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40화 (340/425)

340. 케렌시아의 용병 (3)

“아흔여섯 마리?”

아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투 여건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모르나, 그 정도면 남부 대륙의 영웅급 인물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나, 나도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카스피가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그 말대로 카스피에겐 그럴 실력이 있다.

물론 언데드가 어떤 녀석이었느냐에 따라 난이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파우스트의 사령술사 할리가 소환했던 스켈레톤 정도라면, 정말로 카스피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틸라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언데드는 쉽게 죽지 않을 텐데. 벨라에겐 언데드를 처치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는 건가?”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벨라가 사용하는 검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거든.”

아틸라는 벨라의 검을 떠올렸다.

검집을 벗기지 않고 싸웠기에, 아틸라는 벨라의 검날을 보지는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검집도 보통의 물건은 아니었다는 거다.

‘내 방패 공격을 막고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었지.’

아틸라의 흑철방패는 황금바위산 최고의 대장장이인 골든핑거의 정수가 담긴 물건이다.

그런데 벨라의 검집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게다가 방패와 검집이 부닥쳤을 때의 그 느낌은.

‘설마.’

아틸라의 머릿속에 강철바위 드워프들이 그려졌다.

강철바위의 왕이자 대장장이인 하워드 스틸숄더는 골든핑거를 웃도는 실력의 장인이다.

그러나 하워드는 제국의 용기사에게 납치당했다.

아틸라는 문득 랄프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넌 어찌할 셈인가. 랄프.’

‘일단은 부상자를 돌본다. 최대한 성을 복구하고, 부상자들이 회복하는 대로 북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제국을 칠 생각인가.’

‘목적은 제국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워드와 대장장이들을 구출하려면 전투는 피할 수 없겠지.’

랄프는 강철바위 대장장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국으로 향하려 했다.

그는 아틸라에게도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아틸라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지만, 이후 의도치 않게 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남부로 돌아오며 아틸라는 강철바위성에 들렀다.

강철바위성은 텅 비어 있었다.

제국의 목표였던 ‘스테로페스의 모루와 망치’도 보이지 않았다.

아틸라는 랄프가 북부 제국을 목표로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벨라는 평소 검집에서 검을 꺼내는 일이 없네.”

월터의 목소리가 아틸라의 상념을 깨웠다.

“그러나 언데드를 사냥할 땐 예외지. 벨라의 검술이 너무도 빨라 나도 제대로 본 적은 없네만,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하네. 벨라의 검엔 불꽃의 힘이 담겨 있어.”

“불꽃이라고?”

“그렇네. 벨라의 검에 당한 언데드들은 모두 크고 작은 화마에 휩싸여 죽더군. 벨라가 증거 삼아 가져온 언데드 머리의 절단면 역시 불에 지져진 것처럼 녹아 있었네.”

이프리트의 반지처럼 화속성 아이템이라도 갖고 있는 건가, 아틸라는 생각했다.

어쩌면 검 자체가 불의 마력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빙속성의 서리검처럼.’

다른 가능성은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에게 마법 부여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

‘제국은 넓다. 제롬 정도의, 혹은 그 이상의 마법사가 있다 해도 놀라울 건 없지.’

“벨라도 이번에 함께 전선을 향하는 것 같던데. 맞나?”

“그러고 싶네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급료를 전부 지불하지 못했거든.”

“벨라에게 줄 급료가 아무리 많다 해도 용병단은 의뢰주에게 그 이상을 받을 텐데.”

정곡을 찔린 월터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부끄러운 말이네만 지난 원정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에 들뜬 나머지, 용병 놈들과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거든. 그러다 그만 동전 주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네.”

후우……, 월터가 긴 한숨을 뱉었다.

“우린 지난 원정에서 언데드들을 보자마자 죽음을 직감했네. 말로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엔 가히 형용할 수 없는 차이가 있더군. 라이칸 용병단이 최소한의 희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엔 솔직히 벨라의 힘이 컸네. 그래서 우리도 실은 어떻게든 벨라를 데려가고 싶은 상황이지. 그 정도 실력을 지닌 용병은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불할 동전이 부족하다, 이건가.”

“그 말대로네.”

고개를 끄덕이던 월터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틸라, 자네도 보통내기는 아니더군. 벨라가 그렇게 고꾸라지는 모습은 처음 봤어. 레비아 영주께서 하신 말씀도 있고, 뭐, 잘 부탁하네.”

벨라가 이번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해도 아틸라가 있다, 월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틸라는 벨라에게 흥미가 갔다.

그래서 월터에게 물었다.

“벨라의 숙소가 어딘지 알고 싶군.”

* * *

해는 저물어 흐릿한 달이 떠올라 있었다.

여관을 나선 아틸라는 월터가 일러 준 벨라의 숙소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카스피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틸라. 정말 그 여자를 만나러 갈 거야?”

“왜. 싫어?”

“응. 난 싫어. 그게 그렇잖아. 우리 일행은 이미 강하다고. 아틸라에, 바토리에, 조금 미덥지 않긴 하지만 영주 나리도 있고, 그리고 나도 있잖아. ……뭐, 슈시아도 있고.”

“그래도 슈시아를 끼워 주긴 하는군.”

