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3화 (333/425)

333. 핏빛 수해의 의지 (3)

끼르륵. 끼륵?

산양의 눈동자가 머리 위의 인간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타깃을 바꿔 그에게 팔을 뻗었다.

휘리릭.

그러나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난 팔은 먹잇감을 구속하지 못했다.

먹잇감의 몸이 갑자기 수십 배의 중력을 머금은 것처럼 괴물의 얼굴에 추락했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도약의 충격파가 괴물의 몸을 뒤흔들었다.

사실 도약은 강한 충격파를 동반하기에, 주위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스킬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괴물이 보인 어떤 습관 때문이었다.

‘녀석은 사냥감을 향해 팔을 내뻗기 전부터 아가리를 벌린다.’

잭과 수비대장의 선례를 보며 아틸라는 그렇게 결론 내렸고, 그것은 적중했다.

아틸라는 자신을 발견한 괴물이 쩌억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봤다.

그것을 보자마자 아틸라는 타점을 특정했고, 괴물의 입속으로 추락했다.

퍼거거거걱!

도약의 충격파는 괴물의 이빨을 산산이 깨부쉈다.

혀도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아틸라는 괴물의 입안에서 서둘러 탈출했다.

잘못해 삼켜지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오토!”

아틸라의 외침에 방패를 추켜든 오토가 말을 달려왔다.

잔뜩 몸을 웅크린 바토리, 카스피, 슈시아가 그의 뒤를 따랐다.

또 다른 심층부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 어떻게든 관문을 넘어야 한다.

“아, 아틸라 님! 이 요망한 도마뱀 말로는 수해가 또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같소오오오!”

오토가 기겁해 소리쳤다.

오토의 말대로, 아니 도롱뇽의 말대로 동쪽의 수해 일부가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심층부 몬스터가 추가로 등장할 것이다.

아틸라는 서둘러 눈앞의 괴물을 처리하기로 했다.

바토리와 도롱뇽의 도움은 받지 않는다.

오토와 펀치도 심층부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위험 요소가 크다.

다행히 성루가 무너지며 성벽 위엔 자욱하게 흙먼지가 흩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이쪽에 대한 시야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선.

“카스피!”

휘리릭.

아틸라의 외침과 동시에 카스피가 군마 위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카스피는 자신의 날렵한 몸과 긴 사슬낫을 이용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 카스피를 산양 머리의 괴물이 발견했다.

[ 도발의 외침 ]

아틸라는 괴물을 향해 도발의 외침을 시전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 대상이 도발의 외침에 저항했습니다. ]

‘빌어먹을!’

괴물은 직전까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던 것도 잊은 채 카스피에게 고무줄 팔을 발사했다.

아틸라가 외쳤다.

“슈시아!”

퍼퍼퍼퍼펑!

아틸라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슈시아는 괴물에게 마력 화살을 쐈다.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은 찰나의 시간차를 두며 괴물의 손바닥을 타격했고, 덕분에 괴물의 팔은 카스피를 구속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뻗쳤다.

부웅.

“히, 히익! 혹시 저거 되돌아오며 우릴 공격하는 거 아니요!”

“잔말 말고 어서 달리기나 하려무나 철혈귀검아.”

오토의 걱정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귀수를 뽑아든 카스피가 길게 늘어난 괴물의 팔을 잘라 냈기 때문이다.

끼에에에에엑!

잘린 팔을 붙잡으며 괴물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과연 귀수의 절삭력은 대단했다.

심층부 몬스터의 팔을 단칼에 절단했다.

‘좋아. 카스피.’

몬스터에게 달려든 아틸라가 흑철검을 뻗었다.

부드득, 흑철검은 괴물의 가죽과 근육을 뚫고 박혔지만 귀수만큼의 매끄러움은 없었다.

‘역시 귀수의 절삭력이 더 뛰어난 건가.’

그러는 사이 카스피도 괴물의 몸통에 도달했다.

