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12화 (312/425)

312. 숲의 어둠

도롱뇽이 발끈하며 외쳤다.

평소라면 도롱뇽에게 앞발 공격을 날릴 펀치였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펀치가 도롱뇽의 목에 코를 문질렀다.

“뭐, 뭐야. 왜 자꾸 문질러.”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도롱뇽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 펀치의 코에 제 몸을 기댔다.

“오늘만이다. 곰탱이 새끼.”

끼아옹!

“그럼 너도 드라칸 코르키코스가 드라코리치가 된 계기는 알지 못하는 건가.”

아틸라의 물음에 도롱뇽은 약간 다른 이야기를 했다.

“코르키코스가 쓰러뜨린 산맥 상단부 괴수는 한 지역의 우두머리였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칼날 산맥 상단부는 크게 몇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고 각 지역마다 우두머리가 존재하는 것 같더군.”

도롱뇽은 언젠가 칼날 산맥 상단부의 생태계를 관찰한 일이 있었다.

“아울러 우두머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절대로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더군.”

아틸라는 드라코리치와 대화하던 도롱뇽을 떠올렸다.

“그건 이번에 녀석과 대화하며 알게 된 사실인가.”

“흠. 역시 눈치채고 있었냐 야만 미물.”

드라코리치는 이미 도롱뇽이 알던 드라칸 코르키코스가 아니었다.

언데드가 되며, 그리고 칼날 산맥에서 살아가며 그의 정신은 많은 부분이 침식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드라코리치는 도롱뇽을 기억했고, 대화를 시도했다.

도롱뇽에겐 큰 의미가 담긴 사건이었다.

그 대화를 통해 도롱뇽은 드라코리치가 산맥 상단부의 한 영역에 속박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 말대로라면, 수해와 마찬가지로 칼날 산맥 또한 자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거로군.”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말로 칼날 산맥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상단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라면, 산맥의 의지가 개입됐다 생각하는 편이 적합하겠지. 아무튼 코르키코스는 우두머리를 쓰러뜨리며 그 지역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됐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죽었지.”

아틸라는 도롱뇽이 말을 돌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산맥의 의지가 코르키코스를 언데드로 부활시켜, 영역을 맡겼다는 건가.”

“내 추측으로는 그렇다.”

“응? 하지만 이상한데 도롱뇽?”

카스피가 끼어들었다.

“우두머리를 쓰러뜨린 건 코르키코스 혼자가 아니었잖아. 도롱뇽도 분명 우두머리를 공격했고, 그렇다면 죽은 코르키코스 대신 도롱뇽이 우두머리가 됐어야 하는 거 아냐?”

“드, 듣고 보니 그렇네. 안 그렇수? 아틸라 님.”

카스피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정말로 칼날 산맥에게 자아가 존재한다면.

죽은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언데드로 부활시키는 것보다, 자리에 있던 도롱뇽을 우두머리로 만드는 편이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난 코르키코스를 포식한 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세한 인과 관계는 알지 못해.”

그 말대로 도롱뇽은 자세한 이유를 몰랐다.

아틸라는 납득했다.

이 일의 인과 관계는 신조차 모를 가능성이 크다.

중간계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신들의 세계가 아니다.

엘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해를 포함해, 칼날 산맥 역시도 신들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어찌 됐든 도롱뇽이 상단부 우두머리가 되지 않은 건 다행이지 않느냐. 만약 그랬다면 이렇듯 우리와 함께 여행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바토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틸라는 바토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만약 도롱뇽이 그날 드라칸 코르키코스 대신 상단부 우두머리 중 하나가 되었다면, 사르데니야 왕국이 멸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토리는 저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바토리가 도롱뇽을 진정으로 동료라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도롱뇽도 물끄러미 바토리를 봤다.

그러고는 펀치의 폭신한 털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북부 전선 총사령관 로잘린 란틴크는 돌아온 오토마이어 왕이 다시 전선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어째서 국왕 폐하를 붙잡아 두지 못한 것이냐!”

로잘린의 노성에 아론을 포함한 세 기사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그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총사령관. 대장이…… 아니 왕께서 떠나시겠다는데 저희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옆엔 아틸라 님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마, 맞습니다.”

“아무도 아틸라 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빌어먹을!”

로잘린은 애꿎은 탁자만 내려쳤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오토마이어 왕은 나바라 왕국 최강의 전사.

게다가 아틸라는 그런 오토마이어 왕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강자다.

세 기사가 그들 일행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전선에 있어야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병사들이 언데드에게 죽임당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언데드로 부활해 어제까지 전우였던 자에게 이빨을 들이대고 있다.

로잘린은 극심한 피로를 감각했다.

그녀는 북부 전선 총사령관의 임무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곳엔 오토마이어 왕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아틸라 님은 엘프의 군대를 규합해 돌아오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전쟁의 향방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아론의 말에 로잘린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인정했다.

