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예언과 운명 (5)
“호우호우!”
두두두두두두두!
수많은 전투산양들이 죽은 대지 위를 달렸다.
저만치 앞에선 금사자 기사단이 언데드와 격돌을 시작하고 있었다.
콰앙! 쾅! 콰아아앙!
기사들이 검과 방패를 휘두를 때마다 언데드들은 속절없이 나가 떨어졌다.
금사자 기사단의 무력은 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닌 무구엔 제롬의 특별한 마법이 각인돼 있었다.
그것이 언데드가 지닌 불사의 힘을 무너뜨렸다.
“뒈져라! 언데드 녀석들!”
“죽어! 죽어! 죽어어어엇!”
그간 지속된 전투에 금사자 기사단은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인하르트 왕국의 최정예 기사들.
이 정도 고난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짐을 따르라!”
게다가 선두엔 언제나 그들의 주군, 샤를 아인하르트가 있었다.
대장군 피핀이 있었다.
기사들이 주군의 부름에 목청껏 화답했다.
샤를과 피핀은 놀라운 검세를 보이며 언데드의 진영을 무너뜨렸다.
병사들이 사기가 치솟았다.
“가자! 주군을 따르라!”
“대장군을 따르라!”
“우와아아아아!”
아인하르트의 깃발을 단 수많은 병사들.
그들에게 샤를은 본래 적이며, 침략자였다.
그 강대한 적이 자신들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거대 왕국을 건설했다.
그럼에도 아인하르트의 병사들은 샤를을 진심으로 숭배하고, 따랐다.
샤를에겐 강력한 존재감이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감화되게 하여, 결국엔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언젠가 제롬도 인정했던, 제왕적 카리스마.
“궁병대!”
샤를이 왼손을 들자 좌측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그것이 언데드의 움직임을 일순 둔하게 만들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금사자 기사단이 언데드들을 무력화시켰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샤를이 이번엔 오른손을 들었다.
콰르륵! 콰륵! 콰르르르르!
우측 후방에서 수속성 마법이 날아왔다.
물의 재질을 갖고 있지만 금속 무기 못지않은 예리함을 뽐내는 마력의 다발이 언데드들을 습격했다.
펏퍼퍼퍼펑!
날카로운 물의 창날이 언데드들을 관통했다.
조준은 정확했고, 공격력도 상당했다.
청마탑 마법사들을 이끄는 이는 아틸라 일행과도 함께한 적이 있는 라쿠나 야르비.
그녀가 청마탑을 이끄는 이유는 간단했다.
청마탑주 쿨리 야르비와, 서열 1위부터 3위의 마법사 전원이 지난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로 지난 전투는 치열했다.
라쿠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청마탑주를 죽인 상대를 머리에 떠올렸다.
‘수블라 템페스타.’
수블라의 마법은 대단했다.
수블라는 인간이었을 때도 청마탑주보다 강자였다고 들었다.
더구나 리치가 된 지금은 더욱 강해졌다.
라쿠나는 수블라의 실력을 똑똑히 봤다.
그리고 라쿠나는 자신이 아직 수블라를 쓰러뜨릴 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측후방에서 금사자 기사단을 보조하는 것에 주력했다.
수블라를 쓰러뜨리는 건 자신이 아니다.
남부의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다!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여!”
청마탑 서열 4위에서 단숨에 탑주 대리까지 오른 라쿠나가 마법사들을 독려했다.
이어 라쿠나의 마법 발현을 시작으로, 나머지 마법사들이 수속성 마법을 발사했다.
콰륵! 콰르륵! 콰르르르륵!
빼어난 수속성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에 약간의 치유의 힘을 담을 수 있다.
그 힘은 언데드에게 상극이다.
물론 완전히 불에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화속성 마법이 언데드 상대로는 더욱 강력하지만.
치유의 힘을 가미한 수속성 마법도 언데드들에게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키에에!
키에에에에……!