보랏빛 수해 속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심층부 몬스터가 접근 중인 게 분명했다.

“카스피! 놈의 목을 잘라!”

“흐에엣?”

카스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괴물의 팔을 자를 때, 카스피는 놈의 신체가 보기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감각했다.

그럼에도 괴물의 팔을 절단할 수 있었던 건, 녀석의 팔이 길게 늘어나며 그만큼 두께가 얇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길게 늘어난 물체는 측면으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카스피는 괴물의 팔을 말끔하게 잘라 냈다.

‘하지만 목은 달라.’

괴물의 목은 두꺼웠다.

길게 늘어난 상태도 아니다.

카스피는 자신이 괴물의 목을 절단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확신과 행동은 별개였다.

카스피는 아틸라를 믿었다.

아틸라가 그렇게 말한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휘리리릭!

관성을 이용해 카스피가 몸을 회전했다.

회전력을 더해 절삭력을 증대시킬 생각이었다.

무너지는 성루를 밟으며 괴물의 목으로 뛰어오르는 아틸라가 보였다.

그 순간 카스피는 무언갈 직감했다.

그녀의 입술 끝이 위를 향했다.

괴물의 목을 노리며 힘껏 귀수를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괴물의 목이 절단됐다.

카스피의 예상대로였다.

아틸라는 쇄도하는 카스피의 귀수 바깥으로 흑철방패를 붙인 뒤, 동일한 방향으로 힘을 실었다.

쉽게 말해 귀수의 절삭력에 아틸라의 용력이 더해진 것이었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행하긴 어려운 기술.

그러나 지금의 아틸라는 무의식의 세계에 한쪽 발을 걸쳐 놓은 상태였고, 그 덕에 첨예하게 곤두선 그의 감각은 불가능해 보이는 협동 공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산양 머리 괴물은 그렇게 숨통이 끊겼다.

혹시라도 녀석이 부활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아틸라의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올랐다는 건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것이고,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건 녀석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벨이 오른 건 아틸라만이 아니었다.

심층부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데 크게 기여한 카스피도 레벨업을 했다.

“흐에엣!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

카스피가 제 몸을 내려 보며 외쳤다.

아틸라는 자신의 몸이 더욱 강력하게 재구성되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카스피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아직 관문에 도달하지 못했고, 심층부 수해를 뚫고 새로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이익! 나왔소! 다른 괴물이 나왔소 아틸라 님!”

“시끄러운 새끼.”

아틸라는 훌쩍 성벽 아래로 뛰어내린 뒤 오토를 향해 달렸다.

카스피가 뒤를 따랐다.

이번 몬스터는 칼날 같은 꼬리 세 개를 지닌 녀석이었다.

얼굴은 뱀을 닮았고, 몸통은 황소 같았다.

‘빌어먹을 심층부 몬스터들은 왜 다 저렇게 생긴 거지.’

방금 전에 등장했던 녀석도 그렇고, 이전에 제국을 오가며 만났던 놈들도 그렇고, 직접 만난 심층부 몬스터는 아틸라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모습과 괴리감이 있었다.

촤르륵. 촤르르륵.

몬스터가 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아가리에선 세 갈래로 갈라진 혀가 쉴 새 없이 날름댔다.

세로로 좁혀진 뱀의 눈이 오토, 바토리, 슈시아를 찾았다.

두두두두두! 그들을 향해 달렸다.

“흐에엣! 뭐, 뭐가 저리 빨라!”

카스피의 말대로 괴물의 발은 엄청나게 빨랐다.

뱀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황소의 몸통.

억센 근육이 꿈틀대는 놈의 다리가 움푹움푹 지면에 팬 자국을 남겼다.

그렇게 오토 일행에게 질주했다.

“저, 저러다 따라잡히겠어 아틸라!”

슈시아가 괴물을 향해 마력 화살을 쐈다.

괴물은 놀라운 민첩성을 보이며 그것들을 피했다.

