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20화 (320/425)

320. 예언과 운명 (8)

슈시아는 아틸라의 부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독화살을 맞춰 달라니.’

아틸라는 슈시아에게 부탁했었다.

자신이 신호하면 독화살을 날려 등에 명중시켜 달라고.

심지어 아틸라는 자신의 체력 상태를 직관의 눈으로 확인해,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독화살을 쏘아 달라 말했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슈시아는 수락했다.

‘아틸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틸라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슈시아는, 아틸라가 제 손으로 흉갑을 분리하는 광경을 봤다.

슈시아는 그것이 아틸라가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직관의 눈으로 아틸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틸라의 체력은 크게 저하되지 않았다.’

슈시아는 다섯 발의 독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아틸라가 소리쳤다.

“슈시아아아아!”

슈시아의 손에서 다섯 발의 독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은 갑옷이 분리돼 맨살이 드러난 아틸라의 등에 명중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독이 몸에 퍼지기도 전에 죽었을 공격이었다.

그러나 슈시아의 타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틸라였고, 저 괴물 같은 사내는 다섯 발의 독화살을 견뎌 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브레스를 향해 맨몸으로 뛰어들었다.

“야만전사야!”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바토리마저 경악해 소리쳤다.

바토리는 아틸라가 슈시아에게 했던 부탁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아틸라가 자신의 뜻을 관철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독화살을 맞은 아틸라가 도롱뇽의 브레스를 향해 뛰어들 거란 생각은 슈시아도, 바토리도, 카스피 역시도 하지 못했다.

“흐에엣! 아, 아틸라 왜 저러는 거야!”

오토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얼떨떨한 표정을 했다.

그는 요롱이와의 정신 감응에 집중하느라 아틸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오토가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현재 타락한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를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히! 히익! 뭐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러는 거요!”

언제나처럼 카스피는 아틸라의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도 제 자리를 지켰다.

카르타고에게 뛰어내리기 전, 아틸라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마라. 네 임무는 중앙 마탑의 리치를 상대하는 거다.’

‘하, 하지만 아틸라.’

‘약속할 수 있지? 카스피.’

카스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귀안을 뜬 카스피는 아틸라가 양팔로 얼굴과 몸을 가린 채 브레스 속을 파고드는 것을 봤다.

카스피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아틸라의 위험을 보면서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하지만 아틸라……! 중앙 마탑의 리치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아틸라의 말과 달리 리치는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수블라 템페스타와 청마탑 마법사들이 경합하는 광경이 어렴풋이 감지될 뿐이었다.

카스피는 안절부절못했다.

지금이라도 뛰어내려 아틸라를 돕고 싶었다.

‘이잇……! 몰라! 나중에 아틸라에게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카스피는 아틸라의 명령을 어기고 뛰어내리려 했다.

그런 카스피의 손을 바토리가 잡았다.

“……바토리?”

“아틸라를 믿거라. 카스피.”

바토리의 다른 손에선 가공할 마법이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아에스투스의 몸통에 적중했다.

아에스투스가 비명을 질렀다.

카스피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손을 잡은 바토리의 악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아파 바토리.”

그렇게 말하던 카스피는 바토리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에스투스가 발톱 공격을 뻗어 왔다.

바토리는 강력한 방어 마법을 펼쳐 그것을 막았다.

이어 첨예한 공격 마법을 발현해 아에스투스의 앞다리를 공격했다.

키에에에!

아에스투스가 움찔하며 앞발을 거뒀다.

카스피는 감탄했다.

자신은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눈앞의 바토리가 엄청난 마법사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대단해. 나 같은 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 무시무시한 드래곤을 상대로 이렇듯 팽팽한 접전을 펼칠 수 있는 인간이 대륙 전체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카스피는 세베스티아와 싸우던 아틸라를 떠올렸다.

아틸라도 바토리 못지않은 괴물이다.

아틸라는 결국 세베스티아의 목을 잘랐다.

‘하지만 그때의 아틸라는 혼자가 아니었어.’

만약 아틸라와 세베스티아가 일대일의 대결을 펼쳤다면, 아틸라는 지금 이곳에 있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때의 아틸라는 버서커의 힘을 사용했었고, 벨리알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아틸라에겐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어. 심지어 적조차 아틸라를 도왔어.’

지금의 바토리도 혼자는 아니다.

오토의 환수인 요롱이가 바토리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 주었고, 슈시아 또한 지척에서 바토리를 조력하고 있다.

그러나 카스피는 설령 바토리가 홀로 아에스투스를 상대했다 할지라도, 지금과 크게 다른 그림이 펼쳐졌을 거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바토리는 강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

그런 바토리가 지금, 떨고 있었다.

‘바토리는 두려운 거야. 아틸라를 잃을까 봐.’

그럼에도 바토리는 아틸라를 돕지 않았다.

아에스투스를 막는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자리를 이탈한다면, 더욱 커다란 위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바토리.”

카스피는 바토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바토리의 손아귀 힘이 풀어졌다.

