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드라콘과 드라칸 (4)
‘가자. 이스메니오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칼날 산맥을 향해 날았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당시 산맥엔 상당수의 괴수가 살고 있었다.
“그, 그럼 단둘이 칼날 산맥의 괴수들과 맞짱을 뜨러 간 거야?”
카스피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칼날 산맥의 괴수들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곳에 없다.
그러나 아틸라는 도롱뇽과 코르키코스 정도의 드래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두 드래곤에겐 날개가 있다.’
지상의 괴수들은 하늘로 피해 가면 그만이다.
실제로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비행 능력을 적극 활용했고,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며 산맥을 올랐다.
조금 특이했던 점은, 전투가 끝날 때마다 코르키코스가 죽은 괴수를 먹었다는 것이다.
사실 포식자가 먹이를 먹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먹이를 섭취했다.
마치 탐험이 주목적이 아니라, 먹이를 먹기 위해 산맥에 온 것 같았다.
머지않아 둘은 산맥 중턱에 다다랐다.
‘비행종들이 오고 있어. 코르키코스.’
도롱뇽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전에 산맥을 찾았을 땐 중턱의 괴수들과 싸우다 후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강해졌다.
‘내게 맡겨. 이스메니오스.’
코르키코스가 가슴을 부풀렸다.
쫘악, 아가리를 벌리며 비행종들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키랴랴랴랴랴랴!
브레스의 힘은 엄청났다.
수많은 괴수 비행종들이 그 한 번의 공격에 잿개비가 되어 흩어졌다.
도롱뇽은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보다 더 강해졌어.’
도롱뇽은 눈을 부릅떴다.
코르키코스의 브레스는 너무도 강력했다.
도롱뇽은 신과 악마의 힘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저 정도 힘이라면 신과 악마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다.
코르키코스가 크게 웃었다.
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댔다.
‘생각대로야 이스메니오스! 나의 힘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어!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도롱뇽은 불안감을 느꼈다.
코르키코스가 처음 브레스를 손에 넣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의 내면 속 무언가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감각이 다시 도롱뇽을 자극했다.
‘코르키코스. 이만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우린 아직 산맥 상단부의 괴수들을 알지 못해. 조금 더 준비한 뒤에 돌아오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이스메니오스. 우리들은 강해. 우린 신과 요툰과 악마의 힘을 지닌 최강의 존재야. 상단부 괴수들도 우리 상대가 될 수는 없어.’
‘난 너만큼 강하지 않아 코르키코스. 난 악마의 마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도롱뇽은 아몬을 만난 후 마기의 사용을 자제했다.
그는 악마의 힘이 불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기를 배제한 채, 신과 요툰의 힘만을 갈고닦았다.
그런 방식으로도 도롱뇽은 상당히 강해질 수 있었다.
코르키코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괜찮아 이스메니오스. 너의 곁엔 내가 있어. 내가 널 지켜 줄 거야.’
‘그렇지 않아 코르키코스. 우린 형제고, 동등한 관계야. 난 너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 말에 코르키코스의 눈빛이 변했다.
‘이스메니오스. 난 너보다 강해. 강한 형제가 약한 형제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넌 나를 의지했어. 그 관계를 이제 와 무너뜨릴 셈이야?’
도롱뇽도 눈빛을 바꿨다.
‘네 말은 사실이 아니야. 내가 너를 의지했듯 너 역시 나를 의지했어. 우린 언제나 서로를 도왔고, 그렇게 신계를 벗어나 중간계에서의 위기를 이겨 냈어.’
‘그래. 네 말대로 우린 언제나 함께였지. 하지만 그것이 언제부턴가 변했어. 악마가 우리 곁에 나타났던 날. 그날부터 넌 이전과 달라졌어.’
‘달라진 건 내가 아냐. 넌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난 느낄 수 있어. 악마의 힘은 강대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거야. 넌 지금이라도 그 힘을 봉인하고 신과 요툰의 힘을 사용해야 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진짜 힘이니까.’
코르키코스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부모 같은 소린 집어치워 이스메니오스! 우린 부모에게 버림받았어!’
도롱뇽도 지지 않고 맞섰다.
‘우린 그 부모를 찾기 위해 신계에서 도망쳤어. 그것이 너와 나의 목표였어. 그러나 넌 변했어. 넌 언젠가부터 부모를 찾겠다는 의지가 아닌, 더욱 강한 힘을 갈구하고 있어.’
‘신계를 벗어나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어! 그간 우린 중간계를 샅샅이 뒤졌지만 부모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지! 눈을 떠 이스메니오스! 우리에게 부모 따윈 존재하지 않아!’
부모를 부정하는 코르키코스의 말에 도롱뇽은 파르르 아가리를 떨었다.
‘아니야 코르키코스! 우린 아직 중간계의 모든 곳을 둘러보지 않았어! 우린 부모를 찾을 수 있어! 부모도 분명 우릴 찾고 있을 거야!’
‘이제 그만 깨어나 이스메니오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서로일 뿐이야! 언제 신들이 우릴 찾으러 내려올지 몰라! 그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면, 그리고 악마의 마수로부터 우릴 지키려면 우린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해!’
코르키코스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낯익은 모습.
도롱뇽은 깨달았다.
코르키코스의 눈동자는 대악마 아몬의 눈을 닮아 있었다.
그때였다.
코르키코스의 동공에 섬뜩한 살기가 맺혔다.
코르키코스가 도롱뇽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이스메니오스으으으!’
도롱뇽은 코르키코스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 직감했다.
키랴랴랴랴랴랴!
엄청난 마기의 브레스가 코르키코스의 입에서 뿜어졌다.
