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0화 (330/425)

330. 남부의 인간

북부 제국엔 여러 기사 집단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건, 황제 직속 특별 부대인 ‘황궁 기사단’.

하나를 더 고르자면 황궁 기사단에서 분리된 특수 조직인 ‘관문 기사단’을 꼽을 수 있다.

본래 북부 제국과 남부 대륙 사이는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울창한 수해로 막혀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수해의 강이 끊기는 범위가 존재했고, 북부 제국과 남부 왕국은 그 통로의 끝에 각기 ‘관문 요새’를 건설했다.

관문 기사단은 제국의 관문 요새를 수호하는 집단이다.

그 임무가 워낙 막중하기에 그들은 황궁 기사단의 한 갈래에서 시작돼 만들어졌고.

그런 연유로 관문 기사단은 황궁 기사단 못지않은 전투력의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넓게 보면 두 기사단은 ‘황제’라는 이름의 몸통에 달린 두 개의 팔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굳이 두 기사단을 구분하자면.

황궁 기사단은 대인전에 보다 뛰어난 자들이고, 관문 기사단은 인외종과의 전투에 더 숙련된 솜씨를 보이는 자들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관문 기사단은 놀랍게도 관문 요새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요새에서 제법 떨어진 어느 수풀 속에서 긴장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헉……! 허억……!”

“후욱……! 후우욱……!”

기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에 물든 숲의 공기를 울렸다.

그들의 얼굴은 땀투성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수해 심층부에 들어와 있었다.

“부, 부단장…….”

기사 하나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실제로 그는 울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 허리가 절단된 채 널브러진 시신은 다름 아닌 관문 기사단장이었으니까.

“공포에 삼켜지지 마라. 우린 여전히 놈들에게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는 이는 관문 기사단의 부단장, 샤비 아우렐리아.

그녀는 수 시간 전, 단장을 포함한 수십 명의 기사와 함께 이곳 수해에 진입했다.

관문 기사단이 관문 요새를 떠나 임무를 수행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정도로 작금의 사안은 심각했다.

게다가 관문 기사단을 제외한 근방의 다른 기사단은 모두 동부 전선으로 떠났다.

제국의 동남부, 에레트리아 군주령에선 현재 제국군과 언데드 군단이 전쟁을 이어 가고 있다.

‘갑작스레 언데드 군단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이번엔 수해의 이변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샤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수해의 이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개월 전, 황제의 특명을 받은 암피테르 용기사들이 몰살한 사건이 있었다.

생존자는 오직 한 명, 3군단 소속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 아벨 카리누스.

사실 아벨은 임무 수행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의 이유로 그는 그곳에 나타났고, 홀로 살아 돌아왔다.

이후 그 사건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샤비는 머지않아 아벨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드래곤 마스터였다.

‘아벨 카리누스는, 그때도 수해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아벨이 그날 왜 암피테르 용기사들을 쫓아 움직였는지 샤비는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수해는 제국의 암피테르 용기사 수십 명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외곽부 수해가 심층부로 변하며 생긴 재앙이었다.

아벨은 그것을 목격했고, 또한 그는 이전에도 그와 유사한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동부 전선에 언데드 군단이 등장하기 전에도, 그곳의 수해가 극심한 이상 현상을 보였다는 것을 샤비는 알고 있었다.

‘수해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그러고는 얼마 후 언데드 군단이 등장했지.’

샤비는 이 모든 일이 우연으로 발생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니 애초부터 용족이 등장하고, 그런 용족과 페어링 할 수 있는 용기사들이 등장한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스스슷.

샤비의 귀가 꿈틀거렸다.

보랏빛 수해의 어둠 어딘가에서 불길한 소음이 일었다.

다른 기사들도 그것을 느꼈다.

기사단은 샤비를 중심으로 진을 펼쳤다.

어차피 몬스터와의 전투는 예정된 일이다.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싸우는 편이 낫다.

콰드득!

기사 한 명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됐다.

기사의 목을 날린 건 채찍처럼 기다란 무언가였다.

“저, 저게 무슨……!”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마라! 대형을 지켜라!”

파카카카카캉!

순식간에 기사 몇이 잘린 고깃덩이로 화했다.

샤비는 공격의 진원지를 파악했다.

부하들과 함께 그곳으로 달렸다.

“크헉……!”

“끄아아아아!”

달리는 도중에도 부하들이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도주하는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윽고 샤비는 타깃을 발견했다.

‘개구리?’

몬스터는 개구리를 닮았다.

다만 엄청나게 컸다.

채찍처럼 보였던 것은 놈의 아가리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혀였다.

그제서야 샤비는 떠올렸다.

아벨이 말했던 심층부 몬스터 중에 이런 개체가 있었다.

“하아압!”

샤비의 검에서 파릇한 기운이 일었다.

그녀는 바람처럼 날렵하게 몬스터에게 접근했고, 섬광 같은 칼놀림으로 놈의 혀를 잘랐다.

끼에에에!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남아 있는 기사는 많지 않다.

기사들이 몬스터를 향해 검을 뻗었다.

그러나 몬스터는 개구리처럼 훌쩍 수풀 위로 떠올랐다.

“어, 어디로 간 건가!”

수해의 그늘은 짙다.

