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케렌시아의 용병 (7)
아틸라는 불바다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언데드를 봤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덩치는 커다랬다.
키가 족히 4미터는 넘어 보였다.
아틸라의 두 배도 넘는 신장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몸은 비율이 맞지 않았다.
한쪽 팔은 길고, 다른 한쪽은 짧았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덩치에 비해 현저하게 자그만 안구는 한쪽 관자놀이 부근에 하나가 더 달려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의 몸은 여러 명의 인간 시체를 조립해 만든 것이다.
죽은 자의 몸을 사악한 마법으로 강화시키고, 강화에 성공한 부위만을 잘라 내어 하나의 거대한 괴물을 만들었다.
아틸라는 저 괴물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시체 골렘.’
시체 골렘은 일반적인 언데드보다 훨씬 강하다.
게다가 모습을 드러낸 건 한 마리가 아니었다.
타오르는 불바다를 뚫고 십여 마리의 시체 골렘이 밀려들었다.
그오어어어!
놀라운 건 녀석들이 화염에 상당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닌 바토리의 마법이었기에 놈들은 완벽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법 한 번에 전멸하다시피 한 다른 언데드에 비해, 시체 골렘들은 제 피부를 흐물흐물 녹이면서도 불과 시체의 강을 건너왔다.
치지짓, 치지지지짓……!
썩은 살이 타들어 가며 악취가 풍겼다.
녀석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했지만 워낙 덩치가 큰 탓에 순식간에 아군과 가까워졌다.
“흐악! 사, 살려 줘!”
“으아아아아악!”
몇몇 병사와 용병들이 시체 골렘의 손에 잡혔다.
그들은 마치 육포가 찢기듯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커흑……!”
“퀴르르릅……!”
잘린 조각을 시체 골렘이 으적으적 씹었다.
아군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시체 골렘이 또 다른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아군의 진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아틸라가 움직였다.
[ 돌진(突進) ]
아틸라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을 향해 돌진을 시전했다.
시체 골렘은 강하지만 아틸라의 상대는 아니다.
게다가 아틸라에겐 언데드에게 아주 유효한 스킬이 있었다.
[ 심판의 외침 ]
[ 언데드를 상대로 공격력과 회복력이 20% 증가합니다. ]
퍼거거걱!
돌진의 관성을 이용해 휘두른 흑철검이 시체 골렘의 허리를 절단했다.
놈의 허리는 통나무처럼 두꺼웠지만 심판의 외침이 더해진 아틸라의 완력을 버틸 수는 없었다.
부패한 내장이 거무죽죽한 피를 뿌리며 흘러나왔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케렌시아의 병사와 용병들은 기겁을 하면서도 환성을 질렀다.
“아, 아틸라가 괴물의 몸을 베었다!”
“무슨 저런 괴력이……!”
“버텨! 조금만 버티라고! 아틸라가 놈들을 쓰러뜨려 줄 거다!”
아군의 사기가 반전됐다.
아틸라가 또 다른 시체 골렘에게 달렸다.
아틸라에게도 놈들을 빨리 쓰러뜨려야 할 이유는 있었다.
바토리가 미쳐 날뛰고 있다.
조금 전 카스피와 슈시아를 보내긴 했지만, 그들이 바토리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토리는 지난번에 슈시아에게 기절당한 적이 있다. 한층 경계를 강화하고 있겠지.”
그럼에도 아틸라가 직접 나서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바토리가 강하다 해도 동료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틸라는 카스피와 슈시아의 실력을 믿었다.
‘마법사 잡는 것은 살수.’
게다가 귀살의 힘까지 지닌 카스피는 평범한 살수가 아니다.
슈시아 또한 카스피 못지않은 민첩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둘 모두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에 특화된 실력자라는 것.
‘일단은 시체 골렘을 빠르게 처리한다.’
아틸라가 두 번째 시체 골렘 앞에 도달했다.
놈은 손에 쥔 도끼를 휘두르며 선제공격을 펼쳤다.
콰앙! 흑철방패가 도끼를 막았고, 섬광처럼 내뻗은 흑철검이 시체 골렘의 몸을 절단했다.
“히이익! 벼, 별것도 아닌 놈이!”
오토도 시체 골렘 한 마리를 처리했다.
영웅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의 반열에 올라선 오토에게 시체 골렘은 충분히 제압 가능한 상대였다.
‘새끼. 잘하고 있군.’
아틸라는 파티창에 떠오른 동료들을 살폈다.
슈시아가 기절해 있었다.
‘벌써 바토리에게 당한 건가.’
이어 펀치와 도롱뇽이 기절했다.
‘빌어먹을 할망구.’
아틸라는 바토리가 자신을 방해하는 동료들을 차례로 쓰러뜨린 것이리라 생각했다.
바토리에겐 그 정도의 힘이 있다.
그 순간 세 마리의 시체 골렘이 한꺼번에 아틸라에게 달려들었다.
아틸라는 웃었다.
[ 휩쓸기 ]
퍼퍼펑!
세 마리 골렘의 복부가 일거에 터져 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골렘들도 아틸라에게 몰려왔다.
“네 이노오옴! 어딜 가는 거냐!”
오토가 놈들의 뒤를 쫓으며 강철검을 휘둘렀다.
그것에 맞은 골렘이 바닥에 엎어졌고, 용병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오토도 제법이잖아!”
“우와아아아!”
오토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물론 아틸라가 발현한 심판의 외침 덕분이라는 것을 오토는 몰랐다.