마법에 직격당한 언데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위로 금사자 기사단의 검과 방패가 꽂혔다.
황금바위 드워프의 도끼가 내리쳐졌다.
“이놈들은 정말 장작을 깨부수는 느낌이군! 누음앗핫핫핫하!”
“벌써 일어난다! 일어나!”
“일어나면 다시 부수면 그만이지!”
“그나저나 보에몽 도끼질하는 것 좀 보라고! 크누트 젊었을 적을 빼다박았어!”
“크누트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건가!”
“시끄럽고! 일단은 이 뼈다귀 놈들부터 처리하자고!”
“호우호우!”
전황은 언제나와 비슷했다.
연합군이 언데드를 몰아치고, 새로운 언데드가 쉴 새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후방에 언데드 군단……!”
마법사 하나가 놀라 외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라, 라쿠나 탑주 대리! 우측면에서도 언데드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좌측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라쿠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마법사들의 말처럼, 수많은 언데드들이 아군을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정면의 언데드들은 미끼였던 건가? 하지만 어디서 저렇게 많은 언데드들이 나타난 거지?’
라쿠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동안 카르타고의 언데드 군단은 상당한 숫자의 언데드를 줄기차게 내보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언데드가 한꺼번에, 그것도 사방에서 나타난 건 처음이었다.
라쿠나는 이번 사태의 인과를 생각해 봤다.
‘수블라 템페스타는 중앙 마탑을 장악했다. 이후 중앙의 마법사들이 대거 리치로 변모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리치로 타락한 중앙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이 힘을 합쳐 마계의 언데드를 소환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도 맹점은 있었다.
라쿠나는 자신의 우측, 즉 남쪽에서 북상하는 언데드들의 행색에서 낯익음을 발견했다.
‘설마 저건……!’
끔찍한 생각이 라쿠나의 뇌리를 스친 것과 동시였다.
펄럭.
귀에 익은 날갯짓 소리.
길고 거대한 그림자가 연합군 진영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 모르는 이는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에스투스……!”
아군 진영이 대번에 소란스러워졌다.
“아에스투스다!”
“타락한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가 나타났다!”
“버서커 카르타고가 전장에 등장했다!”
아에스투스의 목울림이 공기를 울렸다.
아에스투스는 제법 먼 거리에 있었건만, 지상의 모든 병사가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크르르르르……!
병사들을 겨누며 아에스투스가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흡사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시커먼 목구멍에 마기가 응집됐다.
샤를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전군! 대(對) 브레스의 진을 펼쳐라!”
“우오오오오!”
샤를의 명을 받은 기사와 병사들이 큰 소리로 답하며 진을 펼쳤다.
철커덕, 철컥, 서로에게 어깨를 밀착하며 하늘을 향해 방패를 뻗었다.
그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파드드드드드드!
아에스투스의 브레스가 기사와 병사들을 덮쳤다.
물론 평범한 방패 따위로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금사자 기사단의 방패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곳곳에 자리잡은 황금바위 드워프의 방패 역시 평범한 방패와는 궤를 달리했다.
“누음앗핫핫하! 이거 정말 뜨거워 미칠 것 같군!”
“나약한 놈 같으니! 대장장이들은 이 정도 열기쯤 숨 쉴 때마다 맡는다고!”
“지랄들 말고 어깨에 힘이나 딱 줘! 나중에 크누트에게 흠씬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알았다고 라그나!”
“호우호우!”
드워프들은 자신의 팔이 검게 타들어가는 것에 아랑곳없이 방패벽을 유지했다.
실로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콰르르르르르륵!
청마탑 마법사들이 연합해 발현한 물의 장막이 허공에 펼쳐졌다.
금사자 기사단의 방패.
황금바위 드워프의 방패.
일반 병사들의 방패.
그 위로 강력한 물의 장막마저 추가되자 연합군의 방어벽은 상당한 효율을 발휘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으아아아아!”
