 싶은 게 있어.”

“뭘까?”

“넌 제국에서 어느 정도의 강자인 거지? 혹시 너보다 강한 자도 있는 거야?”

카스피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녀는 내심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아틸라, 바토리, 샤를 정도의 괴물이 아니라면 그 누구를 상대해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자부했다.

하지만 벨라는 강했다.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게 왜 궁금한 거지? 꼬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억지를 부리는 카스피를 보며 벨라는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충분한 답이 될 것 같군.”

벨라의 붉은 입술이 귀 끝까지 찢어졌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어.”

파캉!

벨라의 검집이 귀수를 후려쳤다.

강한 타격이었지만 이전의 묵직함은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있었다.

화르르륵!

벨라가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검날에선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널 상대하려면 검집만으론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벨라의 공격이 시작됐다.

카스피는 귀안에 집중했다.

귀안은 전투 중 아주 짧은 미래를 엿보는 기술.

카스피에겐 벨라의 공격 동선이 잔상처럼 눈에 그려졌다.

‘귀안을 사용한 이상, 난 지지 않아.’

카스피는 벨라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고, 반격했다.

제아무리 벨라가 대단한 실력자라 해도 미래를 엿보는 이를 당해 낼 수는 없다.

카스피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막을 수 있어. 반격할 수 있어.’

벨라는 한 손엔 검집을, 다른 한 손엔 검을 쥔 채 싸우고 있었다.

독특한 점은 벨라가 검을 공격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을 방패처럼 쓰고 있어.’

벨라는 검을 방어의 용도로만 활용했다.

카스피에게 뻗치는 공격은 모두 검이 아닌 검집이었다.

그것으로 카스피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벨라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확실히 넌 강해졌어. 꼬마.”

“당연하지.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기대가 되는군. 네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지 말이야.”

카스피가 히죽 웃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 하지만 일단은 널 쓰러뜨릴 거야.”

벨라도 웃었다.

이전에도 카스피에게 몇 번 보인 적 있던 편안한 미소였다.

“그건 불가능해. 꼬마.”

“밀리는 건 네 쪽인 거 같은데?”

“내가 그런 상황을 유도했기 때문이지. 다시 말해 난 언제든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어.”

“그럼 어디 해보시든지!”

카스피가 발끈하자 벨라가 다시 웃었다.

그녀는 지금의 전투를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다.

카캉! 팡! 차앙! 촤르륵……!

일반인의 눈엔 보이지도 않을 공격들이 두 여인 사이에서 펼쳐졌다.

카스피는 귀수와 단검을, 벨라는 검과 검집을 활용해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넌 더욱 강해질 수 있어. 꼬마.”

“뭐?”

“너에겐 잠재력이 있어. 넌 강해질 거야. 네가 그렇게 아빠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아틸라보다, 더욱더.”

카스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아빠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벨라의 공격이 빨라졌다.

그 순간 카스피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지금껏 귀안으로 주시하던 벨라의 공격 동선.

그 잔상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흐트러지던 잔상이 정돈되고, 다시금 끓는 물처럼 진동했다.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수차례 반복됐다.

그제야 카스피는 자신과 벨라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알았다.

‘말도 안 돼……!’

흔들리는 카스피의 눈이 부릅떠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벨라의 공격 속도가 귀안의 잔상을 따라잡고 있었다.

‘저럴 수가 있다고……?’

사아아앗!

실제로 들린 소리는 아니었다.

카스피의 의식 속에서만 발해진 소음.

그녀의 눈앞이 선명해졌다.

더 이상의 잔상은 보이지 않았다.

귀안의 사용 효과인 예지력이 소멸한 것이다.

예지마저 뛰어넘을 정도의 가공할 스피드.

지금 벨라가 보이고 있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었다.

‘괴물……!’

벨라가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카스피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녀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온몸의 피부가 따끔거리고, 간지러웠다.

돋아난 소름이 자그만 벌레로 화해 온몸을 기어 다니는 감각이었다.

‘무, 무서워……!’

카스피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카스피는 자신과 벨라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입속으로 되뇌었다.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무서워……. 무서워 아틸라……!’

카스피의 몸이 둔해졌다.

물에 잠긴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녀의 의식은 공포라는 이름의 늪에 잠식됐다.

그것을 놓칠 벨라가 아니었다.

벨라의 검집이 뱀처럼 쇄도했다.

카스피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벨라를 이길 수 없다.

카앙!

날카로운 타격음이 공기를 울렸다.

벨라의 검집을 튕겨내는 귀수가 보였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내가…… 한 거야?’

완전히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카스피는 전투를 포기했다.

그런데 몸이 반응했다.

지금껏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단련된 육체는 전에 없이 흐트러진 정신력을 무시하듯, 눈앞의 위기를 극복했다.

“호오.”

벨라의 눈동자에 이채가 담겼다.

