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13화 (313/425)

313. 예언과 운명 (1)

“명계의 썩은 내가 난다. 가까워.”

도롱뇽이 말했다.

바토리의 표정도 변했다.

그녀는 도롱뇽 다음으로 불온한 기척을 느꼈다.

아틸라를 필두로, 일행은 무기를 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크르르르……, 요롱이도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변했다.

주위엔 정적이 흘렀고, 일행은 자신의 숨소리조차 잊었다.

……트콰콰콰콰콰!

저 멀리 나무들이 공중에 치솟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졌다.

저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힐 정도의 완력을 지닌 존재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 대체 뭐가 오고 있는 거요! 아틸라 님!”

오토가 소리쳤지만 아틸라인들 알 리 없었다.

그러나 바토리는 다가오는 미지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서, 설마……!’

트카아앙!

가장 가까운 곳의 나무가 하늘로 튕겨 나며 미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파충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은 아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형태는 악어에 가까웠다.

다만 온몸이 마기로 일렁이는 까닭에 마치 검은 불꽃에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크뤄뤄뤄뤄뤅!

악어가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그 안엔 무엇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종류의 시체로 가득했다.

간간이 엘프의 머리도 보였다.

빠드득. 빠드드득…….

악어가 그것을 씹었다.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시체들의 입이 길게 찢기며 요란한 비명을 토했다.

오토가 욕지기를 참으며 외쳤다.

“저, 저거 살아 있는 거요! 뭐요!”

“바보 영주 나리! 살아 있을 리가 있겠어? 팔다리가 다 잘렸잖아! 심지어 머리만 남은 시체도 있다고!”

카스피도 메스꺼운 느낌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오토와 카스피는 검은 악어와, 악어의 아가리에 담긴 엘프의 시체에 주목했다.

저것만 봐도 서리나무숲에 이변이 생겼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저, 저것 봐 영주 나리! 역시 저 악어가 서리나무숲을 공격했나 봐!”

“히이익!”

그러나 아틸라와 바토리는 달랐다.

두 사람은 거대한 악어의 머리 위에 선 그림자를 확인했다.

그림자는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악어와 마찬가지로 검은 불길에 타오르는 그것에선 쉴 새 없이 검은 액체가 흘렀다.

그 모습을 보며 바토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르피나.”

그랬다.

먼 옛날 고대 왕국 사르데니야의 신이자.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습격으로부터 바토리와 리베르를 구하고, 관조자로 만들었던.

또한 바토리에 의해 왼팔을 빼앗기며 ‘사색의 신’이라는 찬란한 이명을 잃고 지하세계로 추락한 존재.

파멸의 신, 오르피나.

“뭐? 저게 오르피나라고?”

도롱뇽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아니 그럴 리가. 저 녀석은 고위악마 닉스(Nyx)인데?”

도롱뇽은 닉스를 잘 알고 있었다.

도롱뇽은 먼 옛날 바토리와 관조자들에 의해 지하마계로 추락했고, 그곳에서 무언가의 이유로 인해 지하마계로 들어선 한 악마를 만났다.

그것이 바로 닉스였다.

“닉스라고?”

아틸라도 닉스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도롱뇽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거대한 검은 악어는 닉스의 환수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소설 패영전에서 닉스는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그러나 원작자인 아틸라의 머릿속엔 분명하게 존재하는 악마다.

아틸라는 도롱뇽과 바토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누구 말이 맞는 거지? 오르피나인가, 아니면 닉스인가.’

아틸라는 긴장했다.

사실 상대의 정체가 오르피나인지, 닉스인지는 지금 크게 중요치 않다.

‘변치 않는 사실은 눈앞의 존재가 한때 신이었다는 것.’

물론 아틸라와 동료들은 한때 신이었던 고위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쓰러뜨린 전적이 있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를 완전히 파괴한 것은 아자젤(벨리알)이었고.

또한 그때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라일 플라마)의 몸이 되어 있었기에, 본연의 힘을 오롯이 발휘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닉스와 오르피나는 메피스토펠레스보다 강하다.

“저 존재는 오르피나가 맞다.”

바토리가 떨리는 왼팔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바토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했다.

근거는 또렷했다.

오르피나에게서 갈취한 왼팔이 무섭게 진동하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오르피나가 이곳에.’

바토리는 오르피나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오르피나의 몸이 반투명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아틸라도 그것을 봤다.

“오르피나는 완전히 중간계에 현현(顯現)한 상태는 아닌 것 같군.”

아틸라도 눈앞의 존재를 오르피나라고 불렀다.

그는 바토리의 말을 믿기로 했다.

도롱뇽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둘의 말은 모두 사실일 테지.’

다시 말해 눈앞의 존재는 파멸의 신 오르피나이자 고위악마 닉스다.

마치 사도 아자젤이 고위악마 벨리알이기도 했던 것처럼.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바토리가 동의했다.

아틸라의 말대로, 오르피나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지금 일행의 눈에 비친 형상은 오르피나의 일부.

분명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명계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휘리릭!

오르피나의 어깨가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기다란 채찍이 휘둘러졌다.

그것이 노리는 건 아틸라 일행이 아니었다.

오르피나는 후미의 무언가를 향해 채찍을 날렸고.

환수 리바이어던이 이곳까지 오며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버린 상태였기에, 일행은 오르피나의 타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히익! 저, 저거 수해의 몬스터들 아니요!”

