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27화 (327/425)

327. 격변의 대지 (2)

바토리의 왼팔에서 가공할 마력이 뿜어졌다.

그것이 짓쳐드는 검은 폭풍을 송곳처럼 꿰뚫었다.

파아아앙!

키릴은 말을 달렸다.

아틸라를 향하는 길이 뚫렸다.

구하려면 지금뿐이다.

‘바토리는 어떻게……!’

바토리의 엄청난 마력에 키릴은 크게 놀랐다.

키릴은 빛의 신 포이베의 신력을 지닌 기사.

따라서 눈앞의 검은 폭풍이 결코 평범한 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바토리는 그 마기를 마법 한 번으로 꿰뚫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진정…… 초월적인 마법사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릴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등 뒤에서 발산하는 지독한 살기 때문이었다.

키릴은 지금의 바토리가 얼마나 분노한 상태인지 피부로 체감했다.

“서두르거라. 키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키릴은 더욱 섬뜩함을 느꼈다.

키릴은 저만치 보이는 드라코리치와 대악마의 현신보다 등 뒤의 바토리에게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퍼어엉!

바토리의 왼팔에서 또 다른 마력이 발현됐다.

직전과 마찬가지로 붉은 기운을 머금은 그것이 추락하는 아틸라에게 쇄도해 그의 몸을 받았다.

키릴은 더욱 서둘러 말을 달렸다.

바토리 덕분에 아틸라에게로 향하는 통로가 생성됐지만, 뻗치는 검은 폭풍이 그 통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크읏……!”

샤를은 성스러운 오러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마기는 오러를 뚫고 침입했다.

“그렇게 둘 줄 아느냐.”

바토리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바토리는 현자의 돌로 억제됐던 자신의 마력을 해방한 상태였다.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견딜 수 없는 마력.

‘견딜 수 있다. 아니 견뎌 내야만 한다.’

바토리는 처음 인간이 되었을 무렵의 자신보다 지금의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틸라와 함께 여행하며 바토리는 수차례 레벨업을 했다.

지금의 바토리는 관조자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결코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츠컹!

바토리의 머리 위에 마멸의 칼날이 생성됐다.

그것은 지금껏 그녀가 만든 그 어떤 칼날보다도 커다랬다.

바토리의 눈이 드라코리치와 샤를을 노려봤다.

주인의 의지를 받아들인 칼날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타깃을 향해 날아갔다.

츠커커커커커컹!

허공을 뒤덮은 검은 마기를 마멸의 칼날이 분쇄했다.

마기는 마치 형체를 지닌 것처럼 칼날에 갈려 나갔다.

소매가 사라진 바토리의 왼팔에 붉은 문신이 드러났다.

문신에서 기괴한 빛이 발했고, 마멸의 칼날은 찢긴 마기를 먹고 성장하는 것처럼 점점 더 몸을 부풀렸다.

샤를은 그것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마멸의 칼날을 보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만 드라코리치가 아가리를 한껏 벌렸을 뿐이다.

키랴랴랴랴랴랴!

드라코리치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마멸의 칼날과 정통으로 부닥쳤다.

파드드드드듯!

드라코리치의 브레스는 엄청났다.

신의 마력을 개방한 바토리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바토리는 신의 마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의 몸.

그에 대한 대가는 금세 따라왔다.

투트듯……! 투틋……!

왼팔의 문신이 더욱 광범위하게 퍼지는가 싶더니 육체를 옥죄는 상처로 변했다.

바토리의 왼팔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마치 광폭의 권능을 발현한 아틸라가 그러하듯, 바토리의 문신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바, 바토리 할망구! 멈춰! 그러다 너 죽는다!”

바토리의 가슴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도롱뇽이 기겁해 외쳤다.

그러나 바토리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력을 증폭하며 드라코리치의 브레스에 대항했다.

그사이 키릴의 말은 아틸라 앞에 도달했다.

말에서 뛰어내린 키릴이 아틸라의 몸을 확인했다.

아틸라는 온몸이 피로 물들어 새빨갰다.

언뜻 보면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살아 있어! 아틸라는 살아 있어요 바토리!”

그렇게 외친 키릴이 아틸라에게 치유의 마력을 발현했다.

일단은 체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대로 말에 태운다면 이곳을 탈출하기도 전에 숨이 끊어질지 모른다.

‘반드시 살려야 해.’

이전에도 키릴은 광폭의 후유증에 빠진 아틸라를 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틸라는 쉬이 눈을 뜨지 못했다.

언제 달려왔는지 도롱뇽이 아틸라의 팔을 물어뜯었다.

“야, 야만 미물! 정신 차려! 저러다 바토리 할망구 죽겠다!”

아틸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롱뇽이 아틸라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빌어처먹을 야만 미물! 빨리 안 일어나? 저러다 바토리 할망구 죽는다고오오오!”

* * *

“엥?”

도롱뇽은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뭐, 뭐야 이건.”

아틸라가 보이지 않았다.

키릴과 바토리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드라코리치와 샤를의 모습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도롱뇽은 이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 여긴 야만 미물 녀석이 만든 환술 세계인 건가?”

틀림없었다.

도롱뇽은 이곳의 환술 세계에서 아틸라의 냄새를 감지했다.

이리저리 코를 킁킁댔다.

아틸라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이 있었다.

“야만 미물 녀석. 제 손으로 만든 환술 세계에 갇혀 있는 거냐.”

도롱뇽은 파닥파닥 날개를 움직여 날았다.

멀지 않은 곳에 아틸라가 있을 것이다.

냄새를 향해 비행하던 도롱뇽은 낯익은 위화감을 느꼈다.

“엥? 날개가 생겼잖아.”

이전에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도 도롱뇽은 같은 경험을 했다.