“크헉! 끄아아아……!”
“내 팔……! 내 팔이이이이……!”
브레스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 아군이 차례로 무너졌다.
당연하게도 피해자의 대부분은 일반 병사들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팔을 뻗어라! 방패를 들어라!”
방패벽의 중심에 선 샤를이 웅혼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아레스의 신력을 발현해 아에스투스의 브레스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브레스는 브레스였다.
신의 피조물 중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 드래곤.
그런 드래곤이 자신의 마력을 가장 극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브레스다.
“크헉……!”
“컥……!”
기사 중에서도 쓰러지는 자가 생겼다.
아에스투스의 숨결은 길었다.
아니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나, 방패 하나에 의지해서 그것을 막는 병사들 입장에선 수십 분은 흐른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브레스는 드래곤이 내뿜는 마력의 숨결이고, 결코 영원할 수 없다.
이윽고 아에스투스의 숨이 다하며 브레스가 멎었다.
기다렸다는 듯 샤를이 외쳤다.
“궁병대!”
궁병대는 방패벽의 비호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방패의 틈새로 튀어나온 궁병대가 화살을 조준했다.
직전과 다르게 그들의 손엔 제롬의 마법이 각인된 특별한 화살이 쥐여 있었다.
“발사!”
새하얀 빛을 내는 마법의 화살비가 하늘로 쏘아졌다.
그것은 마치 발키리 부대가 운용하는 마력 화살을 닮아 있었다.
아에스투스도 조금의 위기감은 느꼈는지 부웅, 몸을 비틀어 화살을 피했다.
궁병대의 마법 화살은 단 한 발도 아에스투스에게 적중하지 못했다.
아에스투스가 날개를 접으며 하강했다.
그 자리로 라쿠나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파캉!
라쿠나가 준비한 비장의 공격이 다른 마력과 부닥치며 분쇄됐다.
마기가 섞인 폭풍의 마법.
라쿠나는 상대를 직감했다.
“……수블라 템페스타.”
지면으로 하강하던 아에스투스가 날개를 펴며 비상했다.
그 위로 하나의 점이 떠올랐다.
아니, 아주 잠시 솟아오르는 듯 보였던 그것은 이내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연합군 병사들 속으로 추락했다.
이어 발생한 충격파가 병사들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쾅!
그것은 아틸라의 도약 스킬과 비슷했다.
또한 실제로 이 기술의 발현자는 아틸라의 도약 스킬을 기억하고, 따라해 본 것이었다.
검붉은 갑주.
투구 너머로 흩날리는 적색 머리칼.
전신에서 불꽃처럼 발산하는 검은 오러.
샤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버서커 카르타고.”
파파파파파팡!
카르타고가 검을 휘두르자 병사 십수 명의 허리가 일거에 절단됐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언데드 군단 곳곳에서 데스나이트들이 나타났다.
샤를은 피핀과 단장급 기사들에게 데스나이트의 처리를 맡겼다.
자신은 카르타고를 향해 달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카르타고.’
샤를은 웃었다.
카르타고를 본 순간 전신을 휘돌던 피로감이 휘발됐다.
지금 그의 육체와 정신은 오직, 카르타고와 싸워 쓰러뜨리겠다는 일념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카르타고의 몸에서 발하는 마기가 폭탄처럼 터졌다.
그것이 근처에 있던 병사들을 파편처럼 흩어지게 만들었다.
카르타고가 무릎을 구부려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야수처럼 달렸다.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뛰어오는 샤를을 향해.
- 샤를 아인하르트.
“카르타고.”
두 전사의 무기가 폭풍처럼 몸을 섞었다.
* * *
오토는 요롱이가 부르르 몸을 떠는 것을 감각했다.
그는 요롱이의 정신을 읽어 들였다.
요롱이의 머릿속은 극도의 불안과 흥분, 공포 등의 감정으로 뒤섞여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아에스투스가 나타난 것 같소. 아틸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