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42화 (342/425)

342. 케렌시아의 용병 (5)

아틸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강철바위의 무쇠도끼, 랄프 아이언액스.

하워드를 비롯한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국행을 결심했던 그가, 결국 제국으로의 잠입에 성공했던 것이다.

벨라가 이어 말했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군. 하지만 내게 검을 선물한 자의 이름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강철바위 드워프는 몇 명이나 있었지?”

“내가 본 건 넷이다. 원래는 더 있었던 것 같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하더군.”

나머진 북부로 올라오는 길에 사망한 건가.

어쨌든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 해도 맨몸으로 수해를 뚫고 제국에 도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히 남부 대륙 최강의 영웅들로 구성된 아틸라 일행조차 여러 차례 죽음의 그림자를 맛봐야 했으니까.

“랄프 아이언액스가 네게 검을 선물한 이유는?”

“내가 그에 상응하는 도움을 줬기 때문이겠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군.”

“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벨라가 여유 있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혹시 모르지. 너희가 보다 재미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 마음이 변할지도.”

벨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틸라는 더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혹여 벨라가 하워드 스틸숄더를 비롯한 강철바위의 대장장이들을 만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니면 하워드의 아들인 하콘이라도.’

아틸라가 강철바위 드워프의 행방을 쫓는 이유는 하워드가 지닌 ‘오르피나의 마지막 성물’ 때문이다.

다시 말해 랄프가 살아 있다는 것과, 그가 제국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아틸라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틸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벨라.”

“응? 이대로 가는 거야? 술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고.”

“궁금증은 해소했다. 어차피 더 물어봐야 말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흐음. 정말 그럴까?”

벨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스피가 긴장했다.

카스피는 벨라에게서 미지의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 빌어먹을 아니야! 귀기를 사용하면 내가 이긴다고!’

이어진 벨라의 말은 아틸라를 멈춰 서게 만들었다.

“넌 하워드 스틸숄더를 찾고 있는 건가?”

아틸라의 눈이 벨라를 돌아봤다.

벨라의 눈이 광대처럼 빛났다.

“내가 하워드 스틸숄더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아틸라는 물끄러미 벨라의 눈을 응시했다.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심안은 원작자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켰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글쎄. 난 네가 하워드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군.”

아틸라가 여관문을 열고 나갔다.

카스피와 펀치가 재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홀로 남은 벨라의 입술이 긴 호선을 그렸다.

* * *

레비아의 성으로 돌아온 아틸라는 동료들을 한데 모았다.

“흐응.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더냐.”

바토리는 레비아의 치유 덕분인지 안색이 제법 좋아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카스피가 레비아에게 감사를 표했고, 레비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 답했다.

아틸라가 레비아까지 한자리에 모이도록 한 이유는, 그녀에게 벨라에 대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벨라 타나토스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아틸라가 인상착의를 부연하자 그제서야 레비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월터 단장이 말했던 그 여자 말이로군. 그래. 상당한 실력자라는 말은 들었지.”

그러나 레비아가 아는 건 그 정도가 전부였다.

“혹 플루토라면 알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플루토는 이곳에 없었다.

오토가 말했다.

“아니 근데 살쾡이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도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게 사실이우?”

“저, 전력을 다하긴 누가 그래! 나, 난 내 실력의 반의반도 내보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하던 카스피가 흘끗 아틸라의 눈치를 보곤 정정했다.

“……뭐 반 정도는 발휘한 것 같지만.”

“그렇다 해도 놀랍군. 과연 제국은 넓고 강자는 많다는 건가.”

턱을 만지며 무언갈 생각하던 슈시아가 능청스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라면 분명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 거다.”

“야! 엘프!”

“그만들 하거라. 어찌 됐든 정말로 그 벨라라는 아이가 하워드의 소재를 알고 있다면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않느냐.”

바토리의 말에 다소 수그러진 카스피가 아틸라에게 물었다.

“근데 아틸라. 그 여자가 정말로 강철바위 왕의 행방을 알고 있을까?”

“글쎄.”

아틸라는 결국 벨라에게 심안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그녀가 했던 말의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틸라는 벨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 힘들었다.

자잘한 거짓은 있을지 몰라도, 하워드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그 말만은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벨라는 랄프에게 하워드의 행방을 알려 준 보답으로 검을 선물받았는지도 모른다.

‘혹은 하워드에게 직접 받았다거나.’

아틸라는 벨라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더 그곳에 머물러봐야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자리를 뜨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부탁할 것이 있다 레비아.”

“뭐지?”

“벨라에게 밀린 급료를 지불해 줬으면 좋겠군. 듣자 하니 벨라는 급료 문제만 처리된다면 이번 원정에도 참여할 생각인 것 같거든.”

“호오. 함께 전쟁을 치르며 친분을 쌓아 보겠다는 건가.”

“친분까지는 아니고.”

어차피 아틸라는 동부 전선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그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와중에, 벨라를 주시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의 소득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심안을 발현할 기회가 생길지도.’

그러면서 아틸라는 생각했다.

벨라는 자신의 심안을 간파했다.

바토리조차 희미하게 예상만 하고 있던 자신의 권능을, 벨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통찰력으로 꿰뚫어봤다.

