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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16화 (316/425)

316. 예언과 운명 (4)

오토가 발끈했다.

“미, 미친 새끼라니! 농담 한 마디 한 거 가지고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요! 이, 이래봬도 내가 일국의 왕이다 이 말이오!”

“그 일국의 왕께서 왜 백성을 돌보지 않고 날 따라왔냐.”

오토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외쳤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요! 서둘러 출발해야 하니 빨리 요롱이 데려오라며 아틸라 님이 다그치지 않았소!”

“응? 내가? 자발적으로 따라온 거 아니었어?”

오토가 분통이 터진다는 듯 제 가슴을 후려쳤다.

“아이고 아이고오! 내 이대론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소! 누가 내 억울함 좀 풀어 주시오! 살쾡이 암살자! 바토리 아가씨이이이!”

“케헷헷헷헤! 종복 미물 새끼! 표정 한번 가관이구만!”

오토의 울상을 보며 도롱뇽이 배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도롱뇽과 달리 카스피는 다소 당황한 얼굴을 했다.

잘못을 저지른 고양이처럼 아틸라의 눈치를 살폈다.

“……저, 저기 아틸라. 이번만은 영주 나리 말이 맞는 것 같아.”

바토리도 거들었다.

“그래. 철혈귀검의 말이 사실이긴 하구나.”

“흠.”

아틸라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바토리와 카스피를 봤다.

이어 입꼬리를 찢은 채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오토를 본 아틸라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바토리가 서둘러 말했다.

“허나 야만전사야. 네가 그리 말하지 않았어도 철혈귀검, 저 아이는 무슨 핑계를 대서든 우릴 따라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철혈귀검아.”

바토리가 오토를 돌아봤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살벌했기에 오토는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그건 그렇수. 아무리 아틸라 님이 오지 말라 했어도…… 난 한사코 따라왔을 거요.”

사실 그건 오토의 본심이기도 했다.

오토는 나바라 왕국의 왕이 된 후에도 아틸라를 따라다녔다.

대격변이니, 세상의 구원이니,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오토는 그저 아틸라와 함께하는 삶이 즐거웠다.

바토리, 펀치, 도롱뇽과 함께하는 여정이 즐거웠다.

슬며시 눈을 굴려 카스피를 봤다.

오토는 카스피를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뭐야 영주 나리. 왜 그렇게 째려봐?”

“째, 째려보다니. 그런 적 없수.”

“뭐야. 내가 아틸라에게 두들겨 맞을 각오까지 하고 도와줬는데, 그게 목숨을 걸고 도와준 동료에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야? 나 정말 섭섭해 영주 나리.”

“어이 카스피. 누가 들으면 내가 진짜 너희들 패고 다니는 줄 알겠는데.”

“영주 나리는 패잖아.”

“자, 잠깐! 그러고 보니 백성들 내팽개치고 우릴 따라온 왕이 하나 더 있지 않소!”

오토의 외침에 일행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슈시아가 눈을 동글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다들 날 보고 있는 거지?”

“발키리 아가씨는 서리나무 엘프의 왕 아니요! 근데 왜 혼자 우릴 따라온 거냐 이 말이오!”

“내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 건 아틸라입니다. 오토마이어 왕.”

“아이고 오토마이어 왕은 무슨. 그냥 오토라고 불러 주쇼 발키리 아가씨. 헤헤.”

“잠깐 영주 나리. 나 진짜 기분 나쁘려고 해.”

“응? 뭐가 말이우? 살쾡이 암살자.”

“아니 그게 그렇잖아. 바토리는 바토리 아가씨고, 키릴은 성기사 아가씨고, 라쿠나는 마법사 아가씨고, 슈시아도 발키리 아가씨인데 왜 난 살쾡이 암살자냐고.”

“그, 그야 뭐…….”

“나도 살쾡이 아가씨 할래. 아, 아아니! 암살자 아가씨…… 아니지, 살수 아가씨? 아니아니! 그래 카스피 아가씨. 이제부터 카스피 아가씨라고 불러 줘.”

“켁! 카스피 아가씨라니.”

“뭐, 뭐야 영주 나리! 그 터무니없다는 듯한 반응은!”

카스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걸 본 오토가 잠시 후 큰 소리로 웃었고, 나머지 일행도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공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사실 일행은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향하는 곳에서 맞이할 전쟁은, 일행이 경험했던 그 어떤 전투보다 위험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샤를마저 패배했다.’

그러나 전령에게 듣기로, 샤를은 카르타고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샤를의 연합군이 카르타고의 언데드 군단을 뚫지 못했을 뿐.’

전면전이 시작된 이래 샤를은 카르타고와 검을 맞댄 적이 없었다.

카르타고는 전선에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전투에서 언데드 군단을 통솔한 건 알폰소 카스티야를 포함한 데스나이트들과, 회색 마탑의 탑주 수블라 템페스타였다.

‘놈들이 중앙 마탑을 둘러싼 채 농성했고, 결국 결계를 부숴 침략과 장악에 성공했다.’

수블라는 병법에 능한 마법사다.

중앙 마탑을 쓰러뜨리는 덴 분명 수블라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수블라는 야심가다.’

생전의 수블라는 자신의 강력한 마력과 병법을 활용해 중앙 마탑을 집어삼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야망을 리치가 되어 이뤘다.

“바토리. 수블라를 다시 만난다면 제거할 수 있겠나.”

아틸라의 말에 바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중간계에서 날 이길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만한 대답에 아틸라가 피식 입가를 올렸다.

바토리도 싱긋 입가를 올렸다.

카스피가 끼어들었다.