“오. 그렇다면.”

도롱뇽은 전성기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강한 의지를 발현했다.

그러나 도롱뇽의 몸은 부풀지 않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는 어느 정도 덩치가 커졌었는데, 이곳에선 불가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해방의 권능을 사용한 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쳇. 안 되는 건가.”

도롱뇽이 툴툴대며 날개를 움직였다.

한가한 말투와 달리 도롱뇽은 아틸라를 찾아 최대한 빠르게 비행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빌어먹을. 야만 미물과 금사자 미물 녀석이 설마 대악마 아몬의 핏줄이었을 줄이야.”

도롱뇽은 아틸라와 샤를이 맞붙기 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아틸라. 넌 내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

‘넌 신비로운 존재다 아틸라. 넌 대악마 아몬의 힘에 맞서 독립된 환술 세계를 만들었다.’

샤를의 말은 도롱뇽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아틸라와 샤를은 대악마 아몬의 핏줄이다.

아니, 무엇보다 샤를은 보란 듯이 전신에서 아몬의 힘을 발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아몬의 마기였어.”

도롱뇽은 아몬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먼 옛날 아몬은 도롱뇽의 형제인 코르키코스를 타락시켰고.

그런 코르키코스를 포식한 도롱뇽마저 한동안 타락한 정신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래서 금사자 미물 녀석이 코르키코스를 부릴 수 있게 된 거다.”

코르키코스는 아몬의 힘을 흡수했다.

아마도 그때 아몬은 코르키코스의 몸 안에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실제로 코르키코스는 힘을 손에 넣자마자 아몬을 공격했지만, 아몬은 너무도 쉽게 코르키코스를 제압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단순한 실력의 차이가 아니었다.

‘코르키코스는 아몬에게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샤를은 아몬의 현신이 됐다.

코르키코스, 아니 드라코리치를 환수로 부릴 수 있는 힘은 그때 각성했을 것이다.

‘……내가 야만 미물에게 종속된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도롱뇽 또한 코르키코스를 포식하며 아몬의 ‘구속력’을 이어받았을 테니까.

‘가만. 구속력이라고?’

도롱뇽은 떠올렸다.

먼 옛날 자신을 정신 지배해 사르데니야 왕국을 공격하게 하고.

이후 자신을 속박해 바토리와 여러 관조자들로 하여금 지하마계로 추방하도록 만든 존재.

도롱뇽의 눈이 부릅떠졌다.

“빌어먹을 설마……!”

까드득, 이를 악물던 도롱뇽은 아틸라를 발견했다.

현실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진 아틸라가 보였다.

“어, 어이! 야만 미물!”

어느새 주변 풍경도 바뀌었다.

도롱뇽과 아틸라는 용암이 들끓는 검은 대지 위에 있었다.

황급히 날아간 도롱뇽이 아틸라 옆에 착지했다.

“빌어먹을 새끼! 뭐해! 얼른 일어나지 않고!”

아틸라는 하얗게 변한 동공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도롱뇽도 하늘을 올려봤다.

놀랍게도 하늘 위엔 바토리와 키릴의 상이 거대하게 맺혀 있었다.

바토리는 여전히 마멸의 칼날을 운용하며 드라코리치를 상대 중이었다.

키릴은 다급한 얼굴로 이쪽을 보며 무어라 외치고 있다.

‘저게 야만 미물이 보고 있는 풍경인 건가.’

도롱뇽은 아틸라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러나 아틸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아틸라의 몸이 조금씩이지만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키릴의 성력 덕분일 것이다.

“아 미치겠네 진짜. 이럴 거면 나라도 좀 환술 밖으로 내보내주던가.”

물론 도롱뇽이 환술 세계에서 벗어난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빌어먹을.”

도롱뇽은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바토리는 십중팔구 죽게 된다.

도롱뇽은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토리의 왼팔 문신은 그녀의 몸을 점차 잠식하고 있다.

그에 맞춰 그녀의 몸에선 쉴 새 없이 핏물이 쏟아졌다.

그런 바토리에게 키릴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바토리에겐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인간의 몸이 된 주제에 엄청나긴 하군. 바토리 할망구.”

도롱뇽은 바토리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틸라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둘을 구하려는 키릴 역시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도롱뇽은 신계에서 외톨이처럼 살았다.

그러던 중 코르키코스를 만났고, 한동안은 코르키코스와 즐겁게 세상을 탐험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코르키코스는 대악마 아몬의 힘에 타락했고, 그런 코르키코스에게 도롱뇽은 목숨을 빚졌다.

도롱뇽은 푹 고개를 숙였다.

“……어이 야만 미물. 난 말이야. 코르키코스를 포식하고 싶지 않았어.”

도롱뇽은 코르키코스를 포식했다.

그렇게 얻은 힘을 바탕으로 칼날 산맥을 벗어났다.

“형제를 먹은 대가는 잔혹했어. 내게도 빌어먹을 아몬의 구속력이 이어졌으니까. 그래. 이제야 알았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몬은 코르키코스에게 힘을 부여했고, 그 힘이 내게 전해지게 만들었어. 그렇게 내게 주입된 구속력(拘束力)으로 바토리 할망구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날 지하마계로 떨어뜨렸지.”

도롱뇽이 고개 들어 아틸라를 봤다.

“얼마 전 오르피나가 말했었잖아. 네가 ‘알테라’라는 존재라고. 그리고 알테라는 이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도롱뇽이 아틸라의 얼굴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먼 옛날 오르피나는 내가 알테라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될 존재라고 말했어.”

아틸라의 얼굴 위에 툭툭,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구속력으로 날 어떻게 좀 해 봐. 넌 아몬의 핏줄이잖아. 난 너와 동료들을 이대로 죽게 만들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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