엘프들이 전쟁에 합류한다면, 분명 연합군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로잘린은 왜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듣기로 엘프들은 아틸라와 친분이 있다.

또한 카르타고와 언데드들이 중간계를 장악하는 상황은 엘프들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엘프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곧 왕께서 알게 되시겠지.’

불현듯 한기가 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로잘린은 오토마이어 왕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 * *

아틸라 일행은 구 아스투리아 왕국의 중서부 지역을 날고 있었다.

아틸라는 저 멀리 길잡이 숲으로 보이는 초록빛 대지를 바라봤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요롱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군마를 이용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고 빨랐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소 아틸라 님. 달빛우물 엘프들이 도움을 주겠다니 말이오.”

오토의 말대로 일행은 달빛우물 엘프들을 만났고, 연합군에 참여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바토리가 말했다.

“달빛우물숲의 수장 요르그 문샤인웰은 아틸라에게 빚이 있다. 게다가 카르타고의 야망은 엘프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니, 이런 불안한 상황에도 힘을 보태려 한 것이겠지.”

“으으……. 근데 바토리. 정말 중간계가 이상해지고 있긴 한가 봐. 들어보니 달빛우물 엘프들도 카르타고의 야욕을 마냥 손 놓고 구경하던 건 아니었잖아.”

이번에 달빛우물숲을 방문하며 일행은 지금껏 그들이 카르타고에게 침묵하고 있던 이유를 알았다.

달빛우물숲은 대격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다.

“달빛우물숲은 중간계의 작은 틈새에 위치한 곳이다. 그리고 대격변은 세계선의 붕괴를 유발하고 있지. 달빛우물숲이 불안정한 상태가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바토리의 말대로, 달빛우물숲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중간계와 틈새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공간의 침식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달빛우물숲의 일부와 여러 엘프들이 불안정한 침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재앙은 현재진행형이었고, 요르그 문샤인웰과 나머지 엘프들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얼마 전의 우리가 불현듯 칼날 산맥으로 이동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아틸라는 달빛우물숲을 향하던 중 갑자기 풍경이 칼날 산맥으로 바뀌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마 그때는 달빛우물숲을 둘러싼 공간의 침식이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었을 터다.

그래서 근방의 공간이 마치 접힌 종이와도 같은 상태가 됐고, 일행은 순식간에 그곳을 넘어 칼날 산맥에 도달한 것이다.

“자, 잠깐 아틸라! 그럼 슈시아의 서리나무숲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거 아냐? 그래서 서리나무 엘프들도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겠지.”

아틸라는 줄곧 슈시아가 전쟁에 불참한 이유를 생각했었다.

본래 엘프란 인간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중간계에 큰 미련을 가진 종족은 아니다.

‘게다가 엘프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교적 안전한 장소인 그들의 거처에 직접적이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번 전쟁을 방관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아틸라는 슈시아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결코 중간계의 위협을 무시할 존재가 아니다.

실제로 아틸라가 샤를의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해 서리나무숲을 방문했을 때, 아틸라는 슈시아에게 다가올 대격변에서 힘을 보태 달라는 부탁을 했었고,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대환영이지. 이계의 것들이 중간계를 침범한다는데 멍하니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군.’

그랬던 그녀가, 아무리 아틸라가 모습을 감춘 상황이라 해도 샤를의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은 건 의외였다.

심지어 슈시아는 달빛우물숲을 거쳐 칼날 산맥의 스켈레톤 드레이크를 사냥하는 여정을 함께했고, 그러는 동안 샤를과 제법 가까워졌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슈시아와 서리나무숲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다.

그것 말고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도착한 것 같구나.”

일행은 길잡이 숲의 영공에 도달했다.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한 일행은 요롱이를 착지시켰다.

“쉬면서 배 좀 채우고 있어라 요로오옹! 하하하하!”

오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요롱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갔다.

일행은 칼날 산맥 방향으로 걸었다.

일행에겐 서리나무숲을 통하는 틈새를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근방을 돌아다니며 서리나무 엘프를 만나게 되는 상황을 기다려야 했다.

엘프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선 이방인을 감지하는 재주가 있다.

이전에도 귀신같이 기척을 느낀 슈시아가 마중을 나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일행은 제법 오랜 시간 길잡이 숲의 극서부 지역을 거닐었지만, 엘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틸라 님. 이거 좀 이상하지 않소? 달빛우물 엘프들은 우리 기척을 느끼고 금세 모습을 드러내던데, 왜 서리나무 엘프들은 이렇게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거요.”

아틸라는 대답 없이 숲을 걸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도 일행을 마중 나오는 이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근처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모닥불이 피워졌다.

일행은 요롱이가 잡아온 들짐승으로 허기를 채웠다.

쩝쩝대며 고기를 씹던 도롱뇽의 표정이 불현듯 변했다.

“어이. 야만 미물.”

도롱뇽이 비늘을 부풀렸다.

사나운 기운을 머금은 그의 눈이 숲의 어둠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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