“근데 벨라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아틸라와 오토가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벨라라면 아까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후방으로 달려가던데?”
“뭐야. 설마 도망친 거야? 그 벨라가?”
“그럴 리가 있냐! 아까 보니 아틸라의 동료 마법사가 벨라를 공격하는 바람에 홧김에 복수하러 간 거 같더라고!”
뭐라고?
아틸라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티창을 살폈다.
바토리가 기절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카스피의 체력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설마!’
아틸라는 뒤돌아 달렸다.
“아, 아틸라 님! 갑자기 어딜 가는 거요!”
오토가 쫓으려 했지만 시체 골렘들이 달려들었다.
“힉! 히익! 나만 두고 가면 어쩌자는 거요! 아틸라 니이이임!”
오토의 목소리는 아틸라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사이 카스피의 체력은 더욱 줄었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슈시아, 펀치, 도롱뇽, 바토리가 차례로 기절했다.
이후 카스피의 체력이 급속도로 깎이고 있다.
즉, 카스피는 일행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거다.
대상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벨라.’
아틸라는 조금 당황했다.
벨라가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을 모조리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자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그곳엔 카스피도 있었다.’
카스피와 슈시아는 함께 움직였다.
다시 말해 벨라는 아틸라의 동료 다섯을 동시에 상대했고, 넷을 쓰러뜨렸다는 거다.
게다가 하나 남은 카스피도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 도약(跳躍) ]
아틸라의 몸이 지면을 밟고 솟구쳤다.
덕분에 그는 카스피와 벨라가 격돌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카스피의 몸은 붉은 귀기로 덮여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앞에서 동료 넷이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으니까.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한 카스피라면 고민도 하지 않고 귀살의 힘을 발현했을 것이다.
아틸라는 타점을 특정해 봤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한 번에 카스피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가능하다 해도, 충격파 때문에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였다.
시이이이잇!
아틸라는 덜미를 엄습하는 소음을 감각했다.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마력의 창날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 *
카스피의 사슬낫이 벨라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벨라는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그곳에서 사라졌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보며 카스피는 깨달았다.
벨라가 바토리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이유를.
‘벨라는 살수다.’
카스피는 지난번 제국을 찾았을 때 만났던 살수들을 떠올렸다.
‘시카리오.’
카스피는 시카리오 암살단과 싸운 일이 있다.
일행은 카잔 군주령의 도시 이스마라에서 자이언트 리자드 섬멸 작전에 참여했던 일이 있었고, 이후 도시를 떠나자마자 습격을 받았다.
습격자는 북부의 야만전사들과 시카리오 암살단이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플루토가 보낸 자들이었고, 당시 겨뤘던 시카리오의 우두머리는 상당한 강자였다.
카아앙!
기습하는 벨라의 검집을 카스피는 단검으로 막았다.
여전히 벨라는 검집에서 검을 뽑지 않았다.
표정에서도 여유가 흘렀다.
“제법인데? 꼬마.”
“왜 우리 일행을 공격하는 거지?”
벨라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날 먼저 공격한 건 저 마법사라고. 저렇게 기절시키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걸?”
카스피는 할 말이 없었다.
벨라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벨라가 바토리를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켰다는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스피는 카스피였다.
전후 관계가 어찌 됐든 카스피는 동료들의 편이었고, 벨라라는 저 여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카스피는 벨라와 전력으로 싸워 보고 싶다는 호승심을 느꼈다.
‘벨라는 강해.’
벨라는 바토리와 슈시아를 쓰러뜨렸다.
물론 바토리와 슈시아가 벨라와 정면 승부를 벌였다면 저렇게 어이없이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바토리는 카스피와 슈시아의 협공 탓에 벨라에게 완벽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슈시아도 바토리를 공격하던 중 벨라의 습격을 감지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벨라가 바토리와 슈시아를 눈 깜짝할 사이에 기절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카스피는 벨라의 실력이 자신보다 윗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발현했다.
화르르르……!
카스피의 몸에 귀기가 깃들었다.
벨라를 노려보는 두 개의 안구도 핏물처럼 변했다.
“호오.”
벨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카스피가 벨라에게 날아들었다.
귀기 발현으로 상승한 민첩성은 놀라웠다.
게다가 카스피는 단검이 아닌, 귀수를 꺼내 벨라를 공격했다.
카스피는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카스피는 벨라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카앙! 캉!
벨라는 검집을 들어 카스피의 귀수를 막았다.
그녀의 검은 여전히 검집 안에 있었다.
카스피가 내뱉었다.
“……너, 정체가 뭐야.”
“글쎄. 뭘까?”
“난 네 정체를 이미 짐작하고 있어. 넌 시카리오 암살단이지?”
벨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시카리오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물론. 이전에 놈들의 습격을 받은 일이 있으니까.”
“그랬군. 그래서 그때 녀석들은.”
“이번엔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지? 왜 우리 일행에게 접근하는 거냐고.”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먼저 공격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라니까?”
벨라가 눈짓으로 바토리를 가리켰다.
바토리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조차 없었다.
슈시아, 펀치, 도롱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카스피는 다시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 그런 건 몰라. 아무튼 넌 내 동료들을 공격했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 실력으론 무리야. 꼬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겐 아틸라가 있어. 아틸라는 강해. 머지않아 상황을 눈치챈 아틸라가 이곳으로 올 거고, 그때가 너의 마지막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