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9화 (339/425)

339. 케렌시아의 용병 (2)

여자가 등 뒤에서 검을 뽑았다.

일반적인 검이라기엔 짧고 단검이라기엔 다소 긴, 그런 어중간한 길이의 검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자가 검집째로 검을 쥐었다는 것이다.

한 손에 검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론 술을 들이켜는 여자의 모습은 무방비했다.

그러나 그 안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아틸라는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재미있군, 아틸라는 생각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전투를 벌일 생각 또한 없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난 저들과 한패가 아니다.”

“한패가 아니라고?”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으며 여자가 물었다.

여자는 제법 술을 마셨는지 흐릿한 눈으로 아틸라의 면모를 살폈다.

그때 아틸라를 알아본 용병단장이 눈치 없게 아는 척을 했다.

“……이, 이보게 아틸라! 나 좀 도와주게!”

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하여간 사내들이란.”

여자가 아틸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카스피가 속삭였다.

“여긴 내게 맡겨, 아틸라.”

아틸라는 그러기로 했다.

여자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일개 용병일 뿐, 카스피의 상대는 될 수 없다.

아틸라가 용병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확인한 여자가 아틸라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둘 줄 알고?”

카스피가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스피의 손엔 단검이 쥐여 있었다.

여관 식당은 그리 비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실내에선 사거리가 긴 사슬낫보다 단검의 효율이 좋았다.

‘괜히 용병 아저씨들한테 불씨가 튈 수도 있으니까.’

“하하하! 저 널브러진 사내들을 보고도 내게 덤비려는 건가? 꼬마!”

“뭐, 뭐, 뭐? 꼬마?”

카스피가 발끈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상대를 죽일 생각은 없다.

적당히 상처만 남겨 물러나게 할 셈이었다.

‘뭐야? 꼬마라니. 자기도 그리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여자의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래서 카스피는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귀기의 힘은 조금도 빌리지 않았지만 카스피의 검세는 매서웠다.

평범한 용병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

부웅.

그러나 카스피의 단검은 여자를 타격하지 못했다.

카스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적중했어야 할 일격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을 보이며 카스피의 공격을 피했다.

‘뭐, 뭐야? 방금의 움직임은……?’

카스피는 여자를 노려봤다.

여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 풀어진 얼굴이었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우연으로 피한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카스피는 다시 단검을 뻗었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카스피가 내뻗는 공격을 모조리 회피했다.

“제법이구나 꼬마야. 하하하하하!”

카스피는 귀기를 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아틸라는 카스피에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귀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정도가 끝인가? 꼬마.”

여자가 히죽히죽 웃었다.

“그럼 이번엔 이쪽에서 간다.”

파카아앙!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스피는 눈앞에서 터지는 불꽃을 봤다.

어느새 카스피의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카스피는 당황했다.

조금 전, 여자의 검집이 휘둘린 것 같았다.

그래서 카스피는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고, 이어 매서운 충격이 단검에 가해졌다.

그 결과로 카스피는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잇……!’

멀어지던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여자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히죽대며 웃는 여자의 붉은 입술을 보며, 카스피는 처음으로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이대론 안 되겠어……!’

카스피는 귀기를 발현하려 했다.

그때 여자의 측면으로 난입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아틸라였다.

“아틸라!”

퍼어어어엉!

여자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벽면에 꽂혔다.

아틸라는 여자를 추격하며 돌진했고, 그 와중에 카스피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귀기를 발현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흐윽……! 뭐야 갑자기…….”

여자가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아틸라를 보며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헉!”

콰아앙!

아틸라의 흑철방패가 벽면을 후려쳤다.

여자는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해 그것을 피했다.

아틸라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벽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건물 밖에선 사람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관을 보고 있었다.

“이거 완전 곰 같은 사내잖아! 하하하하!”

그 와중에도 여자는 술병을 들이켜며 웃었다.

아틸라가 살기 어린 눈으로 여자를 노려봤다.

“누구냐. 넌.”

“글쎄. 갖고 있는 이름이 워낙 많아서.”

“내 이름은 아틸라다.”

아틸라는 여자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강한 공격을 가한 뒤, 대화를 유도했다.

심안을 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그러지 않아도 저 사기꾼 영감과 꼬마가 그렇게 부르더군.”

“사기꾼 영감?”

“몰랐던 거야? 저 빌어먹을 사기꾼 용병단장이 내 급료를 후려치려 했다고. 이게 말이나 돼? 내가 그런 꼴을 보려고 그 괴물 같은 언데드 놈들과 싸운 줄 알아?”

아틸라는 용병단장을 돌아봤다.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꼴이, 여자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더욱 의기양양해진 여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틸라라고 했나? 그래. 넌 제법 강한 사내인 것 같군. 저런 사기꾼과 어울리기엔 아까운 솜씨야.”

여자는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그러나 남은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여자는 아쉬운 얼굴로 휙 술병을 던졌다.

날아간 빈 병은 용병단장의 이마에 적중했고, 용병단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혼절했다.

“내 이름은 벨라. 벨라 타나토스.”

“네가 갖고 있다는 여러 이름 중 하나겠군.”

