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케렌시아의 용병 (4)
확신은 없었다.
다만 아틸라는 벨라의 검집에서 드워프의 손길을 느꼈다.
아틸라는 벌써 수년 동안 드워프 무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오토와 심심풀이 대련을 하며, 드워프제 무기가 맞부딪쳤을 때의 특별한 공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벨라의 검집과 흑철방패가 부닥쳤을 때 익숙한 공명을 감지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랐다.
비슷하지만 다른 공명.
마치 같은 기술을 사용했지만 재료나 방법에서 조금의 격차가 있는, 그런 류의 감각을 아틸라는 느꼈다.
그래서 아틸라는 벨라의 검이 강철바위 드워프의 물건이 아닌가 생각했다.
“강철바위 드워프?”
벨라의 눈썹이 들어 올려졌다.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갸웃하는 표정.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가 눈가를 좁혔다.
‘역시 모르는 건가.’
사실 벨라가 강철바위 드워프를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강철바위 드워프는, 아니 드워프라는 종족은 오직 남부 대륙에서만 존재한다.
게다가 제국으로 납치된 강철바위 대장장이들 역시, 은밀히 황도로 끌려갔을 것으로 아틸라는 추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평범한(사실 그리 평범해 보이진 않지만) 용병인 벨라는 강철바위 드워프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벨라의 무기가 강철바위 드워프의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청동바위 드워프의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긴 하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다.
청동바위 드워프는 황금바위 드워프와 마찬가지로 제국과 아무 접점이 없다.
게다가 청동바위산은 이제 아인하르트 제국 안에 있었다.
지난 전쟁에서 아틸라는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황금바위 드워프나 강철바위 드워프에 비해 작은 세력을 지닌 그들은 아마도 청동바위산 안에 꼭꼭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이어 가던 아틸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벨라의 입술이 표정을 바꿔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기 때문이다.
“제법인데? 아틸라.”
벨라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단 한 번 무기를 섞은 걸로 알아챌 줄이야. 이거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한 자였잖아?”
아틸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카스피가 외쳤다.
“뭐, 뭐야? 그럼 정말로 네 검이 강철바위 드워프의 것이라고?”
“그래. 꼬마.”
“사정을 듣고 싶군. 넌 어떻게 강철바위 드워프의 무기를 갖고 있는 거지?”
아틸라의 물음에 벨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왜 네 질문에 답을 해야 하지?”
“돈을 원하나?”
아틸라는 바토리를 통해 레비아를 압박해 상당량의 금화를 토해 내게 할 자신이 있었다.
혹은 그걸로 부족하다면 펀치의 인벤토리 속의 남부 대륙 금화를 녹여 금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었다.
화폐 단위는 달라도, 금이란 물건은 어느 곳에서나 귀한 가치를 지닌 법이다.
“글쎄. 난 물욕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급료를 내놓으라며 용병단원을 두들겨 팬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내 몫이었다. 게다가 원정에 한 번 더 나가면 난 그 이상의 돈도 벌 자신이 있거든. 그런 내가, 굳이 오늘 처음 만난 네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줘 가며 추가로 돈을 벌 이유가 어디에 있지?”
저렇게까지 말하니 아틸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틸라는 어떻게든 벨라에게 강철바위 드워프에 대한 것을 알아내야 했다.
‘어쩌면 벨라는 하워드 스틸숄더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틸라는 제국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샤다이 황제가 순순히 하워드를 만나게 해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엔 동맹 자체가 결렬될 수도 있다.
‘동맹을 실패하더라도, 오르피나의 마지막 성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어야 한다.’
샤를을 막으려면 바토리의 힘이 필수다.
오르피나의 성물을 모두 모아 바토리가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바토리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관조자가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바토리가 관조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녀의 파트너인 ‘리베르 파테르’도 관조자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바토리만큼은 아니지만, 리베르도 관조자 중에선 상당한 실력자에 속한다.
다가올 전쟁에서 그의 힘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벨라가 아틸라의 물음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자. 그러니까 오늘은 술이나 실컷 하고들 돌아가라고. 모처럼 와 주었으니 계산은 내가 하도록 하지.”
벨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면, 꼬마는 먼저 보내고 내 방에서 자고 갈 테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거 완전 미친 여자였잖아! 다, 당장 돌아가자 아틸라!”
카스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아틸라는 무심한 얼굴로 벨라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틸라의 한쪽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카스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벨라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푸념하듯 말했다.
“하아……, 미인으로 사는 것도 참 고달프다니까.”
그러고는 눈동자를 굴려 카스피를 봤다.
“그럼 꼬마. 먼저 돌아갈래?”
“저,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 누, 누가 갈 줄 알고?”
“하하하하하하!”
벨라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한동안 배를 잡고 낄낄대던 벨라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농담이라고, 농담. 뭐, 꼬마에겐 좀 자극이 셌나?”
“자, 자극은 무슨! 나도 알 건 다 알거든?”