“나도 공과 사를 구분할 줄은 안다고. 물론 슈시아가 조금 밉상이긴 하지만, 그리고 다시 만난 날 알아보지 못하긴 했지만……, 그, 그래도 동료라는 인식은 분명히 하고 있어.”

“다시 만난 널 알아보지 못했다고?”

아틸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카스피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아, 아니! 그런 게 있어! 벼, 별건 아니고…….”

아틸라는 카스피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그래서 저렇게 꽁해 있던 건가.’

카스피는 25살이 되었지만 하는 행동은 여전히 소녀 같았다.

아니, 행동뿐 아니라 카스피는 그냥 정신연령이 어렸다.

정신연령이 어린 건 오토 또한 마찬가지지만, 둘에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오토는 원래 지금 같은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의 바보 같은 모습은 그가 오랜 시간 도망자 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터득한, 이른바 ‘가면’ 같은 것.

‘실상 오토 녀석은 그 가면이 자신의 본모습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오토는 가면을 벗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오토가 왕의 자리를 극구 마다하며 아틸라 일행을 따라다니는 것엔 그 이유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오토가 가면을 벗은 모습을 봤다.

나바라의 왕자로서 전쟁을 지휘하고, 마침내 왕좌를 차지할 때까지 그가 보였던 행보는 그야말로 왕의 것이었다.

아틸라는 언젠가 오토가 가면을 벗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아, 아무튼 우리 일행은 강하잖아 아틸라. 그러니까 굳이 그 여자를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난 벨라를 일행에 끼워 넣으려는 게 아니야.”

“응? 아니야?”

카스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표정을 풀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왜 만나려는 건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카스피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데? 뭘 물어보려고?”

아틸라는 물끄러미 카스피를 내려 봤다.

카스피의 키는 늘씬하게 큰 편이었지만 아틸라는 그 이상으로 컸기에, 그는 늘 카스피를 이렇게 내려다봤다.

‘……초등학생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걸까.’

아틸라가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자 카스피는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시선을 괜히 좌우로 굴리다가, 종래엔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뭘 그렇게 봐. 부, 부끄럽게. 헤헤.”

카스피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차가운 기운이 풍기는 인상이었다.

늘씬하게 균형 잡힌 몸매는 마치 육상 선수를 떠오르게 했다.

‘잘 달리는 표범 같기도 하고.’

그런 외형의 소유자가 저런 아이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틸라는 새삼 신기했다.

지금껏 아틸라는 카스피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둘이서만 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자니, 카스피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울러 그건 바토리에게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 마음이 아틸라의 얼굴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카스피가 눈을 동글게 뜨며 그런 아틸라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으응? 조금 전에 만났던 곰 인간과 꼬마잖아?”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틸라와 카스피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선명하게 변한 달빛 아래, 벨라가 술병을 기울이며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아틸라는 당황했다.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펀치가 털을 곤두세우며 끼아옹! 울었다.

“어이쿠, 진짜 곰도 있었네. 자식, 성질머리하고는. 제 주인을 쏙 빼닮았나 보구나. 하하하하!”

“벨라.”

“뭐야. 그렇게 은근한 목소리로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아틸라.”

벨라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시원스레 웃었다.

카스피가 발끈했다.

“너, 너 그거 어차피 본명 아니라며!”

“그렇긴 해도 지금은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응? 뭐야 꼬마. 너 혹시 저 곰 인간을 흠모하고 있는 거야?”

“뭐, 뭐라는 거야!”

단검을 뽑아드는 카스피를 아틸라가 제지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호오. 나랑? 단둘이서? 이런 야밤에? 미리 말해 두겠지만 난 웬만한 남자에겐 만족하지 못한다고.”

벨라가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핥았다.

카스피가 기겁하며 외쳤다.

“너, 너너너, 넌 또 무슨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

“단둘이서는 아니다.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면 돌아가지.”

아틸라 역시 벨라의 행동과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았다.

벨라가 양손바닥을 내밀어 흔들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이라고, 농담. 마침 술 상대가 필요하기도 했고.”

벨라가 날렵한 발놀림으로 앞장섰다.

그러고는 눈앞의 여관문을 벌컥 열었다.

“그렇게 됐으니, 부디.”

과장된 동작으로 아틸라에게 손짓한 벨라가 안으로 들어갔다.

아틸라와 카스피도 여관으로 들어갔다.

묘하게도 식당엔 손님이 없었고, 주인 없는 자리엔 화려한 술상이 펼쳐져 있었다.

미끄러지듯 그곳으로 이동한 벨라가 털썩 자리에 앉아 술병을 들이켰다.

아틸라도 피식 웃으며 벨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마치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던 듯하군.”

“확신은 없었어. 다만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했지.”

“이유는?”

“난 미인이니까.”

푸학! 카스피가 술을 뿜었다.

아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벨라를 봤다.

카스피와 달리 아틸라는 아직 술과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뭐야. 그 덩치를 하고선 어울리지 않게 세심한 거야? 독 같은 건 들어 있지 않다고.”

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카스피가 아틸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틸라는 눈앞의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는 물었다.

“네 검은 강철바위 드워프가 만든 물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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