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14화 (314/425)

314. 예언과 운명 (2)

“뭐라고?”

아틸라가 되물었다.

아틸라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롱뇽의 말대로라면.

오르피나는 그로부터 먼 훗날 파우스트의 사령술사 할리가 지하마계에 소환진을 열 것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위치까지 예측했다는 뜻이 된다.

“물론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마계에서의 구질구질한 삶을 보내며 점차 녀석의 말을 믿고 싶어졌지. 어찌 보면 내가 지하마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그거 하나였으니까.”

그럼에도 도롱뇽은 오르피나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이유는 자신이 떨어진 곳이 평범한 마계가 아닌, 지하마계였기 때문이다.

“바토리 할망구도 알다시피 지하마계로 통하는 소환진은 아무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냐. 그런데 오르피나는 내게 훗날 할리라는 이름의 ‘미숙한 관조자’가 소환진을 열 것이라 말했지.”

“할리는 지하마계로 통하는 소환진을 열 수 있다.”

도롱뇽의 말을 자르듯 바토리가 말했다.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는 원래 바토리와 가까운 관조자였다.

바토리는 카르타고를 잃은 복수심에 파우스트를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적이 있다.

그러나 바토리는 파우스트를 관조자 세계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지 않았다.

할리와의 친분 때문이었다.

‘그런 바토리라면, 할리에게 지하마계로 통하는 소환진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 줬겠지.’

아틸라의 예상대로 바토리는 할리에게 그것을 알려 줬다.

그 인과가 결국 도롱뇽을 중간계로 돌아오게 만들었으며, 아틸라를 만나게 했던 것이다.

바토리는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오르피나를 봤다.

바토리가 입을 열기 전에 아틸라가 먼저 물었다.

“파멸의 신 오르피나. 당신은 어떻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던 거지?”

- 그대 역시 예지의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틸라에게 다가오며 오르피나가 답했다.

오토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히이익! 무, 물러나라 신아! 아아니 악마야!”

당연하게도 오르피나는 오토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틸라는 더 이상 오르피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일말의 적의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오르피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온화한 눈으로 아틸라를 보고 있었다.

- 그렇지 않습니까 버서커 아틸라, 아니…….

아틸라는 검게 불타는 오르피나의 얼굴이 일순 미소를 머금었다고 생각했다.

- 알테라(Altera).

“알테라?”

오르피나는 아틸라를 ‘알테라’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도롱뇽의 과거 이야기 속에서도, 오르피나는 알테라라는 말을 했었다.

‘넌 알테라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될 존재란다. 또한 넌 영원히 지하마계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을 탈출하도록 도울 거니까.’

“알테라라는 게 뭐지?”

- 알테라는 이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알테라이자, 또한 그대입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내게 중요한 의미가 될 거라고?”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그대가 이 세계를 독립된 세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핏빛의 마녀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그대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아틸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알테라.

이 세계를 파멸로부터 지킬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이 세계를 독립된 세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도롱뇽.

빌어먹을 신이 도통 알아먹기 힘든 말을 주절대고 있었다.

한편 바토리는 아틸라와 대화하는 오르피나를 보며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오르피나는 아틸라에게 필요 이상의 예(禮)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바토리는 오르피나의 말투와 행동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 ……그대는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아틸라는 오르피나의 목소리에서 여러 감정을 읽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은 아직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다시 묻지. 당신은 어떻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건가.”

- 그대에게 예지의 힘을 부여한 존재가, 내게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내게 예지의 힘을 부여한 존재?”

- 그대 역시 짐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틸라는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오르피나는 아까부터 확실한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틸라의 감정을 읽은 것처럼 오르피나가 말했다.

- 그대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대는 나를 포함한 이 자리의 누구도 지니지 못한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의 난, 그대에게 많은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뭐지.”

- 그대에게 예정된 미래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정된 미래라니. 마치 내 운명이 이미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 물론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스로의 운명을 짐작했고, 많은 것을 안배했습니다. 나 역시 당신의 수많은 안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오르피나의 말은 아틸라를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다.

- 난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중간계로 돌아올 완전한 통로를 확보하지 못한 까닭이지요. 그럼에도 불완전한 모습으로나마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예정을 벗어난 수해의 변덕 때문입니다.

“당신의 등 뒤를 뒤덮은 그 수해 말인가.”

- 수해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먼 옛날 나를 포함한 다섯 사도가 수해의 이변을 발견하고, 그것을 막았을 때부터.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오르피나는, 자신이 주신의 다섯 사도 중 하나라 말하고 있었다.

- 수해의 변덕은 서리나무 엘프의 영역인 서리나무숲으로 향하는 틈새를 뒤덮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불완전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은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물론 알테라, 그대를 만나게 될 일을 고대하긴 했지만…….

오르피나는 묘하게 말을 끌었다.