‘아무래도 네겐 독심술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것 같거든.’

‘그 능력에 무언가 조건이 필요한 모양이지.’

‘이를테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네게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든지.’

벨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틸라는 정말로 심장이 죄는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마치 자신이 심안의 발현자가 아니라, 역으로 상대에게 심안을 당한 듯한 역겨운 기분마저 느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아틸라는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자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자신과 같은 핏줄을 지닌 샤를조차도 그런 능력은 없었다.

“아무튼 알겠다. 월터를 통해 벨라의 밀린 급료는 전달하기로 하지.”

“고맙구나 레비아.”

“저자의 부탁은 네 부탁이기도 하니까. 바토리.”

레비아가 친근하게 웃으며 바토리를 봤다.

바토리도 마주 웃으며 레비아를 봤다.

그 모습에 괜히 오토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크험! 험! 그럼 아틸라 님. 동부 전선엔 언제 참전이 가능한 거요?”

“바토리의 치유가 끝나는 대로.”

“그거라면 이미 끝났단다. 야만전사야.”

“끝났다고?”

“완치된 것은 아니다. 레비아의 마력으로도 나의 왼팔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핏빛 수해에게 당하기 전 정도까지는 회복한 것 같구나.”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고, 이젠 실행만이 남았다.

* * *

라이칸 용병단은 케렌시아를 떠났다.

레비아가 내준 기사단이 함께였다.

언젠가 케렌시아의 여관에서 아틸라를 체포하려 했던 기사대장도 그 안에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 아틸라.”

벨라가 말을 몰고 다가오며 말했다.

“그렇군.”

아틸라는 시큰둥하게 답했고, 카스피는 고양이처럼 경계심을 드러냈다.

바토리, 오토, 슈시아는 나름의 방식으로 벨라를 관찰했다.

바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연, 평범한 아이는 아니로구나.’

“갑자기 저 사기꾼 영감이 밀린 급료에 추가금까지 얹어서 주던데. 네 입김이라도 들어간 건가? 아틸라.”

“글쎄.”

“응? 뭐야뭐야. 뭐가 이렇게 차가워. 이거 하룻밤을 함께 보낼 수도 있었던 사이에, 동료들 옆이라고 너무 딱딱하게 구는 거 아니야?”

“뭐라?”

바토리의 목소리에 아틸라는 움찔했다.

그러나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벨라가 이어 말했다.

“꼬마를 먼저 보낸 뒤에 내 방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자고 했더니 네가 이렇게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었잖아.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하고 말이야.”

벨라는 아틸라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 냈다.

그 모습이 제법 아틸라와 비슷했기에, 오토는 아틸라와 바토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평소 큰 표정 변화가 없던 슈시아마저 쩌억 입을 벌리며 아틸라를 봤다.

바토리는 아틸라를 바라보다가, 카스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카스피는 애써 바토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흐응.”

바토리가 아틸라에게 말머리를 붙였다.

그러고는 한없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이게 다 무슨 말이더냐 야만전사야.”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틸라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답했다.

“뭐가.”

“저 벨라라는 아이가 하는 말 말이다. 사실이더냐.”

“오. 벌써 내 이름까지 동료들에게 알려 준 거야? 역시 그날 밤의 아쉬운 기억이 잊히지 않는 거야? 하하하하하!”

“넌 좀 닥치거라.”

바토리의 표정이 변했다.

직전까지의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벨라도 표정을 바꿨다.

그녀의 입술이 길게 찢어졌다.

“너, 죽고 싶니?”

퍼어어엉!

바토리의 왼팔이 붉게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카스피, 슈시아, 오토가 무기를 들었다.

벨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바토리의 왼손에 들린 화염을, 카스피의 단검을, 슈시아의 기다란 활을, 마지막으로 오토의 검과 방패를 봤다.

바토리가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널 잿개비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걸.”

벨라는 무기를 뽑지 않았다.

그럼에도 벨라에게서 뿜어지는 기감은 대단했다.

라이칸 용병단 일부가 말을 멈춰 세웠다.

이들은 행렬의 가장 후미에 있었기에, 앞서 움직이는 케렌시아의 기사단은 후방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이, 이보게 아틸라!”

용병단장 월터가 말을 달려왔다.

그는 벨라에게도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서릿발처럼 차가운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법을 거둬. 바토리.”

아틸라의 말에 바토리가 마법을 갈무리했다.

나머지 일행도 천천히 무기를 집어넣었다.

벨라의 얼굴이 히죽히죽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휴. 뭐야. 깜짝 놀랐잖아. 이대로 너희를 다 죽여야 하는 건가 걱정했다고.”

그 말에 슈시아의 눈썹이 꿈틀댔다.

벨라가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환영식 한번 거칠게 하는군! 이번 언데드 토벌은 지난번보다 더 재미있겠어! 하하하하!”

벨라가 말을 몰아 앞쪽으로 나아갔다.

멀어지는 벨라의 뒷모습을 일행이 눈으로 좇았다.

그중 가장 서늘한 눈을 뜬 건 바토리였다.

며칠이 지나 일행은 동부 전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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