단 한 번의 채찍질에 몬스터들의 몸이 깍두기처럼 썰려 나갔다.

고개 돌린 리바이어던이 절단된 몬스터들을 입에 담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처럼 으적으적 씹었다.

오르피나는 몇 차례 더 채찍을 휘둘러 몬스터들을 제거했다.

그러는 동안 아틸라는 길잡이 숲이 직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오르피나와 리바이어던이 선 곳을 경계로, 그 너머는 수해로 바뀌어 있었다.

‘길잡이 숲이 수해로 바뀌었다고?’

믿기 힘든 일이었다.

달빛우물숲에서 공간의 침식이 일어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곳 길잡이 숲이 수해로 변화한 건 더욱 경악할 일이었다.

‘구 아스투리아 왕국엔 수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가까운 곳의 수해는 구 아스투리아 왕국 남쪽으로 면한 구 발루아 왕국의 남부 지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수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대격변은 정말로 대격변이로군.”

나머지 일행도 눈앞의 숲이 수해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았다.

일행 모두는 수해를 심층부까지 경험한 이들이다.

수해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 정도는 충분히 갖췄다는 이야기.

아틸라는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했다.

오르피나의 채찍이 언제 이쪽을 향할는지 모른다.

‘막을 수 있을까. 내가.’

자신할 수 없었다.

오르피나는 완전한 모습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드라코리치 못지않은 기운을 뿜어 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르피나의 환수 리바이어던 역시 세베스티아와 견주어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틸라는 오르피나를 상대하려면 자신이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하거나, 바토리가 폭주의 마력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나와 바토리 모두가 한계까지 힘을 끌어내야만 하겠지.’

피하고 싶은 일이다.

아틸라는 오르피나와 전투하지 않는 상황을 바랐다.

가능성은 있었다.

오르피나와 리바이어던은 무시무시한 돌진으로 이곳까지 달려왔지만, 아직까지 일행에게 이렇다 할 적개심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으적. 으저적…….

몬스터 고기를 씹던 리바이어던이 꿀꺽 그것을 삼켰다.

오르피나의 채찍도 움직임을 멈췄다.

아틸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오르피나를 바라봤다.

극히 미약하긴 했지만, 오르피나는 처음 봤을 때보다 몸의 투명도가 낮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검은 불꽃처럼 일렁이는 얼굴 가운데 빛나는 무심한 눈동자 한 쌍을.

그 눈동자는 아틸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탓.

오르피나의 몸이 공중에 떴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바닥에 내려앉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틸라는 더욱 강렬한 압박을 느꼈다.

검을 든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화르르, 바토리가 왼팔의 마력을 개방했다.

오토와 카스피도 각자의 무기를 고쳐 잡았다.

펀치와 요롱이도 자세를 낮추며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도록 뒷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때 도롱뇽이 별안간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뭐냐 닉스! 왜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거지!”

선두에 직립한 도롱뇽이 두 앞다리를 벌렸다.

도롱뇽은 그 자그만 몸으로 일행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비늘을 부풀렸다.

아틸라를 주시하던 오르피나가 도롱뇽에게 시선을 돌렸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두근, 아틸라의 심장이 뛰었다.

오르피나의 음성은 매혹적이었다.

또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틸라는 눈앞의 존재가 오르피나라는 것을 다시금 확신했다.

매혹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 내 예언대로 움직인 것이구나. 신과 요툰의 아이야.

도롱뇽이 더욱 비늘을 부풀렸다.

오르피나의 눈이 이번엔 바토리를 바라봤다.

- 망국의 공주야.

그러고는 말했다.

- 나의 왼팔은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냐.

도롱뇽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바토리의 말대로, 눈앞의 존재는 고위악마 닉스이자 오르피나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왜 이름을 두 개씩 갖고 지랄이야.”

아틸라는 투덜대는 도롱뇽과 오르피나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아틸라는 오르피나에게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설명해라 도롱뇽. 지하마계에서 오르피나를 만난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틸라는 오르피나의 말에서 의문을 느꼈다.

오르피나는 도롱뇽에게 예언대로 움직였다는 말을 했다.

도롱뇽이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오르피나를 노려봤다.

“난 바토리 할망구와 다른 관조자들에 의해 지하마계로 추방당한 뒤 닉스……, 아니 오르피나를 만났다.”

이어진 도롱뇽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오르피나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말했지.”

‘나의 이름은 예언의 악마, 닉스.’

그때의 오르피나는 분명 자신을 닉스라 소개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난 널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기다렸단다.’

도롱뇽은 이유를 물었다.

오르피나가 답했다.

‘넌 알테라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될 존재란다. 또한 넌 영원히 지하마계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을 탈출하도록 도울 거니까.’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의문을 표하는 도롱뇽을 오르피나는 어디론가 끌고 갔다.

‘지하마계에 머무르는 동안, 절대로 이곳을 벗어나지 말거라.’

멈춰 선 오르피나의 손가락이 허공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도롱뇽은 보았다.

오르피나는 왼팔이 뜯겨 보이지 않았고, 온몸에서 검은 액체를 쉼 없이 흘리고 있었다.

‘가없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곳의 허공 위에 자그만 소환진 하나가 생성될 것이다. 소환진을 여는 이는 ‘할리’라는 이름의 사령술사. 훗날 ‘파우스트’라는 흑마술사 집단에 속하게 될 미숙한 관조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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