카스피는 부어오른 자신의 손에 후후,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고는 언제 등장할지 모를 리치를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귀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건 무리가 있었기에, 카스피는 슈시아와 교대로 주변을 감시했다.

“히익! 힉! 요, 요롱이 이놈아! 학! 하아악!”

오토는 요롱이와 함께 아에스투스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토리도 아에스투스와 끝없는 마력 대결을 펼쳤다.

카스피는 일부러 아틸라 쪽을 보지 않았다.

리치를 탐색하며, 혹시 모를 바토리의 위험에 대비했다.

바토리가 속삭였다.

“슈시아. 나 없이 아에스투스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음? 뭐라고?”

슈시아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제법 힘을 빼 놨으니, 녀석도 처음만큼 위력적이진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카스피가 널 도울 것이다.”

“에에엥?”

이번엔 카스피가 놀라 바토리를 쳐다봤다.

슈시아와 카스피를 돌아보며 바토리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난, 이대로 아틸라를 내버려 둘 수가 없구나.”

바토리의 몸이 지면을 향해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다.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던 카스피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배, 배신자! 처음부터 혼자 가려고 수작을……! 이, 이런 게 어딨냐고 바토리이이이이!”

바토리의 맑은 웃음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 * *

카아앙!

브레스를 뚫고 튀어나온 드라칼리온이 카르타고의 검과 부닥쳤다.

카르타고의 오른팔은 여전히 도롱뇽이 물고 있었다.

또한 카르타고의 절단된 어깨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형체는 도롱뇽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카르타고는 왼손의 검을 뻗어 아틸라의 공격을 막았다.

직전까지 오른손에 쥐여 있던 그의 검은 어느새 왼손으로 넘어갔다.

‘야만 미물!’

아틸라는 바토리의 어떤 가호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야만 미무울! 빌어처먹을 야만 미무우우울!’

아틸라는 원래부터 일그러져 있던 얼굴을 더욱 구겼다.

눈앞의 카르타고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도롱뇽의 주둥이를 닥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는 도롱뇽이 저렇게 소리치는 이유를 알았다.

지금 자신의 몸은 엉망진창일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카르타고와의 피 튀는 전투 중에 슈시아의 독화살을 맞았고, 이어 성체로 변한 도롱뇽의 브레스를 온몸으로 견뎠다.

어찌 보면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아틸라는 광폭의 권능이 소멸한 뒤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성체가 된 도롱뇽마저 일격으로 지면에 처박은 카르타고다.

버서커로 변모한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화르르륵!

카르타고의 붉은 오러가 아틸라를 습격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아틸라는 이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스킬을 시전했다.

아니, 스킬을 시전했다기보다는.

저절로 몸에서 발현됐다.

[ 검기(劍氣) ]

상태창은 없었다.

다만 저것은 아틸라의 기억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었고, 그렇게 스킬의 시전 없이 아틸라는 검기를 발현했다.

콰앙!

카르타고의 오러와 아틸라의 검기가 맞부딪쳤다.

아틸라는 자신이 발산한 검기가 카르타고와 같은 붉은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아닐는지도 모른다.

광폭의 권능을 발현한 아틸라의 시야는 붉은빛으로 변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모조리 붉다.

퍼어어엉!

아틸라의 몸이 뒤로 튕겨났다.

버서커와 버서커의 전투였지만 모든 상황이 아틸라에게 불리했다.

버서커로 변모하기 전에도 카르타고는 아틸라보다 강했다.

또한 아틸라는 버서커의 힘을 발현하기 위해 상당한 체력 소모를 일으켰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아니었다.

녀석은 아틸라와 달리 아무런 손해도 감수하지 않고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다.

아틸라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음이 났다.

입술이 찢기며 핏물이 튀었다.

아틸라는 웃고 있었다.

카르타고의 후미로 진입한 펀치 때문이었다.

우어어어어어!

펀치의 앞발이 카르타고를 가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롱뇽을 억류한 그의 새로운 오른팔을 타격했다.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음을 울리며 카르타고의 오른팔이 무너졌다.

엄청난 공격력이었다.

펀치가 발현한 스킬 때문이었다.

[ 광폭화(狂暴化) ]

[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狂暴)의 힘을 개방하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조건부 패시브 스킬입니다. ]

[ 스킬, 야수의 발톱의 효과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

[ 공격 속도가 15% 빨라지며, 모든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

[ 광폭화는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

이번의 일격은 카르타고마저 사뭇 놀라게 만든 듯했다.

카르타고의 붉은 안광이 펀치를 돌아봤다.

피처럼 붉은 오러가 펀치에게 쏘아졌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오러는 펀치에게 닿지 못했다.

억류에서 풀려난 도롱뇽이 펀치를 등에 태우고 하늘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쾅!

카르타고의 오러는 아무것도 없는 지면을 강타했다.

도롱뇽은 바로 하강하지 않고 더욱 높은 곳으로 상승했다.

우어어? 펀치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흐응. 마중 나온 것이더냐 도롱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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