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24화 (324/425)

324. 각성 (4)

“야만전사야!”

“아틸라!”

바토리와 카스피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틸라의 행동은 빨랐다.

어찌나 빨랐는지 바토리도, 카스피도 아틸라가 샤를과 검을 부닥치고 나서야 상황을 눈치챘다.

“이잇……!”

카스피가 샤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카스피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샤를은 카르타고와 언데드 군단을 섬멸하기 위해 연합군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리고 실제로 직전까지, 카르타고와 맹렬하게 전투했다.

‘그런데 왜!’

샤를은 지금 언데드 군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 무시무시했던 카르타고가 샤를에게 무릎을 꿇었다.

수블라 템페스타 역시 마찬가지.

카스피는 샤를을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카스피는 샤를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다.

아틸라가 없었다면 샤를의 동료가 되는 것도 고려해 볼 정도로.

그러나 카스피에겐 아틸라가 있었고, 그래서 카스피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았다.

‘난 아틸라를 지킬 거야!’

카스피의 손에서 귀수가 뽑아졌다.

샤를을 향해 맹렬하게 휘둘렀다.

그보다 빠르게 바토리가 발현한 마멸의 칼날이 샤를을 덮쳤다.

파카카캉!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샤를의 검, 듀란달을 감싼 칠흑의 오러가 채찍처럼 늘어나는가 싶더니 마멸의 칼날을 후려쳤다.

무서운 속도로 튕겨 나는 마멸의 칼날을 보며 바토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카스피의 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캉!

검은 채찍이 귀수를 타격했다.

그 엄청난 충격에 카스피는 그대로 지면으로 추락했다.

“꺄아악!”

떨어지는 카스피의 몸을 때맞춰 날아온 요롱이가 받았다.

“괘, 괜찮소! 살쾡이 암살자!”

“영주 나리……!”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요 이게! 샤, 샤를 저 친구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냔 말이요!”

“이유는 중요치 않습니다 오토. 지금의 샤를 아인하르트는 우리의 적.”

요롱이 위에 우뚝 선 슈시아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에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걸렸다.

샤를을 향해 쏘아졌다.

투웅! 툿툿투투투퉁!

그러나 슈시아의 마력 화살은 샤를에게 닿지 못했다.

샤를이 슈시아의 마력 화살을 향해 왼손을 뻗었고, 그러자 마치 보이지 않는 막이 펼쳐진 것처럼 화살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넘어 마력 화살 모두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저게 무슨……!”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슈시아는 얼빠진 얼굴이 됐다.

샤를은 아틸라와 검을 섞는 중에도 바토리, 카스피, 슈시아의 공격을 연달아 무효화시켰다.

그러나.

일행은 아직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이다 도롱뇽아.”

바토리의 속삭임과 동시에 도롱뇽이 아가리를 벌렸다.

도롱뇽의 목엔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응집된 검은 마력이 언제든 발사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었다.

그렇게 ‘초 레어 송곳 브레스’가 쏘아졌다.

퍼어어엉!

도롱뇽의 브레스는 샤를이 아닌 드라코리치를 향해 날아갔다.

사실 도롱뇽은 샤를에게 브레스를 쏘려 했다.

그러나 바토리가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마력에 개입했고, 브레스의 진행 방향을 바꿨다.

‘뭐, 뭐, 뭐야 이 미친 할망구가!’

도롱뇽은 당황했다.

도롱뇽은 드라코리치에게 공격을 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드라코리치는 도롱뇽의 하나뿐인 형제이자, 생명의 은인이다.

트카아아앙!

도롱뇽의 브레스가 드라코리치의 앞발에 적중했다.

드라코리치의 파손된 앞발이 균열 속으로 날아갔다.

균열을 잡고 버티던 앞발 하나가 사라지자. 균열은 더욱 빠른 속도로 제 몸집을 줄였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샤를의 푸른 눈이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도 살기 어린 눈으로 샤를을 노려봤다.

“금사자 미물. 너 이 새끼.”

도롱뇽은 대악마의 힘을 발현한 샤를을 보고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때 도롱뇽의 변신이 풀렸다.

“엥? 히익!”

순식간에 작아진 도롱뇽과 바토리, 펀치가 공중에 떴다.

바토리는 도롱뇽의 목을 붙잡아 제 품에 갈무리한 뒤 펀치를 감싸 안았다.

“펀치야!”

“꽥! 목 눌린다! 나 목 눌린다 할망구!”

이번에도 요롱이가 바토리의 몸을 받았다.

바토리의 품 안에서 허우적거리던 도롱뇽이 간신히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비, 빌어먹을 할망구! 몸은 앙상하게 마른 주제에 무식하게 가슴만 커가지고!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켁켁!”

“응? 뭐? 가, 가슴?”

오토가 콧구멍을 발름대며 바토리를 돌아보다 카스피에게 목을 얻어맞았다.

그 탓에 정신 감응이 흐트러진 요롱이가 추락할 것처럼 몸을 흔들었다.

“흐응 도롱뇽아. 난 가슴만 큰 것이 아니라 그냥 몸매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의 비루한 몸 따위 알 게 뭐냐! 퉷! 퉷! 퉤엣!”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바토리와 도롱뇽은 아틸라와 샤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 전사는 여전히 드라코리치의 머리 위에서 검을 부딪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아틸라가 불리했다.

크르르르르르…….

드라코리치가 일행을 노려봤다.

드라코리치의 시선은 도롱뇽을 향해 있었다.

도롱뇽은 드라코리치가 전하는 목소리를 읽었다.

“코르키코스……, 아니 드라코리치를 구속하던 칼날 산맥의 의지가 무너지고 있다.”

