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11화 (311/425)

311. 사라진 기억

도롱뇽이 소리쳤다.

하지만 코르키코스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코르키코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참았던 본능이 그를 지배했다.

- 먹어라. 네 형제를 씹어 삼켜라.

코르키코스는 악마의 힘을 부여받은 대가로 멈추지 않는 식욕에 시달렸다.

또한 식욕을 채울 때마다 그는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기한 점은 자신과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먹이를 섭취할수록, 보다 강한 힘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크르르……. 크르르르르…….

벌어진 입에서 진득한 침이 흘렀다.

코르키코스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도롱뇽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도롱뇽은 몸을 비틀어 그것을 회피했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의 본능은 두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괴수처럼 울부짖으며 코르키코스가 도롱뇽의 가슴을 물었다.

도롱뇽은 이를 악물며 코르키코스를 밀어냈다.

빠드득, 도롱뇽의 살갗과 근육이 뜯겨 나갔다.

고통을 견디며 도롱뇽이 코르키코스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잠시였다.

부르르르르르……!

도롱뇽의 몸이 경직됐다.

도롱뇽은 코르키코스가 ‘피어(Fear)’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피어는 코르키코스가 먹잇감을 사냥할 때 흔히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위력이 강하지 않은 탓에, 상대적으로 약한 먹잇감을 상대로만 사용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피어는 대단했다.

도롱뇽마저 자리에 멈춰 세울 정도로.

‘코르…… 키코스…….’

도롱뇽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하나뿐인 형제.

함께 부모를 찾자며 다짐했던 혈육.

그 형제가 자신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도롱뇽은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도롱뇽은 심장의 마력을 운용했다.

다시 한번 목구멍으로 마력을 응축했다.

코르키코스의 눈빛이 일순 변하는 것을 보며 도롱뇽이 아가리를 벌렸다.

키랴랴랴랴랴랴!

도롱뇽의 브레스가 코르키코스의 몸을 덮었다.

그것을 무시하듯 코르키코스가 앞으로 내달렸다.

온몸으로 브레스를 맞으며 도롱뇽에게 접근했다.

성난 코르키코스의 아가리가 브레스를 뚫고 나왔다.

콰드득!

살과 근육이 찢기는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으적으적, 그것을 씹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도롱뇽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옆으로 괴수가 쓰러졌다.

죽은 줄 알았던 괴수가 마지막 힘을 짜내 도롱뇽을 노리며 달려왔다.

그 광경은 코르키코스의 이성을 아주 잠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도롱뇽이 브레스를 쏘기 직전, 코르키코스의 눈빛이 변했다고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롱뇽의 목에 익숙한 감촉이 떠올랐다.

괴수를 쓰러뜨린 코르키코스가 자신의 머리를 힘겹게 문지르고 있었다.

‘코르키코스……!’

코르키코스가 널브러졌다.

그의 몸은 이제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엉망이 됐다.

원래부터 만신창이였던 몸은 도롱뇽의 브레스를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도롱뇽의 브레스는 처음보다 강력해져 있었다.

‘……네 말이 맞았네. 이스메니오스.’

코르키코스가 중얼거렸다.

‘……악마의 힘엔 치명적인 대가가 따라. 나의 대가는 잔혹했어. 다른 무엇도 아닌, 널 먹으려 했으니까.’

코르키코스의 입에서 울컥 핏물이 쏟아졌다.

‘……날 삼켜 이스메니오스. 그것만이 네가 이 산맥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도롱뇽은 고개를 저었다.

‘……이스메니오스. 난 네가 무사히 산맥을 벗어나길 원해. 그리고 난 언제까지고 너의 곁에 있고 싶어. 그래서 언젠가…… 부모를 만나고 싶어.’

코르키코스는 부모를 찾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다만 악마의 힘에 잠식돼 조금씩 자아가 흐려졌을 뿐이다.

그가 칼날 산맥을 찾은 건 자아의 침식을 완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코르키코스는 알고 있었다.

강한 힘을 지닌 먹잇감으로 식욕의 본능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자아의 침식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라는걸.

‘……네 말대로야 이스메니오스. 나는…… 네게 의지하고 있었어…….’

‘코르키코스……!’

‘그리고 어쩌면 난……, 널 포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지도 몰라.’

도롱뇽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다.

코르키코스는 두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난 흔들렸어……. 나의 내면의 속삭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널 먹으라 유혹하고 있었지.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 난 닥치는 대로 먹이를 섭취해야 했어…….’

도롱뇽은 코르키코스가 산맥의 괴수들을 필요 이상으로 먹던 것을 떠올렸다.

또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그때만의 일이 아니었다.

‘……부탁이야 이스메니오스. 날 포식해. 그렇게 한다면 넌 나의 힘을 흡수할 수 있을 거야. 산맥을 벗어날 수 있게 될 거야.’

코르키코스의 떨리는 눈이 도롱뇽을 바라봤다.

도롱뇽은 형제의 간절한 의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의지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떠나는 형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코르키코스도 도롱뇽의 의지를 읽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가 말했다.