수풀 너머로 뛰어오른 몬스터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사들은 긴장했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놈이 나타날지 모른다.

샤비는 생존한 기사들과 함께 방어의 진을 펼쳤다.

극도의 긴장감이 샤비의 몸을 옥죄었다.

그때였다.

키랴랴랴랴랴랴!

우렁찬 포효가 하늘을 울렸다.

머리 위 수풀이 붉은 화염으로 덮였다.

잿개비가 되어 흩어지는 수풀.

그 사이로 유난히 파란 하늘과, 검게 타 버린 개구리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끼에에! 끼에에에!

개구리 몬스터는 치명상을 입은 와중에도 몹시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브레스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저 멀리 지면으로 추락했다.

샤비는 하늘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레드 드래곤을 봤다.

그 드래곤의 이름은 카르노피아였다.

* * *

“으하아아아암…….”

잭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제국의 관문 요새를 수호하는 병사였다.

그의 임무는 정해진 시간 성루에 올라 남쪽을 경계하는 것.

그러나 잭이 알기로, 관문 요새가 세워진 이래 남부의 인간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막중한 책임이 있는 관문 요새라 해도, 남부에서 침입하려는 인간을 경계하는 것에 큰 기력을 소모하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수해를 넘어와 성벽을 파괴하는 몬스터들을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관문 병사들의 주된 임무.

그런 잭이 남쪽의 통로에서 이변을 감지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응?”

잭은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였다.

며칠 전, 요새 방어의 핵심 세력인 관문 기사단이 외부 임무를 떠났다.

관문 기사단이 요새를 비울 정도라면 무척이나 다급한 임무가 틀림없었다.

아무튼 잭은 쉬이 찾아올 수 없는 기회에 옳다고나 하며 밤마다 과음을 했다.

그래서 수해를 경계하는 일에 통 집중하지 못했다.

잭은 어질어질한 머리도 식힐 겸, 끝도 없이 펼쳐진 남쪽의 지평선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던 중 무언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저게 뭐지?

처음엔 바람이 몰고 온 낙엽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낙엽이라기에 그것은 관문 요새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잭은 눈가를 찡그리며 한동안 그것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기겁하며 꽥! 소리를 질렀다.

댕댕댕댕댕댕!

잭은 성루의 종을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든 병사들이 성벽 위로 달려왔다.

한발 앞서 도착한 수비대장은 벌써 뚫어져라 남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머지않아 수비대장도 잭이 발견한 것을 알아봤다.

사람을 태운 다섯 마리 군마가 요새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관문 기사단도 없는 이때!’

애써 당황을 숨긴 수비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경계 태세를 펼쳐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위급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평소 엄격하게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엄격한 훈련도 병사들의 입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전투 준비라니.”

“남쪽 방향에서 사람을 태운 군마들이 올라오고 있다던데.”

“뭐? 남쪽에서? 사람이 맞긴 한 거야? 몬스터가 아니고?”

병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수군거렸다.

그러나 성벽에 올라 남쪽을 바라본 그들 또한 다섯 마리 군마와, 사람을 발견했다.

“저, 정말 사람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남쪽에서…….”

“왜긴 왜겠어. 남부의 인간이겠지.”

팽팽한 긴장감이 관문 요새를 감돌았다.

병사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속삭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중엔 성루 위의 잭도 있었다.

“저게 남부의 인간이라고? 정말로?”

당연한 말이지만, 잭은 남부의 인간을 처음 보았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전신갑주를 착용한 두 명의 전사였다.

그들 뒤로 붉은 옷의 여자, 얇은 가죽옷의 여자, 등에 활을 둘러맨 여자가 차례로 보였다.

잭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봤다.

“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고작 다섯 명으로 제국을 침공하려는 건 아닐 테고.”

제국 침공이 문제가 아니다.

수해의 통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때때로 몬스터들은 수해를 벗어난다.’

물론 통로 근처의 수해는 대체로 외곽부에 속하고, 외곽부 몬스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엔 큰 함정이 숨겨져 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거다.

‘수해의 몬스터는 강하다.’

몬스터 중 최약체로 꼽히는 개체조차 웬만한 기사단의 정예보다 강력하다.

황궁 기사단이나, 이곳 관문 기사단의 기사들 정도는 되어야 놈들과 어렵사리 일대일 승부를 벌일 정도가 된다.

그러나 관문 기사단의 기사조차 일대일로 몬스터와 싸우는 일은 없다.

잭은 그 이유를 잘 알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니까.’

쉽게 말해, 남부 대륙에서부터 이어지는 저 기나긴 통로를 지나오려면 다섯 명의 인원으론 어림도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수해의 몬스터들은 인간의 체취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까지 오며 한 번도 몬스터를 만나지 못했을 리 없다.

“멈춰라!”

수비대장의 목소리가 재차 공기를 울렸다.

제국어를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고함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다섯 마리 군마가 자리에 멈춰 섰다.

관문 요새를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궁병대는 이미 남부의 인간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해라!”

이어진 외침에 흑빛 갑주의 전사가 투구를 벗었다.

길게 자란 검은 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유창한 제국어로 전사가 외쳤다.

“우린 남부 대륙의 나바라 왕국에서 왔다! 수개월 전 벌어진 제국 남동쪽 수해의 이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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