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1화 (331/425)

331. 핏빛 수해의 의지 (1)

아틸라가 그렇게 외친 건 어느 정도는 도박이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분명, 이곳 외에 남부와 북부를 잇는 새로운 통로가 생성됐을 거라 확신했다.

아틸라는 샤를과의 격전 중에 균열을 봤다.

그 균열은 아틸라와 샤를의 충돌로 발생한 마력 폭풍을 흡수해, 제국을 가로막은 수해를 공격했다.

파드드드드드……!

마력 폭풍은 수해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인하르트 제국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탈리 왕국에선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또한 샤를은, 그렇게 만들어진 ‘제국으로 통하는 새로운 길’을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샤를은 북부 제국을 손에 넣으려 했다.

샤를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샤를은 대악마의 힘을 흡수하며 반신이 됐다.’

게다가 샤를은 드라코리치를 손에 넣었고, 카르타고를 비롯한 데스나이트와 리치, 그 밖의 수많은 언데드들의 군주가 됐다.

샤를이 아직까지 북부 제국에 마수를 드리우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아틸라는 이곳, 탈리 왕국과 북부 대제국 사이에 놓인 ‘대국경의 관문’을 지났다.

“우린 제국 남동쪽 수해의 이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한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아틸라가 다시 외쳤다.

그는 가급적 관문 요새의 병력과 전투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아틸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제국에 발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곳, ‘대국경의 관문’을 통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하게 북부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라 단정했다.

‘수해 위를 날아가는 건 위험하다.’

지난번 제국에서 남부 대륙으로 돌아왔을 때, 아틸라는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심층부 몬스터는 강했다.

적절히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아틸라 일행은 그날 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틸라는 요롱이나 도롱뇽을 이용해 수해 위를 날아가는 경우의 수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랜 시간 고민한 아틸라의 결론은 하나였다.

‘대국경의 관문을 통하는 것.’

한편 아틸라의 말에 수비대장은 크게 놀랐다.

그 역시 수해의 이변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수개월 전, 에레트리아 군주령의 남동쪽 수해 일부가 무너졌다.

그 사건으로 제국은 초비상 상태가 됐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수해가 무너진 건 제국이 건국된 이래 처음 발생한 일이었으니까.

황실 마법사들이 수해의 이변을 조사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그들조차 이변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고, 무너진 국경 성벽을 보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키에에……! 키에에에에……!

수해의 통로를 뚫고 언데드들이 등장했다.

언데드들은 개미 떼처럼 밀려들어 성벽을 부쉈다.

그러고는 쉴 새 없이 북상하며 에레트리아 군주령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국은 용기사로 언데드에 맞섰다.

그러자 언데드를 이끄는 더욱 강한 언데드들이 등장하며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변했다.

여기까지가 수비대장이 알고 있는 제국의 현 상황이었다.

제국과 언데드 간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저자가 수해의 이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쉬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완전히 무시하기도 꺼림칙했다.

수비대장은 자신의 임무를 상기했다.

‘내 임무는 관문 기사단이 돌아올 때까지 관문 요새를 수호하는 것.’

수비대장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수차례나 몬스터들의 요새 침입을 저지한 경험이 있는 백전노장이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남부의 다섯 애송이 정도는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해라! 우린 너희에게 관문을 개방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수비대장의 외침에 아틸라는 한숨을 뱉었다.

순순히 관문을 열어 줄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돌파해 버리는 건 어떻겠수? 아틸라 님.”

“미친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지난번에도 이쪽 노선을 택했을 거다.”

“그렇다고 문 열어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잖수. 요롱이를 불러 휘리릭 날아가면 어찌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서라. 관문 요새의 수호자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야. 게다가 이곳엔 용기사도 주둔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틸라는 관문 기사단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토가 불안한 눈을 굴리며 말했다.

“계속 눈싸움만 하고 있을 거요? 이러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요.”

“그건 그래 아틸라. 아무리 우리가 바토리의 잡기술로 보호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 말했던 건 아틸라였잖아.”

아틸라는 물끄러미 카스피를 봤다.

언제부턴가 카스피는 오토의 말에 동조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찌할 셈이더냐 야만전사야.”

바토리도 물음을 던졌다.

아틸라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그에겐 비장의 수단이 하나 있었다.

‘아벨의 이름을 대는 것.’

아벨은 레드 드래곤 카르노피아의 마스터다.

그의 이름을 대며 대화를 요구한다면, 관문 요새에서도 생각을 달리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어쩌면 세베스티아의 마스터였던 에단이 에다드란 이름을 쓰며 정체를 숨긴 것처럼, 아벨 역시 드래곤 마스터인 사실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벨은 뛰어난 용기사다.

그의 이름을 써먹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아틸라는 아벨을 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 에단과 세베스티아를 죽인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침묵을 유지하던 슈시아가 등 뒤의 활을 꺼냈다.

“몬스터가 온다. 아틸라.”

슈시아는 직관의 힘으로 수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 중 누구보다 빠르게 몬스터의 기척을 감지했다.

남부 관문을 지나 이곳까지 오며 최소한의 몬스터만을 조우할 수 있었던 것엔 바토리뿐 아니라 슈시아의 도움도 컸다.

“돌파하려면 지금뿐이다. 아틸라.”

슈시아의 보랏빛 안광이 더욱 짙어졌다.