“물론 그렇지. 그런데 뭐야. 난 풀 네임을 밝혔는데 넌 그냥 아틸라인 거야?”

“어차피 본명도 아니지 않나?”

“하하하하. 들켜 버렸네.”

벨라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웃는 얼굴이 시원스러운 여자였다.

“무슨 일인지 사기꾼 영감도 기절해 버렸고. 뭐, 밀린 급료는 나중에 받아야겠어.”

“제 손으로 기절시켜 놓고 잘도 말하는군, 벨라.”

“으응? 뭐야 갑자기. 그렇게 은근하게 이름을 부르면 내가 넘어가기라도 할까 봐? 하하하하.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라고.”

아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벨라의 화법이 영 못마땅하기도 했고, 더 큰 이유는 심안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쉬이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 같군. 그래서인가. 심안이 먹히지 않는 것은.’

“이봐 꼬마.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그러다 정말 큰코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벨라의 빈틈을 노리며 접근하던 카스피가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카스피는 방금, 히죽히죽 웃는 벨라의 눈빛에서 첨예한 살기를 감각했다.

‘도, 도대체 뭐지? 저 여자는…….’

“꼬마. 이름이 뭐지?”

카스피는 잠시 머뭇했지만, 이내 아틸라도 이름을 밝혔다는 것을 상기했다.

“……카스피. 카스피 앗 딘.”

벨라의 눈이 조금 전과 달리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표정 변화가 많은 여자였다.

“아무튼 너희도 라이칸 용병단에 속해 전쟁에 나갈 생각이라면, 조만간 다시 마주할 수 있겠지.”

벨라가 날렵한 발놀림으로 용병단장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들며 말했다.

“다음번엔 어떻게든 내 급료 마련해 놓으라고. 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영감 차례잖아. 안 그래?”

대답 없는 용병단장을 보며 벨라가 입가를 올렸다.

그러고는 여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 * *

기왕 이렇게 된 거, 용병단장이 깨어날 때까지 아틸라는 술을 마시기로 했다.

조금 전 벨라가 마시던 술이 무척 맛있어 보인 이유도 있었다.

과연 이곳의 술은 맛있었다.

여관 주인이 조심스레 다가와 무너진 벽의 변상을 요구했다.

아틸라는 레비아 영주가 해결해 줄 거라 답했다.

“근데 아틸라. 그 벨라라는 여자의 정체는 뭐였을까.”

카스피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마구 술을 들이켰다.

“용병단장이 깨어나면 알 수 있겠지.”

아틸라는 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용병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들 역시 아틸라가 보통내기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군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귀기를 사용했으면 내가 이겼을 거야.”

“그래. 그랬겠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귀기를 발현한 카스피는 아틸라조차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남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카스피를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은 몇 명이 채 되지 않겠지.’

그 정도로 카스피는 엄청난 강자였다.

다만 아틸라는 제국에 어떤 강자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금 전에 만난 벨라라는 여자도 그랬다.

아틸라는 결국 그녀에게 심안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또한 벨라가 제 실력을 전부 내보였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검을 검집에서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아틸라는 벨라를 기습했을 때를 떠올렸다.

카스피가 위기에 빠진 것을 파악하자마자 아틸라는 벨라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벨라는 검집을 들어 아틸라의 방패 공격을 막았다.

그 순간 벨라가 보였던 눈빛은 술에 취한 것도, 상대에게 방심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아마도 벨라가 본연에 가까운 실력을 드러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분명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귀기를 발현한 카스피가 벨라에게 질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머지않아 용병단장이 깨어났다.

그의 이름은 월터였다.

“……이거 추한 꼴을 보이고 말았군.”

월터가 이마를 매만지며 아틸라와 카스피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아틸라가 물었다.

“벨라라는 여자가 한 말은 사실인가? 급료를 떼였다던데.”

“후……. 그게 사실이긴 한데, 내게도 억울한 사정이 있네.”

월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벨라를 만난 건 두어 달 전의 일이었네. 우리 라이칸 용병단은 당시 시작된 언데드와의 전쟁에서 한밑천 크게 잡아볼 생각이었고, 그래서 우수한 용병들을 추가 모집하고 있었지. 그러던 중 벨라가 날 찾아온 거네.”

벨라의 첫인상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언데드와 싸우긴 무리겠군.’

입단을 거절하는 월터에게 벨라는 재밌는 제안을 했다.

정해진 급료를 받고 싸우는 것이 아닌, 쓰러뜨린 언데드의 수에 따라 보수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뭐, 일반적인 전쟁이었다면 종종 있을 법한 제안이었지.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언데드였네. 놈들은 쉽게 죽지 않아. 게다가 벨라가 제시한 보수는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었네.”

월터는 알고 있었다.

당시 동부 전선에선 숙련된 용병 하나가 언데드 두어 마리 죽이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월터는 벨라의 제안을 수락했다.

벨라가 한 마리의 언데드도 죽이지 못한다 해도 급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조금도 손해 볼 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벨라는 당신의 생각을 뛰어넘었던 건가.”

후우, 한숨을 내뱉은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전쟁에서 벨라는 아흔여섯 마리의 언데드를 처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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