“……저기 초칠 생각은 아닌데 아틸라. 그 수블라라는 리치와 언데드들이 중앙 마탑을 장악했다면 말이야. 중앙 마탑에 있다는 그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들이 리치가 되었다는 말 아니야?”

“그렇겠지.”

오토가 펄쩍 뛰었다.

“뭐, 뭐요! 그럼 그 수블라 같은 괴물 놈들이 무더기로 있다는 말 아니요!”

“중앙 마탑의 모든 마법사가 언데드가 되진 않았을 거다. 4대 마탑주나 중앙의 마법사쯤 되는 실력자라면, 리치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완전히 멸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오토가 휴,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틸라도 몇 명의 중앙 마법사가 리치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가능성은 적지만, 최악의 경우엔 중앙 마탑의 모든 마법사가 리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걱정 말거라 야만전사야. 중앙의 애송이들은 꽉 막혀 있긴 해도 제 몸이 언데드로 변하는 걸 달가워하는 이들은 아니란다.”

“자, 잠깐 아틸라. 그럼 회색 마탑주였던 수블라 템페스타는 자신이 리치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스스로의 몸을 소멸시키지 않고, 리치의 삶을 받아들였다고?”

“충분히 그럴 만한 녀석이다. 수블라는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는 것 따윈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인물이지. 놈은 테헤누트 하토르와 마찬가지로 영생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도 짧다고 생각했으니까.”

듣고만 있던 슈시아가 툭 내뱉었다.

“결국 그 바람을 이룬 셈이로군.”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아틸라는 얼마 전 칼날 산맥에서 수블라를 봤다.

그가 보기에 수블라는 카르타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수블라는 자발적으로 카르타고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수블라는 야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긴 하지만, 이 세상을 언데드 소굴로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위인은 아니다.’

그런 그가 카르타고를 따르며 언데드 군단을 지휘하고 있다.

이대로 카르타고가 전쟁에 승리한다면, 살아 있는 인간은 남지 않을 것이다.

그건 수블라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수블라는 샤를을 따르는 편이 좋았을 거다. 샤를은 남부를 넘어 크리엘도라 대륙 전체를 통일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수블라 정도 되는 마법사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수블라는 언데드가 되어 카르타고를 따르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울러 그건 아틸라가 이전에 추론한 적이 있던 ‘카르타고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아틸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빨라졌다.

“오토. 서둘러라.”

“안 그래도 지금 최대 속도로 날고 있는 거요.”

바토리가 아틸라의 불안을 감지했다.

아울러 그녀 역시도, 아틸라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운은 동료들에게 전염됐다.

오토와 카스피의 표정이 굳었다.

슈시아는 큰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평소보다 훨씬 말수가 적었다.

조금 전까지 ‘더 빨리 달려라 종복 미물 새끼!’를 외치던 도롱뇽도 어느 샌가부터 입을 다물었다.

펀치만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헥헥 혀를 내밀며 바람을 맞았다.

휘이이잉.

펀치의 이마 정중앙에 십자 모양 가르마가 생겼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는 펀치의 인벤토리에 넣어 둔 흑철방패를 떠올렸다.

세베스티아와의 전투에서 흑철방패는 못쓸 정도로 망가졌다.

이후 아틸라는 흑철검과 무휼, 혹은 드라칼리온을 활용해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아틸라는 대부분의 경우에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전투 방식을 선호했다.

또한 아에스투스의 브레스로부터 몸을 지키려면, 마법을 시전할 수 없는 아틸라에게 방패는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단독으로 브레스를 맞닥뜨리면 상당히 위험하겠군.’

아틸라는 원래 남부 대륙으로 돌아오자마자 골든핑거에게 수리를 부탁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골든핑거를 포함한 모든 황금바위 드워프는 샤를과 함께 중부 전선에 속해 있다.

* * *

보에몽의 기분은 한껏 들떠 있었다.

쉴 새 없이 치러지던 전쟁은 언데드 군단에게 중앙 마탑이 함락되며 일시적인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보에몽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아틸라가 중부 전선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틸라가 오고 있어!’

보에몽은 수 년 전 아틸라를 만난 일이 있다.

아틸라는 대단한 전사였다.

그는 황금바위 드워프족의 우수한 전사 넷을 동시에 상대해 쓰러뜨렸고, 황금바위산을 침공한 오크를 대량학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에몽의 아버지이자 황금바위산의 왕인 크누트 스톤핸드와 함께 키클롭스 삼형제 중 하나를 명계로 추락시켰다.

이후 중간계를 큰 위험에 빠뜨렸던 메피스토펠레스를 소멸시켰고, 그 과정에 명계에서 돌아온 버서커 카르타고마저 한차례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고대의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위대한 전사.

보에몽은 인정했다.

아틸라는 아버지인 크누트 스톤핸드를 뛰어넘는 전사다.

그리고 황금바위 드워프는 강한 전사를 존경하고, 숭배한다.

그래서 보에몽은 아틸라와의 재회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뿌우우우우우!

우렁찬 뿔피리 소리가 병영을 울렸다.

“적습이다!”

“언데드들이 몰려오고 있다!”

“전투 준비이이이!”

직전까지 고기를 뜯으며 큰 소리로 노래하던 드워프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그들의 얼굴이 전사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병영의 공기가 한순간에 변했다.

“보에몽!”

크누트가 황금바위 산양을 타고 달려왔다.

그의 오른편엔 라그나가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보에몽도 자신의 전투산양, 비켄의 등에 올라 크누트의 왼편에 섰다.

그런 보에몽을 보며 크누트가 웃었다.

큰 소리로 외쳤다.

“달려라! 황금바위의 드워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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