‘……날 포식하면 넌 악마의 힘을 손에 넣게 될 거야. 너 역시 식욕의 본능에 휘둘리게 될 거란 이야기지……. 하지만 결국 넌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거야. 넌 나와 다르게 악마의 도움 없이 브레스를 각성했어. 그 의지가 언젠가…… 악마의 잔혹한 대가로부터 널 자유롭게 만들어 줄 거야…….’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의 목에 머리를 문질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포식했다.

* * *

이야기를 멈춘 도롱뇽의 두 눈은 촉촉했다.

카스피가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오토가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도롱뇽을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앞발 공격에 꾸에엑!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카아앗! 저리 가라! 종복 미물 새끼!”

바토리가 도롱뇽을 바라봤다.

도롱뇽은, 아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바토리에겐 철천지원수였다.

그러나 관조자가 된 바토리가 복수를 위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찾았을 때, 바토리는 알게 되었다.

사르데니야 왕국을 멸망시킬 당시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강력한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바토리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죽이지 않고 마계로 추방했다.

이후 바토리는 아틸라와 여행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재회했고, 함께 여행하는 ‘도롱뇽’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토리는 도롱뇽에게 원한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해묵은 감정은 여행이 길어지며 옅어졌고,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도롱뇽은 바토리의 동료다.

그리고 바토리는 오늘, 도롱뇽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구나 도롱뇽아. 그래서 네가 이렇게 미친 드래곤이 된 것이었구나.”

“카아앗! 미친 드래곤이라니 이 미친 할망구가!”

발끈하는 도롱뇽을 보며 바토리가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엘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여타 드래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거든. 그래서 특별한 존재라 불리는 거야.’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줘도 지금의 바토리는 이해하기 힘들 거야. 아무튼 그 탓에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정신세계는 불안정하게 성장했고, 다른 드래곤들보다 괴팍한 성정을 갖게 되었어. 심지어 동족을 잡아먹기도 했지. 그것이야말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광룡이라 불리게 된 배경이야.’

엘이 해 줬던 이야기가 모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신계에서 변종 취급을 받던 반신.

그 때문에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정신세계.

형제를 먹어야 했던 과거.

그로 인해 지니게 된 후유증.

그렇게 광룡이라 불리게 된 배경까지.

“……코르키코스를 포식한 이후의 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칼날 산맥을 벗어났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악마의 광기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 몸을 잠식했다. 일말의 정신을 차려 보니 중간계는 요툰 전쟁이 한창이더군. 게다가 나와 코르키코스를 닮은 이상한 놈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드래곤 말이로군.”

아틸라의 말에 도롱뇽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은 요툰의 대항마로 드래곤을 창조했다.

당연히 드래곤들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무튼 그때까지도 난 완전한 이성을 찾지 못했다. 몇몇 신들이 내게 드래곤들과 힘을 합쳐 요툰과 싸우라 주절댄 것 같긴 한데, 뭐,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모르지.”

도롱뇽은 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미 그는 신들마저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야말로 반신을 넘어선,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

그것이 바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였다.

“그, 그럼 도롱뇽! 결국 엄마와 아빠는 만나지 못한 거야?”

카스피의 물음에 도롱뇽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롱뇽의 대답은 놀라웠다.

“……부모라면 만났다.”

“흐에에엣? 정말로?”

“그, 그게 사실이냐 불쌍한 도마뱀아!”

“저 종복 미물 새끼. 누가 누구한테 불쌍하다는 거냐!”

“그건 됐고 도롱뇽! 그래서 엄마가 누군데? 아빠가 누군데에!”

카스피의 닦달에 도롱뇽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긴 했는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엥?”

카스피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도롱뇽이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했듯 난 대악마 아몬의 힘에 잠식돼 오랜 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아버지가 고대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느 고대인의 왕국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날 무지막지하게 굴렸다는 거다.”

어렴풋한 기억을 되새기며 도롱뇽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도롱뇽에겐 상당히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런 도롱뇽을 보며, 바토리는 도롱뇽을 재회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틸라에게 혹독하게 정신 교육을 받은 뒤, 밤의 야영지에서 흐느끼며 도롱뇽은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흐흑……! 망할 아버지도 날 이렇게까지 굴리진 않았는데…… 흑흑……!’

“그럼 도롱뇽의 아버지는 신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네?”

카스피의 물음에 도롱뇽이 무언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흠. 아마 그렇겠지. 그때의 난 웬만한 신들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던 데다가, 성질머리까지 고약했으니까.”

“호오. 그런 성질머리 고약한 도롱뇽을 무지막지하게 굴릴 정도로 강한 신이라면 누가 있으려나.”

카스피는 곰곰이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신은 없었다.

아니, 카스피는 아는 신이 거의 없었다.

카스피의 눈이 반짝였다.

“응? 잠깐만. 그럼 엄마는? 부모를 만났다면 엄마도 만났다는 거잖아.”

“그 기억이라면 더 흐릿하다. 그냥 만났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야.”

“힝. 불쌍해.”

카스피가 측은한 눈으로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직립하며 섰다.

그런 도롱뇽에게 펀치가 다가갔다.

그러고는 도롱뇽의 짤막한 목에 킁킁 얼굴을 문질렀다.

“아 시발 깜짝이야 미친 곰탱이 새끼! 콱 그냥 포식해 버릴까 보다! 카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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