물론 모조리 피할 수는 없었고, 두 개의 화살은 목과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그 정도로 괴물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흐응.”

바토리가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오토는 순간 불안해졌다.

빙글 말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앞장서 가쇼 바토리 아가씨! 발키리 아가씨!”

선두를 달리던 오토가 가장 후미로 물러났다.

일행의 뒤를 달리며, 다가올 괴물을 어떻게든 저지해 볼 생각이었다.

멋지게 외치며 뒤로 빠졌지만 오토는 괴물을 보자마자 혼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비, 비, 빌어먹을. 암만 봐도 못 막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오토는 힘껏 강철방패를 쥐었다.

슈시아의 화살은 놈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렇다고 바토리가 마법을 사용하도록 해선 안 된다.

‘아틸라 님은 바토리 아가씨가 마법을 사용하면 무지막지하게 화를 낼 거다. 그것도 나한테!’

언젠가부터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처음 바토리가 동료가 되었을 땐 오토가 염려할 정도로 바토리에게 막말을 날리던 아틸라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아틸라는 카스피에게도 역정을 내는 일이 드물어졌고, 슈시아에겐 원래부터 화를 잘 내지 않았다.

‘근데 왜 나한테만……!’

오토는 순간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억울한 마음을 달랠 틈은 없었다.

어느새 괴물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쉬이익. 쉬익.

슈시아의 화살이 다시금 괴물을 노렸지만 한 발만이 적중했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충돌한다.

오토는 동료들과 달리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젠장. 될 대로 돼라.”

괴물을 향해 마주 달리며, 오토는 아틸라의 웃는 모습을 흉내 냈다.

길게 입가를 찢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때였다.

“오토!”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토는 아틸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돌진을 시전한 아틸라가 무서운 속도로 오토에게 달려들었다.

“히, 히익! 또!”

이전에도 아틸라는 오토에게 돌진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오토는 심층부 몬스터보다 아틸라가 몇 배는 더 무서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새끼. 왜 쫄고 지랄이야.”

눈을 뜬 오토는 멍한 얼굴이 됐다.

어느새 자신은 지면에 서있었고, 괴물을 향해 말을 달리는 아틸라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틸라는 오토에게 돌진을 시전한 직후 ‘위치 교환’을 시전했다.

그 결과로 아틸라와 오토의 위치가 바뀌었다.

“아, 아틸라 님!”

“어서 가자고 영주 나리! 아틸라가 서둘러 관문을 넘으라고 했어!”

카스피가 외쳤고, 아틸라는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흑철검이 잔상처럼 길어졌다.

기마 태세의 효과였다.

[ 주무기의 공격 사거리가 10% 증가합니다. ]

[ 주무기로 검이나 창을 들었을 때, 공격 사거리가 5% 추가 증가합니다. ]

[ 군마의 이동 속도가 5% 증가합니다. ]

내지른 흑철검이 괴물의 목에 박혔다.

괴물은 민첩성을 이용해 피하려 했지만, 기마 태세로 향상된 군마의 이동속도와 늘어난 흑철검의 사거리를 예측하지 못했다.

퀴리리리릭!

비명을 지르는 뱀의 아가리가 세 갈래 혀를 뻗었다.

한눈에 봐도 독액으로 가득한 혀였다.

아틸라는 흑철방패로 그것을 막고, 재차 흑철검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괴물 너머로 보이는 수해가 점점 더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해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틸라는 서둘러 눈앞의 괴물을 처리하고 요새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즈음 자욱했던 성벽 위 흙먼지가 다소 가라앉았다.

요새의 병사들은 잭과 수비대장을 잡아먹었던 괴물이 목이 잘린 채 널브러진 것을 봤다.

또한 저만치 남쪽에서 뱀의 머리에 황소의 몸을 지닌 괴물과 남부의 전사가 대치하는 광경을 봤다.

“서, 설마 저 전사가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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