“뭐라?”

바토리가 도롱뇽을 봤다.

나머지 일행도 도롱뇽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 금사자 미물의 몸에 대악마가 현신하며 이 세계를 구성하던 어떤 인과가 비틀렸다. 심지어 대격변이 그 비틀림을 더욱 가속하고 있어.”

“흐에엣! 그, 그럼 드라코리치가 균열을 뚫고 나와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야?”

카스피의 물음에 도롱뇽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 침묵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슈시아가 이를 악물며 활을 들었다.

드라코리치가 어찌 되든 지금은 아틸라를 도와야 한다.

그것을 바토리가 막았다.

슈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바토리를 봤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기다려 보거라. 슈시아.”

바토리는 안력을 높여 아틸라와 샤를, 그리고 균열을 비집고 나오려는 드라코리치를 노려봤다.

“네 직관의 힘으로는 저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 것이더냐.”

그 말에 슈시아가 두 눈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슈시아는 보았다.

아틸라와 샤를은 단순히 검만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쾅! 콰앙! 콰아아앙!

슈시아는 아틸라의 몸에서 발산하는 검은 기운과, 샤를의 몸에서 발하는 검은 기운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검과 검의 부딪음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저것은……!”

바토리의 안력으로는 슈시아가 보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다만 바토리는 그 상황을 피부로 감각했고, 슈시아가 직관의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공간이…… 뒤틀리고 있다. 아틸라와 샤를과 드라코리치, 그리고 균열에서 발하는 기운이 뒤섞이며 서로를 밀어내고 있어.”

그제서야 슈시아는 바토리가 자신을 막아선 이유를 알았다.

아틸라와 샤를이 있는 저 공간은 위험하다.

섣불리 타격하려 했다간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이곳을 집어삼킬지 모른다.

“엘프 미물의 말이 맞다. 드라코리치가 우리 쪽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겠지. 이미 저쪽은 우리의 손을 벗어났어.”

“그, 그렇다면 이렇게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아래쪽의 언데드라도 처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소!”

오토의 제안은 타당했다.

일행은 고개 숙여 전장을 살폈다.

샤를이 카르타고에게 명령했던 대로, 언데드들은 일사불란하게 후퇴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연합군이 아니었다.

연합군은 후퇴하는 언데드를 쫓아 공격을 감행했다.

카스피가 깜짝 놀라 외쳤다.

“엥? 저, 저거 키릴 아니야?”

카스피의 말대로였다.

어지러운 전장 한가운데 키릴이 있었다.

“에엥? 성기사 아가씨가? 그 아가씨는 남부 전선 총사령관이라더니 왜 여기 와 있는 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카스피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는 자기한테만 아가씨라고 안 부른다며 구시렁댔다.

키릴은 성기사단의 선두에서 언데드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카스피는 샤를이 카르타고에게 했던 명령을 재차 떠올렸다.

‘언데드를 철수시켜라. 카르타고.’

‘단, 추격하는 적은 제압해도 좋다.’

일단은 연합군을 막아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의 카르타고는 샤를의 명령을 따르고 있고, 샤를은 언데드 군단의 철수를 명했다.

후퇴하는 언데드들을 보내 준다면 더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것이다.

카스피가 바토리를 돌아봤고, 바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토리는 지금의 상황을 오토와 슈시아에게 설명했다.

잠시 후 오토가 연합군의 지휘관들을 찾아 요롱이를 움직였다.

* * *

아틸라는 자신의 몸이 매우 무겁다고 느꼈다.

카르타고를 상대하기 위해 무리해서 발현한 광폭의 권능이 후유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틸라는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육체를 감각했다.

이질적인 두 가지 심상.

그렇지만 그건 허상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둘 모두를 실제라 여겼다.

쾅! 콰아앙! 콰아아앙!

검과 검이 부닥칠 때마다 공기가 진동했다.

지진이 인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아틸라와 샤를은 더 이상 드라코리치의 머리 위에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가 만든 환술의 공간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아틸라의 손엔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온 드라칼리온 대신 흑철검과 무휼이 쥐여 있었다.

샤를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마치 아름답게 조각된 인형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아틸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샤를은 대악마 아몬의 현신이다.

“아틸라. 넌 나와 동류의 힘을 지니고 있다.”

샤를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쉴 새 없이 울리는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아틸라가 물었다.

“넌 앞으로 무얼 하려는 거냐. 샤를.”

아틸라 역시 샤를이 언데드 군단을 철수시키라 명한 것을 들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이대로 샤를을 보낼 수 없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틸라의 본능이 그렇게 외쳤다.

그래서 아틸라는 샤를을 공격했다.

샤를이 답했다.

“나의 꿈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에 아틸라가 비웃듯 말했다.

“이미 한참은 달라진 것 같은데 샤를. 넌 네가 맞서 싸우던 언데드 군단의 우두머리가 됐다.”

“내가 언데드 군단의 군주가 된 건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난 카르타고와 다르다. 난 무고한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다.”

검과 검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아틸라는 전신의 뼈와 근육이 삐걱대는 감각을 느꼈다.

“그렇다면 언데드들을 어떻게 할 심산이지? 설마 네 손으로 직접 소멸시킬 생각은 아닐 테고.”

“난 크리엘도라 대륙을 통일할 것이다. 남부 대륙을 넘어 북부의 대제국까지. 카르타고와 수블라, 나머지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이 힘을 보탤 것이다. 또한 그들을 포함한 언데드 군단은 대륙이 ‘영원한 평화’를 맞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평화라고?”

“난 대악마 아몬의 힘을 받아들여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언데드 군단 역시도 나처럼 불사의 육체를 지니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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