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5화 (335/425)

335. 아틸라가 시켰느냐

해방 스킬을 사용한 도롱뇽은 강했다.

도롱뇽은 비록 한 번이지만 완전체로 돌아간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은 도롱뇽의 해방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그런 도롱뇽이 핏빛 수해를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파드드드드드드!

수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소멸되지는 않았고, 그래서 도롱뇽은 브레스를 쏘며 점점 관문 쪽으로 물러났다.

오토와 카스피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물러서! 아벨!”

아틸라의 외침에 아벨이 정신을 차렸다.

그가 카르노피아와 함께 더 높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힉! 으힉!”

오토는 카스피와 함께 도주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깨달았다.

제국의 관문 요새가 가까워질 무렵까지 요롱이는 일행과 함께했다.

요롱이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게다가 저 핏빛 수해와 몬스터들은 오직 도롱뇽과 카르노피아만을 공격 대상으로 인지하는 듯했다.

오토의 눈이 빛났다.

요롱이를 불러내려면 지금이 기회다.

휘이이잉.

오토가 정신 감응을 시도하자마자 요롱이가 날아왔다.

눈치 좋은 요롱이는 수해의 위협에 주의하며 오토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요롱이를 보자마자 오토가 반색했다.

“여기다! 여기다 요롱아아아아!”

근접한 요롱이의 등 위로 오토와 카스피가 올라탔다.

그러고는 관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았다.

오토의 짐작대로였다.

핏빛 수해와 몬스터들은 요롱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히히히! 살아 있었구나 요롱아!”

오토는 관문 요새로 오는 내내 요롱이를 걱정했다.

일행과 떨어져 있는 동안 심층부 수해의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외곽부 몬스터는 날아올라 피하면 그만이지만, 심층부 놈들에겐 통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바토리는 홀로 남을 요롱이에게 수 겹의 잡기술을 시전해 최대한 기척을 지웠다.

그 덕분인지 요롱이는 무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일행과 만났다.

“헤헤. 요롱이가 무사한 게 그렇게 좋아? 영주 나리.”

“그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는 거요! 헤헤헤.”

“근데 저길 봐. 제국 병사들, 완전 넋이 나갔어.”

관문 요새를 가리키며 카스피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병사들은 거의 혼백이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그들은 오늘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조우한 남부의 인간들.

게다가 그 남부의 인간들은 오우거를 포함한 수해 외곽부 몬스터를 때려잡았고.

이어 등장한 심층부 몬스터마저 목을 벤 뒤, 이제는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를 저 핏빛의 수해와 격돌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핏빛 수해와 전투하는 존재는 두 마리의 드래곤이었다.

“드, 드래곤 마스터……?”

“레드 드래곤이다! 레드 드래곤의 마스터께서 오셨어!”

병사들은 드래곤과 드래곤 마스터를 처음 보았다.

더 놀라운 건 레드 드래곤을 보호하듯 브레스를 내뿜는 블랙 드래곤의 존재였다.

병사들은 블랙 드래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심지어 블랙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는 자는 남부에서 온 ‘인간 몬스터’였다.

“남부 대륙에도 드래곤 마스터가 있었단 말인가……!”

“또 하나의 남부 전사는 암피테르의 용기사다!”

“그, 그런데 저렇게 큰 암피테르가 있다고……?”

병사들의 말대로 요롱이는 보통의 암피테르보다 덩치가 컸다.

요롱이는 오토와 페어링하며 ‘진화(進化)’의 단계를 밟았다.

죽기 전의 세베스티아가 감지했듯, 오토가 지닌 용인의 힘이 ‘성장형(成長型)’이기 때문이었다.

오토와 카스피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틸라와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은 여전히 브레스를 뿜고 있었고, 아벨과 아틸라는 수해와 몬스터들을 향해 검기를 뻗었다.

팟파앙! 파아아앙!

아벨은 카르노피아의 용기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기를 깨우쳤다.

용족과의 동조율이 높은 그는 에단 못지않게 강력한 검기를 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틸라의 검기는 그보다 강했다.

도롱뇽의 해방이 더욱 강력해지고, 그에 따라 드라칼리온도 보다 완전체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틸라 본인이 성장한 이유가 가장 컸다.

‘수해의 핏빛이 옅어지고 있다.’

아틸라는 수해의 변화를 감지했다.

핏빛이었던 수해가 점차 심층부의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데미지가 누적됐기 때문인가. 아니면 수해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수해의 빛이 변하는 중이라는 것이고, 그럴수록 약해지고 있으며, 덩치 또한 작아진다는 거였다.

아틸라는 의문을 느꼈다.

얼마 전 서리나무숲으로 통하는 틈새는 수해로 뒤덮였다.

점점 진행되는 대격변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국경의 관문’을 지나 제국의 ‘관문 요새’로 오며 아틸라는,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이 통로가 상당히 인위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고속도로를 뚫어 놓은 것처럼.’

전투는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카르노피아가 두 번째 브레스를 발현할 무렵 수해는 후퇴를 결정했다.

남부 대륙과 북부 대륙을 잇는 긴 통로를 침범했던 수해는 자신의 영역으로 모습을 감췄다.

모든 몬스터의 시체를 삼키고 떠났기에, 남은 흔적은 무너진 성루와 성벽뿐이었다.

* * *

달마저 모습을 감춘 어두운 밤, 모닥불이 타올랐다.

모닥불 앞엔 다섯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엘프가 둥글게 모여앉아 있었다.