“뭘 원하지? 벨라.”
아틸라의 물음에 벨라가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희는 참 재미있는 일행인 것 같군.”
“넌 강철바위 드워프를 만난 건가?”
“은근슬쩍 물어보는 거야?”
“그 검은 언제 손에 넣었지?”
“이런이런. 그렇게 질문을 퍼부으면 더 대답하고 싶지 않아진다고.”
“말로 안 된다면 폭력을 사용할 용의도 있다.”
아틸라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위협적이었다.
물론 아틸라는 가급적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말한 건, 벨라의 주의를 보다 확실하게 이쪽으로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목적은 분명했다.
아틸라는 이곳에 들어온 이후 지속적으로 벨라에게 심안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 ]
벨라에겐 여전히 심안이 통하지 않았다.
[ 심안은 원작자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켰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빌어먹을.’
저 메시지가 뜨는 이유는 하나.
말 그대로 자신의 세계와 벨라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거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벨라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이런 감각은 에단 트라쿠스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결국 에단에게 심안을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었다.
‘무력으로 제압하는 건 의미가 없다. 녀석은 힘으로 누른들 쉽게 사실을 말할 타입이 아냐.’
확신할 순 없지만 아틸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벨라의 저 검은 강철바위 드워프의 물건이 아닐 수도 있다.
벨라는 그저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론은, 아틸라가 답을 알아내려면 심안을 발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흐음, 폭력이라.”
팔짱을 낀 채 허공을 향해 몇 번 눈을 깜빡이던 벨라가 아틸라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녀의 입가가 귀에 걸릴 듯이 찢어졌다.
“가능할 것 같아?”
“물론.”
“그런데 왜 직접 부닥치지 않고 뒤에서 계속 수작을 부리는 거지?”
그 순간 아틸라는 아주 뾰족하고 가느다란 송곳이 은밀히 심장을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뭐라고?”
“아무래도 네겐 ‘독심술(讀心術)’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것 같거든.”
아틸라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침착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군.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다면 구태여 이렇게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난 네가 원하는 만큼 금화를 지불할 용의도 있었다.”
“그 능력에 무언가 조건이 필요한 모양이지.”
벨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를테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네게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든지.”
“카스피의 말대로군. 넌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다.”
“그, 그치 아틸라?”
카스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벨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틸라. 난 네가 일부러 날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고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야.”
“근거 없는 말이로군.”
“그래서 넌 꼬마를 먼저 보내자는 내 터무니없는 제안에도 긍정했던 거야. 꼬마가 없는 편이 날 더욱 네게 집중시킬 수 있을 테니까.”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난 그런 대단한 힘을 지닌 자를 만나본 적도 없거든.”
“물론 인간을 포함한 평범한 지성 종족 중엔 없을지도 모르지.”
벨라는 아틸라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주로 카스피와 펀치를 향했다.
“하지만 아틸라.”
벨라의 눈이 순간 무서울 정도로 아틸라를 노려봤다.
“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면?”
카앙!
벨라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벨라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그곳엔 살기 어린 얼굴로 단검을 내뻗은 카스피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스피가 단검을 뻗어 벨라를 공격했고, 벨라는 검집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벨라의 눈에도 살기가 담겼다.
“이봐. 꼬마.”
“너, 너 정체가 뭐야……!”
카스피는 벨라에게서 위험을 감지했다.
‘네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면?’
벨라는 아틸라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카스피는 저도 모르게 단검을 뻗었다.
아틸라가 무심한 눈으로 벨라를 보며 말했다.
“그만둬라. 카스피.”
“하, 하지만 아틸라……!”
“그만둬.”
“이잇……!”
카스피가 단검을 거두었다.
벨라도 살기를 풀며 검을 갈무리했다.
“잘 생각했어. 꼬마.”
벨라가 카스피를 향해 싱긋 웃었다.
수 시간 전 월터가 있던 여관에서 보였던 것처럼 푸근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러나 카스피의 눈에 비친 그 미소는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단검과 검집의 접촉은 찰나였지만, 카스피의 등에선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야.’
단검을 타고 전해지는 벨라의 기감(氣感)은 대단했다.
아틸라나 바토리와는 다른 종류의 강함이 느껴졌다.
“뭐, 이렇게까지 날 재미있게 해 줬으니, 나름의 보답은 하도록 하지.”
벨라가 말했고, 아틸라가 되물었다.
“보답?”
“이 검은 강철바위 드워프에게서 받은 것이 맞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아틸라 역시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그자의 이름을 알고 있나.”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해?”
“말해 주었으면 좋겠군.”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을 알아야만 벨라의 말의 진위 여부를 보다 확실히 특정할 수 있다.
“흠. 말을 해 줄까 말까.”
허공을 응시하던 벨라가 눈동자만을 내려 아틸라를 내려 봤다.
그 눈엔 의미를 알 수 없는 흥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벨라의 붉은 입술이 익숙한 이름을 읊었다.
“랄프 아이언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