도롱뇽은 회피할 수 없었다.
날개를 접으며 웅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퍼퍼퍼퍼펑!
거대한 공명이 하늘을 울렸다.
도롱뇽은 저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떴다.
이상했다.
자신의 몸이 멀쩡했다.
코르키코스가 소리쳤다.
‘피해! 이스메니오스!’
도롱뇽은 등 뒤의 기척을 감지했다.
뒤를 돌아봤다.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괴수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퍼엉!
괴수의 앞발이 도롱뇽을 타격했다.
반대편 앞발이 도롱뇽의 날개를 움켜쥐었다.
부드득! 날개가 구겨졌다.
도롱뇽의 몸이 추락했다.
콰콰콰콰콰콰!
쌓인 눈을 가르며 도롱뇽이 설원을 굴렀다.
지면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롱뇽은 직감했다.
어느새 둘은 산맥 상단부에 진입해 있었다.
‘이스메니오스!’
도롱뇽에게 달려드는 괴수의 앞다리를 코르키코스가 물었다.
괴수가 비명을 지르며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것을 피해 괴수의 후미를 공격했다.
도롱뇽은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코르키코스와 괴수의 싸움을 봤다.
괴수는 코르키코스의 브레스를 맞고도 여전히 왕성한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렇게 강력한 괴수를 도롱뇽은 처음 보았다.
‘코르키코스……!’
도롱뇽은 몸을 일으켰다.
날개는 부서져 사용할 수 없다.
그제서야 도롱뇽은 코르키코스가 저 괴수와 육탄전을 벌이는 이유를 알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말대로 코르키코스는 도롱뇽을 보호하길 원했다.
그래서 공중전을 펼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면, 분명 저 무시무시한 괴수는 날개를 잃은 도롱뇽에게 달려들 테니까.
‘코르키코스!’
도롱뇽은 괴수를 향해 네 발로 달렸다.
보이는 괴수는 하나다.
코르키코스와 힘을 합쳐 녀석을 쓰러뜨린 뒤, 날개가 수복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러나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눈앞의 괴수는 지금껏 만나 본 그 어떤 적보다도 강했다.
도롱뇽의 공격은 놈에게 치명상이 되지 못했다.
도롱뇽은 처음으로 대악마 아몬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을 후회했다.
다행히도 코르키코스는 괴수와 호각으로 싸웠다.
그러나 이곳은 괴수의 둥지였고, 당연히 괴수의 전투 유지력이 더욱 뛰어났다.
코르키코스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퍼거걱!
괴수의 앞발이 코르키코스의 가슴을 타격했다.
코르키코스가 브레스를 뿜으려던 찰나였다.
코르키코스가 데굴데굴 지면을 굴렀다.
괴수가 코르키코스를 향해 달렸다.
‘코르키코스!’
도롱뇽도 괴수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괴수가 더욱 빨랐다.
안 돼. 도롱뇽은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코르키코스가 당한다.
코르키코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를 버리고 떠났다면.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형제를 버리고 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며 포효하는 코르키코스가 보였다.
그것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미는 괴수가 보였다.
도롱뇽의 눈이 희번덕 뒤집어졌다.
아가리를 벌렸다.
심장에 집약돼 있던 마력이 목구멍에 응축됐다.
힘껏 내뿜었다.
키랴랴랴랴랴랴랴!
가공할 위력의 브레스가 도롱뇽의 입에서 뿜어졌다.
그것은 형제인 코르키코스의 검은 브레스와는 달랐다.
퍼퍼퍼펑!
브레스에 직격 당한 괴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코르키코스의 브레스마저 견뎌 낸 괴수였다.
도롱뇽의 브레스는 괴수에게 치명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순의 틈이 코르키코스에게 기회가 됐다.
코르키코스가 괴수의 목을 물었다.
놈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소름 끼치는 절규를 내지르며 괴수가 두 앞발로 코르키코스의 몸을 잡아 뜯었다.
키에에에에!
코르키코스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 와중에도 코르키코스는 악다문 괴수의 목을 놓지 않았다.
괴수의 피와 코르키코스의 피가 설원에 흩어졌다.
콰드득! 괴수의 덜미를 도롱뇽이 물었다.
그렇게 앞뒤로 목이 물린 괴수가 더욱 맹렬하게 반항하며 코르키코스의 몸을 쥐어뜯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괴수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괴수는 죽었다.
도롱뇽은 지친 눈으로 코르키코스를 봤다.
코르키코스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난 그라 해도, 저 정도의 상처는 복원할 수 없을 것이다.
‘코르키코스…….’
코르키코스의 날개, 등, 가슴은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돼 있었다.
그르륵, 코르키코스가 바람 빠지는 신음을 뱉었다.
그러고는 도롱뇽을 바라봤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도롱뇽은 얼어붙었다.
코르키코스가 아니었다.
겉모습은 분명 코르키코스였지만, 그 눈동자는 지금까지의 그와 달랐다.
대악마 아몬을 만난 뒤 몇 번인가 드러냈던 광기의 차원이 아니다.
코르키코스는 지금 무언가의 감정에 지배받고 있었다.
도롱뇽은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그 누구에게나 각인된 기본적 본능.
‘식욕(食慾).’
그랬다.
코르키코스는 도롱뇽을 먹잇감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살의보다도 더욱 공포스러운 감정이었다.
코르키코스의 아가리가 도롱뇽을 습격했다.
도롱뇽이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코르키코스는 재차 도롱뇽에게 달려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
그제서야 도롱뇽은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코르키코스의 ‘대가(代價)’를 깨달았다.
‘눈을 떠 코르키코스! 넌 지금 악마의 힘에 지배되고 있어!’