일행의 눈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틸라는 결정을 내렸다.

“강행돌파는 없다. 우리 목적은 단순히 제국에 진입하는 것에 있지 않아.”

무작정 돌파는 위험하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이후 벌어질 일은 아틸라의 목적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일단은 몬스터를 처리한다. 빠르고 조용하게.”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권자는 아틸라다.

결단이 내려지자 일행은 한치의 불만 없이 아틸라의 말을 따랐다.

활시위를 당긴 슈시아의 손끝에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생성됐다.

그걸 본 수비대장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궁병대! 쏴라!”

투투투투투투퉁!

궁병대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수비대장은 슈시아의 화살이 요새를 향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발사 명령을 내렸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슈시아와 같은 직관의 힘이나 도롱뇽 정도의 후각을 지니지 않은 이상, 평범한 인간은 이 정도로 미미한 몬스터의 기척을 감지할 수 없다.

아틸라가 흑철방패를 꺼냈다.

남부 전쟁이 끝나고 몸을 회복한 아틸라는 황금바위산의 골든핑거를 찾아가 무구의 수리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골든핑거의 손에서 부활한 아틸라의 무구는 이전보다 견고해졌다.

“어이. 오토.”

“알겠수.”

오토도 킬킬대며 강철방패를 꺼냈다.

무구가 업그레이드된 건 아틸라만이 아니다.

카카카카카캉!

두 전사의 방패가 제국의 화살을 막았다.

방패의 범위 바깥으로 날아드는 것은 흑철검과 강철검이 튕겨 냈다.

바토리, 카스피, 슈시아도 방패벽 뒤로 몸을 숨겼다.

바토리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속삭였다.

“……왜 다들 아틸라 뒤로 숨는 게냐. 너흰 철혈귀검의 뒤로 가거라. 철혈귀검의 방패가 조금 더 크구나.”

“왜, 왠지 영주 나리의 방어는 불안하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같이 좀 살자고 바토리!”

“부, 불안하긴 뭐가 불안하다는 거요 살쾡이 암살자!”

“힉! 들었어?”

“그렇게 크게 소리치는데 안 들릴 리가 있소!”

“그럼 슈시아. 너라도 철혈귀검의 뒤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거절한다. 오토는 일행 중 최약체다. 어떤 실수를 범할지 알 수 없지.”

“바, 발키리 아가씨까지!”

“아니 대체 왜 나한테만 아가씨라고 하지 않는 건데!”

“빌어먹을 시끄러워 죽겠네. 닥치고 몬스터 처리할 준비나 해라.”

“난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다 야만전사야. 내가 제일 조용하게 말했단다.”

바토리는 아틸라 너머의 화살비를 빼꼼 바라봤다.

물론 그녀가 보호의 마법을 발현하면 저 정도 화살은 손쉽게 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곳은 좌우로 수해를 목전에 둔 위험지대.

바토리의 마법은 수해의 몬스터를 크게 자극할 수 있다.

게다가 바토리는 드라코리치와의 대결로 인해 상당한 후유증을 겪었고,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잡기술 외의 마법은 사용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아틸라의 눈빛엔 강한 염려가 담겨 있었다.

바토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바토리는 지금, 아틸라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상황에 무척이나 행복감을 느꼈다.

‘흐응. 실로 동화 속 공주라도 된 느낌이로구나.’

한편 성벽 위의 궁병대는 두 전사의 철통같은 방어를 보며 경악의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게 무슨……!”

“달랑 방패 두 개로 이 많은 화살을 전부 방어한다고……?”

궁병대뿐만이 아니었다.

성벽 위의 모든 병사들이 놀란 눈을 떴다.

그들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툿투투투투퉁!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슈시아의 손을 떠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쏘아진 화살은 제각기 의지를 지닌 것처럼 비행했다.

그 순간 수해의 그늘을 뚫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왔고, 기다렸다는 듯 일곱 화살은 놈들의 몸을 관통했다.

쿠웅! 쿵!

선두를 달리던 몬스터 두 마리가 고꾸라졌다.

놈들을 짓밟으며 나머지 몬스터들이 달려왔다.

쇄도하는 몬스터들을 향해 아틸라와 오토가 콰앙! 검과 방패를 부딪쳤다.

아틸라가 불쾌한 얼굴로 오토를 돌아봤다.

“너 왜 나 따라 하냐.”

“따, 따라 하긴 누가 따라 했다 그러슈! 나, 나도 원래 이렇게 했었수!”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어.”

“힉! 벌써 코앞까지 왔소 아틸라 니이임!”

아틸라가 방패를 휘둘러 몬스터의 턱을 가격했다.

그 한 방의 공격에 몬스터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돼 하늘을 날았다.

외곽부 몬스터는 더 이상 아틸라에게 위기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틸라는 외곽부 최강의 포식자인 트롤과 오우거마저 수없이 쓰러뜨린 전사다.

키에에에엑!

아틸라에게 공격당한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아틸라는 자신의 몸 상태가 최고조라는 것을 알았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바토리와 달리, 아틸라의 부서졌던 몸은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재생됐다.

그것엔 자신의 몸을 흐르는 아몬의 피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고 아틸라는 생각했다.

또 하나의 몬스터가 흑철방패에 파괴됐다.

내지른 흑철검은 다른 몬스터의 심장을 뚫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본 관문 요새의 병사들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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