그들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들짐승으로 요기를 했고, 그러는 동안 살얼음 같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아틸라. 네 말은 에단과 세베스티아가 먼저 너를 공격했다는 건가.”

아벨이 확인하듯 물었다.

아틸라가 답했다.

“그렇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아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수개월 전, 실패로 끝난 암피테르 용기사들의 임무 중 아틸라를 만났다.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에단 트라쿠스와 세베스티아를 죽인 이유가 뭐지?’

‘그들이 먼저 날 공격했다. 그래서 나와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죽였다.’

카르노피아 역시 비슷하게 말했었기에, 아벨은 아틸라의 정당방위를 믿었다.

다만 이야기를 시작할 서두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벨은 짧지만 강렬했던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반추했다.

‘아틸라. 넌 제국의 적인가.’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훗날 제국이 남부를 침략한다면, 난 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 될 것이다.’

그 말은 아벨을 크게 놀라게 했다.

아틸라는 남부의 인간이었다.

게다가 아틸라가 제국에 발을 들이게 된 건, 남부 대륙을 향한 제국의 특별한 작전 때문이었다.

‘제국의 용기사들은 스테로페스의 감옥과 강철바위성을 침공했다. 그 탓에 수해는 변화했고, 때마침 그곳에 있던 나와 동료들을 북쪽으로 이동하도록 강제했다.’

그리고 그 일엔 아벨 또한 크게 연루되어 있다.

“다시 묻겠다 아틸라. 넌 제국의 적인가.”

“아니다.”

아벨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지난번과 달리, 아틸라는 확정적으로 부정의 의사를 표했다.

“그렇다면 제국을 다시 찾은 이유가 뭐지? 그날 난 분명히 말했었다. 날 다시 마주한다면, 네 가장 강력한 적이 되어있을 거라고.”

“남부와 제국은 힘을 합쳐야 한다.”

“제국은 남부의 힘이 필요치 않다.”

“지금의 남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너 또한 알고 있겠지. 수개월 전 벌어진 남동쪽 수해의 이변을.”

아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수해의 이상 현상은 남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남부의 하늘에 ‘균열’이 생성됐고, 강대한 마력 폭풍을 흡수한 균열이 수해를 공격했다. 다시 말해 남부와 북부를 잇는 제2의 통로가 생성됐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 언데드 군단은.”

“역시 제국엔 언데드의 침공이 있었군.”

“놈들에 대해 알고 있나?”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잘 알고 있지.”

아틸라는 대악마의 힘을 각성한 샤를과, 그의 부하가 된 카르타고, 그리고 언데드 군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일행들만 알고 있는 은밀한 이야기는 배제한 채, 제국과의 동맹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했다.

‘아벨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아틸라는 자신의 말을 믿어 줄 자가 필요했다.

또한 그자가 제국에서 나름의 힘을 지닌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벨은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다.

“……놀라운 이야기로군. 하지만 아틸라. 네 말엔 근거가 부족하다.”

아벨은 알고 있었다.

동부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언데드뿐이다.

대악마의 현신이 된 남부 제국의 왕이나, 그가 이끄는 정예 기사단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황실 마법사들은 언데드들이 수해에서 자연발생했을 거라 생각했다.

“내 말은 사실이다. 아벨.”

아틸라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벨의 눈이 물끄러미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벨은 아틸라를 믿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틸라를 믿는 것과 아틸라의 이야기를 상부에 전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벨은 드래곤 마스터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심지어 전임자였던 에단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아벨은 에단을 죽인 자가 아틸라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군. 아벨.’

아틸라는 아까 전부터 심안을 통해 아벨을 보고 있었다.

드래곤 마스터가 되며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지만, 아벨은 여전히 아틸라가 알던 바르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신중한 성격도 여전하고.’

아틸라는 아벨이 현 상황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하는 것을 봤다.

그럴 때마다 아틸라는 아벨의 입이 열릴 때까지 느긋이 기다렸다.

아벨이 직접 육성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틸라는 그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벨은 내게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

아틸라는 고개 돌려 바토리를 봤다.

왼팔의 문신에서 피를 쏟았던 바토리는 아직 해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토리는 위기에 빠진 아틸라를 구하기 위해 왼팔의 마력을 발현하려 했다.

‘야만전사야!’

그런데 그 순간 몸 안에서 충돌이 일며 마력이 역류했다.

마력 역류는 마법사에겐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전 적마탑의 탑주 클레르 플라마는 마력 역류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다행히도 바토리의 후유증은 심각하지 않았다.

마력 역류를 초기에 발견한 슈시아 덕분이었다.

아틸라는 바토리 모르게 슈시아에게 부탁을 해 두었다.

틈틈이 직관의 눈으로 바토리를 지켜봐 달라고.

특히 동료들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슈시아는 아틸라가 위험에 빠진 순간 직관의 눈을 뜨고 바토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마력의 역류가 시작되는 찰나, 바토리를 타격해 기절시켰다.

제아무리 바토리가 적수를 찾기 힘든 마법사라 해도, 믿었던 동료의 기습엔 대항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토리는 기절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슈시아에게 불만을 표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슈시아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젠 사실을 말할 때도 됐지 않느냐. 슈시아.”

“무엇을 말이지?”

“갑자기 내 덜미를 후려쳐 기절시킨 것 말이다.”

바토리의 새침한 눈이 아틸라를 째려봤다.

“아틸라가 시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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