그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번들대는 안구에서 광기가 흘러넘쳤다.

“하하하하! 역시 재밌어! 역시 재밌다고 꼬마!”

벨라의 공격이 더욱 빨라졌다.

카스피의 방어도 빨라졌다.

카스피는 지금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몰랐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한 상황.

카스피는 더는 물러설 곳 없는 한 마리 야수가 되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강력한 포식자에게 온몸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어지러워, 카스피는 생각했다.

벨라의 얼굴과, 그녀가 휘두르는 검집과, 그것을 막아 내는 자신의 팔이 풀어진 염료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면서 카스피는 느꼈다.

자신의 심장을 둘러싼 귀기가 풀어지고, 흐느적대는 실처럼 흩어지다가, 다시금 더욱 단단한 형태를 갖추며 응집되는 것을.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꼬마.’

벨라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정말로 벨라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불러낸 환청인지 카스피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카스피는 점점 더 확실한 동작으로 벨라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것을 자각할 무렵 시야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귀를 울리던 먹먹함도 씻은 듯이 개었다.

카앙! 캉! 카아아앙!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울렸다.

숨어 있던 이성이 본능을 몰아내며, 카스피의 정신이 완전하게 돌아왔다.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카스피는 몰랐다.

짧지만 지독한 꿈을 꾼 기분이었다.

무겁기만 했던 몸이 가벼워졌다.

자신감도 회복됐다.

“아직 일러. 꼬마.”

벨라의 속삭임.

놀랍게도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렸다.

직전까지 눈앞에 있던 벨라가 순식간에 뒤를 잡았다.

카스피의 덜미로 검집을 뻗었다.

퍼엉!

카스피의 몸에서 소멸이 시전됐다.

벨라의 검집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이어 카스피가 재등장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보통 소멸은 상대의 뒤를 잡기 위해 쓰인다.

그러나 카스피는 널브러진 슈시아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응? 뭐야.”

본능적으로 등 뒤를 경계하던 벨라가 놀란 눈을 떴다.

그러나 순식간에 카스피의 위치를 찾았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거기서 죽은 척이라도 할 셈이었나?”

벨라가 비웃듯 말했다.

하지만 카스피가 슈시아 곁으로 이동한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카스피는 더 이상 귀수를 발현할 수 없었다.

조금 전의 기묘한 경험이 그녀의 남은 귀기를 바닥냈다.

카스피에겐 벨라를 상대할 만한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슈시아의 검을 쥐었다.

원래는 서리나무 일족의 보물이었으나, 이번에 제국행을 결심하며 슈시아가 소지하게 된 전설의 성물.

‘서리검.’

어느새 벨라는 카스피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 역시 서리검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했다.

카캉!

불과 얼음의 검이 몸을 섞으며 첨예한 소음을 냈다.

카스피의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렸다.

잠깐의 틈도 없이 벨라가 거리를 좁혔다.

카스피는 서리검을 휘둘러 벨라의 공격을 막았다.

몇 차례 공방이 이어졌지만 길지 않았다.

벨라의 검집이 카스피의 옆구리를 타격했다.

“크흑……!”

카스피의 잇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벨라가 히죽 웃는 모습이 보였다.

카스피는 이를 악물며 서리검을 뻗었다.

이번의 공격은 제법 날카로웠고, 카스피는 벨라의 팔에 처음으로 자상을 남길 수 있었다.

벨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카스피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이어 카스피는 보았다.

벨라의 측면으로 난입해 검을 휘두르는 거대한 그림자.

아틸라였다.

“아틸라!”

아틸라의 공격은 대단했다.

벨라의 빈틈을 완벽하게 노렸다.

벨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공격만은 피할 수 없다.

벨라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드디어 온 건가? 아틸라.”

퍼엉!

아틸라의 흑철검이 텅 빈 허공을 갈랐다.

직전까지 벨라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카스피는 귀신에 홀린 듯한 감각을 맛봤다.

그녀는 벨라가 사용한 기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벨라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시전했던 기술.

‘소멸!’

카카카카캉!

가공할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카스피는 아틸라가 벨라의 공격을 막는 광경을 봤다.

벨라는 어느새 아틸라의 등 뒤로 접근했고, 아틸라가 몸을 돌려 방어했다.

아틸라의 몸이 뒤로 밀렸다.

벨라의 몸도 밀려났다.

“네 방해를 원치는 않았는데. 아틸라.”

히죽대며 웃는 벨라의 몸이 붉은 기운으로 덮였다.

옆으로 뻗친 왼팔의 끝엔 귀수가 뽑아져 있었다.

카스피는 벨라의 정체를 깨달았다.

베일에 싸인 하싸씬의 단주.

자신과 같은 귀살의 일족.

그 누구보다도 빼어난 역용술을 지닌 자.

아틸라가 그 이름을 불렀다.

“셰이카 라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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