아틸라는 그런 오르피나의 모습에서 ‘신이라는 위대한 존재’의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건 아틸라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오토도, 카스피도, 심지어 바토리마저도 오르피나를 함부로 여기지 못했다.

그 정도로 오르피나에게서 뿜어지는 ‘격(格)’은 대단했다.

“당신이 서리나무숲을 뒤덮은 수해의 몬스터들을 제거했다는 건가.”

- 그 과정에 엘프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아틸라는 상황을 짐작했다.

오르피나는 예정된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곳을 찾아, 서리나무숲을 구했다.

그리고 아마도 엘프들을 죽인 건, 오르피나가 아닌 수해의 몬스터였을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오르피나가 제거한 몬스터들을 마구 집어삼켰고, 그 와중에 엘프의 시체가 섞여들어간 것이겠지.

- 그대는 서리나무 엘프를 이끌고 전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그대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르피나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새 오르피나는 다시 리바이어던의 머리에 올라 있었다.

- 그곳에서 그대는 시련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대 역시 이미 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아틸라는 오르피나가 곧 모습을 감출 거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나는 카르타고를 만났다. 녀석도 당신과 비슷한 말을 하더군. ‘이 세계는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다’라고.”

- 버서커 카르타고는 알테라의 운명을 위해 안배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예정된 미래의 ‘일부’를 알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카르타고의 인지 속 미래는 ‘전부’가 아닙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내 운명을 위해 안배된 존재라고? 카르타고가?”

- 카르타고가 지닌 버서커의 힘은 그대의 것과 다릅니다. 카르타고는 광폭(狂暴)의 ‘그림자’만을 운용하고 있을 뿐. 그림자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아틸라는 바토리가 명계의 검은 보석을 가리키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 바토리는 검은 보석이 ‘그림자’라 말했었다.

‘이 보석은 그림자란다.’

‘그림자?’

‘그래. 이것은 본체에서 파생된 그림자에 불과하구나.’

바토리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림자는 빛이 드리우는 방향에 따라 본체와 닮은 형태를 만들기도, 혹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만들기도 한단다.’

‘또한 그림자는 본체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단편적인 모습만을 그려 내지. 게다가 그 모양은 상황에 따라 상당히 불친절하기도 하단다.’

“당신은 광폭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아틸라의 물음에 오르피나가 옅게 웃었다.

- 광폭의 힘은 알테라, 그대의 뿌리 그 자체입니다. 그대는 혼돈에서 태어났고, 그렇기에 광폭의 권능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하고 있지요. 그대는 광폭의 권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나타나지도 않았었다는 것처럼, 오르피나는 일행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조금 전까지 오르피나가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는 사정없이 뿌리 뽑힌 수해의 거목들뿐이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나무가 뽑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리나무 엘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구나.”

바토리는 오르피나를 만나며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정리는 나중이었다.

일단은 오르피나가 마련한 길을 따라 서리나무숲을 찾아야 한다.

아틸라도 바토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행은 서둘러 요롱이의 등에 올라탔고, 수해 속으로 뚫린 길을 향해 날았다.

오토가 부르르 몸을 떨며 외쳤다.

“서, 서둘러라 요롱아아아! 수해의 나무들이 복구되기 전에에에에!”

다행히 수해의 나무들은 쉬이 복구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파멸의 신 오르피나의 채찍에 담긴 파괴의 마력 때문인 듯했다.

“……근데 아틸라. 왜 신이나 사도나 악마 같은 존재는 이름을 두 개씩 가지고 있는 걸까?”

“글쎄.”

이유는 아틸라도 몰랐다.

카스피가 다시 물었다.

“사도 아자젤이 고위악마 벨리알이었던 건 나름 충격이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거든? 근데 이번은 좀 아니지 않아? 파멸의 신 오르피나가 고위악마 닉스라니. 어떻게 신이 악마가 되고, 악마가 또 신이 될 수 있느냔 말이야.”

“악마는 원래 신이었다.”

“그,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악마는 주신 전쟁 때 신에게 반기를 들며 악마로 타락한 존재잖아. 그에 따라 변질된 힘이 마기이고 말이야.”

“흐응 카스피. 제법 정확히 알고 있구나.”

“나도 공부 좀 했지. 헤헤.”

카스피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무튼 내가 궁금한 건, 신이 악마가 된 것처럼 악마가 신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느냐는 거야.”

그 물음은 아틸라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틸라가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었다.

조금 전 만났던 오르피나에게서 발하던 기운은 마기와는 달랐다.

오르피나는 신의 힘을 사용했다.

그러나 도롱뇽이 먼 옛날 지하마계에서 만난 오르피나는 마기를 운용하고 있었을 터다.

그러지 않았다면 도롱뇽이 당시의 오르피나를 고위악마 닉스라 믿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설마.’

아틸라는 추측했다.

어쩌면 신과 악마는.

아니 어쩌면 신과 악마 중 일부의 존재는.

신과 악마의 모습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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